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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낭만야영 여서도] 야영지 곳곳에 무덤…텐트 문을 꼭꼭 잠갔지만 두려움의 뿌리는 ‘내마음’

白馬 2024. 4. 19. 06:53

일몰 후 서쪽 하늘에서 바라본 여서도. 오른쪽 아래 무인 등대가 있는 암릉 구간은 전망대가 있어 홀로 야영하기 좋다.

 
 

나는 나의 일을 좋아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라도 상황과 생각에 따라 가끔씩 스트레스를 받는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을 때쯤, 때마침 조창호 오빠가 낚시도 할 겸 섬산행으로 여서도를 제안했다. 작년 죽도에 대한 여운이 아직 남아 있던 터라 흔쾌히 따라 나섰다. 

여서도는 전남 완도에서 약 41km 떨어진 섬으로 완도의 섬들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다. 어종이 풍부해 낚시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노다지라 불린다고 한다. 블랙야크 100대 섬산으로 등산객들도 즐겨 찾는 곳이다.

 

여서도는 바람이 많이 분다. 이것을 막기 위해 마을 전체가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조창호 오빠와 오랜 낚시 단짝인 ‘영감님’은 한참 어린 나에게 깍듯이 존대를 해주는 신사적인 분이었다. 밤을 달려 새벽녘 완도에 도착했다. 아직 컴컴한 거리에는 첫 배를 기다리는 낚시꾼 몇 명뿐이었다. 해장국 한 그릇으로 피로를 풀었다. 여명이 밝아오자 싸늘했던 거리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정각 7시. 여서도행 배에 올랐다. 나는 백패킹 장비를, 오빠와 영감님은 낚시 장비를 챙겼다. ‘따뜻한 남쪽’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바닷바람은 매서웠다. 너울에 요동치는 갑판 위에서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뜨끈한 실내 바닥에 누워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켜야 했다. 50여 분간  사경을 헤매다 청산도에 도착했다. 다시 여서도행 배로 갈아탔다. 승선객은 우리 셋뿐이었다. 70분 정도 뱃길을 달려 여서도에 도착했다. 

민박집에 들러 낚시 짐을 내려놓았다. 나는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어서 산행과 낚시를 모두 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두 사람도 봄나물을 뜯을 겸 함께 나섰다. 

“방 하나 더 있으니까 산행하고, 여기서 묵는 건 어때?” 

창호 오빠가 물었다.

“절대 아니오!! 나는 백패커니까 산 위에서 잘 거예요!”  

 

여서도 주민이 알려준 무인등대 전망대에 텐트를 설치했다. 강풍이 불어 텐트를 단단히 고정해야 했다.

 
 

나는 고집을 부렸다. 배낭을 짊어졌다. 취사도구나 음식이 없어서 무거운 건 아니지만, 점점 뒤쳐지기 시작했다. 앞서가던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었다. 내가 그들 곁에 도착하면 그들은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기다리게 하는 게 싫어 의식해서 앞서 나갔다. 하지만 마을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길을 잃었다. 첫 번째 코스였던 무인등대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 왔다. 등산 안내도 옆에 있는 들머리를 못 보고, 무작정 아스팔트포장 길을 따라 오른 게 잘못이었다. 

쑥과 달래 향이 진하게 풍기는 계단을 지나 숲으로 들어서자, 동백나무 터널이 나왔다. 무성한 잎새 사이로 빨간 동백꽃이 피어 있었다. 터널 끝에는 따뜻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췄다. 오빠와 영감님도 멈춰 서서 숲을 훑었다. 순수함이 가득한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았다. 

