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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부터골 달밭 마을의 폐가 위로 화란산과 가부산이 보인다. |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과 원덕읍 경계에 솟은 구이산(九利山·566.6m)은 금, 은, 동, 아연, 운모, 석탄, 약물, 송이, 약초, 삼척목 등 인간에게 아홉 가지 이로움을 준다고 하여 이름을 얻은 활인지산(活人之山)이다. 낙동정맥에서 발원해 서출동류하며 동해바다에 이르는 가곡천에는 은어, 버들치, 갈겨니, 돌고기, 미유기, 뱀장어, 퉁가리, 송어, 향어, 참게, 다슬기, 산천어가 서식하고 있으며, 산속 숲에는 구렁이, 살모사와 같은 파충류가 우글거린다.
박형순씨(49·태백생명의 숲)의 승합차에 달랑 업혀 무차거사(無車居士)로 가곡면 탕곡리 대촌에서 하차한다. 산행 날머리가 되겠기에 아예 대촌 버스승강장 건너편 공터에 자동차를 놓아두고 산행 들머리로 정한 외기내 마을까지 416번 지방도를 따라 걷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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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목지에 군락을 이룬 노송. |
탕곡리에서는 제일 큰 동네인 대촌을 뒤로 하고 때터 마을로 향한다. 여름만 되면 수해로 가곡천이 범람하며 구불거리는 도로를 삼켜 버리므로 다시는 피해를 입지 않도록 때터 마을 앞으로 새로이 길을 냈다. 모롱이를 한 구비 돌아들자 극성스럽던 북풍도 잦아든 구이산 비탈을 끼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양지모전 마을이다.
가곡천을 끼고 또 한바탕 베리를 돌자 샬롬 큰사슴목장 입간판이 있는 외기내다. 탕곡리 끝이며 원덕읍 경계지점에 위치한 외진 곳에 있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지금까지 걷던 도로를 버리고 목장 농가로 올라서자 허름한 건물 뒤로 두충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다.
“안녕하세요. 저 나무가 무슨 나무에요? 여기로 구이산 갈 수 있어요?”
“나 가는귀가 먹어 큰 소리로 해야 돼!”
외기내 사슴목장서 산행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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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에는 조망을 위해 지름 55cm 되는 소나무들을 잘라버렸다. |
축사 왼쪽 울타리를 끼고 숲으로 들어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오죽과 밤나무 사이의 우묵한 길은 낙엽이 발목을 덮으며 경사를 높여간다. 겨울철에 적설량이 많던 이곳에는 올 겨울 들어 눈이 오지 않아 심한 가뭄이 들었다. 보리, 마늘 농사는 물론이고 산불 걱정이 큰 화두다. 바짝 마른 갈잎, 솔잎들이 발에 밟히는 마찰에도 불이 일어날 것만 같다.
소나무들만 남겨놓고 주위 나무를 모두 하예작업 후 길에다 버려놓아 가풀막을 오르기에 매우 까탈스럽다. 또 사방으로 난 산짐승들의 이동통로가 사람이 다닌 길 같아 자칫하면 엉뚱한 곳으로 갈 수 있겠다. 약간 볼록한 지맥을 놓치지 않고 15분쯤 오르자 밤나무밭이 있는 묘 잔등이다.
행전도 치고 덧옷은 벗어 배낭에 넣고 석축을 넘어 다시 솔숲 아래로 든다. 여기에도 산짐승 길이 얽혀 있어 미로 학습을 해야겠다. 밤나무 단지 왼쪽 석축 끝으로 올라가자 길은 왼쪽 범의골 사면으로 돌아가 버린다. 여기서 지맥을 놓치지 않고 올라서면 이번에는 오른쪽 시루방골 사면으로 슬그머니 돌아가는 어렴풋한 길이 있다. 다시 지맥을 찾아 올라서야 한다. 이러한 미로게임을 하지 않으려면 아예 곧장 범의골과 시루방골 사이의 지맥을 찾아 따라 오르는 게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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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들머리에 서 있는 샬롬큰사슴목장 입간판. |
계속 숲이 걸리적거리는 가풀막이다. 거기에다 한 술 더 떠 하예 작업한 나무들이 사람이 다닐 만한 곳에만 가로막아 옆으로 돌아가자니 가시를 엉크러니 세운 산초나무와 청미래덩굴이 버티고 있다. 참으로 짜증스런 오름이건만 박형순씨는 자그마한 눈으로 연신 웃으면서 뒤를 따른다. 자원봉사 활동으로 다져진 그는 가시밭길도 즐거운 모양이다.
