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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인왕산 백사실 숲

by 白馬 2007. 2. 8.

[명품숲 탐방] 인왕산 백사실 숲

딱따구리·도롱뇽 노니는 도심속 ‘곡선의 공간’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아파트와 건물들, 거미줄처럼 놓여있는 도로들 사이에 주말이면 녹색 갈망으로 숲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다양한 생각으로, 때로는 도심을 벗어나 멀리 아름다운 숲을 찾아 심신을 달래러 떠나는 사람이나, 때로는 가까운 아름다운 공원을 찾아 잠시 지친 몸을 쉬게 하려는 이들도 만나게 됩니다.

▲ 소나무. 같은 소나무라 할지라도 산성일 때 나무의 껍질은 더욱 더 짙은 황토 빛을 띠게 된다.
예전의 삶에는 자연이란 숲이 늘 우리의 삶 속에 더불어 있었습니다만, 우리가 희망하는 그러한 아름다운 숲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없다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일은 그러한 숲이 있다 하더라도 어떤 숲을, 그리고 숲에서 도대체 무엇을 보고,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극도로 발달한 현대사회가 진정 우리가 간직해야 할 감성을 앗아가 버린 것은 아닌지요? 

조금은 수고스럽고 불편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마음 먹고 문을 나서면 정말이지 아름다고 감동적인 숲이, 그것도 벌써 수천 년이란 세월보다 더 오래전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아름다운 숲이 우리가 살고 있는 아주 가까운 곳, 바로 서울 사대문 안에 수천 년을 살아 숨쉬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연의 새들이 날아다니고, 맑은 물이 흐르고, 물속에서는 버들치나 도롱뇽이 냇가를 오가는 인왕산 자락에 있는 백사실 숲에 들면 자연스러운 숲의 어울림에 놀라게 됩니다. 서울 사대문 안에 이런 자연에 가까운 숲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을까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람한 소나무들이 즐비하고, 백사 이항복 선생이 즐겨 지내셨다는 집터와 연못 등의 흔적이 남아있고, 그 주변을 둘러싼 거대한 느티나무들이 우두커니 서서 바람과 새들과 사람들의 생활사를 고스란히 쓰고 있는 듯합니다.

사대문 안에 자연의 경이로움 감상은 행운

백사실 숲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나무가 소나무들이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벚나무, 아까시나무,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그리고 밤나무가 큰 덩치로 소나무와 함께 가장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숲의 주인들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여섯 종류의 나무들이 수백 년 동안 대를 거듭하면서 백사실 숲을 지켜왔던 것입니다.<사진 1>

▲ 백사실 숲의 겨울.

토양이 척박하고, 햇빛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곳에서 그 누구도 감히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는 용기를 내지 못할 때, 소나무는 그 어려운 상황에 뿌리를 내려 척박한 환경을 조금은 비옥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상수리나무나 벚나무들이 개척자적인 소나무의 노력으로 뿌리를 내려 살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척박한 환경에서는 소나무처럼 잘 살 수 없는 것이 상수리나무와 벚나무들이기 때문이죠.

아무튼 다양한 나무들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은 과히 환상적이며, 다양한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자유롭고 혼란스럽기까지 한 선들은 많은 동물들이 즐겁게 살아 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줍니다. 특히 오래된 소나무 줄기에서 청딱따구리가 열심히 나무속 애벌레를 사냥하고, 가지에서는 오색딱따구리가 빙빙 돌면서 애벌레를 찾아다니는 광경이나 키 작은 국수나무나 산사나무들 사이사이로 분주하게 날아다니는 박새들하며, 상수리나무의 잎들이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노란 잎을 매달고 있는 이 모든 자연의 경이로움을 복잡한 서울 한가운데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은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혼란스러운 가지들의 뻗음이 혼란이 아니라 바로 안정이란 사실-혼란 속의 안정-을 우리는 숲속에 사는 다양한 생물들을 보면서 배우게 됩니다. 모든 것이 직선화된 우리네 삶의 공간은 다양성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직선이 인간의 생각이라면, 곡선은 숲의 생각입니다.

서울 한편에는 도로와 고층건물만이 즐비해있는 직선적 공간이라면, 또 다른 한편의 백사질 숲은 곡선인 자유로운 선으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숲을 찾는다는 게 삶의 충전이 된다고들 하나 봅니다.

