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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산에 허기진 주5일 근무 직장인…백두대간·100명산 1년 만에 완등

白馬 2024. 4. 23. 06:29
 

땅통종주’ 완주한 황선수씨

 

 

극한 산행은 단순히 체력만 좋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산을 대하는 올곧은 태도와 이념, 탄탄한 지식과 경험을 두루 갖춰야만 안전히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넷플릭스 인기 예능 <피지컬100>에서 피지컬이 뛰어난 이를 탐구했듯, 월간<山>은 ‘산지컬’이 뛰어난 이들을 만나본다. 

 

 

직장인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운동 같은 취미 생활을 통해 건전하게 해소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폭식이나 폭음 등 부정적인 방법을 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황선수씨는 이를 폭산山으로 푼다. 평일엔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토요일, 일요일이면 전국 곳곳으로 내려가 산을 탔다. 유명한 종주 길들은 물론 100대 명산을 마치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듯 올랐다. 하루에 독립된 5~6개의 산을 오르기도 했고, 50km 이상의 장거리 무박 종주도 서슴지 않았다.

최근에는 조금 특별한 종주도 마쳤다. 땅통종주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출발해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걷는 길이다. 이 길을 개척한 나종대씨는 이를 1,350여 km로 제시했지만 황씨는 여기에 260km를 더 얹어 1,610km로 만들어 걸었다. 그래서 본인은 이를 “신新땅통종주”라고 부른다.

더 놀라운 건 황씨가 등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불과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는 것. 2017년 무박 지리산 성중종주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그 이후 지금까지 약 7,654km를 걸었다. 그리고 그동안 직장 생활을 계속 했다. 그러니 거의 모든 주말을 오로지 산에 쏟아 부은 셈이다. 이토록 산에 몰입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간단히 답했다.

“산은 변하지 않는 친구기 때문입니다.”

 

황선수씨가 직장 인근 우장산 숲길을 걷다 한 숨 돌리고 있다.

 

폐결핵을 이겨내고 스포츠에 빠지다

황선수씨는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의 한 산골에서 태어났다. 여섯 명의 형제와 함께 더불어 자란 그는 백산초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1970년 12월 겨울 서울로 올라왔다. 처음엔 서대문구 대조동에 터를 잡았다가 용산으로 옮겨 쭉 살았다.

“시골에서 태어났으니 대체로 몸은 건강한 편이었는데 중학교 2학년 때 폐결핵에 걸렸어요. 당시엔 빈민가에서 많이 일어나는 병이었죠. 3년 동안 치료를 받아서 완치됐는데 2년 후 재발해서 2년을 또 고생했죠. 아픈 것도 아픈 건데 약을 한 움큼씩 먹어야 되어서 너무 지겨웠어요. 한 번에 거의 20알, 아침점심저녁 3번을 먹었으니 하루에 총 60알을 먹은 거죠.”

경복고를 졸업한 후 육군 25사단 전방에서 군 생활을 마쳤고, 곧장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3년간 영업직으로 일하고 1988년에는 쌀집을 열었다. 25년간 직접 도맡아 운영했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분체이송 전문업체 DYPNF에 입사, 현재까지 정년을 넘겨 경영본부 기획관리팀 부장으로 봉직하고 있다.

“회사 회장이 경복고등학교 동기인데 12년 전에 시한부 6개월 판정을 받았어요. 그래서 저한테 몸이 좋지 않으니 여러모로 도와달라는 요청을 했죠. 동기의 사정이 그렇다니 가게는 아내에게 맡기고 곧장 달려가서 정신없이 도와줬어요. 그리고 3년이 지났는데 천만다행으로 동기는 완치됐어요. 그래서 이제 다시 가게로 돌아가야 되는데 그 사이 이쪽 일이 잘 맞기도 했고 계속 도와달라는 말을 들은 김에 아예 눌러 앉아 일하고 있습니다.”

