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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벽소령대피소 가보니] 이제 모포는 대여 안해요, 대피소 한켠엔 코로나 격리실

by 白馬 2022. 6. 9.

 

지리산 벽소령대피소~세석대피소 미니멀 비화식 산행 20km

 

벽소령대피소 대피실에서 조해영씨가 휴식하는 모습을 다양하게 담아 한 장의 사진으로 합쳤다.

 

사무치게 그리웠다. 땀에 젖어 소금기 가득한 냄새도, 창틀을 넘나드는 헤픈 웃음소리도, 도 닦는 것처럼 사뭇 진중하게 배낭을 쉼 없이 고쳐 싸며 비벼대는 비닐 소리도, 늘 뭔가 빠뜨린 게 생기지만 그 부족함을 대학으로, 고향으로, 정 안 되면 “니 또래아들”로 채워 주던 그 정도.

드디어 2년간의 긴 잠에서 깨어난 국립공원대피소를 찾았다. 대피소가 있는 설악산, 덕유산, 소백산, 지리산 중 택한 곳은 단연 지리산. 국립공원 중 가장 많은 대피소를 보유한 산이다. 특히 국내 산꾼들의 버킷리스트인 지리산 주능선 종주가 대피소가 운영되지 않아 사실상 불가능했었던 만큼 이번 대피소 개방으로 가장 많은 발걸음이 몰리게 될 곳이다.

 

1 등산로를 점령한 봄맞이꽃밭. 2 의신계곡 끝에 도달하면 드디어 나무 위로 빠끔 고개를 내밀 수 있다. 3 산행 중 쓰레기를 줍는 윤용만씨와 조해영씨.

 
산꽃,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

이번 산행은 의신마을 기점에서 시작해 벽소령대피소에서 숙박한 후, 세석대피소를 지나 거림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벽소령대피소는 지난 2018년 12월에 개축된 따끈따끈한 신작 대피소다. 동행은 아웃도어 마니아 윤용만씨와 유튜버 ‘러닝해영’ 조해영씨, 그리고 국립공원공단 최금옥 해설사와 이형석 주임이 동행했다.

의신마을에서 2km 정도 걸어 들어오면 삼정마을이다. 마을 건물 옆으로 난 오르막을 따르면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코로나 이전에는 주능선 중간에 올라타는 이런 길들이 사실 크게 인기 있진 않았어요. 대개 탈출로로 사용됐죠. 코로나 동안에는 주능선을 쪼개서 걷고 하산해야 했기 때문에 탐방객들이 많이 오셨고요.”

최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본격적으로 고도를 높인다. 해발고도 약 620m인 삼정마을에서 벽소령대피소(1,321m)까지 꼬박 700m를 올라야 한다. 하지만 험하지 않은 완만한 오솔길이 이어지는데다가 급경사 돌계단도 많이 없어 비교적 힘들지 않다.

“어머 여기 봄맞이꽃들좀 보세요. 새색시처럼 너무 아름답죠? 물참대도 있고, 붉은병꽃도 활짝 피었네요. 여기 이파리 밑에 족두리처럼 생긴 꽃도 보셨어요? 이게 족두리풀꽃이에요. 여긴 아직 초봄이네요! 산 밑이 완연히 늦봄이었으니깐 우리는 지금 시간을 거스르고 있는 셈이에요.”

시종일관 골짜기를 파고드는 길이라 별다른 조망은 없지만 발 주변이 꽃 천지라 눈이 즐겁다. 사실 최 해설사가 설명해 주지 않았더라면, 어떤 꽃인지 미처 알지 못하고 넘어갔을 테다. 자세히 보아야 아름다운 꽃을 즐길 수 있다.

 

4 벽소령대피소에서 의신계곡 방면을 내려다 봤다. 5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는 미니멀, 비화식 산행을 위해 국립공원 화개탐방안내소에서 도시락을 수령했다. 6 비화식 국립공원도시락. 하동군에서 파는 파인애플 볶음밥과 치킨 너겟을 다회용기에 담았다. 7 세석대피소에서 비화식으로 만든 주먹밥.

 

 

플로깅, 미니멀…이것이 MZ의 산행!

골짜기 끝에 다다르면 그때부터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의신계곡을 만날 수 있다. 잠시 계곡물에 땀에 젖은 손을 식힌 뒤 걸음을 옮긴다. 그때 모두의 눈을 잡아끄는 것이 있다. 휴지와 마스크. 쓰레기들이다. 조씨가 자연스럽게 본인의 클린백을 꺼내 깔끔하게 수거한다. 플로깅이 생활화된 MZ세대의 산행방식이다.

“원래 달리기를 좋아해요. 달리다가 쓰레기가 눈에 들어와 줍기 시작한 게 전부예요. 그렇게 2년 전부터 크루들이랑 조금씩 플로깅을 시작했죠. 한 번은 친구들이랑 산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으니깐 지켜보던 분들이 너무 기특하다면서 본인 쓰레기를 저희한테 버리고 가시더라고요. 일단 웃으면서 넘어가긴 했는데 기분이 참 안 좋았죠. 자기가 가져온 쓰레기는 자기가 되가져가야 한다는 상식이 빨리 퍼졌으면 좋겠어요.”

