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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낭만야영 여항산] 우리나라 산이 네팔보다 쉽다고? ‘갓뎀山’을 오르다

by 白馬 2024. 2. 23.

여항산 정상 데크를 올라오고 있는 김효주씨와 김정미씨. 뒤편으로 서북산 능선이 펼쳐져 있다.

 

네팔 오지를 한 달 동안 트레킹하고 귀국한 지 얼마 안 된 김정미, 김효주와 함께 백패킹에 나섰다. 모처럼 눈을 보러 강원도로 갈까 했는데, 전주와 해남에 사는 그녀들을 위해 경남 함안의 여항산으로 향했다. 

 

여항산(770m)은 낙동강 남쪽에 위치한 ‘낙남정맥’ 한가운데 있다. 낙남정맥은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지리산의 영신봉에서 김해 분성산까지 200km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이름이다. 여항산艅航山이라는 이름은 1583년(선조16년) 함주도호부로 부임한 정구鄭逑가 함안의 지형이 남고북저하여 반역의 기가 있으므로 ‘배가 다니는 낮은 곳’이라는 의미로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정상 부근에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것에서 ‘각데미산’, 혹은 ‘곽데미산’으로도 부른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6.25전쟁 낙동강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때 미군들이 전투에 지쳐 ‘갓뎀God damn(빌어먹을! )’이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들머리에 서서 산행 코스를 살펴봤다. 세 가지 코스가 있는데,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우리는 만장일치로 가장 짧은 2코스로 정했다. 네팔에서 한 달여를 쉴 새 없이 걷고 와도 힘든 건 마찬가지인가보다. “어이쿠”, “으~”, “어휴” 초입부터 시작되는 된비알에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맨몸이라면 가뿐하게 올랐겠지만, 최소한으로 꾸린 배낭이라도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는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몸이 덜 풀린 우리는 밥상에 놓인 젓가락처럼 가지런히 놓인 나무계단 앞에 멈춰 섰다. 

 

여항산 능선에는 암릉 절벽을 따라 데크 길이 놓여 있다.

 

“너희들 어디 가서 히말라야 다녀왔다는 말 하지도 말아라!”

일 때문에 함께하지 못했던 나는 시샘 어린 농담을 던졌다. 

“아니 우리가 방금 오지에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누가 믿겠냐고요!?”

과신했던 체력에 배신당한 효주의 한마디에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한파주의보 때문인지 여항산을 찾은 등산객은 우리뿐이었다. 덕분에 길바닥에 배낭을 널브러놓고 맘껏 쉴 수 있었다. 네팔에서 추위와 허기에 시달렸던 효주는 취사도구가 빠진 배낭 속을 핫팩과 온갖 군것질거리로 가득 채워왔다고 했다. 지금 시즌에는 히말라야가 그다지 춥지 않을 거란 예상을 뒤엎고 내내 강추위에 떨었던 그녀는 한파주의보라는 말에 핫팩을 있는 대로 챙겨왔다. 게다가 비화식이다 보니, 언니들을 챙기겠다며 바리바리 싸들고 온 것이다. 심지어 독감에 걸려 컨디션 난조인 상황에서 말이다. 결국 된비알 끝에 올라서자 그녀는 뒤집어진 거북이 마냥 배낭 위로 발라당 누워 버렸다. 꼼짝 않고 얘기만 듣고 있던 효주는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역시 우리나라 산이 제일 힘들어요!”

 

등산객이 떠난 후 일몰이 시작되면서 어두워지기 전에 재빠르게 텐트를 쳤다. 동절기는 인적이 드물지만, 봄에 이곳은 상춘객들로 붐빈다. 여기서 야영하려면 다른 이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

 

세계의 많은 산들을 다녀봤지만, 나도 우리나라 산 오르는 게 가장 힘들다. 물론 정상 등반이나 스케일을 말하자면 비할 바가 못되지만, 한국의 산들은 낮지만 가파르고 너덜지대도 많다. 한번 길을 잃으면 우거진 나무들 때문에 길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나무덩굴들을 헤치며 맞닥뜨리는 건 거대한 절벽인 경우도 허다한 것이다. 그러니 세계의 저명한 등반가들보다 백두대간을 휘젓는 토종 산꾼들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녀의 말에 적극 동의했다. 

 

밤이 되자 바람이 더욱 거세졌다. 그에 반해 별들은 흔들림 없이 반짝였다.

