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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겨울산에서 반바지, 반팔…열 많은 그들의 ‘열변’

by 白馬 2024. 2. 26.
 

[추위를 이기는 이색 산꾼들]

 

 

상의 탈의하고 산행하는 박두한씨.
 

 

어느 해였는지 모른다. 겨울 설악산 서북능선에서 칼바람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반팔을 입은 한 나이 지긋한 중년이 휙 하고 내 옆을 지나간 적이 있다. 믿을 수 없는 그 장면에 한동안 멍했던 기억이 있다. 그 장면을 해석하는 과정도 복잡했다. 대단하단 생각과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너무 센 척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한데 섞였었다.지금도 간혹 겨울 산에서 반팔이나 얇은 옷만 입고 슬렁슬렁 산을 오르는 기인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도대체 왜 추운 겨울에 반팔을 입고 산을 오르는 것일까? 그 속내를 들어보았다.

 

땀 식는 게 싫어서 반팔 산행 시작 - 박두한(50대)

산행경력이 어떻게 되시나요?

1992년에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사내 산악회에서 한라산을 간다기에 호기심이 동해 가입하고 지금까지 이 산악회에서 열정적으로 산을 오르고 있네요.

 

반팔 산행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추위를 안 타는 건 아니고 오히려 어느 정도 타는 편입니다. 땀이 나고 식는 과정에서 추운 게 싫어서 반팔 차림으로 산행하게 됐습니다. 이젠 추위는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는데 손이 시린 건 여전히 힘듭니다. 처음 반팔로 산행한 건 20년 전쯤으로 기억합니다. 당시에 김천에서 근무할 때였는데 혼자 황악산을 반팔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올랐었죠.

 

비닐봉지로 임시 스패츠를 만들어 산행했다.

 

휴식할 땐 어떻게 하시나요?

보온력은 높고 부피는 작은 장비들을 많이 챙깁니다. 또한 여벌의 옷도 철저하게 준비하는 편입니다. 운행할 땐 반팔 차림이나 탈의한 채로 가고, 쉴 때나 정상에서는 이 옷들을 다 껴입는 방식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보통 긍정적인 반응입니다. 덕유산 향적봉에서 만난 부부는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는 반응이었습니다.

평소 체력은 좋으신 편인가요?

지인들이 운동 중독자라 할 정도로 운동을 좋아합니다. 그래서인지 나름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등산, 마라톤, 복싱, 스쿠버다이빙, 스키 등 활동적인 취미를 갖고 있습니다. 장거리 산행도 단시간에 완주하는 걸 즐깁니다. 혹시 땀이 많이 나는 편인 분들이 계시다면 반팔 산행을 한 번 해보시길 적극 추천합니다. 

 

월악산에 눈쌓인 등산로를 상의 탈의하고 올랐다.

 

반팔만 입고 산행하는 홍순근씨.

 

"5시간 산행하면 쉬는 시간은 5분" - 홍순근(50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등산한 지 15년 됐습니다. 고향은 충북 제천이며 주중에는 서울로 올라와 일해요. 15년 동안 산림청 지정 100대 명산과 블랙야크 지정 100대 명산을 각각 따로 완등했고, 백두대간도 북진으로 한 번 종주했네요.

어떻게 겨울 반팔 산행을 시작하게 됐나요?

어제도 소백산이 영하 15℃였는데 반팔로 올라갔다 왔습니다. 제가 체질상 땀이 굉장히 많아요. 보통 사람들은 겨울에 추우니깐 마구 껴입고 올라가잖아요? 하지만 저는 조금만 올라가도 땀이 줄줄 나서 옷이 다 젖어요. 겨울 산에서 옷이 젖은 상태로 장시간 노출되면 굉장히 춥고 위험합니다. 그러니까 땀을 좀 덜 배출해서, 궁극적으로 춥지 않으려고 반팔산행을 시작했어요.

근데 이렇게 반팔만 입고 올라가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요. 한겨울에도 수건을 들고 계속 닦으면서 올라가야 합니다.

 

반팔만 입고 산행하는 홍순근씨.

 

보온 의류는 일절 안 챙기시는 건가요?

손에는 장갑을 낍니다. 보통 다른 부위는 괜찮아도 손끝하고 발끝은 시리거든요. 또한 휴식할 때 잠깐 걸치는 용도로 윈드스토퍼를 갖고 다녀요. 하지만 두꺼운 패딩은 갖고 다니지 않습니다. 또 겨울산행용 티셔츠도 따로 안 사요. 그냥 반팔 티셔츠를 입죠. 

