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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좋은 산 좋은 절] 남해 금산 보리암

by 白馬 2007. 3. 15.

       남해 금산 보리암

 

         네 본연의 천진이 대자연의 율동에 맞춰 춤추게 하라

▲ 보리암은 남해와 함께 깨어나고 함께 잠든다. 끝없는 생멸변화를 다 받아들이면서도 한마음을 지켜가라는 가르침이 여기에 있다.

 

남해 보리암이라 해야 좋을지, 금산 보리암이라 불러야 할지 잠시 망설여집니다. 남해도(南海島)와 금산(錦山·681m)과 보리암은, 셋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셋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부르기로 했습니다. ‘남해 금산 보리암’이라고.

▲ 해수관음상과 함께 바라본 남해 금산. 기암괴석과 울창한 수림 그리고 남해. 천하절승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일. 그것은 나와 세상을 관조하는 일이다.

‘보리암은 뒷걸음질로 올라야 할 절이다.’

사실 가파른 오르막길을 뒷걸음질로 오르는 것은 가당찮은 일입니다. 운동을 위해서라면 또 모를까. 그때 나는 정상 가까이로 다가가면서 이제나저제나 해가 떠오를까 싶어 수시로 몸을 돌려 세우곤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희붐한 대기 사이로 돋아나는 바다와 섬들의 풍광이 불과 몇 걸음 차이로 판이하게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나름대로 확보한 객관적인 관점이라는 것도 편견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는 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각의 높이에 따라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남해 바다의 모습은 세계와 사물의 실상에 대한 어떤 논리적 설명보다도 쉽게 다가오는 생생한 가르침이었습니다.

▲ 남해금산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동종.
그리고 또 한 가지. 보리암은 가장 가까운 길이 아니라 먼 길로 에돌아 찾아가야 할 절이라는 사실을 일러드리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남해대교를 건너든,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너든 이동면 금평 마을로 곧장 가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금산의 북쪽 기슭으로 길이 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가면 금산의 이마에 자리한, 아스라한 벼랑에 제비집처럼 자리한 보리암의 입지를 살필 수 없습니다.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하지만 상주쪽으로 에돌다가 상주 해수욕장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기암절벽으로 정상을 이룬 금산과 정상 바로 아래에 자리한 보리암을 한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보지 않고 보리암을 봤노라 하는 것은 반쪽짜리 절 구경입니다.

보리암을 800m 앞둔 곳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걷는 산길의 감촉도 아주 부드럽습니다. 금산의 금 자가 공연히 비단 금(錦)인 게 아닙니다.

▲ 벽화 속의 수월관음도가 이곳이 관음기도도량임을 알게 한다.
길이 끝나면, 대숲 사이로 돌계단이 나타납니다. 짧지만 저절로 발길이 향하게 되는 매력을 지닌 초입입니다. 돌계단이 끝나면 보광전 앞에 닿게 되고, 한 번 더 계단을 내려서면 해수관음상의 뒷모습과 삼층석탑이 시야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입지에 비해 과도한 크기의 극락전이나 다닥다닥 붙은 듯한 전각들에 적이 실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점들은 부차적입니다. 보리암은 절집을 보러 갈 곳이 아니라 남해의 무진 법문을 듣기 위해 찾아야 할 절이기 때문입니다.

▲ 해수관음상. 지그시 감은 눈으로 세상의 소리를 본다.
곧장 삼층석탑 앞으로 가서 바다를 봅니다. 이곳이 바로 금산 제1의 남해 조망처입니다. 울창한 수림과 계곡을 타고 내리던 시선은 송림을 병풍처럼 두른 상주 해수욕장에서 일단 멈춥니다. 심호흡 한번 하고 다시 사방을 둘러봅니다. 바다와, 사람이 공들여 가꾼 인공의 숲과, 원시의 숲이 빚어내는 시각적 화음이 장중합니다. 저녁 바다는 이우는 햇살을 은빛으로 되돌려 놓으며 타오르고 있습니다. 물과 불의 상생입니다. 어쩌면 원효 스님과 관련된 창건 연기나 조선의 태조 이성계와 얽힌 금산의 전설도, 이런 대자연의 풍광을 보여주기 위한 방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자연의 풍광에 사람살이를 비춰보는 것. 그것이 관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사의 모든 시비곡직이 관조적 태도로 사물을 바라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관세음보살이 자비의 화신인 건 ‘세상의 소리를 보는(觀世音)’ 보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살이에서 타인에게 관용을 구할 때 우리는 ‘좀, 봐 달라고’ 말합니다. 봐 준다는 것은, 보살펴 도와준다는 것이고, 기다려 준다는 것이고, 다른 관점에서 한 번 더 지켜본다는 것이겠지요.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바라볼 여유를 가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보살도의 첫걸음이 아닐까요.

