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적군도의 숨은 보석, 해안선과 미니 공룡능선 취재 르포
본지는 블랙야크·인천관광공사와 협업하여 인천의 섬을 새롭게 조명하는 ‘인천 썸&산’ 연재를 새롭게 시작한다.
백아도 남봉 공룡능선에서의 야영. 텐트 밖으로 망망대해와 암릉줄기, 예쁘장한 오섬이 작품처럼 펼쳐진다.
이윽고 정적이었다. 시끌벅적하던 객실이 순식간에 텅 비었다. 굴업도의 인기를 새삼 실감하자, 나래호는 한층 가벼운 몸짓으로 다음 섬으로 향했다. 어느새 나이 들고, 사람 떠나보내는 게 이런 기분일까. 덩그러니 남아 빈 공간을 삼키노라면, 덧없는 파도와 애틋한 파도가 번갈아 출렁이며 속을 뒤집어 놓았다.
인천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 10분, 덕적도에서 배를 갈아타고 1시간 20분. 파도에 일렁이는 몸 하나 감당키 어렵다는 걸, 뼈저리게 느낄 때쯤 백아도였다. 이번 산행의 주인공 오혜진(@genieriding), 김지영(@hello.young)씨가 첫발을 디뎠다.
백아도 선착장에 닿으면 해안선을 따라 난 길이 반긴다. 선착장에서 100m를 가면 등산로 입구에 닿는다.
설렘보다는 지친 기색이 묻어났다. 아침 배를 놓치지 않으려 새벽부터 일어나 이어온 여정. 6년차 자전거 라이더인 오혜진씨는 이제 막 등산의 즐거움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백패킹 5년차이자 블랙야크 의류팀 직원인 김지영씨는 명산100 중 절반을 오른 등산마니아다.
안도감 드는 첫인상이다. 몰디브처럼 투명한 바닷물, 모히토처럼 상큼한 신록. 낮지만 다정다감한 풍경이었다. 우리 말고도 함께 내린 여행객 3명 더 있었으나, 산행 채비를 하는 사이 모두 사라졌다. 파도 소리만 남은 세상. 지도의 서쪽 끝에 온 듯 고요했다.
붓으로 칠한 것 같은 파랑에 살포시 섬 몇이 얹혀 있었다. 구름처럼 고즈넉하게 덕적군도는 흘러가고 있었다. 이토록 강렬한 적막감이라니, 자연 그대로의 고요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소박한 백아도의 산길을 걷는 김지영(왼쪽)씨와 오혜진씨. 명산100 산행에 한창인 젊은 등산인들이다.
맘모스 바위와 빠삐용 절벽
‘흰 상어 이빨을 닮았다 하여 이름 지어졌다’는 백아도 등산 안내판 옆으로 산길이 담백하게 나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착장에서 도로를 따라 ‘백아도 공룡능선’으로 불리는 남봉으로 곧장 가지만, 우리는 선착장부터 산줄기 따라 종주하는 느린 방법을 택했다.
자연미 있는 희미한 산길이 백아도의 첫 인상과 잘 맞아떨어진다. 정비를 하지는 않았으나 잊을 만하면 이정표가 있고, 조금 희미하지만 명료한 산길이다. 문득 다가오는 여인의 향기, 분꽃이 분홍 팡파르를 터뜨렸다. 분꽃나무 자생지로 유명한 섬답게 아찔한 향기가 진동한다. 보라색 붓꽃, 흰색 봄맞이꽃, 노란색 애기똥풀도 피었으나, 물량으로 쏟아 붓는 분홍의 화려한 고백에 미치지 못한다.
낮은 100m대 산줄기이지만 산행의 맛은 나름 깊이가 있다. 공용기지국 직전의 안부.
오르막을 쳐 오르자, 분꽃의 작전을 알 것 같다. 호흡이 깊어지며 몸이 향기로 차올라, 속된 속내가 분홍으로 물든다. 강제로 흠뻑 향기에 젖어 발끝까지 이어지는 아찔한 감각의 천국. 아무도 모르는 섬에서 홀로 황홀하다는 고마운 착각, 백아도의 선물이다.
경치는 없고 삼각점만 있는 봉우리를 넘자 슬그머니 고도를 내리며 숨결을 가라앉힌다. 그러곤 다시 오르막, 100m대 능선의 고춧가루는 힘들기보다 맛있게 매콤하다. 이 정도 오르막도 없었다면 몸이 개운하지 않았을 터.