산행은 어떤 스타일로 하시나요?

요즘은 거의 혼자 산에 갑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안 쉬어요. 쉬면 춥거든요. 당일산행을 마치고 나서 스마트폰 기록을 보면 5시간 산행 기준으로 쉬는 시간이 4~5분 정도에 불과합니다. 산 정상 올라가서도 어차피 대부분 다 가본 산이니 남들 줄 서서 사진 찍을 때 슬쩍 옆에 가서 정상석만 한 번 손으로 딱 짚고 그냥 도로 내려와요. 거리도 보통 길게 가는 걸 좋아합니다. 요즘 5~7km 정도 가는 산행이 유행인데 저는 20km 내외로 가는 걸 선호해요. 

위험한 적은 없나요?

먼저 말씀드렸듯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이라 몸을 보호하려고 시작한 거니까 위험한 적은 없어요. 단지 사람들이 많이 쳐다보죠. 그냥 보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가끔은 “대단하다”, “안 추우세요?” 정도의 한마디만 하고 가시죠.

재밌었던 일은 있나요?

가끔씩 겨울 산을 오르다보면 저처럼 반팔을 입은 사람을 만나곤 해요. 그러면 눈빛은 마주칠 듯 안 마주치는데 속으로 묘한 동질감을 느끼죠. 

건강은 괜찮으세요?

제 주변 친구들 보면 80~90%가 혈압 아니면 혈당에 문제가 있는데 저는 둘 다 좋아요. 등산도 등산인데 평소에 술, 담배를 잘 안 하는 것도 영향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반바지를 입고 산행하는 김호영씨.

 

스틱도 등산화도 안 쓰는 반바지 신사 - 김호영(60대)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1956년생인데 호적은 1년 늦게 올려서 1957년생입니다. 

지금까지도 반팔산행을 하신다고요?

작년에는 고산 Top10이라고 해서 한라산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에 해발고도 1,500m가 넘는 산 10개를 완등했어요. 산행은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했고, 10년 전에는 팔공산 종주를 1년에 47번씩 하고 그랬어요.

언제부터 반바지를 입고 산행하시게 된 건가요?

10여 년 전부터 반바지를 입고 다녔어요. 심지어 젓가락질을 못 할 정도로 손이 아리는 추위에도 반바지를 입었어요. 신기한 게 손은 그렇게 추워도 하체는 열이 펄펄 나서 하나도 추운 줄 모르겠더라고요. 애초에 제가 땀이 좀 많은 편입니다.

최근에 반바지 산행을 더 자주하신다면서요?

6~7년 전에 집사람이 하늘로 갔어요. 그 이후부터는 사는 의미를 모르겠더라고요. 집사람이 살아 있을 때 끊었던 담배도 다시 시작하고 술도 매일 마셨죠. 이대론 안 되겠고 취미를 하나 붙여야겠다 싶어서 다시 반바지 차림으로 산에 가게 됐어요. 덕분에 건강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산행 중 휴식은 어떻게 취하세요?

숨이 찰 때만 10~30초 정도 쉬고 배낭은 절대 벗지 않습니다. 앉아서 쉬지도 않습니다. 밥을 먹을 때 빼곤 무조건 올라가요. 이렇게 올라야 산을 오르는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평소에 추위를 잘 못 느끼시는 건가요?

더위, 추위 다 느낍니다. 하지만 제 주관이 사람은 겨울엔 춥게, 여름엔 덥게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름엔 28℃, 겨울엔 20℃로 냉난방을 맞추고 살아요. 

반바지 산행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나요?

한 번은 10월경 안내산악회 통해서 덕유산을 갔는데 그때 날씨가 추웠어요. 바람도 많이 불고요. 그런데 제가 반바지에 얇은 긴 팔 티셔츠를 입고 팔을 걷어붙인 채로 산행했죠.

다음 달에 또 같은 안내산악회 통해서 다른 산을 갔는데 한 회원이 저를 보고서는 “저번에 덕유산을 갔는데 그렇게 추운데도 반바지를 입고 온 사람을 봤었다”면서 말을 붙이더라고요. 인상착의가 딱 저여서 그게 나라고 하니 ‘아이고 당신이었냐’면서 웃었죠.

사진을 보니 운동화를 신으시네요.

저는 등산스틱도 안 쓰고 신발도 등산화 대신 운동화를 신어요. 스틱은 써보니 오히려 불편하기만 하고, 등산화는 족저근막염에 걸린 이후로 발이 너무 아파서 못 신어요. 근데 운동화는 괜찮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산에서 하지 말란 것만 골라서 하는 건데 그래도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해서 괜찮아요. 일주일에 4~5일은 2시간씩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이에 이르러서 돌아보니 최고의 재산은 건강인 것 같아요.

