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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신년특집│한국 오악순례 | 동악 토함산

by 白馬 2018. 1. 20.

 

東은 日과 木의 합성어 동악 일출로 만물의 생동 알려

 

 

통일신라 정치적 목적으로 오악 지정한 듯… 중국 음양오행·주역 성격은 희미

 

<삼국사기>권32 제사조에 ‘중사 오악, 동 토함산吐含山, 남 지리산地理山, 서 계룡산鷄龍山, 북 태백산太伯山, 중 부악父岳 일운一云 공산公山’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한반도 오악에 대한 첫 공식기록이다. 이때가 680년쯤. 일부 학자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 왕경오악이라 해서 중국의 체제를 도입하기 전, 수도 경주를 중심으로 오악을 지정했다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얼핏 그 흔적을 볼 수 있지만 기록이 없어 자세히 파악할 수 없다.

<삼국유사>권5 선도성모수희불사에도 오악에 대해 ‘동 토함산, 남 지리산, 서 계룡, 북 태백, 중 부악’으로 비슷한 기록이 소개된다. <고려사>에서는 훈요십조에 자연 그 자체로서의 신격화 명칭을 부여한다. 예를 들면, 동악은 ‘동악 태산지신’이라고 이름 그 자체를 더욱 신격화시킴으로써 오악의 의미를 더했다. 地理山과 智異山의 혼재된 내용에 대해서는 남악 지리산편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중국의 오악은 산악사상과 국경의 개념을 동시에 접목시킨 체제로서 기원전부터 사용했던 것으로 전한다. 하지만 중국의 오악에는 유불선 3교와 음양오행·오방색을 포함한 무궁무진한 사상과 이념이 녹아든 반면, 통일신라 오악에는 그런 사상적 기반이 별로 없어 보인다. 중국 <구당서舊唐書>권21 예의지禮儀志에 ‘일월성신, 사직, 선대제왕 및 오악, 사진, 사해, 사독과 제사帝社 등에 제사지냈다’고 나온다. 신라에서는 당의 오악제도를 받아들였지만 산천에 대한 제사만으로 변용한 듯하다. 특히 통일 신라시기 백제나 고구려 유민들을 통합하고 군사적 목적의 거점지로서의 역할을 강조한 듯이 여겨진다. 오악의 위치를 보면 어느 정도 그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중국 오악의 그 깊은 사상에 대해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 오악은 산의 형체에 따라 오행으로 나눴고, 방향에 따라 오방으로 색깔로 구분됐다. 동악 태산은 청색, 서악 화산은 흰색, 남악 형산은 붉은색, 북악 항산은 검은색, 중악 숭산은 황색이 상징색이다. 개별적인 산의 신을 모시는 사당엔 각각 특유의 색깔을 확인할 수 있다. 동악은 대묘, 서악은 서악묘, 남악은 남악묘, 북악은 북악묘, 중악은 중악묘 현판이나 주련에 어김없이 상징색이 걸려 있다.

 

 
 
 

음양오행상 동악은 목체의 산

 

동악 태산은 오행에서 목체木體의 산으로 나타난다. 목체는 문필봉과 같이 봉긋한 봉우리의 형상을 보이며, 방향은 동쪽을 가리킨다. 문필봉에서는 흔히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한다. 실제 중국 산둥성엔 공자와 맹자를 비롯한 중국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수많은 인물이 배출됐다. 손자병법을 쓴 손무, 왕희지, 제갈량, 신의神醫 편작 등이 산둥성 출신이다. 최근에 중국군 34명의 상장 중 산둥성 출신이 6명으로 가장 많다.
서악 화산은 금체金體의 산이다. 색깔은 흰색이지만 쇠처럼 강하고 단단하다. 실제로 화산은 화강암 덩어리다. 수많은 봉우리가 하나의 화강암같이 생겼을 정도로 화강암들이 우뚝 솟아 있다.

 

남악 형상은 화체火體의 산이다. 화체의 산은 인근 천문산이나 장가계에 가보면 실감한다. 우뚝 솟은 봉우리들이 도저히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이다.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아 있는 듯하다. 그 넘치는 기운은 붉은색으로 표현된다.

북악 항산은 수체水體의 산이다. 계절은 겨울, 방향은 북쪽, 하루 중 밤을 가리킨다.

 

 

색깔은 검은색. 차갑고 춥게 느껴진다. 도교의 도사들이 실제로 절벽 사이에 건물을 지어 아슬아슬하게 산다. 도사들은 이를 수련으로 여긴다. ‘공중에 떠 있는 절’이라는 현공사가 대표적 사찰이자 도관이다.

중악 숭산은 전형적인 토체土體의 산이다. 이른바 테이블마운틴. 산이 평평하다. 선종의 창시자 달마가 도를 닦았다는 소림사 주변의 산은 능선이 평지같이 널려 있다.