숲을 벗어나자 경사가 심해졌다. 잠시 후 철근 가로막이 나왔다. 민박집 사장님이 방목하는 소가 마을로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한 문이라고 미리 일러주었다. 철근 문을 꼭 잠가야 한다는 당부와 함께. 금세 무인등대 갈림길이 나왔다. 무인등대 근처의 큰 바위 뒤에 전망대가 숨어 있었다. 사장님이 추천해 준 장소였다. 멀리 청산도도 보였다. 문제는 바람이었다. 바위틈에 텐트를 세운 후, 전망대로 옮겨 단단히 고정했다. 강풍이 심해 내일까지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드론을 날려보려고 시도했지만, 시작부터 휘청거리는 통에 포기했다. 짐을 모두 꺼내 놓고, 배낭만 짊어진 채 다시 두 사람과 합류했다. 

 

여호산 정상부에 위치한 봉화대.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제주의 봉화가 거문도-여서도청산도의 군사요충지인 청산진靑山鎭을 거쳐 완도와 해남, 강진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배낭은 왜 들고 왔어?” 

창호 오빠가 물었다. 

“쑥이랑 달래랑 뜯으면 담으려고요.”

“아니, 여서도를 초토화시킬 셈이야? 우리 먹을 것만 한 움큼 정도 있으면 되지.”

아니… 배낭을 다 채울 생각은 없었다. 다만 손에 들고 다니는 게 불편할 것 같아서 그런 것뿐인데, 봄나물 하나에 이기적인 속물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뜯어 봐서 아는데, 쑥이랑 달래랑 한 움큼 정도면 무거워서 오빠는 못 들어요.” 

 

여호산 초입부의 동백나무 터널. 3월이면 아름다운 동백꽃이 핀다.

 

농담으로 받아쳤다.

“아 그래~!? 그럼 나는 약하니까 배낭에 넣어줘~.” 

오빠는 가볍게 수긍해 주었다.

우리의 유치한 대화를 듣고 있던 영감님은 조용히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갈림길로 돌아와 여호산 정상 쪽으로 길을 이어갔다. 20m쯤 지났을까? 동백나무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곳에 두 개의 무덤이 있었다. 백두대간이나 오지를 걷다 보면 무덤을 만나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놀랄 것도 없었다. 오히려 돌로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울타리에 감탄했다. 50m쯤 떨어진 곳에 또 무덤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또 하나, 무덤이 계속 나타났다. 이쯤 되니 텐트에서 혼자 자는 게 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해지기 전에 올라가서 절대 텐트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지. 야경은 포기다.’ 

 

붉은 동백꽃.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꽃말을 갖고 있다고 한다.

 

‘노다지’에서 줄줄이 낚아

사형제바위에 올라섰다. 여서도는 낚시뿐만 아니라 여호산 풍경도 일품이었다. 해가 중천이라 바다색이 바랬지만, 일출이나 일몰시간에 맞춰 올라온다면 불그스레하게 물든 바다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시계가 좋다면 멀리 제주도도 보일 듯했다. 인간은 참 간사하다. 불과 한 시간 전에는 동백나무숲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아름답다며 감탄했는데, 지금은 눈치 없이 내리쬐는 햇살이 바다를 매력 없는 액체덩어리로 만들었다며 타박하고 있는 꼴이라니. 동편으로 이어진 절벽 아래로 쉴 새 없이 파도가 부서졌다. 바람은 섬을 한시도 가만두지 않는다. 

하산길에 무성한 달래와 쑥밭이 나왔다. 몇몇 주민이 봄나물을 뜯고 있었다. 우리도 한 움큼 채우고 마을로 내려왔다. 골목에는 굽이굽이 높은 돌담이 이어졌다. 제주도보다 높은 담장을 보니, 새삼 강풍의 위력을 느꼈다. 삭막할 수 있는 돌담 사이에는 선인장 꽃이 활짝 피어 섬을 찾는 이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여서도 방파제 낚시 중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일몰을 맞았다. 여호산 등산을 위해 여서도를 찾는다면, 여유를 갖고 낚시에 도전하는 것도 좋다.

