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창문을 열면 마음이 들어오고. . . 마음을열면 행복이 들어옵니다
  • 국내의 모든건강과 생활정보를 올려드립니다
등산

[좋은 산 좋은 절] 수락산 흥국사

by 白馬 2007. 2. 19.
[좋은 산 좋은 절] 수락산 흥국사

작은 산, 작은 절에서 자연의 교향곡을 듣다

피콜로라는 악기가 내는 소리를 실제로 들어본 건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 어느 음악회였습니다. 음악적 취향이 그다지 고급스럽지 못한 형편으로선, 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피콜로 소리만을 분리해서 듣지는 못했습니다. 한 악장이 끝난 다음, 지휘자가 곡을 해설하면서(아주 이례적인 일입니다) 피콜로 연주자만을 불러 세워 따로 소리를 들려 줬기에 그 소리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비로소 나는, 온갖 꽃들을 흔들어 깨우는 이른 봄날의 새소리 같은 그 악기의 소리를 귀에 새길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이후로 연주회가 끝날 때까지 나의 관심은 음악이 아니라 악기였습니다. 소리를 내는 시간보다 침묵하는 시간이 훨씬 많은 타악기를 의식해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수락산을 생각하면 내 생애 최초의 피콜로 소리가 떠오릅니다. 위계적 서열의식에 길들여진 타성 때문에 겉모습만으로 사물의 존재감을 평가절하하는 머슴 근성의 그림자도 함께-.

▲ 학이 날개를 편 듯한 모습의 흥국사 대방. 건물 앞에 긴 주초석을 세워 산기슭의 기울기를 누그러뜨리면서 안정된 가운뎃 마당을 얻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조신 후기 자연주의 미학을 보여주는 흥국사의 얼굴 같은 건물이다.

수락산은 백두대간의 식개산(북한 지역, 세포군)에서 솔가하여 남서쪽으로 휘어 돌아 오두산(파주)에서 발길을 멈추는 한북정맥의 가지줄기에 맺힌 산입니다. 도봉산과 마주하여 그 사이에 중랑천을 품고, 뒤로는 왕숙천을 풀어 한강을 살찌웁니다. 한북정맥이 죽엽산을 지나 남쪽으로 가지를 뻗어 아차산에서 발길을 멈추는 수락산 줄기는, 도봉산·북한산 줄기와 함께 서울 북부의 주된 산줄기입니다. 

서울의 동쪽을 울타리 친 수락산은 경기도 의정부시와 남양주시에 걸쳐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둘러보게 될 흥국사는 수락산의 동쪽 자락에 자리한 절로 행정구역상으로는 남양주군 별내면에 속합니다. 따라서 서울에서 이 절을 가기 위해서는 서울 상계동 당고개를 지나 덕릉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서울 도심이 재개발되면서 밀려난 무허가 주택들의 마지막 저항 거점이었던 상계동은, 1987년 4월 14일 재개발이 끝남으로써 한국 최대의 아파트 밀집지로 변모했습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념을 뒤로 하고 덕릉고개 너머 덕릉 마을에서 500미터쯤 언덕을 오르면, 역시 의구(依舊)한 산천에 기댄 아담한 절이 있습니다. 흥국사입니다.

▲ 영산전 뒤에 자리한 독성전. 기단의 다듬은 장대석에서 왕실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아직도 흥국사는 옛 절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절 마당을 굽어보고 있는 400살 된 상수리나무는 절의 오랜 연원을 알게 합니다. 긴 주초석에 잘 다듬은 장대석으로 위엄을 더한 건물이 먼저 시선을 장악합니다.

H자 형태로 비범한 외양을 한 이 건물은 대방(大房)으로 불리는데, 불전(佛典)은 아니지만 이 절의 역사적 배경과 조선시대 자연주의 미학을 이해하게 하는 건물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시 살피기로 하고 절의 연원부터 더듬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흥국사가 처음 세워진 때는 599년(신라 진평왕 21)으로 창건주는 세속오계로 널리 알려진 원광법사입니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수락사(水落寺)였는데, 1568년(조선 선조 1) 선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아버지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원당으로 삼으면서부터 흥덕사(興德寺)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은 중종의 8번째 아들로 소실 태생이었습니다. 선조가 왕위에 오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명종대에 이르러 정실 태생의 왕손이 끊어짐으로써 선조가 왕위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왕위에 오른 선조는 아버지의 무덤이 능이 아니라 묘로 불리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당시 궁중에서 쓰던 땔감을 흥덕사 근처에서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는 궁중 관리에게 시키기를, 덕릉(德陵)에서 왔다고 하면 후한 값을 쳐 주되 덕흥군 묘에서 왔다고 하면 사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덕릉으로 부르게 됐고, 절 또한 덕절로 불리게 됐다고 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여론 조작의 결과인 셈입니다. 유치하기도 한 발상이었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절대 왕권을 휘두르지 않고 민심을 사려했다는 점이 가상하기도 합니다. 이에 비추면 민주주의를 한다는 요즘의 정치권력이야말로 반민주적인 구석이 얼마나 많습니까. 물론 그 반민주성이 우리의 평균적인 수준에서 비롯되긴 하지만 말입니다.

626년(인조 4)에 덕흥사는 다시 이름이 흥국사(興國寺)로 바뀌어 오늘에 이릅니다. 선조와 관련된 특별한 인연이 왕실과 인연으로 자리바꿈을 한 것입니다. 