윤씨와 조씨는 같이 국립공원공단 탄소중립서포터즈로 활약하고 있다. 이번 산행은 이들의 감성에 맞춰 미니멀하게 준비했다. 침낭과 여벌의 옷 등 최소한의 짐만 챙겼다. 식단도 잔반이 발생하지 않는 비화식으로 꾸렸다. 국립공원공단에서 지역사회와 협업해 만드는 도시락과 대피소 햇반을 활용한 주먹밥이다. 이렇게 하면 짐이 한결 가벼워져 산행을 한층 상큼하게 즐길 수 있게 된다. 지역사회에 도움도 주고, 비교적 환경에 대한 부담도 줄이는 대피소 산행이다.

한 번 더 마주한 봄맞이꽃 화원을 건너자 꽃봉오리를 잔뜩 오므린 야광나무를 기점으로 드디어 시야가 트인다. 서어나무와 물오리나무 등 풍만한 참나무들이 사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리고 이어진 오르막의 끝에 벽소령대피소가 있다.

그리웠던 대피실 온돌에 몸을 눕힌다. 산바람에 식은 몸이 뜨끈하게 달궈진다. 이번이 첫 대피소 이용이라는 조해영씨는 “이름이 대피소라 쪽잠만 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시설이 좋다. 힘든 산행에서 마치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다”며 “다음에는 꼭 대피소를 이용한 종주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1 어둠과 안개가 자욱한 새벽녘에 벽소령대피소를 나선다. 2 미니멀 산행이기에 배낭이 가볍다. 국립공원 마스코트 인형으로 감성도 더했다.

 

벽소명월도, 일출도 모두 안개 속으로…

누군가에겐 정겹고, 누군가에겐 신기한 순간이 지나고 밤이 찾아왔다. 또한 밤과 더불어 정적을 깨는 불청객이 찾아들었다. 아뿔싸. 이어플러그를 챙기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곧이어 저마다의 코가 빚어대는 즉흥연주가 시작됐다. 그렇게 뒤척이는 밤이 지난다.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찌감치 일어났지만, 지리산은 짙은 안개구름에 잠겼다. 고작 몇 걸음 앞만 보일 뿐이다. 아쉽지만, 이 또한 지리산이다. 날씨가 기적처럼 맑아지길 기대하며 세석대피소를 향한다. 벽소령대피소에서 세석대피소까지 거리는 6.3km. 업다운을 조금씩 반복하는 지리산 주능선이다. 출발 후 1.1km는 고저 변화가 거의 없는 오솔길이라 가볍게 몸을 풀며 걷기 좋다. 간밤에 거의 잠들지 못했지만, 미니멀한 배낭과 술을 마시지 않은 탓인지 발걸음은 경쾌하다. 길게 아래로 늘어 떨어진 사스레나무수꽃도, 안개 너머에서 들리는 벙어리뻐꾸기와 휘파람새의 지저귐도, 이제야 꽃을 피운 얼레지밭도 어여쁘기만 하다.

 

덕평봉도, 칠선봉도, 영신봉도 완전히 구름에 잠겨 있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걸을수록 더 흐려지고, 구름에서 빗방울도 맺히기 시작하는 듯하다. 보이는 것이 없으니 귀만 쫑긋 세워진다. 최 해설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옛날에 한 청년이 죽을 작정을 하고 죽기 전에 천왕봉이나 올라보자는 생각에 돈도 들지 않고 백무동까지 버스 타고 왔대요. 어차피 죽을 생각이니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고 신발도 슬리퍼를 신었죠. 그런 복장을 하고 있으니깐 지나가는 아저씨, 아줌마들이 간식도 주고 걱정도 해주고 옷도 주고 했다더라고요. 사람의 따뜻한 정을 느끼면서 천왕봉에 오르고 나니 죽으려던 마음이 감쪽같이 사라졌죠. 오직 지리산이라 가능한 이야기죠.”

 

거림 기점 탐방로가 자욱하게 낀 안개 탓에 신비롭다.

 

대피소에서 기후변화 연구를?

기대했던 지리산 10경 중 하나인 세석철쭉은 등산로 가까이에 띄엄띄엄 꽃피우고 있는 걸 보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오랜만에 만난 세석대피소에는 새로운 건물이 한 동 자리하고 있다. 기후변화 스테이션이다. 구상나무, 가문비나무 등 기후변화에 취약한 아고산 생태계를 실시간으로 관측한 후 연구 거점시설과 국립공원연구원에 자동 전송하는 곳으로, 국내에 1,600m 이상 고지에 이런 연구시설이 구축된 건 최초의 일이란다.

 

리모델링한 벽소령대피소에 비해 세석대피소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해 더 ‘대피소답다’는 느낌을 준다. 지리산의 사계가 담긴 액자 속 사진은 빛이 바래 있다. 그에 반해 화장실은 깔끔한 수세식 양변기라 쾌적하다.