이러한 산의 특징은 하나의 봉우리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산의 형세로 나타난다. 산마다 각각의 특징을 음양오행사상과 주역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반면 우리의 오악은 중국의 오악에서 나타난 음양오행이나 주역 등과 같은 사상보다 군사·정치적 목적이 훨씬 강하게 나타난 듯하다.

조선시대 이르러 오악의 기록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도 이 때문 아닌가 싶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편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백악산을 중앙으로, 관악산을 남악으로, 치악산을 동악으로, 감악산을 북악으로, 송악산을 서악으로 하여 사시로 제사를 지냈다’고 나온다. 중종실록 편에서는 ‘동의 금강산, 서의 묘향산, 남의 지리산, 북의 백두산, 중앙의 삼각산(지금의 북한산)’으로 소개하고 있다.

 
 
 
 

토함산은 신라 석탈해와 밀접한 관련

 

통일신라는 오악을 군사·정치적 통치개념으로 봤다면, 고려는 중앙과 지방호족 간의 연결고리로, 조선은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닌 자연을 숭배하는 사상으로의 기능을 강조한 측면이 두드러진다. 개별적 오악에 대한 부분은 뒤이어 소개하고, 여기서는 동악 토함산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자.

동악 토함산(745m)은 그 이름 유래부터 아리송하다. 한자로는 吐含山. 머금고 토하는 산이라는 의미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 토함산 이름의 유래는 대체로 세 가지 설이 전한다.

첫째는 석탈해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삼국유사>에 ‘탈해는 토해吐解라고도 한다’는 기록이 나온다. 석탈해의 다른 이름인 토해가 토함과 비슷한 음으로 발음돼, 토함산이 됐다고 전한다. 논리적으로 명쾌하지는 않지만 토해산보다는 토함산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는 한다.

둘째로, 운무와 풍월을 머금었다 토해 내는 토함吐含하는 뛰어난 경관을 지녔다고 해서 토함산이란 지명이 명명됐다는 설이다. 실제로 토함산은 늘 안개와 구름을 삼키고 토하는 듯 동해의 습기와 바람이 변화무쌍해 지척을 분간 못 할 정도로 안개가 눈앞을 가리는가 하면 어느 사이에 안개가 걷혀 솔숲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경관을 자랑한다.

셋째로, 부처님의 진리를 언제든 머금고 토해 낸다는 의미로 유래했다는 설이다.

세 가지 설이 전하지만 어느 한 가지 명쾌하게 떨어지는 유래는 아닌 듯하다. 석탈해에서 유래했다는 설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은 측면이 있다.

<삼국사기>권1 신라본기 남해 차차웅조에 ‘(2대 차차웅) 11년(서기 14) 낙랑인이 쳐들어왔다가 알천가에 주둔하면서 돌무더기 20개를 만들어 놓고 떠났다. 6부의 군사 1,000명이 이를 추격했는데, 토함산 동쪽으로부터 알천에 이르기까지 돌무더기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적이 많다고 여겨 중단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이미 서기 14년에 토함산이란 지명을 사용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석탈해는 4대 왕으로서 재위기간이 57~80년까지다. 석탈해 이전에 이미 토함산이란 지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석탈해에서 유래했다는 설은 논리적 시기적으로 맞지 않은 것이다. 후대의 역사가가 역사를 기록하면서 후대에 사용한 지명을 선대에 이뤄졌던 사실과 혼용해서 사용한 결과인지, 아니면 실제로 시기적으로 앞선 지명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운무와 경관적 측면에서 유래한 설은 실제와 유사하다. 토함산은 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바로 막고 있어 실제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짙은 운무도 순식간에 사라지는가 하면 맑은 날씨가 순식간에 운무에 휩싸이기도 한다. 토함과 딱 어울리는 지명인 것이다.

토함산이란 지명이 석탈해에서 유래했다는 설은 조금 설득력이 떨어질지 몰라도 석탈해의 주요 근거지는 토함산인 것은 분명하다. 동악의 신, 즉 토함산의 신으로 좌정한 까닭도 그의 주요 활동무대였기 때문이다.

석탈해는 등장부터 토함산에서 시작한다. 외부 세력인 석탈해는 철기라는 새로운 문명을 지니고 동해를 통해 들어와 토함산에 터전을 잡는다. 토함산은 동해와 접해 있어 바다로 침입해 오는 외적의 침입을 항상 감시할 수 있는 상징적인 산이다. <삼국사기>에는 숱한 외적의 침입기록이 나온다. 그 대부분이 왜倭들이 동해를 통해 노략질한 기록들이다.

