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신시가지 뒷산이자 용맥 흐르는 영험한 산
고근산과 신서귀포. 멀리 오른쪽이 서건도, 가운데가 범섬이다.
고근산(396m)은 서귀포 신시가지를 품고 당찬 산세로 솟았다. 북서에서 동남으로 기운 타원형의 산체를 가졌고, 정상에 펑퍼짐한 원형 굼부리를 품었다. 설문대할망이 백록담에 머리를, 이 굼부리에 엉덩이를 대고 범섬엔 다리를 걸치고는 물장구치며 놀았다는 전설이 전한다.
근처에 다른 산 없이 외로이 섰다고 ‘고근孤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정말 주변에 이렇다 할 오름이 없어서 서귀포 시가지 어디서도 고근산이 도드라진다. 오름 동쪽의 호근동에서는 ‘호근산’이라고 불렀다. 오름을 품은 서호동과 호근동 사람들은 예로부터 고근산을 용맥이 흐르는 영산으로 여겼다.
그 때문에 지금껏 오름의 중턱 이상엔 무덤을 서지 않는 금장지역으로 지켜오고 있다. 그러고 보면 제주의 오름 중 이름에 ‘산’이 붙은 곳은 대체로 그렇다. 군산이 금장처였고, 산방산이나 영주산, 송악산도 중턱 이상에서 무덤을 보지 못했다.
오름 남동 사면 중턱의 ‘머흔저리’라고 하는 곳에는 옛날 국상을 당했을 때 올라와 곡을 하던 망곡단望哭檀이 있다. 남서 사면 아래쪽 숲속엔 꿩사냥을 나선 강생이(강아지의 제주어)가 빠져 죽었다는 수직굴인 ‘강생이궤’도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고 한다.
고근산 굼부리를 지나는 탐방객들. 굼부리 안은 별천지가 따로 없다.
정상부의 두 전망대
몇 번 찾으려 가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현재 조성된 탐방로 외엔 대부분 개인 사유지여서 들어서기 쉽지 않고, 짐작되는 지역을 여기저기 살펴도 찾을 수 없었다. 산 남록을 따라서는 널따랗게 서호동 공동묘지가 들어섰다.
커다란 산체에 비해 탐방로는 단순하다. 제주올레 7-1코스가 오름의 북쪽에서 접근해 굼부리를 한 바퀴 돈 후 서쪽으로 빠져나간다. 올레길을 걷는 게 아니라면 고근산로를 이용해 접근이 쉬운 남서쪽 들머리가 애용된다. 들머리는 두 곳이다.
남쪽의 기존 등산로 입구(A코스)에서 고근산로를 따라 북쪽으로 80m쯤 더 들어서면 또 다른 입구(B코스)가 보인다. 이 두 지점을 들머리와 날머리 삼아서 오르내리면 된다. 별도로 마련된 주차 공간은 없다. A코스 등산로 입구에서 자락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에 화장실이 있다.
해발고도 396.2m인 고근산은 오름 자체의 높이가 171m로 꽤 높아서 탐방로는 살짝 가파르다. 그러나 그 길이가 짧고, 삼나무와 활엽수가 뒤섞인 울창한 숲 사이로 난 지그재그 계단길이 잘 정비되어 오름길이 그리 힘들지 않다.
굼부리 둘레길과 한라산. 언제나 감동 가득해지는 풍광이다.
굼부리 서쪽의 전망대. 군산과 월라봉, 산방산이 겹친 풍광이 눈길을 끈다.
원형 분화구 속 띠밭 장관
A코스는 굼부리 능선을 만나기까지 400m, B코스는 350m로 각각 20분쯤 걸린다. 두 길은 중간쯤에서 수평으로 이어지며, 그 부분에 다양한 생활체육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탐방로는 무성한 숲으로 인해 능선에 닿기까지 거의 해가 들지 않고, 아래쪽엔 초록색 접시를 펼쳐놓은 듯 커다란 이파리를 펼친 털머위가 걸음을 더 가볍게 만든다.
정상부, 원형의 굼부리 능선을 만나자마자 발걸음은 자연스레 빤히 보이는 왼쪽의 전망대로 향한다. 오름의 남서쪽 풍광이 가없이 펼쳐지며 오름에 오른 맛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군산과 산방산, 송악산, 가파도와 마라도까지 다 보이는 넓은 조망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뻥 뚫어주는 느낌이다.
