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빼어난 자연경관 덕에 호남의 소금강으로 일컫는 오산과 구례의 조망대 둥주리봉은 오늘도 민족의 명산이자 장엄한 지리산을 우러러본다. 그리고 도도하게 흐르는 호남의 젖줄 섬진강과 휴양의 명소 구례의 역사와 민초들의 삶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부처님의 가피력과 도편수의 기막힌 기술력으로 빚어낸 사성암의 법당이 오산의 바위틈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구례에서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언제나 부처님의 인자한 모습으로 불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호남 제일의 영험기도도량 사성암이 반겨 맞는다.
원효, 의상, 도선, 진각 등 4명의 고승(四聖)이 수도했다는 그 암자에 오르면 바위 하나하나가 부처님의 법의처럼 구례와 곡성 들녘이 한눈에 잡히고, 지리산도 발아래 놓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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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척면 죽마리 사성암 입구. |
사성암을 걸어서 오르려면 1시간쯤 힘들게 발품을 팔아야하나 승용차나 승합차를 타고 굽이진 길을 오르면 마치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사계절 풍광이 모두 아름답지만 특히 온 천지를 하얗게 채색해 놓은 겨울 설경과 풍월대, 망풍대, 배석대, 신선대 등 12경이 오산의 매력이다.
푸짐하게 내린 눈으로 해발 465m의 사성암 주변엔 나뭇가지마다 상고대가 만발하고 좀처럼 보기 드문 설경이 장관을 이뤄 저마다 동심에 젖어 눈길을 헤집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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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성암 약사전 앞에 도열한 전주 재회산우회 일행. |
암벽에 매달린 약사전을 고가도로 축조 때 쓰인 교각처럼 떠받친 둥근 기둥 3개가 팔 다리가 아프다고 하소연이다. 돌계단을 오르면 불자들의 소원성취를 기원한 이름을 적어 놓은 기와가 즐비하다. 큰 느티나무 옆으로 오르면 신선각 옆에는 도선굴로 불리는 동굴이 있는데, 저마다 탑돌이 하듯 그 석굴을 돌아나왔다.
구례10경의 하나요,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오산(鼇山)은 자라를 닮은 형상이고, 둥주리봉은 광주리보다 적고 대나무나 싸리나무로 만든 둥근 바구니처럼 생긴 산의 의미인 성싶다. 천황봉은 구례에 두 개가 있는데 이 산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와 달리 구례군에서 천왕봉으로 고쳐서 표지석을 세웠다. 아마도 일본 천황을 지칭하는 천황봉의 이름보다 일제잔재를 청산하려고 천왕봉으로 고친 진솔한 마음이 엿보인다.
산줄기는 호남정맥 형제봉 근처에서 갈려나와 갈미봉과 매재를 거쳐 삽재에서 두 갈래를 친다. 북쪽 능선은 닭발 형상의 계족산을 거쳐 금정리 희정 마을 앞 섬진강으로 숨어든다. 서북능선은 지리산을 향해 내달리며 천왕봉, 둥주리봉, 오산에 이르면 죽마리 서당 마을 앞 섬진강에 가로막혀 아쉬운 발길을 멈춘다. 물줄기는 모두 섬진강을 이루다가 광양만에서 남해에 살을 섞는다.
조망 일품 지리산 운무로 못봐
이번 산행은 전주 재회산우회(회장 양석권) 회원들과 박영근, 차기옥, 장혜경씨의 안내를 받아 제1코스를 답사했다. 사성암 옆 오산활공장은 구례생활체육패러글라이딩협회 회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산행 들머리로 문척면(780-2602)에서 설치한 이정표가 동해 4.8km를 친절히 알려준다. 활공장에서 10분이면 신선대와 하늘을 우러러본다는 앙천대를 지나 자라 형상인 오산(鰲山)에 닿는다.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와 표지석이 있고, 바위와 송림이 어우러진 지리산전망대 안내판 앞에서 즐기는 장엄한 지리산 조망이 일품이다. 송림 사이의 둔덕에 자리 잡은 자라봉(623.3m)은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전라도 방언인 자래봉으로 표기돼 있는데, 표준어인 ‘자라봉’으로 고쳤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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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래봉 능선에서 중산리 계곡쪽(동쪽)으로 건너다본 계족산. |
정상은 그저 아무런 특징도 없이 밋밋했으나 노란 솔가루를 뿌려놓은 소나무숲이 삼림욕을 하라고 산객을 유혹한다. 송림 사이 나무를 간벌한 능선이 계속되는가 싶더니 갈림길에서 이정표가 서쪽 죽마리, 동쪽 사성암 진입로, 남쪽은 동해 4.2km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올망졸망한 고스락을 오르내리면 남쪽으로 둥주리봉 능선이 하늘금을 그리고, 서쪽 선바위(0.3km)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면, 마고(4km) 하산길이 마중 나온다.
동쪽으로 계족산이 보이는 지점에서 철계단을 올라서면 소나무와 암릉이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한다. 서쪽 둥주리봉, 남쪽 동해(2.8km) 갈림길 이정표에서는 독도에 유의해서 동쪽 계곡처럼 낮은 안부로 내려가야 산줄기가 이어진다. 우리도 무심코 남쪽으로 직진하다 다시 되돌아오는 수고를 했다. 벌목한 넓은 공터를 지나면 송림 사이에 마당재가 쉬어가라고 손을 잡는다(사성암에서 2시간 소요).