이같은 사실을 볼 때 석탈해가 당시 가장 앞선 문명인 철기를 가지고 토함산으로 들어와 동악 토함산 산신으로 좌정한 건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당연한 조치로 보인다.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하고 신라와 경주의 수호신으로 석탈해를 토함산 산신으로 좌정시키고, 본인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계 최초의 수중릉에 안장할 것을 유언으로 남긴다. 산에서 왜의 침입을 감시하면서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를 무찌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은 아버지의 수중릉을 보호하고 동해에서 토함산으로 들어오는 길목 하천 어구에 왜구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감은사를 창건한다.



동악은 일출과 통한다. 토함산 정상 바로 아래 자리 잡은 석굴암의 불상 이마의 보석이 동해의 일출을 받아 반짝인다는 사실은 이미 널려 알려져 있다. 그 보석을 일제가 가져갔다는 설은 누구나 알고 있고, 지금은 가짜로 대체돼 있다. 일제가 가져간 그 보석이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동악으로서의 토함산 일출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한자로 東은 날 日과 나무 木의 합성어다. 나무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東인 것이다. 동악의 의미가 만물을 잠에서 깨우는 생명의 탄생과 연결되고, 만물이 나오는 곳을 뜻한다. 동쪽은 하루 중에서 아침을 가리키며, 계절로는 봄, 일생에서는 성장기에 해당한다. 주역과 음양오행사상에서 동은 만물의 시초·생명의 탄생과 직결된다. 한자의 동과 우주의 원리가 모두 맞아떨어지는 동악인 것이다.



새해를 맞으면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나 일출을 보기 위한 등산객들이 붐빈다. 특히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지리산에는 수천 명의 인파가 몰린다.



토함산에서 동악의 의미를 알고 일출을 보는 건지는 몰라도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엄청난 인파가 몰린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불국사 주차장에서부터 차량을 통제한다.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 도로로는 12㎞가량 되고, 등산로로는 3.6㎞ 정도 된다.



토함산 정상까지 걸어서 가는 사람도 많다. 김대환 경주국립공원사무소 직원은 “새해 일출 인파는 매년 3,000명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적정 인원을 아예 토함산 입구 불국사주차장에서부터 통제한다”고 밝혔다.

 

 

토함산 정상 새해 일출 7시25분쯤 될 듯



새해 1월 1일의 동해 일출 예정시각은 7시25분쯤 된다. 김대환씨는 “토함산은 정상에서만 조망이 확 트여 사방이 보이지만 등산로에서는 능선이나 나무에 가려 조망이 별로 좋지 않다”고 말한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정상까지 가야 한다는 얘기다.

일출을 보기 위한 토함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모두 5개 코스. 불국사에서 올라가는 코스가 가장 많은 등산객이 이용한다. 거리는 3.6㎞로 약 2시간 잡으면 충분하다. 추령코스도 약 3.2㎞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시부거리에서 토함산까지는 약 4.3㎞로 2시간 30분가량 걸린다. 가장 단거리 코스는 탑골공원에서 정상까지로 불과 2.3㎞밖에 안 된다. 시간도 약 1시간 30분밖에 안 걸린다. 반면 가장 긴  코스는 보불로에서 정상까지 7㎞가량 된다.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 잡으면 충분하다.

유교에서는 동악을 성산聖山, 도교에서는 선산仙山, 불교에서는 영산靈山으로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불선 3교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서로 혼재된 상황이다. 하지만 토함산은 신라가 동악으로 지정한 이래 불교가 사상적으로 지배해 왔다. 종교의 본질적 측면에서 불교는 유와 무 사이의 차별 없음을 강조한다. 유교는 유를 중심으로 현상계를 설명하려 했고, 도교는 무위자연사상에서 보듯 무無사상을 확립하려 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우리는 불교가 수천 년 동안 한반도를 사상적으로 지배해 왔기 때문에 무와 유의 차이가 없는 평등사상의 원천이 토함산에 있지 않나 상상해 본다.

 

 

새해 동악 토함산의 일출을 보면 일출과 동악의 의미가 중첩되면서 토함산이라는 의미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동해의 해가 떠오르면서 만물을 벌겋게 물들여 하나로 만드는 그 현상은 어쩌면 이게 바로 새해의 의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토함산 지도를 유심히 보다가 새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경주에 동악을 상징하는 日자가 많은 게 아니라 달을 상징하는 月자가 유난히 많았다. 토함산의 옛 이름이 토월산, 월함산이고, 왕궁이 있는 터가 월성이다. 동궁의 연못은 월지라고 했고, 동북쪽에는 함월산, 남쪽에는 남월산과 초월산, 서쪽엔 월생산(지금의 단석산)이 있다. 사방이 달에 갇힌 형세다. 신라의 달밤도 여기서 나온 것인가. 이게 어찌된 일인가? 日이 너무 강해서 月을 보충하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애초 동악을 지정할 때 日의 의미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지정된 것인지…. 그 의미는 알 수 없다.

 

..... Oh .....

* 오늘 하루도 즐겁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