먹을 수 있는 취나물뿐만 아니라 독성을 지닌 천남성도 지천이다. 숲의 식구가 단순한 보통의 섬과 달리, 의외로 보물 같은 식생이라 경치가 없어도 산행의 재미는 떨어지지 않는다.
남봉 공룡능선의 압도적인 경치를 즐기는 김지영(왼쪽)·오혜진씨.
능선의 흐름이 슬쩍 꺾어지는 곳에서 걸음을 멈춘다. 지능선 벼랑 숲에 희미한 산길이 있다. 나무 그늘 아래 식사 터와 모처럼 나타난 바위. 점프를 해야만 오를 수 있는 바위에 올라서자 바람이 와락 안겨온다. 지상의 파랑과 하늘의 파랑이 만나는 단순명료한 풍경. 먼 허공 건너오느라 ‘외로워 죽을 뻔했다’며 참아온 속내를 풀어놓는 바람. 가만히 바람 앞에 서 있었다. 백아도 토박이가 된 것 같았다. 젖은 마음, 바람에 마르며 걸음이 갈수록 명랑해졌다.
축제는 지금부터다. 경치에 인색한 육산 능선인줄 알았는데, 맛깔난 경치를 푸짐한 밥상으로 차려 낸다. 벼랑 앞에서 확 터지는 백아도 산줄기. 아담하게 첩첩기묘하다.
백아도 여행의 백미로 꼽히는 남봉 암릉줄기를 걷는 김지영·오혜진씨. 계단처럼 인공적인 안전시설은 없지만, 초보자만 아니라면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수준이다.
조각 같은 해안절벽, 낭만적인 산벚꽃, 지리산 주능선처럼 뻗은 선명한 산길, 더 이상 섬이 없는 망망대해. 하루 한 편뿐인 배는 떠났고, 등산객은 우리뿐이다. 섬 산행 특유의 행복이다.
뙤약볕이 쏟아지는 들판을 지나 굵고 짧은 오르막을 삼켜내자, 벼랑 끝에서 만나는 작품. 그동안 꽁꽁 숨겨둔 해안선이 드러나며, 맘모스 닮은 거대한 암봉이 존재감을 과시한다.
백아도 남봉 야영은 굴업도 개머리언덕과 다른, 거칠지만 색다른 매력이 있다.
드라마틱하게 뻗은 커튼 무늬의 절벽, 당장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이 나타나 “이놈들아! 나는 이렇게 살아 있다!” 고함지르며 바다로 뛰어들 것 같다.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 같은 여운이 있는 풍경. 100m대 산에서 누리는 호사치곤 과하다.
탑이 있는 봉우리, 탑은 무선기지국 시설이다. 폐허가 된 막사 건물로 봐서 분대 병력의 부대가 상주했던 것 같다. 풍력발전기 3개가 쉬지 않고 돌며, 기지국 전력을 감당한다. 그래서인지 폰이 잘 터진다.
하산길 같은 내리막을 내려서자 드디어 남봉 입구의 도로. 이제야 시작된 만찬의 시간, 조금 지친 혜진씨와 지영씨를 북돋아 산길로 든다. 200m 만에 나타난 공룡은 저돌적이다. 예열 없이 곧장 화려한 바위능선으로 산꾼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남봉 정상 부근의 전망바위에서 본 오섬. 무인도이며 걸어서 진입할 수 없으므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고도감 있는 절벽과 파스텔톤 바다, 기암능선이 들려줄 능선 마디마디가 궁금해 참을 수 없으나, 해는 기울고 바람이 차갑다. 적당한 터에 텐트를 치고 배낭을 푼다. 식은 도시락이 이토록 맛있던가, 서로 맞장구치며 초라하지만 결코 바꾸고 싶지 않은 저녁을 음미한다.
희멀건 아침. 깔끔한 해돋이는 없으나 어제보다 맑은 오늘이다. 간식으로 아침을 때우고 남봉 정상으로 향한다. 어렵지 않은 바윗길에 아리따운 낭떠러지의 연속이다.
오른쪽으로 수평선만 펼쳐지고, 왼쪽으로 덕적군도의 섬이 섬섬옥수의 손으로 놓은 바둑돌 같다. 만날 수도 이별할 수도 없는 섬들의 간극에 귀 기울이면, 웅장한 고요가 무럭무럭 자라는 것만 같았다. 감미로운 절경의 섬에 갇힌 듯, 기분 좋은 고립감이 들었다.