 

돌풍 속 캠핑

배낭을 짊어진 효주와 정미는 앞서 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된 오르막에 누군가 성의 없게 ‘툭’ 던져 놓은 것 같이 나뒹굴고 있는 험한 바위지대가 나타났다. 바위 틈새를 뒤덮은 낙엽 때문에 발끝과 스틱을 잡은 손이 긴장했다. 자칫하다 낙엽 아래 숨어 있는 돌멩이와 앙상한 나무뿌리에 걸려 나뒹굴 수도 있었다. 사진을 찍으며 오르는 나를 위해 정미와 효주는 너덜길 위의 낙엽을 치우며 올랐다. 항상 배려가 몸에 배어 있는 산우를 만나는 건 행운이다. 그들과 산행하는 이유인 것이다. 

심술궂게 허리를 꼿꼿이 세웠던 산세가 한풀 꺾였다. 카메라 앵글에 담긴 그들의 표정도 한층 여유로워졌다. 마지막 나무 계단에 올라섰다. 정미는 이미 저만치 앞서 있었다. 다리가 길어서 빠르기도 했지만, 히말라야 오지만 골라서 다니는 그녀의 내공도 한 몫 하는 것이다. 뒤돌아보니 효주가 제 몸집만 한 배낭을 짊어진 채 묵묵히 오르고 있었다. 

 

사이트를 정리하고 하산하기 전, 여항산 정상에서 단체사진을 남겼다. 여항면을 둘러싼 능선들이 장관이었다.

 

“효주야! 너 히말라야 다녀오더니, 포터 같아!!”

“언니, 저는 지금 영혼이 없어요! 하하하.”

10여 년 전 함께 백패킹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자그마한 체구에도 항상 나만큼의 무게를 감당하려던 그녀였다. 나만큼 그녀는 백패킹을 좋아하고 호기심 많은 악바리다. 여건만 됐다면 백패킹으로 떠났던 세계여행을 그녀와 함께 했어도 좋았을 것이었다. 

조망이 트이자 겨울 산등성이는 살풍경이었다. 겨울 여항산은 참으로 보잘 것 없었다. 여긴 진달래가 피는 봄이 아름다운 산이다. 순전히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를 보기 위해 선택한 곳이었다. 그래도 좌우로 깎아지른 절벽 위에 위치한 정상에서 바라보는 파노라마 풍광만큼은 멋졌다.

 

가파른 데크 계단을 오르는 김효주씨. 여항산은 대체로 산세가 험하지만 가파른 정상부는 대부분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산행에 어려움은 없다.

 

일렁이는 바람이 뺨을 스쳤다. 늦은 오후의 으슥함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일렁이던 바람은 해가 지평선에 닿자 돌풍으로 변했다. 산세만큼이나 심술궂은 바람이 불어 닥쳤다. 텐트를 혼자 피칭하는 건 무리였다. 셋이 붙어 텐트 하나하나씩 세웠다. 해가 자취를 감추기 직전에 사이트가 완성됐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냉큼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썰렁한 텐트 안에 핫팩을 여러 개 던져 놓았다. 

식사를 하기 위해 모이자 정미가 한마디 던진다. 

“민미정, 날을 골라도 참 잘 골라요~!”

“눈이 없으면 한파라도 있어야지~! 귀국 선물로 준비 했어. 토종 한파!”

동갑내기 정미는 언제나 나를 구박하고 싶어하고, 나는 그런 정미를 놀리고 싶어한다. 거기에 효주까지 가세해 휘몰아치는 돌풍과 펄럭거리는 텐트 소리 속에서 나는 그녀들의 모험담을 밤늦도록 들었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김효주씨와 김정미씨는 산행 내내 여행담을 곱씹었다.

 

밤새 잠을 훼방 놓던 바람은 한치의 양보 없이 꾸준히 불어 닥쳤다. 휘청거리는 드론을 가까스로 띄웠다. 아무리 바람이 심해도 깎아지른 절벽 위의 멋진 텐트 풍경을 놓칠 수는 없었다. 강한 돌풍 속에서 솟아오르는 일출은 더없이 깔끔했다. 따사로운 태양 빛이 절벽을 노랗게 달궜다. 재빠르게 사이트를 정리했다. 여항산은 꽃이 없어도 충분히 멋진 산이라서 부지런한 등산객을 방해할 수 없었다. 

1코스 하산길은 2코스보다 더 까칠했다. 우리를 순순히 내려 보내지 않으려 작정한 듯했다. 아차 하는 순간 배낭과 함께 앞으로 고꾸라질 지경이었다. 그나마 짧은 지그재그로 이어진 길이 가속도에 제동을 걸었다. 긴장한 탓에 바람이 사라진 길 위에서 땀이 날 지경이었다. 된비알이 끝나고 배낭을 내렸다. 