 

물이 들어올 때쯤 낚시 장비를 챙겨 바다로 나갔다. 낚시가 좋아서 귀촌한 민박집 사장님이 포인트로 안내해 주었다.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방파제 아래로 내려갔다. 죽도에서 갈매기와 학꽁치를 잡은 실력으로 낚싯줄을 힘껏 던졌다. 낚싯줄이 가라앉나 싶더니 바로 손끝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재빠르게 낚싯대를 쳐올렸다. 여서도에서 처음으로 낚은 물고기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돌돔이었다. ‘아니! 이렇게 거저먹어도 되는 건가?’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도 돌돔이 올라왔던 자리로 캐스팅을 했다. 물고기가 낚시바늘을 건드리는 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쨍! 소리가 날 정도로 낚싯대를 추켜올렸는데, 낚싯줄이 따라올라 올 기미가 없었다. 해초에 걸린 듯했다. 아무리 끌어 올려도 낚싯대만 휠 뿐이었다. 걸린 낚시바늘을 떼어 내기 위해 영감님에게 낚싯대를 넘겼다. 그러자 영감님이 소리쳤다. “이거 돌돔 큰 녀석이 걸렸네!!!” 좀처럼 큰소리를 내지 않던 영감님의 격앙된 목소리에 나도 조바심이 났다. ‘우와~ 드디어 자연산 돌돔 회를 먹는 것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녀석 봐라~ 테라포트 안으로 끌고 들어가네!” 

 

일몰 감상 중에 낚아올린 쥐치. 볼락이 유명하지만 돌돔, 솜뱅이 등 다양한 어종을 함께 낚았다. 낚싯대만 있다면 초보자도 쉽게 도전할 수 있다.

영감님은 낚싯대를 하늘로 꼿꼿이 세웠다. 끝이 U자형으로 휘었다. 물고기와 팽팽하게 기싸움을 했다. 결국 초보자의 낚싯줄은 대어를 감당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끊어지고 말았다. 오기가 발동했다. 낚시의 ‘ㄴ’자도 모르지만 새끼 돌돔을 잡았다는 자신감으로 몇 번이고 캐스팅을 했다. 볼락, 벵에돔, 쥐치. 작고 앙증맞은 물고기들이 연이어 올라왔다. 대어는 아니지만 손맛에 빠져 저녁노을을 놓치고 많았다. 그제서야 산행 중 보았던 무덤 생각이 났다. 

저녁식사를 위해 철수했다. 식사를 마치자 텐트는 다음날 철수하고 민박집에서 자라고 모두 나를 말렸다. 모처럼의 외출인데, 방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다들 밤낚시를 나가고 나도 빈 배낭을 메고 무인등대를 향해 출발했다. 낮에는 향기롭기만 하던 기다란 달래 줄기가 등산화에 엉겨 붙어 발을 잡아끄는 것 같았다. 큰 랜턴을 텐트에 두고 와서, 시야가 좁은 작은 랜턴으로 겨우 발끝만 비추며 걸었다. 낮에는 그렇게 낭만적이던 동백나무 터널이 박쥐가 튀어나올 것 같은 동굴로 변했다. 

방목 소가 마을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설치한 문. 한밤중에 텐트로 돌아가려다 랜턴에 비친 문을 보고 놀랐다. 공포스럽기도 했다. 여호산을 오르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곳인데, 통행 시, 반드시 고리를 걸어 문을 잠가야 한다.