공용기지국으로 이어진 능선의 초원을 걷는 김지영, 오혜진(우측)씨. 오르내림이 꾸준히 이어지지만 100m대 산줄기라 어렵지 않다.
남봉 정상은 옹색하나, 지나온 용의 등걸을 한눈에 보여 주었다. 정상에서 바다 쪽으로 진행하자 예상 못 한 선물이 있다. 백아도 부속섬인 오섬이 만개한 꽃처럼 예쁘장한 색감으로 에메랄드빛 바다에 솟았다. 산벚꽃, 소사나무 신록이 버무려져 기념사진을 찍기 제격이다.
다시 공룡능선을 타고 돌아가는 길, 백상어의 이빨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걸음이 느려졌다. 하루 한 편뿐인 배 시간이 가까워 오는데, 백아도가 계속 물어온다. ‘진정 나를 두고 가나.’
친절하게 뻗은 길을 따라 걸었을 뿐인데, 섬에 갇혔다.
여백의 미가 있는 백아도 해변. 이곳 모래해변가에 유일한 공용화장실이 있다.
백아도 가이드
인천항이나 안산 대부항에서 배를 타고 덕적도로 와서, 덕적군도를 순회하는 나래호를 타야 한다. 하루 한 편뿐인 나래호가 12시 45분에 닿으면 백아도 여행이 시작된다. 다음날 12시 45분 덕적도행 배를 타고 떠나기까지 24시간의 여유가 있는 것.
도로 따라 3km를 걸어 남봉으로 곧장 가거나, 선착장부터 산길을 따라 종주하는 방법이 있다. 제대로 백아도를 둘러보려면 산길을 따르는 것이 낫다. 능선의 고저가 있으나 100m대 능선이라 오르막이 짧다.
남봉 공룡능선에서의 야영을 최고로 꼽지만, 텐트를 칠 넓은 야영 터는 없다. 1~2인용 텐트 한두 동 칠 수 있는 공간이 드문드문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안정적인 야영 터는 남봉 직전, 도로에서 875m 진행한 지점의 마당바위 위다. 알파인 텐트 4~5동은 충분히 칠 수 있다. 텐트 펙을 박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므로 주변 돌을 활용해야 한다. 바닷바람에 노출되고 벼랑 곁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선착장에서 산길을 따라 종주할 경우 남봉 입구 도로까지 4.3km이며, 여기서 남봉까지 1.2km이다. 남봉 정상은 협소해 텐트 치기 어렵고 오섬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터에 1~2인용 텐트 한 동 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남봉 공룡능선은 로프를 준비하지 않아도, 암릉산행 경험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다. 다만 초반 바윗길은 왼쪽 우회길을 따르면 남봉까지 산행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백아도 플러스 가이드] 매일 12시 45분부터 시작되는 백아도 여행
야영 터, 백아도행 배편, 민박 가이드와 쓰레기 줍기 활동
덕적군도를 순회하는 차도선 나래호. 하루에 한 번 12시 45분, 백아도에 닿는다.
백아도는 덕적군도의 숨은 보석이다. 인천 앞바다의 공룡능선으로 손색없는 남봉, 거대한 맘모스 바위, 서정적인 해변과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있어 굴업도를 잇는 새로운 스타 섬이 될 가능성이 높다.
홀수 짝수날에 따라 소요 시간이 다른 굴업도와 달리, 백아도는 12시 45분에 항상 도착한다. 배편이 하루 한 편뿐인 걸 감안하면 무조건 1박해야 구경할 수 있다.
남봉 능선은 화려한 경치가 있는 최고의 야영 터지만, 좁은 바위능선이라 굴업도처럼 많은 텐트를 수용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넓은 남봉 직전의 마당바위에도 4~5동 정도가 한계다.
백아도 해안도로 곁에 떠밀려온 쓰레기 수거 작업을 하는 오혜진·김지영씨.
그외에는 1~2동 정도 위태롭게 칠 수 있다. 망망대해에 노출된 바위능선 특성상 강풍에 노출되며, 터가 좁고 텐트 펙peg을 바닥에 고정할 수 없는 환경이다. 야영 터에 따라서는 펙을 고정할 돌도 없어, 주의해야 한다.
