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를 자르는 가장 쉬운 도구, 물
북한산 북한천계곡.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에서 발원해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에서 창릉천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으로 북한산성계곡이라고도 한다.
산 좋아하는 분들, 우이신설선 많이 이용하시겠다. 우이동~신설동을 오가는 두 량의 경전철이 우이신설선이다. 종점인 북한산우이역에 내리면 서울 북방의 한쪽 끝이다. 길고 외로워 보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오르면 북한산의 백운대·인수봉·만경대가 멀지 않은 곳에서 늠름하다. 눈을 돌리면 도봉산의 자운·만장봉도 하늘을 찌르는 중이지만, 도봉은 잠시 잊기로 한다.
북한산을 오르는 길은 여럿이다. 우이령으로 향하다 용덕사 쪽으로 빠져 산에 들면 영봉을 거치고 하루재에 이른다. 지하철역에서 도선사 방향으로 그냥 치고 올라가기도 한다. 도선사를 왼쪽에 두고 가파르다 싶은 길을 잠시 치달으면 또 하루재다. 하루재에서 백운대까지는 멀지 않다. 숙련되지 않은 걸음으로도 한 시간 남짓이면 족히 정상에 도달한다. 도선사를 거쳐 용암문에 이르는 방식으로 북한산성 주능선을 만나는 분들도 있다. 우이동 초입에서 진달래 능선을 통해 대동문으로 직격直擊하기도 한다.
이 모든 길을 마다하고 북한산성 주능선에 한 시간이면 닿게 해주는 은밀한 길이 있다. 진달래 능선 진입로를 약간 지나면서 시작하는 소귀천계곡 코스다. 대동문까지 한 달음이다. 보기 드물게 적막하고 고요한 오솔길이다. 그런데 이 비밀스런 길에서 지난주, 아주 비밀스런 정보를 하나 얻었다. 물로 바위를 자르는 방법이다.
아닌 게 아니라 많이 궁금했다. 북한산성을 이루고 있는 사각의 저 많은 돌들을, 옛날에 어떻게 저렇게 반듯하게 잘라냈을까. 생각해 보니 네모반듯한 돌들이 북한산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많다. 경복궁의 건축물 하단을 받친 수많은 돌들, 덕수궁 돌담길의 오막조막한 돌들, 서울의 강북 핵심을 넓게 두르고 있는 한양 성곽의 많은 돌들…. 그러고 보니, 중국의 만리장성에는 네모반듯한 돌들이 도대체 몇 개나 쓰인 거야.
이 세상 도처에 널린 돌들을 설마 물로 다 잘라내진 않았겠지만, 소귀천계곡이 알려준 바위 절단법은 쇼킹하면서도 효율적이다. 대단한 기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널찍한 바위를 찾아야 한다. 바위를 찾았으면 정釘으로 구멍을 낸다. 원하는 돌의 크기를 생각하며 구멍의 간격과 개수를 맞춘다. 그 다음, 구멍들에 물을 붓는다. 그리고 날이 추워지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구멍 속의 물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얼면서 팽창할 테고, 그 순간 바위는 쫙~ 갈라진다. 소량의 물만으로 거대한 바위를 잘라내는 것이다.
물로 바위를 자르는 건 겨울에만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겨울이 아니어도 당연히 바위를 자를 수 있다. 봄·여름·가을엔 참나무로 만든 작은 쐐기를 몇 개 준비한다. 바위에 구멍을 내고, 그곳에 쐐기를 박는다. 그리고 나무 쐐기에 물을 부어 불린다. 불렸다 말렸다 불렸다 말렸다… 하다 보면 바위가 또 쫘악~ 갈라진다.
그런데 우리는 하필 왜, 물로 바위 자르는 방법을 소귀천계곡에서 발견해야 하는 걸까. 실제로 소귀천계곡엔 정교하게 잘린 바위들이 많다고 한다(충분히 둘러보진 못했다). 그래서인지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는 소귀천계곡 초입에 ‘물로 바위 자르는 방법’을 제목으로 올린 표지판을 큼직하게 심어두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설명한 ‘물로 바위 자르는 방법’은, 소귀천계곡을 헤매고 바위들을 조사하며 경험적으로 얻은 비급이 아니라, 공원사무소에서 친절하게 마련한 표지판을 보고 안 내용이다.
그러니 아마도 소귀천계곡 아닌 다른 곳에도 같은 표지판이 세워져 있을지 모른다. 어딘들 어떠랴. 별다른 도구 없이 그 커다란 바위를 툭툭, 잘도 잘라내던 옛 사람들의 지혜는 감탄할 만하지 않은가.
북한산 삼천사계곡.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방면의 북한산에 있는 계곡으로 문수봉과 부왕동암문 방면의 갈림길에서 삼천사 방면으로 흘러내린다.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가 그리 복잡하지 않은 방식으로 엮여 만들어졌을 ‘물’이란 물질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다양한 이미지를 남긴다. 별 생각 없이 세월을 보내는 사람에게도 물은 강이었다가, 바다였다가, 구름이었다가, 비였다가, 눈이었다가 한다. 티내지 않는 그러나, 현란한 물의 변신은 지구를 윤택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최고의 재료다.
북한산의 나무들은 태양에서 흡수한 에너지로 물 분자를 쪼개 생명의 물질을 얻기도 한다. 광합성 얘기다. 물을 쪼개 얻은 수소와 산소, 그리고 공기 중에서 잡아낸 이산화탄소로 탄수화물을 만들지 않나. 그렇게 얻은 탄수화물은 식물의 몸이 되고, 동물의 영양분이 된다. 물은 지구에 사는 생명들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물은 오랜 세월, 다양한 인문학적 상상의 원천이기도 했다. 예컨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하는 물의 이율배반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민심의 위력을 보여 주는 정치적 알레고리로 통했다. 계곡의 바위틈을 유연하게, 막힘없이 흘러 다니는 물의 행로는 최고의 지혜와 처세의 상징으로 언급되기도 했다(상선약수上善若水).
그런 물이 아시아의 한쪽 끄트머리, 북한산의 소귀천계곡에선 강건한 바위를 잘라내는 데 활용됐다. 그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바위를 잘라냈을 소귀천계곡의 물을 보며 나는 ‘에지edge’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한다. 자기만의 뚜렷한 개성과 매력을 가진 이들을 보며 곧잘 이런 말을 쓰지 않는가.
‘그 사람 정말 에지 있는 거 같아…!’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수십 년을 살고 난 요즘, 바위를 잘라내는 소귀천계곡의 물처럼 ‘에지 있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긴 세월 동안 유연하고 부드럽다가도 삶의 중요한 포인트에서 표변해 자신만의 근성과 결단을 보여 주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낮고 좁은 계곡을 유유히 흐르다가도 어느 순간 바위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그 크고 강한 물체를 단번에 갈라내는 물의 ‘에지’는 정말 감동적이다. 소리 없이 흐르는 소귀천계곡의 여리고 맑은 물을, 며칠 전 새벽에 한참 동안 쳐다보았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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