 

난닝구 아저씨’라고 불렸다는 김준씨.

 

"평균 심박수 150…뜨거운 피로 보온" - 김준(60대)

등산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또 산행스타일은 어떤 편이세요?

제가 지금 67세이고 30대 중반부터 산행했으니 30년쯤 됐네요. 산행은 공격적인 스타일입니다. 독고다이로 마구 치고 올라요. 빨리 오르는 걸 선호해서 팔공산이나 설악산, 지리산 등에서 시간을 재면서 타임어택으로 오릅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심박수를 재주는 스마트 시계를 차고 산행했어요. 최소 120 이하로는 안 떨어뜨리고 평균적으로 150을 유지하면서 다녔죠. 이 페이스로 설악산 종주하고 지리산 종주도 했어요. 계속 뜨거운 피가 돌게끔 중간에 쉬지 않습니다. 최근에 설악산 오색 코스로 대청봉까지 2시간 15분 걸리더라고요.

그런 스타일이면 열이 펄펄 나겠네요?

예 맞습니다. 그래서 보통 웃통을 벗거나 러닝셔츠만 딱 하나 입고 정상까지 치고 오른 다음에 거기서 새 옷으로 갈아입어요. 젖은 옷 위에 바람막이나 패딩을 덮어 입는 것보다 갈아입는 게 근본적으로 체온을 지키는 데는 가장 좋더라고요.

체질적으로 추위를 많이 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잔뜩 껴입고 산에서 땀이 안 날 정도로 살살 가려니깐 별로 운동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아예 얇게 입고 빨리 오르자는 주의가 됐어요.

 

난닝구 아저씨’라고 불렸다는 김준씨.

 

별명이 있다고 하던데요?

제가 좀 눈길을 끌 만했죠. 옛날에 팔공산을 정말 열심히 다녔는데 그때 자주 마주치던 한 중년 여성분이 저를 ‘난닝구 아저씨’라고 불렀어요. 사계절 러닝셔츠만 입고 다녀서 그랬죠.

또 제가 산행 능력을 더 키우고 싶어서 모래주머니를 한쪽에 2.2kg씩, 총 4.4kg를 차고 다녔었거든요. 아무리 큰 산이라도 그렇게 다녔어요. 그러고 다니니깐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야겠다면서 같이 사진 찍자고 해서 찍은 적도 있네요.

건강에는 도움이 좀 됐나요?

당시에는 확실히 건강했는데 지금은 무릎에 좀 무리가 왔어요. 그래서 계단이 많은 코스를 일부러 찾아다닙니다. 계단을 오르는 게 무릎도 안 아프고 운동 강도도 적당해요. 다만 하산할 땐 예전에 비해 훨씬 천천히 내려가죠. 가까운 곳으로는 팔공산 갓바위 코스가 있네요.

 

영하 11℃ 오서산을 정신력 충전을 위해 탈의하고 오른 신승환씨.

 

탈의산행으로 정신력과 체력 충전! - 신승환(50대)

아예 상의를 탈의하고 산행하시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상의는 탈의하고 반바지만 입고 훈련하는 식입니다. 물론 마주치는 사람이 있으면 그분에게 민폐니깐 항상 인기척이 느껴지거나 사람이 보이면 빠르게 반팔을 입고 완전히 사라지면 그때 다시 탈의합니다. 애초에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코스, 사람이 거의 없는 밤 시간대를 택해 산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산행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산행하는 능력을 키우고 정신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죠. 최대한 속도를 내서 산행하는 편입니다.

 

오서산 신년일출. 이것도 반팔만 입고 올라서 봤다.

 

추울 때는 어떻게 하세요?

추우면 더 빨리 걷습니다. 그러니까 산행 강도로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겁니다. 다만 사진을 찍을 땐 장갑을 벗으므로 핫팩 하나는 휴대하고, 사고를 대비해서 비상 방한복은 상하의 모두 한 벌씩 항시 휴대합니다. 

최소한으로 지키는 원칙 같은 것이 있다면?

모자와 버프, 장갑은 꼭 착용합니다. 그리고 폭설로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든지 날씨가 좋지 않다면 산행을 자제합니다. 위험한 상황이 생길 때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평소에 꾸준히 훈련해서 산행능력이 어느 정도 되는 분들만 반팔 산행을 해보시길 권합니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이들 모두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무턱대고 따라 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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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하루도 즐겁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