북쪽의 넓은 터에 이찬행-정영숙씨 토담집 옆 비닐하우스에서 염치불구하고 추위를 피해서 50분 동안 느긋하게 오찬을 즐겼다.
마당재에서 남쪽으로 능선을 걸으면 동쪽으로 계족산과 그 너머로 도솔봉과 백운산이 눈인사를 한다. 박석돈 원광대 의대학장이 계족산을 닭발산이라 부르며 닭발이 맛있다고 입맛을 쩝쩝 다시자, 장혜경씨가 닭발은 못 먹어도 통닭(계란?)은 한 마리씩 주겠다고 좌중을 웃겼다. 밧줄에 의지해서 암릉을 오르자 둥주리봉 능선이 멋있게 다가온다. 중산리까지 간다는 마산 창원에서 온 정다운산악회 회원들을 만나 정담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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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등이 비교적 날카로운 둥주리봉 능선. 중간중간에 밧줄이 매여 있다. |
동해와 마고 마을을 뒤로하고 둥주리봉을 향해 고도를 올리는데 싸락눈이 을씨년스럽게 휘날린다. 밧줄을 잡고 암벽을 오르자 바위손이 추위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벌벌 떤다. 첫 봉우리를 올라서면 천혜의 성벽처럼 이루어진 암릉에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한다. 중산리와 낙석주의 표지판을 소나무에다 못으로 박아놓아 마음이 아프다.
큰 암반으로 이루어진 둥주리봉에 닿으면 구례군에서 설치한 표석과 삼각점(구례 24)이 있다(사성암에서 3시간 거리). 조망은 남쪽 천왕봉, 동쪽 계족산, 북쪽 사성암이 한눈에 잡힌다.
중산리 2km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조망을 즐기며 암봉을 내려서면 전망바위 갈림길이다(둥주리봉에서 20분 거리). 동쪽과 서쪽을 동일하게 중산리로 표기한 이정표가 헛갈리게 했다. 서쪽 험한 바위 사이의 내림길이라 이왕이면 동쪽의 편한 곳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수고를 했다.
천황봉 산자락을 개간해서 벌거숭이로 만든 천왕치를 만난다. 동쪽으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인가와 임도가 보이는 곳으로 중산리 하산로가 있다. 남쪽으로 천왕봉의 세 봉우리가 눈앞에 보이다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첫 봉우리에 올랐다 내려면 잡목이 울창한 헬기장에서 우회하는 길과 만나고, 전망대바위에 올라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굽이친 산줄기가 인생의 여정처럼 느껴진다. 지나온 길은 과거요, 우리가 서 있는 곳은 현재며, 목적지까지의 등산로는 미래인 성싶다.
밋밋해서 아무런 특징이 없는 능선에 천왕봉(652m) 표지석을 구례군에서 설치했다(둥주리봉에서 2시간30분 소요). 발걸음을 재촉해서 세 번째 봉우리를 지나면 곧이어 방향이 헛갈리는 갈림길을 만난다. 이곳에서 일행 한 명이 중산리로 하산해서 애를 태웠다.
산줄기는 우측으로 이어지다가 송전탑이 있는 사거리에서 산줄기는 동쪽으로 이어진다(천왕봉에서 20분 소요). 천왕봉에서 삽재~매재까지는 3km 거리로 1시간10분쯤 소요된다. 오늘은 우측의 순천시 황전면 산령 마을로 하산키로 했다. 한전의 산불조심 빨간 리번을 따라 남쪽의 소나무숲을 지나 측백나무 군락으로 내려가면 저수지와 도로가 보인다.
묘소에서 작은 소나무숲으로 내려가면 한봉을 키우는 넓은 터를 만난다. 임도를 따라 내려오면 순천시 황전면 화룡리 신령 마을 앞 두산농산 건물과 정풍산업 표지석이 반긴다. 좌측은 작은매재 시멘트길이고, 우측의 시멘트길을 따라 내려오면 도로변의 신령목장 저수지 옆 도로변에 닿는다(철탑에서 40분 소요).
# 산행길잡이
○제1코스 : 사성암~활공장~오산~자라봉~마당재~(4.5km)~둥주리봉~(2.5km)~천왕치~(2km)~천왕봉~철탑 사거리~안부~신령 두산농산~(3km)~신령목장 옆 도로변 <12km, 6시간30분 소요> ○제2코스 : 서당~(2km)~사성암~자라봉~(4.5km)~둥주리봉~천왕치~(4.5km)~천왕봉~(1.5km)~삽재~(1.5km)~매재 <14km, 7시간 소요>
# 교통
드라이브 코스 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전주-순천간 산업도로~구례읍~861번 지방도~문척교(우회전)~죽마리~사성암 / 구례~861번 지방도~간전~865번 지방도~효죽교~매재 / 호남고속도로 곡성·석곡 나들목~구례 / 남해고속도로 하동 나들목~19번 국도~하동~구례
열차편 서울역→구례구역 새마을호 1일 2회, 무궁화호 12회 운행. 서울→구례 남부터미널에서 1일 6회 운행 광주→구례 종합터미널 수시 운행. 전주→구례 남원 경유 직행편이 수시 운행. 구례에서 군내버스나 택시 이용.
# 맛집(지역번호 061)
청정하천 섬진강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조리한 얼큰하고 국물이 시원한 매운탕을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다. 지리산회관(대표 이규남·782-3124), 전원가든(대표 배태실·782-4733)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