친구를 위해 생업을 뒷전으로 미루고 달려오는 사람. 그런 사람답게 그는 친구가 많다. 경복고 졸업 후 10년이 지나 55회 동기회를 만들었는데 그때부터 총무를 30년 넘게 계속 하고 있다. 그의 인망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또한 타고난 운동광이라 관련 활동도 많이 했다. 볼링은 프로테스트 1차 합격, 용산구축구인연합회 사무국장 10년 재직, 동대문 아마추어 야구 2루수 선수 생활도 했다. 친구가 많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렇게 친구가 많은데, 그는 주말에 산으로 간다. 그만큼 산에 빠졌다. 

 

고성통일전망대에 도착하며 땅통종주를 완주한 황선수씨를 지인들이 축하해 주고 있다. 현수막의 1630km는 실제 1610km다.

 
 

지리산 무박종주 실패와 성공이 산으로 이끌다

2017년 호기롭게 무박 지리산 성중종주에 도전하기 전에도 산은 종종 다녔다. 2002년부터 지리산을 1년에 1~2번씩 1박 2일로 종주했다. 2005년에는 큰아들과 화대종주를 다녀오기도 했다. 산행 경험도 있고, 운동도 꾸준히 했기 때문에 무박 산행도 해볼 만할 것으로 생각했다.

“산 다니는 친구가 있었고, 그때 막 지리산 종주에 무박이란 개념이 생기고 인기를 끌 때였어요. 저도 해보고 싶어서 그 친구를 따라갔는데 연하천대피소 지나면서 쥐가 왔어요. 그래서 탈출했죠. 그게 참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그래서 당시 회사가 가산디지털단지 한 빌딩 18층에 있었는데 지하 2층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 올라가고 그랬어요. 골프를 치러가도 카트를 안 타고 걸어 다녔죠.”

절치부심하고 3개월 후 다시 종주에 도전했다. 하지만 아직 몸은 조금 더 만들어져야 했다. 선비샘을 지나면서 또 쥐가 났다. 같이 갔던 일행들을 먼저 보내고 천천히 완주를 목표로 걸음을 옮겼다. 천왕봉을 홀로 올랐는데 거기에 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행을 이뤘다.

 

땅통종주 출발 당시 황선수씨.

 

“이름도 성도 모르는 분인데 그분이 기꺼이 함께 걸어주었어요. 먼저 가라고 말씀을 드려도 안 가시더라고요. 바짝 붙으면 제가 민망해할 걸 아신 건지 먼저 가다가 100m 정도 거리가 벌어지면 괜히 멈춰서 신발끈 고치는 척을 하다 좁혀지면 또 먼저 가고 그랬어요. 종국엔 부담감도 마음의 빚도 갖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세상에 이렇게 고마운 사람이 있나 싶었어요.”

그렇게 다 내려서고 나니 밤 8시 30분. 말로 표현하지 못할 기분이 가슴속에 벅차올랐다. 눈물도 차올랐다. 그 기분은 8년이 지나도 여전히 언어화되지 않고 몽몽하다. 그는 “완주해 본 사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며 “말하자면 말로 할 수 있긴 할 텐데 잘 표현해 낼 자신이 없어서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은 그를 산으로 미친 듯이 잡아 끌어넣었다.

 

2020년 한 해에 1,800km 걸어

먼저 인터넷산악회와 안내산악회 위주로 전국 명산을 다녔다. 같이 다녀보니 걸음이 남들보다 조금 빨랐다. 예정된 시간보다 대개 1~2시간은 먼저 도착하곤 했다. 그래서 공허하게 시간을 보내느니 더 걷자 싶어서 남들보다 코스를 조금 더 길게 잡아 빠르게 돌고 가기도 했다. 억지로 잡은 코스인 만큼 자연스런 산행 동선이 되진 못했다. 마음에 충족이 안 됐다. 그래서 점점 장거리, 무박 종주에 빠져 들어가게 됐다.

