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사와 상방리 잇는 꿀맛 같은 바위 산행
하늘에서 본 마니산은 매혹적이었다. 김포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는 착륙을 위해 선회했는데, 창밖으로 티라노사우루스 등골 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바위 능선이 강한 흡입력으로 시선을 끌어 당겼다. 단연 눈에 띄는 압도적인 바위 산줄기에 반해서 마니산 암릉산행을 벼르고 있던 찰나 ‘암릉 산행 취재’가 배정되었고 마니산으로 향했다.
마니산이 처음은 아니었으나 상방리 매표소에서 원점회귀할 때는 보지 못했던, 공룡이 있었다. 공룡의 꼬리 끝에서 타고 올라가려 함허동천 방면 정수사를 들머리로 삼았다. 핸들을 잡은 손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가파른 길을 올라서자 해발 184m의 정수사 주차장이다. 슬로우아웃도어팩토리 이재승 대표와 이화여대산악부의 김미진씨가 배낭을 메고 산행 채비를 한다. 암벽등반에 능하고 바위에서 몸놀림이 자유로운 남녀를 특별히 초대했다.
기분 좋은 시작, 매표소에 징수원이 없다. 등산객은 우리뿐이고 낙엽에 길이 전부 사라지다시피 한 걸 보면, 겨울엔 정수사 매표소 입장객이 워낙 적어 직원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 낙엽에 묻힌 산길이 모호하지만, 어차피 계곡을 따르는 코스라 망설임 없이 치고 오른다.
안내판이 제 길을 가고 있음을 알려 준다. ‘사랑의 하트석’ 푯말 아래에 귀여운 하트 문양이 바위에 톡 튀어나와 있다. 누군가 부러 양각 조각을 한 것 같은 자연 하트 모양이라 신기하다. 가파른 계곡을 잠깐 올려치자 능선이다. 앙상한 굴참나무와 신갈나무숲이 회색 산을 이루었다. 저 어두운 회색은 가식 없는 산의 진심이다. 초록이 아닌 회색, 형식을 걷어낸 순수한 산이다.
‘추락사고 위험구간’ 안내판이 반갑다. 초보자나 술을 마신 사람에겐 위태로운 구간이지만, 암릉산행을 즐기는 이들에겐 산행의 즐거움이 압축된 꿀맛처럼 재미있는 구간의 시작이다. 보이는 것과 달리 대부분 주의하면 어렵지 않으며, 정말 위험한 곳은 우회로나 고정로프, 난간이 있어 집중력만 유지하면 상당히 안전하고, 중독될 만큼 재미가 큰 것이 암릉산행이다.
거침없는 바위의 향연이 산꼭대기까지 늘어서 있다. 마침 미세먼지 없는 축복 받은 날이라, 순도 높은 파랑이 깨끗한 도화지마냥 바위의 굴곡을 돋보이게 한다. 얼마나 잘 차려진 진수성찬인가. 발바닥에 느껴지는 바위의 굴곡, 하나도 같은 바위는 없다.
공룡 뿔 같은 바위, 거대한 구축함 같은 암릉지대, 고래 등처럼 매끈한 통바위, 조각가의 정원 같은 기암지대, 수묵화 속 노송이 매력적인 암릉까지, 오를수록 즐거움의 격조도 높아진다.
100m 넘는 절벽의 압도적인 고도감이 주는 특유의 시원함. 사람도 거의 없어 온갖 자세로 사진을 찍으며 산을 전세 낸 듯 자유를 즐긴다. 남쪽으로 갯벌이 넓게 반짝인다. 이곳에선 모든 것이 맑다. 바다도 갯벌도 깨끗한 은빛으로 맑게 반짝였고, 동시에 고요했다. 이토록 아름다운데 한마디 자랑 없는 깊이 있는 성품에 마음이 끌렸다.
걸걸한 바위의 행진이 정상으로 친절하게 이끌어주었다.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터지는 경치를 귀하게 음미했다. 마니산 벼랑 끝에 서서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바람의 몸이 느껴졌다. 산란처를 찾는 어미의 몸짓처럼 능선 곳곳을 누비다 내 곁에 온 바람. 옷깃을 여며 주며 지나가는 바람을 멍하니 바라보노라면, 겨울인데도 꽃향기가 풍기는 것만 같았다.
