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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연하반에서 제작한 이정표. 사진 〈지리산 50년사〉
등산리본이 다시 뜨고 있다. 코로나로 유입된 등산객들 중 일부는 개인적으로 산행을 기념하기 위해 등산리본을 제작하고 있고, 지자체나 관할 경찰서에서도 조난을 예방하기 위해 등산리본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사례가 나오고 있다. 기존 지맥, 정맥 종주꾼들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며 봉우리나 고개에 표지판을 새로이 설치 및 보수하고 등산리본도 꾸준히 작업하고 있다.
반면 등산리본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다. 경관을 훼손하고, 자연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등산리본은 과연 흉물인가, 아니면 훌륭한 길잡이인가? 등산리본 7문 7답을 통해 알아본다.
(등산리본은 표지기, 띠지, 시그널, 산행리본, 산악회리본, 표지리본 등 다양하게 불리지만 여기선 가장 널리 사용되는 등산리본으로 통일한다.)
1 등산리본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원로 산악인들은 대부분 등산리본의 시작을 1970년대로 말하고 있다. 처음엔 자연보호, 산불조심과 같은 캠페인을 홍보하기 위해 설치됐다. 이후 산악회 중심의 단체산행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뒤따라오는 산악회 회원에게 길을 알려 주는 것이 주목적이 됐다. 개인마다 산행 속도가 상이하기 때문에 후발주자들이 선두주자를 잘 따라올 수 있도록 유도해 준 것이다.
이보다 앞선 1963년에도 등산리본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국립공원공단에서 만든 〈지리산 50년사〉에 있다. ‘1955년 구례중학교 교사 우종수를 비롯해 교직원, 지역 주민들이 결성한 산악회 구례연하반이 1963년에 이정표 60개와 안내 리본 300개를 만들어 종주등반로 곳곳에 부착하고, 보완된 지리산 등산지도 1,000매를 제작해 각 산악단체에 보내주었다’는 기록이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지자체나 국립공원공단에서 등산로를 정비한 경우가 극히 드물어 대부분의 등산로가 흐릿했기 때문에 뒤따르는 등산객에게 길을 알려주는 데 있어 매우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화왕산 정상으로 가는 임도 초입 철조망에 등산리본이 한가득 붙어 있다. 사진 이신영 기자.
1970~1980년대 등산리본이 처음 출현했을 때에는 따로 표시가 없거나, 적혀 있더라도 목적지 방향이나 산 이름만 적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점차 산악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등산리본의 디자인과 문구가 본격적으로 다양해졌고, 이는 1990년대에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이 시기 등산리본에는 산악회를 홍보하기 위해 산악회 이름과 전화번호를 첨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후 관광버스를 대절해 떠나는 안내산악회 문화가 발달하면서 리본을 넘어서 전단지나 표지판을 세우는 경우도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유독 한국에서 등산리본 문화가 발달한 이유에 대해서는 한국 특유의 패거리 문화(단체 산행)와 과시 문화(등정 증명)가 결합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이러한 인공물들이 환경을 파괴하고 경관을 망친다는 지적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안내산악회 홍보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전단지 홍보는 차츰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등산리본 설치에 대한 항의 전화가 오는 탓에 연락처를 밝히는 경우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1992년 3월호 월간<山>에 이충호씨가 기고한 ‘표지기의 의미’ 기사. 과도한 남용은 자제하고, 정말 등산객에게 도움이 되는 리본만 남기자고 주장하고 있다.
송기헌 전 청운대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수거한 891개 리본 중 노란색이 전체의 약 45.5%로 제일 많았다. 다음은 빨간색(20.7%)이고 이어서 흰색(9.7%), 주황색(9.3%) 순이었다. 기타 색도 13.4%를 차지하고 있다. 송 교수는 “노란색이 사시사철 가장 눈에 잘 띄고, 색채학에서 노란색은 명시, 주의를 나타낸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20년 동안 등산리본을 만든 미진광고사 최인수 사장도 “밝은 원색 계열로 제작을 의뢰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덧붙였다. 또한 최근 산악회들은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파스텔톤의 등산리본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국립산악박물관이 인근 설악권에서 LNT 활동의 일환으로 수거한 등산리본. 사진 국립산악박물관.
4 등산리본은 왜 흉물이 됐나?
2010년대 들어 등산리본이 흉물 취급을 받게 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환경오염이다. 등산리본을 거는 형태에 따라 나뭇가지의 생장을 방해하기도 하고, 잘 썩지 않는 소재로 만든 경우 토양을 오염시킬 우려도 있다는 지적이다. 상기의 송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수거한 891개 리본의 소재는 65%가 헝겊이나 천, 30%가 비닐, 4%가 플라스틱이었다고 한다. 헝겊의 경우 비바람에 금방 해지고 변색돼 경관을 훼손하기 일쑤며, 비닐이나 플라스틱의 유해성은 두 말할 것 없다.
두 번째는 GPS와 스마트폰의 상용화다. 종이지도와 나침반에 의존해 길을 찾아야 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스마트기기를 통해 편리하게 독도할 수 있어 길을 잃을 염려가 적다.