▲ 관음봉 아래 아스라한 기슭에 제비집처럼 자리한 보리암.

 

불교 신자들에게 보리암은 기도도량으로 이름 높은 곳입니다. 이곳 보리암과 동해 양양의 낙산사, 그리고 서해 강화도의 보문사를 삼대 관음기도도량이라 일컫기도 합니다. 하나같이 바닷가 절승지입니다. 관세음보살의 주처(住處)가 인도 남쪽 해안의 보타락가이기 때문에 굳어진 종교적 신념의 산물일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대자연의 절승에 자신을 비춰보는 것이야말로 참된 기도라는 의미에서 입지의 의의를 헤아려 봅니다. 불교는 다방편의 종교이니까요. 

▲ 해수관음상 앞의 삼층석탑(경남 유형문화재 제74호). 고려 초기 양식으로 추정한다. 이 탑 앞이 금산 제1의 조망처다.

보리암의 창건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가락국의 김수로왕이 인도 중부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을 왕비로 맞아들일 때 함께 온 장유 선사가 세웠다는 것입니다. 장유는 허황옥의 삼촌이기도 했는데, 김수로왕과 허황옥이 낳은 열 왕자 중 일곱을 데리고 출가하여 처음 절을 세운 곳이 김해에서 멀지 않은 이곳 보리암이라고 합니다.

다른 한 가지는 원효 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입니다. 원효 대사가 산천을 유랑하던 중 금산의 절경에 이끌려 들어왔는데 온 산이 빛을 발하더랍니다. 그래서 산 이름을 보광산이라 하고 보광사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고려 말에 이성계가 이곳에서 기도를 올리고 조선을 세우고 왕위에 오르자, 그 보답으로 산을 비단으로 둘러준다는 뜻에서 금산으로 이름을 고쳤다 합니다.

진실이 무엇이든 위의 세 가지 이야기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남해와 금산의 절경이 창건의 주요 동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금산 제1의 조망처인 삼층석탑(경남 유형문화재 제74호)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전해 오는 얘기에 의하면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사리를 모시기 위해 원효 스님이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믿기 힘든 것이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탑 남쪽에 나침반을 가져가면 N극과 S극이 남북을 반대로 가리킨다고 합니다. 돌이 바다를 건너오면서 방향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돌도 멀미를 한다는 익살스런 상상의 산물입니다. 어쨌든 이 이야기도 탑의 절묘한 입지 때문에 생겨난 것 같습니다. 절승에 대한 감탄이 부족하다고 느낀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비화의 산물이겠지요.

▲ 보리암의 주불전인 보광전 앞.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남해군은 1973년에 완공된 남해대교에 이어, 2003년에 창선·삼천포대교가 개통되면서 육지와 한층 가까워졌습니다. 하지만 관광지 개발붐으로 한갓진 분위기가 사라져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이다. 그것이야말로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줄이는 일이라는 걸 놓치는 지자체의 조급증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지족해협의 자연현상을 이용한 죽방렴의 고기잡이 방식은 고래의 방식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곳입니다. 그런데 대놓고 ‘원시어업 죽방렴’이라고 광고를 하면서부터 이상한 관광상품이 돼 가는 느낌입니다. 그래도 아직 남해군에는 호젓한 산마을과 바닷가 마을의 분위기를 간직한 곳이 많습니다. 따라서 보리암을 들고 날 때에는 한껏 해찰을 부리며 이곳저곳 둘러볼 필요가 있습니다.

▲ 옹기종기 붙은 전각들이 금산 정상 남쪽 기슭에 어렵게 터를 얻고 있음을 알게 한다.

자연과 어우러진 삶의 현장에서 자연스러움의 가치와 미덕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경전을 읽는 일이 아닐까요. 고려 때 백운 스님이 금강산의 석불상을 보고 읊은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공연한 짓 벼랑 깨어 법신 상했네.’

자연이 곧 부처의 몸이라는 통찰이 별처럼 빛납니다. 보리암의 가르침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나는 이렇게 새겨 봅니다.

‘네 본연의 천진이 대자연의 율동에 맞춰 춤추게 하라. 그것이 조화로운 삶이요, 지혜로는 삶일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