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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성산일출봉에서 오조까지…시간이 멈춘 7㎞ 트레일

白馬 2022. 9. 28. 06:40

특이한 용암지질과 녹색이끼가 어우러져 이국적인 광치기해변

 

누구에게나 그리운 곳, 언제 가든지 내 집처럼 반갑고 편안한 곳이 있다. 내게는 제주 성산포가 그렇다.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 곳이다. 마음의 위로가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나의 발길이 향하는 곳이다.

제주도에는 국내 어떤 여행지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생태 여행지가 많다. 특히 제주의 성산포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2010년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된 성산일출봉을 품고 있어서 더욱 각별하다. 코로나 유행 속 해외 대신 떠난 제주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찾아간 인기 명소도 성산일출봉이었다. 특이한 지질 생태계, 바다에 우뚝 솟은 웅장한 성곽의 절경, 거대한 분화구 위로 떠오르는 일출의 장관은 제주의 360개 오름 중에서 으뜸이다. 

오래 전에는 섬이었다가 사주가 쌓이면서 육지와 연결된 성산포는 성산일출봉뿐 아니라 자박자박 걸어서 즐길 수 있는 주변의 명소들도 많다.

 

거대한 성, 성산일출봉

성산일출봉(높이 182m)은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에 있는 약 5,000년 전에 분출된 화산. 바다 위에 우뚝 선 성산일출봉은 마치 스리랑카의 고대왕국 시기리아 록 같은 모습이다. 분화구 위에 99개의 바위 봉우리가 둘러 서 있는 모습이 마치 거대한 성과 같다 하여 ‘성산’, 장엄한 일출을 보여 주어서 ‘일출’, ‘성산일출봉’으로 부른다.

1,200℃에 가까운 현무암질 마그마가 분출된 후 지하수나 바닷물 또는 빙하와 만나면 급격히 식으며 물이 끓게 된다. 이런 냉각과 가열현상이 성산포 앞바다에서 격렬하게 일어나 큰 폭발을 일으켜서 만든 결과물이 성산일출봉이다. 형성된 후 수천 년 동안 바닷물이 화산재 층을 깎아 생긴 침식절단면은 마치 조각 작품처럼 보이고, 작은 섬처럼 푸른 바다에 우뚝 선 성산일출봉은 마치 왕국의 성처럼 보인다.

 

성산일출봉 바로 아래 바닷가에 나지막이 피어있는 해국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성산일출봉 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내려가는 길과 구분되어 사람들끼리 부딪히지 않아서 편하다. 조금씩 올라갈 때마다 시야가 점점 넓어진다. 저 멀리 성산항부터 광치기해변, 오조리까지 성산포의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선다. 조금씩 땀이 나기 시작하지만 발걸음은 경쾌하다. 자연이 선물해 준 특이한 모양의 바위들을 구경하고, 제주에서만 자생하는 작은 식물들과 인사 나누며 막힘없이 뻥 뚫린 성산 앞바다부터 성산 마을까지 광활하게 펼쳐진 조망을 만끽한다. 

어느새 분화구가 있는 정상이다. 수년 전에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이다. 아주 오래전 분화구를 걸었던 기억은 추억의 한 페이지로만 남아 있다. 

아무리 바빠도 일출봉 전망대에선 커피 한 잔 정도 마시며 쉬어가는 여유를 부려 본다. 가만히 눈을 감고 나를 감싸고 지나가는 바람을 느낀다. 이 세상 어떤 바람보다 정겹다. 마음이 편안하다. 눈을 감아도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대로 들어온다. 커피는 식었어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이다. 

반대방향으로 내려오니 우도가 인사한다. 엄청난 바람에 텐트가 날아갈 뻔 했던 추억의 우도.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에 나 홀로 있는 착각을 들게 해 주었던 우도의 일출이 나를 전율하게 한다. 

성산포의 또 다른 매력은 성산일출봉 바로 아래 화산암반 절벽이다. 구멍 숭숭 뚫린 검은 화산 암반 사이에 나지막이 몸을 숨기고 수줍게 피어 있는 해국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검은색 돌들 틈새에 자리한 보랏빛 해국은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난다. 바닷가 바위에서 피는 생명력은 마치 제주의 어멍을 닮은 듯하다.

 

특이한 용암 지질과 녹색 이끼가 어우러진 광치기해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특이한 이름, 광치기해변은 빛이 흠뻑 비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또 다른 슬픈 유래가 있다. 조선시대에  타 지역에 비해 심한 차별과 수탈을 겪어온 제주도민들은 뭍으로 도망을 시도했다. 당시 조정은 이를 막기 위해 선박 건조를 막았다. 생계유지를 위해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야 했던 제주사람들은 삼나무로 뗏목을 만들어 바다로 나갔다. 뗏목의 특성 상 조금만 풍랑이 일어도 뒤집혀서 어부들은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뗏목이 난파되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죽은 어부들의 시신이 이곳 광치기해변으로 흘러들었고, 시신을 발견하면 미리 만들어놓은 관에 넣어 장례를 치렀다. 관을 가지고 죽은 가족을 기다린다는 의미로 ‘광치기해변’이라 불렀다. 