아늑하게 멈춘 풍경을 눈길로 만져 본다. 세상의 시간이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다. 멈춰 있는 풍경이 한참 동안 마음을 도닥이는 연유는 늘 그렇듯 알 수 없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느리게 바위산 오르는 것은 젖은 마음 햇볕에 꺼내 말리는, 사소하지만 뽀송뽀송한 촉감의 기분 좋은 일과 같다.
좀더 거칠게 대해 줘도 좋을 텐데, 산길은 지나치게 친절하다. 곳곳에 계단 우회로가 있어 지루할 지경. 틀을 깨고 바위를 타고 오르자 집채만 한 파도를 탄 서퍼가 되어 균형을 잡아 나아간다. ‘쉽다고 방심하지 말라’며 마음 놓을 만하면 고도감 있는 뜀바위 장애물로 등산객들의 고삐를 조인다.
왁자지껄한 정상에 올라서자 비로소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대부분의 등산객이 상방리 매표소에서 오르는 통에 헬기장이 있는 정상은 시장처럼 붐빈다.
출입이 통제된 참성단 앞에는 시산제를 올린 어느 산악회원들이 마신 막걸리 냄새가 진동한다. 정상 표지목에서 BAC 인증사진을 찍고 산길로 들자, 다시 산이 침묵한다.
깔딱고개 오르는 해병대원의 속마음?
“헉! 헉!”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서 보니 해병대 사병들이 계단을 기를 쓰고 올라온다. 서쪽 끝 선수포구에서부터 종주해 온 탓에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하고 호흡은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 꼴딱꼴딱한다. ‘제대하면 산에 오나 봐라’하는 속마음이 확 와 닿는다. 그래도 ‘살다보면 언젠가 제 발로 산을 찾게 될 때가 있을 것’이라 읊조리며, 장병들에게 “힘내요”하고 응원한다.
‘단군로’라 이름 붙은 산길로 하산한다. 발톱을 숨긴 고양이과 육식동물처럼 발디딤 편한 숲길을 내어주며 순둥이 흙산인 척한다. 한껏 뜨거워졌다 가라앉는 몸과 마음을 푸근한 산길의 흐름에 맡긴다. 떨어진 쓰레기는 줍고, 묵은 감정은 숲에 내려놓고 산을 떠난다. 빠르게 쫓아오는 어둠을 피해 산을 빠져나온다.

산행 길잡이
마니산摩尼山은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참성단을 세웠다는 설화가 전하는, 예부터 신령스럽게 받들어온 산이다. 대표적인 산행 기점은 동쪽의 함허동천과 정수사, 북쪽의 상방리 기점, 서쪽 선수포구 기점이다. 대부분의 등산객이 주차장이 넓고 원점회귀 가능한 상방리 기점에서 마니산을 오르는데, 암릉 산행의 가장 달콤한 맛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참성단에서 동쪽으로 뻗은 능선에 암릉미가 집중되어 있으므로, 차편만 해결 가능하다면 동쪽으로 올라 상방리로 하산하는 것이 알찬 산행법이다. 정수사로 오르면 해발 180m까지 차를 타고 오를 수 있어 초반 수고를 덜 수 있으며, 주차장도 좁지 않은 편이다. 정수사로 정상까지 올랐다가 다시 정수사로 돌아가는 것도 매력적인 산행 코스다. 다만 정수사 주차장으로 이어진 시멘트길이 가팔라 결빙 시 함허동천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
마니산은 강화군시설관리공단에서 입장료 2,000원을 받으며, 정수사 방면은 평일 기준 징수원이 없었다. 산길은 뚜렷하며 이정표와 등산 개념도를 표시한 안내판이 많아 길찾기는 쉽다. 능선 바윗길은 손발을 써야 하는 곳이 간간이 있으나 대체로 주의하면 어렵지 않다. 위태로운 곳은 계단 우회로와 난간이 있다.
교통
서울에서 올 경우 신촌에서 3000번 강화도행 버스를 타고 강화읍 강화터미널에서 3·51번 버스를 갈아타고 대사마을 혹은 동들머리에서 하차하면 된다.
상방리 하산 시 60-1번 버스를 타고 운양역에서 지하철로 환승하거나 6000번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상방리에서 700-1번을 타고 김포골드라인 구래역에 하차해 지하철이나 버스로 갈아 탈수도 있다.
마니산 남쪽의 멍때림카페(0507-1357-9280)는 바다 경치 보며 기분 전환하기 좋은 카페이다. 콜드브루 히비스커피(7,000원)와 아이스크림 크로플(8,000원)이 대표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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