 

연령 다른 느티나무 언젠가 한 몸 되어

수십 년 전의 일일까요? 소나무가 자라는 바로 옆에 어떤 새가 이동시켰는지 벚나무 씨앗이 뿌리를 내려 살기 시작했습니다.<사진 2> 처음에는 서로들 큰 부담 없이 자라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서로가 부담스럽도록 공간의 협소함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과연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그렇습니다. 이들은 언젠가는 서로들 부담을 느끼며 누군가가 사라져야한다는 사실입니다.

벚나무와 소나무가 연리목이 될 수 없는 슬픈 사연(왼쪽). <사진 3> 서로 다른 연령인 느티나무는 언젠가 한 몸이 되어버릴 연리목의 희망을 안고 산다(오른쪽).">
▲ <사진 2> 벚나무와 소나무가 연리목이 될 수 없는 슬픈 사연(왼쪽). <사진 3> 서로 다른 연령인 느티나무는 언젠가 한 몸이 되어버릴 연리목의 희망을 안고 산다(오른쪽).

하지만 느티나무 같은 경우에는 함께 더불어 살다 때가 되면 서로 한 몸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이것을 연리목이라 합니다.<사진 3> 하지만 벚나무와 소나무는 서로 다른 나무들이기 때문에 연리목이 되지 못하고 각자가 경쟁하면서 살아가든지, 아니면 결국 한쪽이 사라지게 됩니다. 사라지는 나무도, 살아남아 연리목이 된 나무들조차도, 숲이라는 큰 생태계 안에서는 모두가 존재하고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기 때문에 건강하고 종이 다양한 숲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백사실 숲에서 조그만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아까시나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까시나무는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아주 미움을 받게 된 나무입니다. 하지만 아까시나무는 그 미움의 영문을 알 리도 없겠지만, 미움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 생명력은 더욱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여기저기 아까시나무가 수난을 받고 있는 모습들이 보입니다.<사진 4> 하지만 이들은 줄기가 잘려지든지, 줄기에 상처를 입든지 하면 곧 바로 새로운 가지를 내밀어 새롭게 삶을 시작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는 나무 중 하나입니다.

▲ 사람에 의해 아까시나무 줄기의 둘레가 상처를 입었다.

그가 미움을 받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아까시나무의 뿌리 발달이 대단히 왕성해서 주변에 있는 나무들이나 묘지 등을 훼손시킨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아까시나무들이 있기에 토양이 비옥해진다는 사실과 아까시나무가 있기에 다양한 곤충들이 살수 있게 되고, 곤충을 사냥하기 위해 다양한 새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건강한 생태계를 잃어버린 꼴이 됩니다.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편협한지 확인할 수 있는 현장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자연관이, 우리가 자연을 이해하는 것이 여기까지일지도 모릅니다. 자연을 이해하는 우리의 생각이 다양하지 못하면 우리 주변에는 건강하고 다양한 숲이 존재할 수 없으며, 단순함으로부터 발생되는 자연의 반란은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몸뚱이가 동강이 나도 아까시나무는 또 다시 삶을 시작하는 강인함을 보여줍니다. 아주 건조하고 햇빛 강한 날씨에도, 토양이 매우 척박한 환경에서도 마치 소나무의 기질을 닮은 아까시나무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에 있던 작은 잎(턱잎)을 가시로 바꿔 무더위에 자신의 몸속에 있는 수분이 많이 증발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몸속의 수분을 조절해내는 기발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사진 5>

▲ 아까시나무에 나있는 턱잎이 변해서 된 가시.
또한 스스로 살아가는 환경이 적합하지 못할 때 언제든지 줄기에서 새로운 가지를 만들어 잎을 달고 광합성을 할 수 있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사진 5>에서는 한 개의 가지만 나와 있군요. 보통은 무리를 지어서 여러 개가 한꺼번에 나오는 이러한 가지를 우리는 도장지라고 하죠.

백사실 숲에 살아있는 아까시나무들의 평균 연령은 대략 25~30년생들입니다. 아까시나무는 강인한 생명력과 빠른 생장속도를 보입니다. 그리고 소나무 뿌리가 매우 깊은 땅속까지 들어가는 심근성을 보이는 반면, 아까시나무는 토양 깊이 약 30~40cm까지 밖에 들어가지 못하는, 그래서 평면으로 넓게 뻗어가는 천근성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까시나무는 백사실 숲에서 키가 가장 높이 자라있는 나무입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그 뿌리는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천근성이기 때문에 그 높은 키를 지탱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람이 불거나 비가 많이 오면 아까시나무는 쉽게 넘어질 수 있습니다. 백사실 숲을 거닐다보면 여기저기 아까시나무가 넘어져 있는 광경을 목격하시게 될 것입니다.

