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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산사와 명풍경 | 오봉산 청평사

by 白馬 2018. 1. 18.

마음의 상수원 흘러 호수는 미소 짓고 새로운 변화로 날마다 좋은 날 열리네



변질은 쉽고 변화는 어렵다. 변화가 없으면 새로운 것도 없다. 자기 자신은 물론 이웃과 사회, 세계가 열리지 않는다.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변화는 본질을 지키는 힘이며, 변질을 막는다. 하지만 변화는 어렵다. 변하면 큰일이라도 생기는 것처럼 우리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변해야 산다.’ 나에게서 너에게로, 너에게서 모두에게로 열려야 한다. 편협과 이기에서 원만과 이타로 생각이 건너가야 한다. 예각에서 둔각으로, 직선에서 곡선으로 둥글어져야 한다. 변화는 바로 둥글어지는 것이다. 둥글어져 잘 굴러가는 것이다. 둥근 바퀴는 길에 갇히지 않는다. 도랑과 진창에 빠져도 헤쳐 나온다. 변화는 가장 나은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한 몸짓이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동선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일이다.

내가 변하기 위해서는 의심해야 한다. 남을 의심할 것이 아니라 종종 나를 의심해야 한다. 데카르트는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것은 동시에 참’이라고 했다. 나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도 나요, 나를 앞서가는 것도 나다. 모든 것이 나의 변화에 달렸다.

새해는 이렇게 문 활짝 열려 세상 멀리 보이고, 복도 성큼성큼 들어오라.

하얀 고요가 적설로 쌓이는 눈 오는 날의 길 풍경

오봉산(779m)은 춘천시 북산면과 화천군 간동면에 걸쳐 있다. 비로봉, 보현봉, 문수봉, 관음봉, 나한봉의 다섯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 오봉산이라 부른다.

청평사로 가기 위해 차를 몰아 조심조심 청평사고개(배치고개)를 넘는다. 제설이 되어 있지만 도로가 언 상태다. 세상에 그 어떤 길도 쉬운 길은 없다. 아무도 넘어가지 않은 고갯길을 누군가는 또 이렇게 넘어야 한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소양호는 한 폭의 그림이다. 부용교와 청평교를 건넌다. 청평사까지는 1km의 거리다. 눈 위에 찍히는 첫 발자국, 맑고 시원한 흰빛의 숲길이 이어진다. 계곡에 공주상이 보인다. 청평사에는 당나라 공주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사랑은 이야기를 낳고 새로운 의미의 층위를 형성해 우리의 삶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거북바위에 도착한다. 여럿이 눈을 치우고 있다. 청평사 절집 식구들이다. 눈을 치우는 일은 그 자체가 수행이며 공덕이다. 자유로운 마음은 감정과 욕구에 붙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을 삽과 넉가래로 만들어 저렇게 도구로 쓴다. 소탈한 성자의 모습이 읽혀지는 이 진여의 풍경 속에는 스님도 처사도 따로 없다. 모두가 평등하고 다 같이 둥글다. 맑아서 평정을 이룬 청평淸平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소유를 위해서가 아니라 성장하기 위해서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의 높은 변화를 위한 것이다. 청정한 공간에서 오랫동안 수행한 저 분들이 치울 것이 뭐가 있을까만, 우리는 하루도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고 게을리 놓아두게 되면 쌓이는 것들이 생겨난다. 점점 더 많아져 끝내는 치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슬픔, 미움, 분노, 원망, 욕망 등이 우리의 동선에 놓일 때 우리의 마음과 걸음은 자유롭지 못하다. 과도한 기쁨과 즐거움, 재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때로 싹 치워야 한다. 바다도 하루에 한 번은 멀리 나가 쌓인 것들을 죄다 버리고 온다. 바다가 매일 새로운 것은 변화하며 썰물로 살기 때문이다.

1 서설이 내린 경운루의 처마는 솔개의 날개로 열려 하늘로 비상하고 있네. 2 흰 눈 내린 청평사 고즈넉하여 자기 안을 들여다보면 보이는 마음 있다. 3 눈바람 맞으며 겨울 양식이 되고 있는 시래기 보기만 해도 속이 따뜻하다.
‘춘천 청평사 고려선원(명승 제70호)’에 도착한다.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973)에 세운 ‘백암선원白巖禪院’을 그 연원으로 하고 있다. 그 후 문종 때 춘주도감창사 이의가 절을 지어 보현원普賢院이라 했고, 후일 그의 장남 이자현이 이곳 경운산의 경치에 반하여 은거하면서 청평산淸平山이라 부르고 절 이름을 문수원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나는 여기서 ‘이자현’이라는 인물에 마음이 기운다. 그는 고려 중기 당대 최고의 권문세도가 출신이었다. 관직을 버리고 선원에 몸을 담고 나물밥과 베옷으로 37년간 참선을 했던 사람, 문수보살을 두 번이나 친견했다는 그가 우러러진다.

‘청평淸平’은 더러운 것을 맑게 하고, 소란스러운 것들을 평화롭게 한다는 의미다. 그의 호이기도 했다. 조선 중기 보우대사가 그의 호를 따서 청평사라고 개칭했다고 한다. 물 맑은 계곡, 반석, 기암, 폭포, 노송들, 영지 등이 어우러져 선경을 이루고 있지만 이자현 그에 의하여 빛나는 명승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의 분위기는 아주 독특하다. 아마도 예부터 불교의 선적 공간과 도가의 은둔적 세계가 공존하고 있고, 시인묵객들이 찾을 수밖에 없었던 심산유곡의 풍치 서천西川과 선동仙洞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둘러보면 아름답기로는 절대 가인이요 그 세계는 선계며, 빛나기로는 옥과 같아 몸 둘수록 마음이 맑아진다.