특히 2020년에는 ‘프로젝트’의 매력을 맛봤다. 경복고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동창회에선 100대 명산 완등 프로젝트를 열었다. 1년 동안 가장 많이 등정한 사람을 선정해 백두산을 보내준다고 했다. 주최 측은 한 주에 한 산씩 50개의 산을 오르는 정도가 1등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황씨의 6년 선배가 기가 막힌 기록을 세웠다.

“저도 존경하고 잘 아는 선배인데 하루에 2산씩 두 달 만에 100대 명산 완등을 끝내버렸어요. 집에서도 이왕 할 거면 완등할 때까지 집에 들어올 생각도 말라면서 밀어줬대요. 그걸 보니 저도 뭔가 확 불타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주말 10산을 했어요. 하루에 많으면 5~6개씩 토, 일 산행하고 올라왔죠. 그렇게 주말 산행 29일로 100대 명산을 완등했어요.”

 

황선수씨는 본인의 블로그에 종주 기록을 꼼꼼하게 남기고 있다.

 

완등하고 나니 8월 초. 이번에는 무엇을 해볼까 둘러보니 간혹 안내산악회 따라서 구간 종주했던 백두대간이 떠올랐다. 그래서 혼자서 백두대간을 완주해 보기로 했다. 총 27구간으로 끊어서 8월 말부터 12월 24일까지 완주했다. 산악회나 지인과 함께할 수도 있었겠지만 다른 사람을 따라가는 산행으로는 도저히 만족감이 충족되지 않았다. 날머리에서 택시를 불러 차량 회수를 하고 다시 또 운전해서 서울로 오고 다음날 출근하는 번거로움이 가득했지만 그래도 완주하고 나면 다시 힘이 솟았다. 

그렇게 2020년에만 1,800km를 걸었다. 그러고 나니 조금은 더 특별한 종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반적인 능선 종주 이상의 다양한 콘셉트의 길들이다. 개중에서 먼저 걸어보기로 한 건 지리산 태극종주다. 총 거리 90km의 길이다. 2020년 12월 31일 한파주의보가 내려지고 눈이 많이 내린 날 산행을 시작했다. 

“태극종주 보급을 적극 돕는 터줏대감 같은 권 사장이란 분이 계셔요. 밤머리재에서 만났는데 ‘날이 안 좋으니 그냥 내려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해보고 싶어서 무시하고 갔죠. 저녁이 되니 눈이 또 내리고 길을 찾을 수 없는 지경이 돼 조난을 당했어요. 음식은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물이 얼어서 못 먹는 신세였죠. 

탈출도 쉽지 않았어요. 조상님은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들께 도와달라고 빌었습니다. 기도가 닿았는지 어떻게 내려왔는데 그게 조개골이란 곳이었습니다. 대원사에서 계속 도로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 곳이죠.”

태극종주의 따끔한 실패를 위로해 줄 길들을 찾았다. 인터넷에는 기존에 잘 알려진 전국 12대 종주에 3개를 더한 15대 종주란 글이 나왔다. 서울 불수사도북을 포함해 대구, 대전, 부산, 광주 5개 도시 주변의 중장거리 코스들이 비교적 접근성이 좋아보였다. 이를 하나씩 했다. 또 덕유산 육구종주도 했다. 영남알프스와 호남알프스 등 또 굵직한 종주들을 끝내고 나니 다시 태극종주만 남았다. 겨울에 포기했던 지리 태극을 끝내고 여름에 다시 설악 태극을 했다. 여름 동안 3번 실패하고 가을에 4번째 만에 성공했다.

“여러 종주를 다녀보면서 무엇보다 우리나라가 상상 이상으로 넓고 걸을 길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그런데 분명 길이 선명히 나 있는데 비법정탐방로라고 막은 곳도 상상 이상으로 많더라고요. 나무나 풀을 일부러 베어가며 정글을 뚫고 걷는 것도 아니고 이미 난 길을 걷는 것일 뿐인데 환경이 파괴된다며 막는 게 참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김미곤 대장과 함께 히말라야 푸캉 원정을 떠나 부단장으로 초등에 일조했다.
 

