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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월악산 산행 중 땅벌에 난사 당해…20분 만에 살충제 든 레인저 출동

白馬 2024. 6. 14. 06:04

[조난자와 구한자]

 

 

조난. 문자 그대로 재난을 만났다는 뜻이다. 재난의 크기는 생명에 즉각 위협을 줄 정도로 클 수도 있고,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을 정도로 작을 수도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똑같은 건 하나 있다. 바로 어떤 도움이든 조난자들에겐 매우 귀중하다는 점이다. 월간<山>은 등산 중 조난을 당한 이들과 이들을 구하려고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아무리 작은 도움의 손길이라도 모두 귀중한 선의며 아무리 작은 조난이더라도 남들에겐 큰 교훈을 준다. 

 

월악산에서 땅벌에 습격 받았던 김민규, 최성광 주임과 이들을 구조한 김승태 주임. 김승태 주임이 후임으로 들어온 최 주임에게 땅벌 제거 방법을 알려주는 듯한 모습으로 연출했다.

 
 

“벌이 붙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시나요?”

갑작스런 질문에 멈칫했다. 너무 당연한 것을 물을 때면 보통 알고 있는 상식과 다른 답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이 맞는 것 같았다. 벌은 갑작스런 소음이나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가만히 있어야 하지 않나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막상 여러 마리가 붙으면 본능적으로 뛰게 됩니다. 저도 그랬고요.”

김민규씨의 시간은 2021년 8월 15일로 돌아간다. 당시 그는 경남 진주의 한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주 6일 일하고 하루 쉬는데 한 달에 한 번은 꼭 산을 갔다. 마침 산에 갈 때가 되어 어딜 갈지 생각해 보는데 월악산이 눈에 들어왔다. 두 달 전부터 시작한 국립공원 여권 스탬프투어에 도장을 추가할 겸 좋은 선택지였다.

 

김민규, 최성광 주임은 당시 땅벌에 쏘였을 때 검정색 옷을 입고 있었다. 이젠 입지 않는다.

 

김씨는 일을 잠시 쉬고 있던 친한 고등학교 후배 최성광씨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일 없으면 월악산이나 같이 가자”고 하니 후배도 흔쾌히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광복절에 월악산 코스 중 힘들지만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보덕암 들머리로 향했다. 

아침 9시. 산행 초반 다리가 풀리기 전이라 천근만근 같았다.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고 한 숨 돌리려고 보니 이제 1km 왔다. 이정표를 보곤 얼른 올라가자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팔과 다리, 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엄청난 통증이 느껴진다. 다시 보니 땅벌이 온몸에 붙어 있다. 비명을 지르면서 동시에 쥐고 있던 스틱까지 던져버리곤 미친 사람처럼 위로 뛰기 시작했다. 먼저 앞서 있던 최씨는 ‘저 형이 미쳤나?’라는 표정으로 뚱하니 쳐다본다. 그리고 이내 그도 땅벌에 공격받기 시작하며 그 이유를 깨달았다. 둘은 그렇게 같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치는데 땅벌들은 그래도 맹렬히 쫓아온다. 

어느 정도 위로 도망친 뒤 벌들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안심하려는 순간 이번엔 발등 위에서 고통이 느껴진다. 벌이 들어왔다고 생각해 힘껏 주먹으로 여러 번 발등을 내려친 뒤 신발을 벗었다. 땅벌 한 마리가 목이 잘린 채 움직이면서 계속 발등을 쏘고 있었다.

벌을 떼어내고 몸을 살펴보는데 12방이나 쏘였다. 주변에선 다른 등산객 6~7명도 마찬가지로 벌에 쏘여 신음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땅벌에 쏘이고 나서도 월악산 정상에 올랐다.

 
 

온몸이 아파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긴급전화를 걸었다. “보덕암에서 영봉 방향 1km 지점에 땅벌에 습격당한 등산객 6~7명이 있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숨 가쁘게 전했다. 돌아온 말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게 없고, 지자체에 전화해 보라”였다. 공휴일인데 어떻게 지자체에 도움을 받을 수 있냐고 반문했지만 똑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전화를 끊고 다시 생각해 보니 조금 진정되면서 그제야 여기가 국립공원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전화번호를 찾아 연락하고 사정을 설명하자 직원은 “지금 바로 출동하겠다”고 전했다. 