생명력이 강인한 나무는 이뿐 아닙니다. 생명력에 관해서는 상수리나무도 아까시나무 못지않을 뿐 아니라 더욱더 오래 살 수 있는 나무입니다. 수백 년, 아니 때로는 수천 년을 거목으로 살아남으면서 숲의 세상을 오랫동안 풍미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상수리나무가 자리를 잡고 오랫동안 살아가게 되면 그들의 후손이나 아니면 다른 어린 나무들이 상수리나무의 그늘 때문에 잘 자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그늘 아래서 살아갈 수없는 소나무나 아까시나무는 모두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사실 숲에서는 어린 소나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가끔은 빛이 내리쬐는 곳에서는 어린 아까시나무만 몇몇 보일 뿐이죠. 하지만 아무리 거대한 상수리나무가 숲의 최상위층을 점령하고 있어 아래에는 빛이라곤 거의 없는 공간을 만든다 할지라도 어린 상수리나무나 갈참나무처럼 인내할 줄 아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거대한 나무들이 수백 년 동안 뿌리를 내린 토양은 그만큼 비옥도가 떨어지고, 나무에게는 충분한 영양공급을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서서히 큰 나무는 죽음을 준비해 갑니다. 거목이 죽고 나면 몇 톤이 넘는 엄청난 나무가 땅바닥으로 넘어지고, 비로소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작은 미생물들이나 버섯균 등에 의해 분해됩니다. 많은 양분들은 다시 토양으로 돌아가고, 비로소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인내를 배우며 버텨온 어린 나무들은 생장의 기쁨을 만끽하게 됩니다.

서로 다른 크기·형태로 공생하는 나무들

그밖에도 백사실 숲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밤나무들은 특별한 나무의 모양을 하고 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다시 시간을 조금만 과거로 돌려봅시다. 밤나무가 지금보다 어렸을 때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은 충분히 서로들 경쟁하지 않을 만큼 넓었습니다만, 지금은 모두들 큰 나무들로 성장한 상태에서 모두가 살아가기에는 공간이 조금은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밤나무의 많은 줄기 중에서 각자가 한 개 또는 몇 개의 줄기들을 서로 고사시켜 살아가는 데 적응하고 있는 모습은 과히 감동적인 현상입니다.

▲ 고욤나무를 자르고 난 후 감나무를 접붙이기한 관경.
또한 공간이 비좁게 됨으로 해서 느티나무의 줄기와 가지들이 이웃하고 있는 나무들을 피해 빈 공간으로 뻗으면서 자란 모습은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말해주는 듯합니다. 특히 감나무 속에 속하는 고욤나무는 사람들이 감을 생산하기 위해 접붙이기를 한 흔적들이 나타나 있습니다.<사진 6>

그들의 삶은 참으로 위대하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을 만큼, 그들이 지키고 있는 백사실 숲은 아름답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숲을 보면 그 모양새들이 참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크기의 같은 나무들이, 때로는 비슷한 크기의 서로 다른 나무들이, 때로는 서로 다른 크기의 같은 나무들이, 때로는 서로 다른 크기의 서로 다른 나무들이 자라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구성이 숲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으며, 다양한 종들이 서식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숲의 건강성을 판가름하는 주요한 판단기준이 되며, 그 구성이 다양할수록 대기정화기능과 물의 양적이고 질적인 공급에도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더욱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맑게 하는 녹색병원입니다.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겨울 숲을 밟아 보셨는지요? 작은 개울가에 얼음으로 뒤덮인 그 아래로 졸졸 흐르는 맑은 물소리를 언제 들어보셨는지요? 겨울날 숲이 주는 따듯한 햇살은 또 언제 경험해 보셨는지요? 이 모든 것이 흘러가버린 과거의 시간이 아닙니다. 아직도 살아있는 자연이 우리 곁에 있으며, 각박한 삶에 쫒기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더욱 더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잠시라도 배낭을 메고 신발을 고쳐 신을 여유가 없는 우리의 마음이 과거가 되어버렸다고는 생각지 않으신지요?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여유롭고 넉넉한 마음으로 가까운 백사실 숲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지요?

# 찾아가는 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건너편(교보생명빌딩 앞)에서 1020번 버스를 타고 청운동 청운아파트에서 하차, 약 15분 걸어 올라가다보면 정말이지 서울도심과 매우 대조적인 부암동에 위치한 백사실 숲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