히말라야 푸캉 초등 원정 참여

고산등반도 해봤다. 경복고 100주년 행사로 김미곤 대장과 더불어 히말라야 푸캉(6,694m) 초등 원정대에 부단장으로 참석했다. 5,700m에 설치된 전진캠프를 오가며 원정대를 살뜰히 돌봤다. 특히 단장과 고문이 먼저 하산한 이후로는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맡아야 했다.

“부대장이 고산병이 와서 컨디션이 정말 안 좋았어요. 그래서 일단 후퇴를 해서 베이스캠프 아래 로지까지 내려갔죠. 등반팀을 먼저 올려 보내고 부대장을 간호하는데 이 친구가 꼭 정상을 가고 말겠단 의지가 활활 타더라고요. 그래서 사탕을 먹여가면서 다시 베이스캠프로 데려와 등반 팀에 붙여 올려 보냈죠. 결국 정상까지 모두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황선수씨는 정년이 넘긴 나이에도 경영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하루 50~60km, 땅끝부터 통일전망대까지

이제는 일반인들, 더 나아가 등산을 자주 하는 이들조차도 찾아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길들을 걷고 싶었다. 그래서 또 다시 인터넷을 뒤적였고, 거기서 단박에 하나의 길이 시선을 확 사로잡았다. 통일의 염원을 담아 해남 땅끝마을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걷는 땅통종주다. 황씨는 “아마 나종대씨 이후로 내가 두 번째로 완주한 것 같다”고 했다. 그만큼 땅통종주를 완주했다는 후기는 매우 찾아보기 힘들다. 비교적 최근인 2020년대 들어 개척된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그는 조금 더 특별하게 걷고 싶었다. 그래서 해남 땅끝에서 시작하는 땅끝기맥(140km)을 걸어 호남정맥(584km)으로 길을 이어가고, 다시 금남·호남정맥(63.6km)을 걸어 영취산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백두대간을 걷기 위해 경남 산청 덕산 사리마을로 이동, 백두대간(780km)을 걸어서 진부령에 도착, 마지막 죽변지맥과 해파랑길(53km)을 걸어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약 1,610km를 11개월, 54구간으로 완주했다.

 

“처음에는 하루 20km 정도 슬슬 걸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까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저보다 일주일 먼저 이 길을 시작하신 분들이 계신데 제가 완주한 지금 그분들은 총 거리 1,800km의 코스로 계획하고 대야산구간을 진행 중이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만큼 부지런히 걸었죠.”

 

한 구간당 50~60km, 보통 10~15시간을 잡고 걸었다. 1박 2일로 자면서 때로는 70km까지도 걸었다. 물론 코리아둘레길 같은 평지 위주의 길에선 심심치 않게 이 정도 거리를 뽑아내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땅통종주는 앞서 말했듯 지맥과 정맥, 대간 길이 한데 엮여 있다. 가시덤불과 잔가지가 무성해 온 몸을 쥐어뜯기며 걸어야 한다. 여름에는 모기도 많다.

 

우장산을 오르는 황선수씨.

 

“잠 안 자고 이틀 동안 걸은 적도 있어요. 내려오면 땀에 젖어서 냄새가 엄청났죠. 택시를 불러서 타는데 절로 죄송하다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종국에는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도 시작한 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서 꿋꿋하게 밀고 나갔죠.”

통일전망대에 도착했을 때의 기분은 의외로 묵묵했다. 완주를 반겨주는 이들이 소감을 물었는데 “또 다른 시작일 뿐”이란 답이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그냥 시원섭섭할 뿐이었다. 그래도 이런 생각은 들었다. 산 마니아라면 한 번은 걸어봐야 되는 길이라고. 또 우리나라에도 미국 PCT 같은 유명 장거리 트레일로 인기를 얻을 만한 길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고. 