새벽부터 걸어오며 행동식만으로 배를 채워 온 터라 따뜻한 밥이 그립다. 일행이 택한 방법은 바로 대피소 햇반. 대피소에서 데워 준 햇반에 김가루와 간단히 멸치볶음 등 밑반찬과 밥에 뿌리는 조미료인 후리가케를 한데 섞어 가볍게 주먹밥을 만들었다. 짐을 최소화하고 비화식으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남부능선을 따라 의신마을로 원점회귀할 수 있는 묵은 산길이 있으나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해 거림으로 신속히 탈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몇 걸음 내딛자 거림계곡을 거슬러 ‘출근’하는 대피소 직원의 모습이 보인다. 직장인 중에선 아마 최악의 출근길 중 하나일 테지만 그는 밝은 미소로 짧은 인사를 건네고 기운차게 올라간다.

끝없는 내리막을 걷는다. 의신마을 기점의 등산로는 잔잔한 숲길이 많았으나 거림마을 기점은 온통 돌투성이라 걸음에 유의해야 한다. 능선에서는 야속하기만 했던 짙은 안개가 여기서는 계곡에 신비감을 부여해 주는 역할을 한다. 시원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잠깐씩 달궈진 무릎을 식혀 주다 보니 어느덧 수령이 50~100년은 된 것 같은 거대하고 신령스러운 소나무가 맞이해주며 산행이 끝났다.

 
 

대피소 문화, 어떻게 바뀔까?

시대가 바뀐 뒤 열린 만큼 대피소 문화를 이제 어떻게 정립해 나가야 할지 고민해 봐야 한다. 조용한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은 다른 이의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호쾌하게 즐기려는 사람들은 음주 금지나 판매물품 축소 등에 불만을 품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대피소가 장기적으로 철거해야 하는 환경유해시설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고민들을 품고, 이번에는 미니멀 산행을 시도해 봤다. 윤기 가득한 기름이 흐르는 고기나 펄펄 끓는 국물이 산에서 얼마나 더 맛있는지 알기에 더 고통스러운 선택이었다. 심지어 대피소 취사는 불법도 아니라 고기를 굽는다고 해서 죄가 되는 것도 아니며, 그런 이들을 폄훼할 소지도 전혀 없다. 단지 국물 같은 잔반 하나 없이, 산에 최소한의 흔적을 남기고 돌아오려고 노력한다는 건 분명 가치 있는 행위라는 믿음을 가질 뿐이다. 지속가능한 대피소 산행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산행길잡이

산행은 의신마을에서부터 시작한다. 삼정마을까지는 임도며, 삼정마을부터 본격적인 산길이다. 민가로 오르지 않고, 마을과 아래쪽 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된다. 전반적으로 탐방로가 확실하고, 외길이라 길 잃을 걱정은 없다.

다만 유의할 것은 거림 방면 하산로. 계곡이라 미끄러운 바위가 많아 실족에 주의해야 한다. 
 

교통(지역번호 055)
여느 지리산 산행과 마찬가지로 대중교통과 택시를 적절히 조화시켜야 효율적이다. 구례구역이나 구례공영버스터미널에서 의신기점까지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버스를 화개버스터미널에서 한 번 갈아타야 한다. 화개터미널과 의신마을을 오가는 군내버스는 하루 6차례(06:30~18:30) 운행한다. 다만 지역 버스 운행 시간은 수시로 바뀌므로 터미널에서 잘 체크해 두는 것이 좋다. 


문의 화개터미널(883-2793), 함양지리산고속(963-3745~6).

거림에서도 군내버스가 운행한다. 08:00, 09:40, 12:00(이상 덕산행), 15:25(청학동행), 16:25(덕산행), 19:00(중산리행)에 각각 배정돼 있다. 하지만 하산 시간과 버스 시간대를 맞추기가 어렵고, 배차 간격도 길어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속편하다. 또한 버스 배차 시간이 자주 바뀌는 편이므로 꼭 버스를 이용하고자 한다면 사전에 산청교통(973-5191)에 문의하는 것을 추천한다.

 

맛집(지역번호 055)
화개 쌍계사 일대와 터미널 부근에 각각 맛집들이 많다. 쌍계사 주변에선 청운식당(0507-1386-1667)이 명성이 높다. 대표 음식은 산채더덕구이정식(2인 이상, 1만5,000원). 된장찌개와 자극적이지 않은 밑반찬과 더덕구이가 나온다. 더덕구이를 어느 정도 먹고 난 뒤 돌판 위에 남은 양념에 밥, 산나물을 넣고 비벼먹어도 꿀맛.

터미널 부근에는 자연산 은어요리, 참게정식, 섬진강에서 직접 잡은 재첩국을 전문으로 하는 설송식당(0507-1310-1866)이 있다. 얼큰한 참게탕(2인 3만5,000원)과 신선한 은어회(2인 4만 원)가 가장 유명하다.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참게장정식에 은어튀김 정도만 추가로 시켜서 먹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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