 

 

공포에 떨며 하룻밤

잰 걸음으로 동백나무 숲을 빠져 나오니, 낮에는 보지 못했던 무덤까지 보였다. ‘원효대사 해골 물’ 못지않은 반전이었다! 가파른 비탈길을 뛰다시피 올라갔다. 점프할 때마다 빈 배낭의 헤드가 들썩거렸다. 누군가 등 뒤를 치는 것 같아 그마저도 무서웠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작고 흐릿한 랜턴 빛이 발 언저리에서 어지럽게 흔들렸다. 등골이 오싹했다. 무작정 뛰어오르다 무언가에 쾅! 하고 부딪쳤다. 낮에 보았던 철근 문이었다. 녹슨 철근을 따라 덕지덕지 엮어 놓은 새끼줄이 더욱 공포스럽게 보였다. 그 와중에 문을 열고 들어가 소가 열지 못하도록 새끼줄 잠금 고리를 철근에 걸었다. 오르고 또 올라도 제자리걸음인 것 같았다. ‘갈림길까지 이렇게 멀었나?’ 실제로 5~10m 정도밖에 안되었다. 갈림길 저편에 줄지어 있던 무덤 주인들이 걸어 나올 것 같아 슬금슬금 움직였다. 텐트에 불을 켜고 냉큼 들어갔다. 텐트 문을 닫았다.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나는 20년 가까이 세계 곳곳의 오지를 다니면서 귀신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 정도로 공포스러웠던 적도 없었다. 혼자 있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다. 혼자서도 아무렇지 않았던 때를 생각하자 별안간 ‘생각’이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바람에 요동치는 텐트 안에서 이 공포의 근원은 어디인지 따지다 보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작은 삼각대를 세워놓고 야경을 찍었다. 헛수고였다. 텐트도 카메라도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야경을 포기하고 전망대 난간에 섰다. 바다로 향하는 등대 불빛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빛은 금세 사라졌다. 잠깐의 암흑 속에서 바다는 잔잔해 보였다. 하지만 매서운 바람은 텐트와 카메라에게 그렇듯 바다를 뒤흔들고 있을 것이었다. 

 

절벽 위 전망대에 설치한 텐트 풍경. 낮부터 멈추지 않는 강풍 주의보에 야경을 담기가 쉽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했다. 해는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텐트를 걷어 배낭에 넣고, 하산을 시작했다. 그렇게도 길었던 갈림길과 동백나무터널은 금방이었다. 터널 옆 무덤은 친근하기까지 했다. 애꿎은 무덤들에게 미안했다. 민박집에 들어서자 영감님이 밤새 안부를 물었다. 

“네, 무덤들은 밤새 안녕하셨습니다!”

창호 오빠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식사나 하라고 했다. 밤새 잡은 물고기로 만든 생선가스는 무척이나 맛있었다. 배시간이 되자 오빠와 영감님은 항구로 배웅을 나왔다. 나홀로 배낭을 메고, 무사히 완도행 배에 올랐다. 적어도 당분간은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을 듯했다. 

 

여서도 배편

완도 → 여서도행 배는 직행과 완행이 있다.

완행 _  완도 07:00 출발 → 청산도 07:50 도착, 

청산도 08:40 출항 → 여서도 09:55 도착

직행 _ 완도 15:00 출발 → 여서도 17:40 도착

여서도 → 완도행

완행 _  여서도 07:00 출발 → 청산도 08:05 도착, 청산도 08:22 출발 → 완도 도착

직행 _ 여서도 09:55 출발 → 완도 12:35 도착

 

여호산(352m) 산행 정보

산행코스 마을 → 갈림길(무인등대·마을 방향) → 사형제바위 → 여호산 정상(인증장소) → 봉화대 → 헬기장 → 마을전망대 → 마을

소요시간 약 3시간 총 거리 약 5km

 

블랙야크 100대 섬산 인증하러 청산도에 들른다면

A코스 청산항 → 마을버스 이동(20분) → 서마을 → 매봉산(인증) → 청계리 버스정류장 (약 4.5km) → 버스이동 → 서편제 촬영지 → 봄의 왈츠 → 서편제 촬영지 → 도락리 → 청산항

B코스 청산항-마을버스 이동(20분) → 상서마을 → 매봉산(인증) → 청계리 → 범바위해안길 → 봄의 왈츠 → 서편제 촬영지 → 도락리 → 산항

소요시간 약 5시간 총 거리 약 1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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