첫 등산객들이 나타났다. 단체로 온 듯 줄지어 오르는 등산객들은 “추운데 잘 잤냐”며 안부를 물었다. “핫팩 덕분에 잘 잤다”며 감사인사를 했다. 그들에게 안전산행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울창한 숲 속이지만 재잘거리는 산새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파에 문밖으로 나오기를 꺼리기는 산새도 마찬가지인가보다. 나무 사이로 따사로운 햇살만이 다리를 건너는 백패커를 비추고 있었다. 

 

이른 아침 한파 추위에 굳었던 몸이 따뜻한 햇살 덕분에 스르르 녹았다.

 

드론으로 담은 여항산 정상. 아찔한 절벽 위에 안전하게 데크를 설치해 낙남정맥 종주자들은 물론 산행 초보자들도 멋진 여항산 경치를 쉽게 즐길 수 있다.

 

그녀들의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요즘 내 주변에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가는 하이커 및 백패커들 많아졌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갓 마치고 돌아온 그녀들에게 궁금한 걸 물었다.

 

이번에 다녀온 코스는?

- 안나푸르나 3패스[나문라패스 4,850m, 나르푸 캉라패스 5,300m, 틸리초호수를 지나 메소칸토라 패스 5,250m] 총 21일 

 

히말라야 트레킹이 처음이었던 김효주는 이번 트레킹이 어땠는지?

- 비현실적인 풍경에 마냥 신기했어요. 고산병도 처음 겪어봐서 힘들긴 했지만, 히말라야에서의 캠핑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어요. 셰르파, 포터들에게도 고마웠어요. 

 

히말라야 트레킹을 10회 이상 다녀온 김정미는 이번 트레킹이 어땠는지?

- 고도가 낮은 나문반장은 의외로 와일드한 트랙이어서 무척 힘들었고, 두 번째 넘는 메소칸토라에서 3일 정도 캠핑했는데,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풍 때문에 힘들었어요. 자다가 스태프들 텐트가 날아가서 다시 세팅해야 했거든요.

 

히말라야 트레킹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 일정은 여유롭게 짜되, 욕심을 버려야 해요.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갈 곳은 정해져 있기에 서두르다가 고소가 와서 하산하는 경우가 적지 않거든요. 방한장비는 단단히 준비해야 합니다.

 

히말라야 솔로 백패커가 늘고 있는데, 네팔에서 분위기는 어떤가요?

- 유튜브나 블로그에는 멋지고 좋은 것 위주로 보여 주지, 거창하게 도전했는데 보여 주기 창피하거나 실패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십 수 년간 히말라야 트레킹을 했는데, 실제로 최근들어 솔로 트레커들이 가이드가 없어서 고생하거나 다른 트레커들에게 빌붙어 민폐 끼치는 사례들을 많이 봤어요. 히말라야를 좀 걸어 본 분들은 이들의 필요성을 너무 잘 알고 있어요. 동네 뒷산처럼 친근해 보이지만, 히말라야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에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요.

 

홀로 트레킹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 반드시 가이드 혹은 가이드 겸 포터는 꼭 동행했으면 좋겠어요. 산행경력이 있는 사람들이나 백패킹을 하는 사람들이 한국 산 종주하듯이 도전하는데,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가는 만큼 몸을 혹사시키지 말고 편히 걸으라고 하고 싶어요. 간혹 누가 옆에 있는 게 불편해서 혼자 간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가이드는 나의 안전과 직결되는 사람들이에요. 반드시 동행하라고 하고 싶어요.

 

최근 지구 기상이변이 심상치 않은데, 히말라야 트레킹 기후 조건은 어떤가요?

- 최근 온난화 때문에 히말라야 트레킹 피크시즌이 너무 짧아진 듯해요. 트레킹 최적기라는 11월에 갔는데 강풍, 폭설, 구름 때문에 멋진 히말라야를 보기 힘들었고, 걷는 데 고생도 좀 했어요.

 

히말라야 트레킹을 꿈꾸는 초보 트레커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코스는?

-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안나푸르나 서킷 추천합니다. 지프로드가 캉사르까지 뚫렸지만 ABC보다 훨씬 좋은 풍광을 볼 수 있어요. 안나푸르나 서킷을 하면 안나푸르나 연봉들과 마나술루, 강가푸르나, 틸리초피크와 틸리초 호수를 볼 수 있어요. 서킷 내내 설산과 함께했던 히말라야는 토롱라 패스를 넘어서면서 사막과 같은 전혀 다른 분위기의 무스탕과 맞닥뜨립니다. 묵티나트에서 다울라기리도 볼 수 있어요!

 

그 외에 하고 싶은 말?

- 히말라야는 한국산과 너무 달라요. 본인을 과신하지 말고, 자연 앞에서 겸손했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준비는 철저히 하되, 포터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이드는 꼭 대동했으면 좋겠어요.


오늘의 날씨

* 오늘 하루도 즐겁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