가지고 있던 스프레이 파스로 다른 등산객들 응급처치를 하고 있는 새에 레인저는 20분 만에 왔다. 멀리서 하얀 방충복을 입은 2명이 보였다. 아래서 “땅벌이 나온 위치가 어디인가요?”란 물음이 들리자 큰소리로 “조금 더 아래에서 옆으로 가면 돼요”라며 설명했다. 땅벌 서식지를 찾은 직원들은 삽과 곡괭이, 살충제로 빠르게 땅벌의 기세를 잠재웠다. 그리곤 등산객들에게 다가와서 마저 응급처치를 해주고는 “꼭 가까운 병원에 가라”고 안내한 뒤 사라졌다.

그리고 각각 1년, 2년 뒤 구조대에게 도움을 받은 이들은 국립공원공단 레인저가 됐다. 

 

월악산 영봉을 배경으로 앉은 김민규, 김승태, 최성광 주임.

 

벌에 쏘인 등산객 구했더니 후임 레인저로 돌아왔다

이렇게 레인저가 된 김민규, 최성광 주임은 충북 단양이 고향으로 고등학교 선후배 관계다. 관악부에서 둘 다 악단 부장을 맡았기에 더 각별한 사이로 남을 수 있었다. 처음 등산을 한 것도 고등학교 때였다. 전교생이 단합 목적으로 1년에 한 번씩 소백산을 올랐다. 그렇게 반강제로 산을 오르게 됐지만, 갈 때마다 산이 좋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 전선에 나가서도 계속 등산을 취미로 하게 됐다.

지금 김 주임은 지리산생태탐방원에서 자연환경해설사로, 최 주임은 본인이 구조 받았던 월악산국립공원의 구조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당시 이 둘을 구조한 레인저 2명 중 한 명은 퇴직했고, 다른 한 명인 김승태 주임은 여전히 월악산에서 구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즉 최 주임에게는 직속 선임이 된다.

“뭐야. 그동안 왜 나한테 구조 받았다고 얘길 안 했어?”

공교롭게도 김승태 주임은 2년 동안 한솥밥을 먹은 최성광씨가 본인이 구조한 그 탐방객이란 걸 모르고 있었다. 최성광 주임도 김승태 주임이 본인을 구조한 그 레인저란 걸 몰랐다. 최 주임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당시에 방충복을 입고 있어 얼굴도 제대로 못 봤고 이름도 듣지 못해 그동안 누군지 알 길이 없었다”며 “업무에 적응하기 바빠서 그때 일을 잠시 잊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구조 받을 때 얘기를 좀 더 해보죠. 아깐 김민규 주임의 시선으로 봤는데 최 주임은 당시 기억이 나나요?”

“그럼요. 생생하죠. 제가 앞서 가고 있었는데 형이 갑자기 뒤에서 비명을 지르고 저를 앞질러서 뛰어가는 거예요. 뭐지? 하고 보고 있는데 ‘위이잉’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면서 배가 따끔했어요. 그때 벌이란 걸 알았어요. 두 손으로 온 몸을 털면서 저도 막 뛰어갔죠. 그나마 빨리 뛰어서 그런지 저는 좀 덜 쏘였어요. 배랑 허벅지 한 방씩 2방만 쏘였죠.”

 

땅벌에 쏘인 현장

 

다른 등산객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한 중년 여성은 김민규 주임이 내던진 스틱을 주워 주다가 쏘였다. 한 무리 대학생들도 뒤꿈치부터 팔까지 다양하게 쏘였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이들 모두 정상까지 갔다. 김민규 주임이 웃으며 말한다.

“응급처치까지 다 끝나고 나니 생각보다 금방 괜찮아지더라고요. 다른 분들도 물어보니 처음에는 엄청 아팠는데 모두 가라앉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다 같이 정상까지 갔죠. 저흰 광복절 기념으로 태극기를 챙겨 정상에서 인증 사진도 찍었어요. 저는 이틀 만에 벌에 쏘인 부분이 가라앉더라고요.”