전형적인 산지형 가람인 흥국사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영산전, 왼쪽에 시왕전, 맞은편에 대방을 두어 네모꼴의 가운데 마당을 이룹니다. 대웅전 뒤편의 산기슭에는 독성전과 만월보전, 그리고 단하각이 다소곳이 앉아 있습니다. 주불전인 대웅보전(도문화재자료 제56호)은 1793년(정조 17)에 중수됐다가 1818년(순조 18)에 불에 타 3년 후 중건된 건물로,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이 잘 드러나는 건물입니다.

▲ 대웅보전 추녀마루의 잡상. 갓을 쓴 사람 모양을 필두로 동물 형상의 토우를 나란히 배치했다. 장식 기능과 액을 물리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주로 궁궐 건축에 쓰인다.

특히 이 건물의 추녀마루에 놓인 잡상(雜像)은 흥국사에 대한 왕실의 보살핌이 각별했음을 보여줍니다. 사람을 시작으로 동물 형상의 토우를 일렬로 세워 놓은 잡상은 일종의 장식 기와로, 건물의 위엄을 더하고 화재나 액을 막아 준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합니다. 주로 궁궐 건축에 사용됩니다.  흥국사 대웅보전뿐 아니라 계룡산 신원사의 중악단처럼 사찰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는 왕실과 관련이 됐기 때문입니다.

▲ 조선시대 화승 배출 사찰답게 벽화가 화려하다.(시왕전)
앞서 얘기했듯이 흥국사의 대방은 조선 후기의 자연주의 미학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산에 기대어 터를 얻되 훼손을 최소화한다는 것입니다. 새가 나무에 둥지를 트는 것처럼 말입니다. 산기슭에 터를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산을 허무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찰 건물은 이런 방법을 쓰지 않습니다.

흥국사 대방의 경우 넓은 H자 모양으로 건물의 앞뒤 구조는 같습니다. 하지만 기단부는 전혀 다른 건물로 보일 정도입니다. 전면은 긴 주초석과 장대석 계단으로 마치 누각처럼 보일 만큼 상승감과 위엄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돌아들어 대웅보전 앞에서 보면 마당과 주초석이 평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산을 허물지 않고 안정된 마당을 얻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 것입니다. 다른 많은 절에서는 누각으로 이런 효과를 얻습니다. 완주의 화암사가 좋은 예일 것입니다.

한편 흥국사는 대중방의 필요성과 왕실의 권위가 더해져서 이런 양식이 됐을 겁니다. 조선시대의 영조법식, 즉 요즘 말로 건축 법규는 궁궐 건축이 아니면 주초석이든 기단이나 계단의 장대석이든 다듬은 돌은 일체 사용이 금지됐기 때문입니다.

▲ 영산전 뒤 산기슭에 자리한 약사대불과 나한상.

영산전 앞으로 난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구릉 같은 산자락에 약사대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수락산 정상으로 오릅니다. 15분쯤 오르자 능선이 나타납니다. 살짝 눈이 덮인 길에는 인적이 거의 없습니다. 당고개나 수락산역쪽과는 달리 흥국사쪽에서만 맛볼 수 있는 한가를 한껏 누려 봅니다.

1시간 반쯤 걸어 정상에 닿습니다. 맞은편으로 도봉산과 눈인사를 나누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내가 사는 마을이 아스라이 눈 아래에 걸립니다. 두어 시간 걸음이면 이렇게 별유천지를 누릴 수 있는데, 돌아가면 또 왜 그렇게 아옹다옹하며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산에서 얻은 에너지는 다리가 아니라 마음속에 간직할 일입니다.

수락산(638m)은 그리 높은 산이 아닙니다. 주능선의 길이도 10km 남짓입니다. 하지만 석천계곡, 백운동계곡, 금류동계곡 같은 계곡은 깊고 그윽합니다. 금류, 은류, 옥류폭포 같은 가경도 베풀어 놓고 있습니다. 대자연의 교향곡을 지휘하는 창조주는 낮은 산 높은 산, 넓은 산 좁은 산에 차별을 두는 법이 없습니다. 모두들 존재 이유는 절대적입니다. 물리적 부피로 우열을 따질 일이 아닙니다.

나에게 피콜로 소리를 처음으로 들려준 그 연주회의 기억은 대부분 피콜로 소리에 끌려 나옵니다. 곡목도 잊었지만 그 소리만큼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나에게 수락산은 그런 산입니다. 언제나 떠올려지는 마음 속 산의 목록에서 다섯 손가락을 벗어나는 일이 없습니다.

# 흥국사와 수락산 쪽지 정보

수락산은 높고 험한 산은 아니지만 사암으로 이루어진 골산이기 때문에 겨울철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까다로운 곳이 많다. 정상 부근 암릉에는 안전장치가 설치돼 있고 줄을 걸어 놓았지만 군데군데 위험한 곳이 많다.

흥국사에서 수락산 정상 방향으로는 이정표가 없다. 군부대 철조망 옆으로 올라 첫 능선에서 송전탑쪽 능선을 타면 된다. 오른쪽 능선을 따라가면 덕릉 고개 너머 수락원쪽으로 내려가게 된다(주의 요망).

당고개역에서 출발하여 흥국사로 회귀하지 않을 경우 백운동계곡을 따라 수락산역, 석천계곡을 따라 장암역쪽으로 하산한다면 하루산행 코스로 적당하다.

글 윤제학 현대불교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