인원이 많으면 백아도해변에서 야영하는 것이 좋다. 백아도에서 가장 큰 해수욕장인 이곳은 섬 내 유일한 공공화장실이 있고, 선착장에서 1.3km로 비교적 가깝다. 다만 뙤약볕에 노출되므로 타프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민박도 괜찮은 선택이다. 관광객이 많지 않은 이곳 특성상 인심이 좋은 편이다. 선착장에서 가까운 보건소마을과 남봉 부근의 발전소마을이 있으며, 각각 민박이 있다. 민박에서 식사 (백반 1인분 1만 원) 가능하며, 방 하나 1박에 6만 원이다. 민박 예약 시 차량이 선착장에 마중 나온다. 보건소마을 해변민박(010-5251-0768), 발전소마을 큰마을민박(032-834-8663). 별도의 슈퍼나 마트, 식당 같은 편의시설은 없다. 덕적도 선착장 앞에 농협 하나로마트가 있으므로 백아도행 배를 타기 전에 이곳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해야 한다.
황법규 이장이 운영하는 보건소마을 해변민박 백반 상차림.
인천연안여객선터미널과 안산 방아머리선착장에서 덕적도행 배편이 운항한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쾌속선 코리아나호·코리아스타호는 1시간 10분 걸리며, 차도선인 코리아익스프레스카훼리는 1시간 50분 걸린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쾌속선이 아침 8시에 출발하며, 평일은 8시 30분에 출발한다. 왕복 요금은 4만8,100원. 차량을 실을 수 있는 차도선은 주말 8시 30분, 평일 9시 10분에 출발한다. 왕복 요금은 3만4,500원.
덕적도에서는 덕적군도의 여러 섬을 순회하는 나래호가 매일 오전 11시 20분에 출발, 백아도에 12시 45분에 도착한다. 왕복 2만3,000원. 덕적도에서는 쾌속선이 오가는 선착장과 차도선을 타는 선착장이 300m 떨어져 있다. 간혹 쾌속선 선착장에서 나래호를 기다리다 배를 놓치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나래호 표를 발권하는 매표소는 별도의 컨테이너 건물이다. 인천연안여객선터미널 하루 주차료는 1만 원. 주말에는 배편이 빨리 마감되므로, 미리 예약해야 한다. 모바일 승선권을 발급 받으면 편리하며, 신분증을 준비해야 한다.
해변민박의 순둥이 노견 ‘보리’.
백아도 취재 산행에 참가한 오혜진·김지영씨는 클린마운틴 활동을 했다. 산길에서는 쓰레기를 찾아보기 어려웠고, 찻길과 해수욕장에서도 쓰레기는 거의 없었다. 다만 대촌선착장에서 보건소마을로 이어진 찻길 옆 좁은 해안선에 밀려온 쓰레기가 있어 수거 활동을 했다. 아직 백패커들의 발길이 드물어서인지 야영 명소인 공룡능선 마당바위에서는 쓰레기를 찾을 수 없었다. 지금처럼 흔적 없이 다녀가는 방문객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BAC 인증지점인 남봉 정상.
인천 썸&산 트레킹 챌린지!
인천 관내 16개 섬 인증 프로젝트
블랙야크와 인천관광공사는 ‘2022 인천 썸&산 트레킹 챌린지’ 이벤트를 4월 25일부터 12월 10일까지 진행한다. BAC 앱을 활용해 인천광역시에 속한 16개 섬을 인증한 회원에게 섬별로 블랙야크 500코인을 지급하고, 5좌(5개 섬 인증), 10좌, 16좌를 달성할 때마다 신청 기준 선착순으로 기념품을 증정한다. 단, BAC 앱 ‘클린마운틴’(섬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되가져오는 친환경 캠페인) 활동을 1회 이상 인증해야 한다.
5좌 기념품은 로고가 새겨진 패치(500명 지급)이며, 10좌는 패치와 인천투어패스(180명), 16좌 20명에게는 패치와 친환경 블랙야크 크로스백을 지급한다. 대상지 16개 섬은 교동도, 굴업도, 대이작도, 대청도, 덕적도, 무의도, 문갑도, 백령도, 백아도, 석모도, 승봉도, 신도, 연평도, 영흥도, 자월도, 장봉도이며, 기념품 신청은 12월 10일까지 BAC 앱 이벤트페이지 내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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