 

60대 중반은 산이 한참 고플 나이다

황씨는 모든 물음에 솔직하고 시원하게 답했다. 굳이 미사여구로 포장하지 않았다. 장거리 산행의 매력에 대해서도 “먼저 남들보다 더 잘, 멀리 걷는다는 점에서 만족감을 얻는다”고 했다.

“또 솔직히 말하면, 후배들한테 치이는 등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가정 내 갈등 같은 것들로 인한 생각을 전혀 안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오로지 산과, 내 자신과만 대화하면서 그런 일들을 잊어버릴 수 있죠. 또 마냥 잊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이걸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지 계속 자문하고 자답할 수 있어요.”

 

 

황선수씨는 보통 자차를 이용해 산행을 다닌다.

 

“그런데 너무 힘들게 걸으면 그런 생각도 잘 안 들지 않나요?”

“맞아요. 힘들어요. 그래서 걸으면서 ‘왜?’란 질문을 많이 던져요. 나는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건지, 그리고 이렇게 힘든데도 왜 또 다음에 다른 길을 걷고 있는지. 늘 답을 못 하고 있어요.”

“이제 60대 중반이고 꽤 이름 있는 길은 다 걸었는데 언제까지 산행을 계속하실 생각이세요?”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어요. 나이로는 80세까지 종주 산행을 하고, 100세까지 북한산 정상을 오르는 걸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일주일에 한 번씩 매주 산행하는 방식은 버리려고 해요. 한 달에 2~3번만 산행하는 거죠. 지금은 잠시 쉬고 있는데 우선 영남알프스 무한태극종주 230km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산행할 때 가장 중요시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안전이죠. 그래서 저는 도중에 탈출한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무리하지 않는 거죠.”

“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친구이자 놀이터라고 봐요.”

“왜요?”

그는 선뜻 말하지 않았다. 조금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위기나 고민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은 사람은 가족보다 오히려 친구인 경우가 많은데 그런 면에서 산이 최고의 친구인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사귄 친구들이 많은데 다 각자 짊어진 책임이 있고, 시간이 지나다 보니 좋든 나쁘든 변하더라고요. 그런데 산은 변하지 않죠. 그래서 친구에게는 마냥 기댈 수 없는데 산에게는 마냥 기댈 수 있어요.”

 

황선수씨는 보통 자차를 이용해 산행을 다닌다.

 

“장거리 운행 팁을 몇 개 들을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스포츠젤이 몸에 상당히 안 좋았어요. 계속 먹다가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간수치가 확 안 좋아졌더라고요. 끊으니 다시 정상화됐고요. 그리고 무릎보호대를 오래 착용하는 건 비추천합니다. 근육이 생기면서 발달해야 하는데 보호대가 압박하면 그게 잘 되지 않아요. 대신 테이핑은 꼭 추천해요. 저도 매일 합니다. 그리고 등산스틱도 반드시 짚으세요.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위해서죠. 산행을 마치면 뜨거운 물 대신 꼭 찬물로 무릎과 발을 씻어주고요.”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그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아마 그의 머릿속에는 지금껏 걸었던 길들이 주마등처럼 쭉 이어졌을 테다. 지리산과 설악산, 힘든 산행과 좋았던 산행들의 경험이 한데 엉겨 붙어 가상의 이상적인 길을 떠올린다.

“역시 백두대간이네요. 직장을 다니느라 구간 종주를 했는데 일시종주를 해보고 싶어요. 그러고 나면 땅통종주를 역으로, 그러니깐 통땅종주도 해보고 싶고요.”

이런 종주를 마치고 나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은지 질문을 던지려다 그의 눈을 보고 도로 주워 삼켰다. 아마 그는 또 완주의 소감을 자아내기보다는 다음 길을 찾아 떠날 테다.

“저는 항상 ‘아직 인생을 반도 안 살았다’고 세뇌하면서 살아요. 나이 먹었다고 운동을 안 하면 퇴화할 뿐이죠. 그러니 127세까지 살 거고, 인생 반도 안 살았으니 계속 도전하자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그는 아직 산이 한참 고플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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