“형은 확실히 벌에 내성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저는 벌에 쏘인 곳이 멍든 것처럼 까맣게 변했어요. 그래서 연고도 바르고 알레르기약도 챙겨먹으며 완전히 낫는 데 2주 정도 걸렸죠.”

“참. 그렇게 벌에 쏘인 이후 찾아봤는데 벌의 DNA에 곰이 각인돼 있어서 검정색 옷을 입으면 곰인 줄 알고 달려든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둘 다 그 이후로 등산할 때 검정색 옷은 안 입고 있어요. 하하하.”

 

월악산 만수계곡을 걷고 있는 레인저들.

 

탐방객 구하려 벌 트라우마 극복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김승태 주임의 시선도 궁금했다. 그에게 “출동이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1km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어서 갈 만했다”고 씩씩하게 답했다. 그는 2015년 국립공원공단에 구조대원으로 입사했다.

“사실 워낙 여러 가지 구조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당시 일이 또렷하게 기억이 나진 않아요. 어렴풋이 방충복을 입고 저 위쪽에 탐방객들 목소리를 따라서 벌을 제거했던 것만 생각나요. 벌이 우글우글 거릴 정도로 굉장히 많았죠. 아, 그리고 엄청나게 땀이 많이 났던 것 하고요. 방충복 재질이 가죽이라 착용하면 땀이 비 오듯이 나거든요. 게다가 8월이었고요.”

“평소에도 벌 제거는 많이 하나요?”

“그럼요. 땅벌은 물론 장수말벌도 제거해 봤어요. 사실 이렇게 쏘였다는 신고를 받고 가는 경우는 드물고, 벌집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사전 예방 차원에서 제거하는 경우가 많아요. 앞서 긴급전화에서 도와주기 어렵다고 한 것도 웬만해선 탐방객 분들이 벌에 쏘인 걸로 신고를 안 하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탐방객들이 12방이나 쏘였다고 하니 쇼크 등 위험성이 있겠다고 판단해서 급하게 출동했죠. 어차피 벌집 제거도 저희 소관 업무고요.”

놀라운 건 김승태 주임은 벌 트라우마가 있다는 점이다. 그는 어릴 때 할아버지가 양봉을 했는데 잠깐 구경하러 갔다가 윗입술을 쏘인 적이 있다. 너무 아픈 것뿐 아니라 다음날 학교에 나가니 입술이 퉁퉁 부어 있는 그를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놀림거리로 삼았다. 그게 너무 부끄러워 그 이후로 벌통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단다. 그래서 국립공원공단에 들어와 처음에 벌을 제거할 때는 무척 무서웠지만 탐방객 안전을 위해 이를 극복하고 묵묵히 제거 작업을 해내고 있다고 한다. 기억에 남는 구조 활동으로는 하루 3번 연속 출동한 날을 꼽았다. 

 

김민규 주임이 지리산에서 생태해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하루에 3번 연속 출동한 적이 있어요. 겨울이었는데 먼저 발목 골절 환자가 발생해서 출동, 구조하고 내려왔죠. 그리고 잠시 후 배낭을 사면 아래로 떨어뜨렸는데 주우러 내려갔다가 고립됐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자일을 갖고 가서 끌어올렸어요. 그리고 한숨 돌리는데 이번엔 산 반대편에서 겨울 월악산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며 운동화 신고 왔는데 날이 어두워지고 추워지니 구조해 달라는 신고가 들어왔어요. 산을 가로질러 가서 하산을 도와드렸죠. 보람 있는 하루였어요.”

보람 없는 하루도 있었다. 한 노인이 하산 중인데 시간이 너무 늦었다며 구조요청을 했다. 다친 건 아닌데 다리가 조금 불편하다고 했다. 일단 빠르게 랜턴을 챙겨 출동했는데 그 노인은 구조대를 보자마자 “왜 들것을 안 갖고 왔냐. 내가 이럴 줄 알았으면 뭣 하러 신고를 했겠냐”며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한 번이 아니라 내려가는 내내 거듭 그랬다. 그런데 옆에서 보니 노인은 정작 부축도 안 받고 잘 걸어서 내려갔다. 김 주임은 씁쓸한 미소를 띠었다. 