530m 길이의 굼부리(분화구를 뜻하는 제주 방언) 둘레길은 오르내림이 거의 없어 걷기 좋다. 말이 필요 없는 풍광인 한라산 남쪽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백록담까지 번져가는 초록의 스펙트럼이 마냥 기분 좋다. 오름의 북쪽 능선, 산불감시초소를 겸한 2층 목조전망대에 오르니 한라산이 더 도드라진다.
오름 탐방로. 대부분 이런 나무계단으로 이어진다.
겨울날의 A코스 탐방로. 활엽수가 많아 낙엽이 수북하다.
이런 형태의 전망대가 제주 오름 곳곳에 세워지는 추세인데, 제주산 목재의 이용 확대와 산불감시 환경을 개선하고 탐방객의 좀 더 나은 휴식 공간도 마련키 위한 목적이라니 그야말로 일석삼조다. 최근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하는 소나무 때문에 오름 능선에서 조망이 막히는 곳이 많아졌는데, 이런 전망대가 일부분 해결책이 될 듯하다.
고근산은 전설상의 설문대할망 방석인 동그랗고 예쁜 굼부리를 품었다. 공식 탐방로는 아니지만 굼부리 안으로 내려갈 수도 있는데, 이는 고근산 탐방에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산불감시초소 전망대를 지난 후 굼부리 쪽을 잘 살피면 온통 띠와 억새로 가득한 굼부리를 가로지르는 희미한 길이 보인다.
능선에서 볼 때와 달리 굼부리 바닥에 내려서면 그 속은 별천지다. 시끄럽고 어지러운 풍광과 소리가 다 사라지고, 띠와 억새 이파리를 스치는 제주 바람과 고근산 굼부리 넓이만큼 열린 하늘이 전부다. 오롯이 나만의 세상이 생긴 듯, 기분 좋아지는 공간이다. 봄철에는 굼부리 능선을 따라 철쭉이 피어 장관이니 때를 맞춰 찾는 것도 좋다.
남서쪽 전망대 옆, B코스를 이용해 내려서면 된다. 중간까지는 제주올레와 겹치는 이 길도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활엽수와 삼나무, 편백나무가 번갈아 나타나는 지그재그 계단길이다.
한겨울의 고근산 굼부리. 산안개가 껴서 몽환적인 분위기다.
북쪽에서 본 고근산 정상부. 굼부리 둘레길 아래로 연결된 게 제주올레 7-1코스다.
교통
A코스 입구 부근에 공영주차장(서귀포시 서호동1433)이 있다. 천지연폭포를 중심으로 서귀포 일대를 오가는 641번, 644번, 691번 버스가 ‘고근산’ 정류장에 정차한다. 여기서 오름 남서쪽 A코스 들머리까지는 서호동 공동묘지를 지나 1km 걸어 올라야 한다.
주변 볼거리
외돌개 용암이 만들고 파도와 바람, 세월이 조각해 완성한 돌기둥이다. 20m가 넘는 거대한 바위기둥이 바닷속에서 불쑥 솟은 외돌개 꼭대기엔 소나무 몇 그루가 뿌리를 내려 경외감마저 든다. 외돌개를 포함하는 주변 풍광이 절경이고, 이 모두를 품고 제주올레 7코스가 지난다.
서건도 제주올레 7코스가 지나는 해안을 마주한 강정동에 서건도가 있다. 하도 작고 구석에 붙어서 있는지도 모르는 섬. 면적은 13,367㎡, 마주한 해안과는 300m 떨어졌다. 하루 두 번 썰물 때면 바닷물이 빠지며 섬과 이어진 얕은 돌길이 드러나는 제주판 ‘모세의 기적’이 펼쳐진다. 그럴 때면 폭 10m쯤의 현무암 자갈지대가 드러나서 걸어서 섬까지 오갈 수 있다. 서건도 안에는 목재데크가 깔린 탐방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서 둘러보기 좋다. 섬이 작아서 40~50분이면 넉넉하다.
외돌개.
맛집
천지연폭포 동쪽 서귀동에 제주 사람들 사이에 갈칫국으로 유명한 네거리식당(064-762-5513)이 있다. 갈치조림도 그에 못잖다. 갈치요리 전문점으로 통한다. 그 외에도 자리물회, 한치물회, 옥돔국, 성게국, 갈치구이, 고등어조림, 옥돔구이 등 제주를 대표하는 음식은 거의 다 한다.
네거리식당 갈치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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