구송폭포 맑은 청음 천지간에 홀로 깨어 산의 고요 그 중심을 흐른다.
차담 속 마음의 향기 눈꽃으로 피며 대화가 있는 청평사

이어 구송폭포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흘러내릴 뿐인데, 고요를 깨우고 고요를 불리며 산을 깊어지게 만든다. 영지 명문 바위와 영지影池에 닿는다. 눈 쌓인 겨울이 아니라면 이 연못에 부용봉이 비치고 있을 것이다.

선동교를 건넌다. 절 마당에 오르면 제일 먼저 회전문(보물 제164호)이 보인다. 보우대사가 중창할 때 세웠다는 건축물이다. 간결해서 더욱 아름답다. 맑고 곧아서 시원하다. 끝없이 윤회하는 우리의 삶과 죽음이 인과응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는 문이다.

경운루를 지나 대웅전 법당에 든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불로 모셔져 있다. 온화하고 둥글고 환한 금빛 미소는 언제나 세상을 향해 저렇게 환하게 열려 있는데, 나는 마음을 닫고 아집과 편견 속에서 너무 좁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열려 있을 때 더욱 조화롭고도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변화해야 한다. 겉이 아니라 내면세계가 바뀌어야 한다. 더욱 간절하고, 순수하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마음의 틈으로 외풍처럼 들어오는 삿된 기운이나 생각을 소멸시키고, 소소한 것 하나라도 쌓는 공덕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내 집 앞의 눈을 치우는 그런 일처럼.

“차 한 잔 드시지요.”

절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눈송이와 같은 말의 꽃송이 하나 법당 마루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두 손으로 받쳐 든 차가 따뜻하다. 전해지는 온기는 마음의 온도일 것이다.

건네지는 미소는 연지의 그런 연꽃일 것이다.

“오늘 여기에 오시는 첫 번째 분이네요.”

혼자 절에 남아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보살님의 말이 영근 연자처럼 맑고 정갈하다.

“맑은 경치는 눈과 대화하고, 낭랑한 물소리는 귀와 대화하고, 고즈넉이 빈 것은 정신과 대화하고, 깊숙이 고요한 것은 마음과 대화한다”는 당송팔대가이자 팔사마八司馬의 한 사람이었던 유종원이 말한 그런 대화가 있는 고아한 절이다.

1 소양호와 산줄기를 바라보는 소나무 한 그루 고승의 모습이다. 2 우리도 물처럼 부드러워지고, 물처럼 단단해지고, 물처럼 자유로워지자. 3 선착장에 배가 들어오고 있다. 기다리던 사람 얼굴 환하게 꽃피겠다.
조망이 일품인 소요대와 천단을 지키고 있는 소나무들

법당을 나와 산길로 접어든다. 공주탕이 초입에 있다. 평양공주가 목욕재계를 했다는 곳이다. 몸을 몇 번 씻어야 마음이 씻길까. 모든 탐욕이 씻겨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할 수 있을까. 기우단 터를 지나 환적당과 설화당 부도를 보고 간다. 해탈문 지나 척번대滌煩臺다. 안내문처럼 골짜기가 조용하고 전망이 좋아 참선수행을 하면 번뇌와 망상이 사라질 만하다. 거치적거리는 것들을 치우고, 씻고, 빨고, 헹구어서 깨끗하게 하는 것이 척이다. 그 척을 이 산에서 처음으로 한 사람이 청평 이자현이다.

식암폭포 지나 진락공 이자현 세수 터에 닿는다.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네모난 두개의 홈에 넘쳐흐르고 있다. 앙상한 나무들이 내려와 아침 세수 중이다.

한동안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진다. 능선의 안부에 올라선다. 소요대와 천단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설연 속에 시야가 트이고 굽이굽이 이어지는 고갯길과 부용산이 보인다.

소요대에 올라선다. 건너편에 사방이 절벽인 천단이 보인다. 천단을 지키고 있는 소나무들 수령을 헤아리기 어렵다. 길을 되돌려 정상으로 향한다. 홈통바위를 지난다.

팔봉산의 해산굴을 닮았다. 비좁은 바위틈을 통과하는 어려움을 해산의 고통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이 바위를 통해서 세상살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한 번쯤 생각하게 한다.

바위를 통과하자 조금 전까지 흩날리던 눈발이 그치고 날이 맑아져 햇빛이 난다. 훤히 트인 전망, 소양호를 마치 자궁인양 깊이 품고 첩첩 이어진 산과 산들이 장엄하다.

옛 소양호 길은 호수와 탯줄처럼 이어져 있다.

왕솔밭을 거쳐 오봉산 정상에 닿는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잠시 앉아서 쉰다. 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내 삶을 살고 있는 부분은 얼마나 될까? 내가 늘 주체적이지만 사실 나는 나의 대부분을 내가 아닌 배우자와 같은 그 많은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서 살고 있다. 먹고 입는 문제는 제쳐두고라도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는 타인을 통해서 삶을 살고 있다. 그 인연의 ‘연결 끈’은 무엇일까. 사랑과 헌신과 이해와 나눔과 배움 등이라면 나는 그런 것들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산을 내려갈 시간이다. 어디로 가든 조심만 하면 다 좋은 길이다. 2018년 무술년戊戌年 새해가 열리며 다시 시작된 산행이다. 올 한 해도 꿈을 찾아 희망을 품어보자. 우리는 모두 꿈과 희망을 먹고 산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날들이 모두 평화롭기를 바란다. 삶을 일구는 시간들 속에서 더 나은 삶의 방식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부디 자연의 순리가 우리 안에 존재하여 우리를 자연으로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하는 복된 날 되소서.

오늘의 날씨


* 오늘 하루도 즐겁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