 

땅벌 사고 후 바로 응급처치강사 자격증 취득

한편 고등학교는 김민규 주임이 선배지만, 국립공원공단 입사는 최성광 주임이 1년 선배다. 그런데 국립공원공단에서 일해 보자는 생각은 김 주임이 먼저 했다.

“군대 갔다가 전역을 했어요. 2016년에 늦둥이 동생을 데리고 여우를 복원하고 있다는 중부보전센터에 갔죠. 그런데 제가 시간을 잘 못 맞춰서 원래라면 관람을 못 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친절하게도 그 국립공원 직원 분이 괜찮다면서 직접 여우도 보여 주고 해설도 해주셨어요. 그때 막연하게나마 ‘아 국립공원에서 일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근무 중 벌집을 제거하고 있는 최성광 주임.

 

그래서 후배인 최 주임에게도 국립공원공단에서 일하는 것을 적극 생각해 보라고 권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납득이 간 최 주임은 2022년에 국립공원공단에 입사할 수 있었다. 

반면 김 주임은 먼저 취업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운이 따르지 않았다. 등산학교에서 산악스키를 배우다가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국립공원공단 면접만 10번을 봤다. 여우 해설을 들었던 것이 감명 깊어서 본인도 해설 관련 직무를 수행하고 싶었는데 이 바닥에 ‘고인물’들이 너무 많았다. 은퇴 후 숲해설가, 유아숲지도사 등 온갖 자격증을 갖추고 수십 년 동안 숲과 산을 다니며 내공을 쌓은 이들이다.

또 하필이면 그가 국립공원공단 취업을 제안했던 주변 동창, 군대 후임, 고등학교 후배들은 떡하니 먼저 합격했다. 자존감은 계속 떨어졌다. 국립공원공단 취업을 포기할까도 고민했다. 비참했다.

 

김승태 주임이 탐방객을 구조하고 있다.

 

“그러던 차에 월악산 땅벌 사고가 있었던 겁니다. 국립공원공단에서 일하면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걸 제가 몸소 깨달은 거죠. 그래서 포기하지 않기로 했어요. 먼저 땅벌 사고를 교훈으로 삼고자 적십자사에서 발급하는 응급처치강사 자격증을 공부해서 땄어요.”

그렇게 10전 11기 끝에 그는 지리산생태탐방원 자연환경해설사로 입사하게 됐다. 꿈에 그리던 국립공원공단에 입사했기에 애사심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주말이나 휴무일에도 사무실에 출근하고, 지리산에 오른다. 생태탐방원의 해설 프로그램을 듣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지리산을 오르기 힘든 사람들에게도 SNS를 통해 지리산의 아름다운 생태를 보여 주고 싶어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다.

 

“구조한 사람이 입사해 더 보람 느껴”

김승태 주임은 그저 흐뭇하게 두 새내기 레인저들의 말을 듣고 있을 따름이다. 그는 “그간 몰랐는데 내가 구조했던 사람들이 이렇게 같은 조직에 입사해서 근무하고 있는 걸 보니 너무 뜻깊고 더 보람이 느껴지는 것 같다”고 했다. 특히 같은 사무소에서 일하는 최 주임에게는 더 각별한 눈길을 보냈다. 그는 “오랫동안 앞으로 같이 근무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성광 주임은 지금까지 업무를 잘 파악하고 따라오고 있어 더 가르칠 게 없는 수준입니다. 당부하고 싶은 말은 구조대원으로서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꾸준히, 성실하게 일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최 주임도 “당시 나를 구조해 준 사람과 같이 근무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며 “코로나로 취업 시장이 얼어붙어 있을 때 운 좋게 국립공원공단에 입사했는데 앞으로도 월악산을 잘 책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뜨거운 애사심과 애산심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 눈을 반짝인다. 

 

구조 당시 상황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레인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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