 

성산일출봉에 오르면 뻥 뚫린 성산 앞바다부터 성산 마을까지 광활하게 펼쳐진 조망을 만끽할 수 있다.

 

이곳의 끝없이 펼쳐진 모래 해변은 어디에서 사진을 찍든 인생샷을 건질 수 있다. 더불어 성산일출봉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해돋이는 성산일출봉이라고 하지만 바람에 따라 물때에 따라 여명이 춤을 추며 팔색조로 변하는 광치기해변의 일출도 성산일출봉의 일출 못지않은 장관이다. 

광치기해변은 성산일출봉의 늠름한 자태를 감상하기에 더 없이 멋진 곳이다. 밀물보다는 썰물일 때 더욱 진기한 모습을 보여 준다. 물이 빠지며 바다 속에 숨어 있던 초록 암반이 모습을 드러내면 빼곡하게 바위를 덮고 있는 솜털처럼 보송보송한 초록의 바다이끼가 세상 밖으로 나온다. 바닥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물빛에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어우러진다. 송송 뚫린 현무암 구멍으로 찰랑찰랑 바닷물이 드나든다. 

 

밀물 때는 광치기해변의 신비스런 비경이 바닷물에 가려진다.

 

이왕 나선 김에 섭지코지로 향한다. ‘바다로 뻗어 나온 곶’이라는 의미의 섭지코지는 신양해수욕장에서 2km에 걸쳐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있다. 구불구불 해안선을 따라 언덕을 오르니 화산송이 갯바위와 등대가 있다. 드라마 ‘올인’ 촬영을 비롯한 많은 매체의 전파를 타고 세상에 알려진 곳이다. 붉은오름은 오름 내부에 붉은 화산송이가 쌓여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출 포인트이기도 한 등대에 오르니 섭지코지의 바다를 배경으로 성산일출봉이 물 위에 떠있다.

산책로 중간쯤에는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글라스하우스’가 자리한다. 섭지코지 최고의 명당자리에 우뚝 서 있는 글라스하우스는 V자형 건물로 통 유리창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야생화 정원 ‘민트 가든’, 6m 높이의 거대한 대형그네 등은  제주 여행객들의 사랑을 온 몸으로 받고 있다. 특히 대형 그네 ‘그랜드 스윙’에서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서 30분 이상 기다려야 하지만 기다림의 시간조차 설렘이다. 2층 레스토랑에선 성산일출봉뿐 아니라 우도가 한눈에 보인다.

 

오조마을은 정겨운 제주 돌담 옛집들이 가득하다

 

심심할 틈이 없는 오조리

나 오吾 비출 조照, 즉 나를 비춰본다는 뜻을 가진 오조리마을은 성산포 뒤편의 작은 포구 마을. 정겨운 제주 돌담 옛집들이 있는 작은 마을이라 자동차보다는 걸어서 산책하기 좋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반영에 담긴 성산일출봉은 또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너무 아름다워 발길을 옮기지 못할 정도로 황홀하다. 햇살이 부서져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면 마음 가득 미소가 채워진다. 성산일출봉에 서면 일출봉이 보이지 않지만 오조리마을 어디에서든 성산일출봉이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세계자연유산인 성산일출봉의 온전한 모습을 감상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산책로를 따라 10분이면 오를 수 있는 나지막한 오름인 식산봉이란 이름의 유래를 알게 되면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내내 오조리 바다도 왜구 침입이 잦았다. 이에 오조리 해안을 지키던 조방장助防將이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식산봉에 볏짚을 쌓아서 마치 낟가리처럼 위장했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왜구들은 이것을 군량미를 쌓아 놓은 것으로 알고 병사도 많을 것이라 판단하고서 침입하지 않았다. 그래서 식산봉食山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성산일출봉과 오조리마을 그리고 섭지코지의 터진목을 연결하는 7.1km 구간이 성산~오조 트레일이다. 이 길은 가능한 천천히,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걸으면 시간의 흐름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겨우 40m 높이의 식산봉으로 오르는 길은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사람 그림자도 없다. 인적이 없으니 조금 긴장된다. 나무에서 놀고 있던 꿩이 나를 보고 놀라 도망간다.

 

팔색조로 변하는 광치기해변의 일출은 성산일출봉의 일출 못지않은 장관이다

 

오조리에 오면 꼭 가봐야 할 곳은 오조리 감상소이다. 오조리 포구에 있는 선구 보관 창고를 고쳐 만든 공간으로 한때 드라마 촬영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한동안 비어 있다가 오조리의 절경과 옛 이야기가 담겨진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오조리는 성산일출봉 위로 솟아오른 달이 잔잔한 바다에 비추면 두 개의 달, 쌍월을 선물한다. 바로 쌍월을 즐감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 식산봉 근처 쌍월 동산이다. 바로 오조리 감상소가 있는 곳이다.

오름과 바다, 일출과 월출, 지질트레킹, 신비스러운 지질 공원, 화산암의 해국 등 참으로 다양한 스팟을 가지고 있는 성산은 하루를 머물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조금 색다른 여행을 원하면 성산일출봉으로 가는 입구에서 즐기는 승마체험, 성산일출봉 해안가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는 보트 체험도 해볼 수 있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저 섬에서 한 달만/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그리운 바다 성산포/이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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