또한 등산객의 답압과 지자체 및 국립공원공단의 노력으로 등산로도 과거와 다르게 매우 분명해졌다. 등산리본이 산행길잡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마쳤다는 것이다.
5 등산리본은 이젠 없어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인가?
많은 사람들이 등산리본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남용된 등산리본에 국한된 이야기다. 등산 전문가들은 여전히 등산리본이 산행길잡이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 있다고 얘기한다. 들날머리를 찾기조차 힘든 지맥길이나 등산로가 눈에 쌓여 보이지 않는 동계가 대표적인 예다. 또한 스마트폰이나 GPS가 항상 잘 작동하리란 보장도 없다.
또한 등산리본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용해 조난 예방에 힘쓰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인제군 방태산이다. 방태산은 지난 5년간 연평균 6~7건씩 조난사고가 발생하는 곳이다. 인제경찰서는 지난해 7월 방태산 탐방로를 5개 구간으로 나눠 등산리본 350여 개를 부착한 바 있다. 인제경찰서 측은 “방태산은 산세가 워낙 깊어 휴대폰이 불통인 지역이 많아 조난 사고가 빈발했었다”며 “이젠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해도 등산리본을 통해 편리하게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다.
2016년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에서 개최한 ‘제3회 우리 명산 클린 경진대회’에서 수거한 등산리본들. 사진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
6 국립공원공단은 등산리본을 어떻게 관리하나?
국립공원공단은 현재 탐방로나 안내지도, 이정표가 충분히 정비돼 있어 등산리본이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한 이정표가 없더라도 스마트폰으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등산리본은 산악회 홍보 또는 등산 기념 목적으로만 사용되고 있어 주된 기능을 상실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국립공원 내 산악회나 개인의 등산리본 설치는 허용되지 않는다. 등산리본을 설치하는 행위는 쓰레기 투기 및 자연생태계와 자연경관의 보전관리에 현저한 장애가 되는 행위에 해당해 과태료처분의 대상이 된다(자연공원법 27조 1항 11호, 29조 1항, 86조 1항 6호, 86조 3항 및 같은 법 시행령 26조 7호).
7 등산리본은 아무 데나 걸어도 되나? 반대로, 수거해도 되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국립공원은 등산리본을 걸면 안 된다. 그러나 국립공원 외 일반산림은 애매하다. 법으로 처분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다.
먼저 법적인 관점에서 등산리본 설치를 보자. 서울 소재 법무법인 A변호사는 “등산리본 설치를 굳이 처벌한다면 경범죄처벌법 3조 15항의 자연훼손이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15항에 따르면 공원·명승지·유원지나 그밖의 녹지구역 등에서 풀·꽃·나무·돌 등을 함부로 꺾거나 캔 사람 또는 바위·나무 등에 글씨를 새기거나 하여 자연을 훼손한 사람을 처벌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등산리본이 명백하게 ‘훼손’이라고 보기는 매우 힘들 것 같다”고 설명했다.
등산리본 수거도 마찬가지로 처벌이 어렵다. A 변호사는 “형법상의 타인의 재물로 인정되는 지 검토해야 한다. 타인의 재물로 인정된다면 재물손괴 혹은 절도죄에 해당되는지 봐야 하는데 절도죄는 불법영득의사(남의 재물을 가지려는 의사)가 존재하지 않아 성립되기 어렵다. 또한 재물손괴죄는 제거자가 해당 등산리본을 쓰레기로 인식하고 치운 것이기에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타인의 재물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하더라도 쓰레기를 치운 것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 형법 20조 소정의 정당행위로 위법성 조각될 확률이 높다”고 내다봤다.
결론적으로 등산리본에 관한 법규가 명확하지 않은 현재로선 법리적으로 붙이는 것도, 떼는 것도 처벌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이는 대로 등산리본을 다 떼고 다니라는 것은 아니다. 등산의 관점에서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등산리본 부착을 최소화하고, 꼭 필요한 곳에 붙은 등산리본은 해당 코스를 잘 아는 지역산악회나 해당 지자체 산림과가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여름에는 의미 없더라도 겨울에는 요긴할 수 있어 오랫동안 그 산을 다닌 지역 산꾼이 아니라면 리본의 가치를 함부로 판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산행을 기념하기 위해 리본을 설치하는 사람들을 위해 서울남산타워의 연인자물쇠처럼 등산리본을 달 수 있는 인공물을 만들어주고 해당 지자체에서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사실 가장 등산리본 설치가 왕성하던 1990년대, 이미 선배 산꾼들은 어떻게 등산리본을 관리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다음은 1992년 3월호 월간<山>에 실린 이충호씨의 글이다.
‘이기심과 명예욕에 사로잡힌 주인이 단 등산리본은 아름다운 문구에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만, 뒤따르는 등산객에게 빛과 소금이 되고자 하는 주인이 단 리본은 반가움은 물론 용기까지 불러일으켜 준다. 무분별하게 단 등산리본은 다른 사람의 산행을 단조롭게 하고, 산을 더럽히므로 사라져야 한다. 저 머메리가 야단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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