노간주나무도 간간이 보며 호랑이가 앉아 있을 법한 바위를 지나자 용트림하는 노송에 김해김씨 울진임씨 합장묘다. 등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더니. 박형순씨는 술안주로 꼬막 반찬을 꺼내 놓으며 “후손들이 조상의 묘를 찾을 때에는 필히 조개 같은 음식을 가져와 먹고는, 왔다 갔다는 표시로 묘 부근에 조개껍질을 버렸다고 합니다. 형님! 저 아랫녘으로 가보이소. 묘 옆에서 조개껍질을 볼 수 있습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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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부터골로 가는 옛길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다. |
목을 축이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잡목 사이로 15분쯤 더터 오르자 구이산 동쪽 능선인 가곡면과 원덕읍 경계지점에 닿았다. 이제는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능선을 따라간다. 잘 생긴 소나무들이 울골질하는 바람에 떠들썩거리고 가랑잎도 덩달아 멀리 편지를 보낸다. 묘 1기를 지나자 잠시 후에 묘 2기가 앞뒤로 나타나며 두루뭉실한 봉우리다.
여기서 정상으로 가는 능선은 돌리네 지형으로 둘로 갈라졌다가 다시 만난다. 가운데 움푹 원형을 그린 땅은 옛날에는 원앙새가 노니는 호수였겠으나 지금은 대들보감 소나무들이 빼곡히 하늘을 찌르고 있다.
길은 어느 쪽 능선을 택해도 된다. 정상으로 가는 오름에는 산벗나무, 신갈나무, 소나무, 일본이깔나무들이 뒤섞였다. 인간이 사는 부근에나 서식하는 고욤나무 몇 그루가 있다. 부근의 풀더미를 헤쳐 보니 오래된 집터다. 여기가 행복, 안녕, 복지, 복리의 터 샹그릴라였을 터인데, 어째서 떠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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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 직전의 합장묘를 지키는 문무석. |
집터를 뒤로 하자 울창한 소나무를 울타리 삼아 문관, 무관석을 앞에 둔 진씨, 김씨 합장묘다. 묘를 지나자 지름 55cm 이상 되는 소나무 20여 그루를 마구 베어 놓아 어렵사니 나무등걸을 타고 넘으며 찾은 삼각점(415 재설. 760 건설부)이 있는 구이산 정상이다. 재선충 때문에 우리나라 소나무가 수모를 겪고 있다지만 이렇게 크고 멀쩡한 나무를 조망을 위해 베어 버렸다면 너무나 아깝다.
사방으로 시야가 트였다. 북쪽은 도항산, 가부산, 사금산, 응봉산, 육백산으로 주맥이 흐르고, 동으로는 검푸른 호산 항구에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남쪽은 가곡천 건너 갈경산, 엽팔산이 우람하고, 서쪽은 학아산, 복두산 뒤로 백병산, 면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의 큰 품새가 뚜렷하게 시야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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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슴목장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용트림하는 노송. |
소나무 시체들을 또 다시 타고 넘어 북쪽 능선으로 하산을 한다. 멧토끼 배설물이 즐비한 잘루목을 지나 앞 봉우리에 올라 다시 양부터골과 동작골 안부로 내려가는 곳은 잡목이 빼곡한 급경사다. 사방 쓰러져 있는 간벌한 나무들을 피하여 하산하기도 쉽지 않다. 정상을 떠난 지 30분쯤에 노란색 페인트와 흰 비닐끈으로 소나무 허리에 표시해 놓은 안부다.
이후부터는 왼쪽 양부터골 사면에 있는 옛길을 따라간다. 구불구불 내려가는 길이 지금까지 산행하던 길에 비해 신선놀음 길이다. 양푼을 엎어 놓은 것 같다 한 양부터골에는 2채의 폐가에서 구불거리는 경운기 길을 따라 15분쯤 내려서자 옥토망월 형국의 달밭 마을이다.
낙동정맥 위로 까치놀이 붉게 서리는 듯하더니 이내 궁벽진 한촌에 어둠이 스멀거리기 시작한다. 널푸레한 길을 따라 두런두런 이야기로 발을 맞추며 35분을 걷자 초저녁 가로등이 대촌을 지키고 있다.
산행안내
대촌-(25분)-외기내-(50분)-주능선-(1시간)-정상-(30분)-양부터와 동작골 안부-(30분)-달밭 마을-(35분)-대촌 <3시간50분 소요>
외기내 마을에서 범의골이나 시루방골로 빠지지 말고 그 사이 지맥을 따라 주능선까지 간다. 돌리네 지형에서는 어느 능선으로 가도 정상에 이른다.
호산→외기리 시외버스터미널(033-572-6045)에서 태백행 또는 풍곡리행 버스 이용. 1일 8회(07:00~19:20) 운행하는 버스로 외기내에서 하차 부탁.
태백→양지모전 시외버스터미널(033-552-3100)에서 1일 5회(07:10 포항, 08:30 호산, 10:00 포항, 13:00 호산, 19:00 호산) 운행하는 직행버스로 탕곡리 양지모전에서 하차.
(지역번호 033)
도시락 주문은 태백시의 맛나분식(552-2806, 016-348-5770) 이용. 탕곡리의 가든미니식당(573-2592) 민박 가능. 가든식당 572-7029. 민박 김동조 572-7044. 임종실 573-4733, 김인선 576-0085, 홍주표 573-3437·011-9799-3432.
가곡면사무소(572-7412)에 근무하는 김동선씨(572-7103)에게 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