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최대 규모 산군이 간직한 다양성과 역사성

명능선〮명계곡, 명찰〮명소 여럿… 구한말 항일, 6〮25 당시 격전지
‘용龍’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상서로운 존재로 여겨지며, 용문龍門은 그 영험한 동물이 하늘로 오르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을 일컫는다. 입신출세의 관문을 뜻하는 ‘등용문登龍門’이란 단어 역시 여기서 비롯됐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1,157m)은 이처럼 전설 속의 용을 연상케 할 만큼 기운차면서도 깊고 오묘한 산이다. 높이로는 화악산(1,468m), 명지산(1,253m), 국망봉(1,167m)에 이어 경기도에서 네 번째로 치지만 덩치만으로 본다면 첫 손가락으로 꼽힐 만큼 웅대하다.
석가의 10대 제자 중 으뜸으로 치는 가섭존자迦葉尊者를 이름삼은 용문산龍門山 정상 가섭봉을 중심으로 사방팔방 뻗어나간 산줄기는 용의 기운을 느낄 만큼 기운차다. 풍수지리가들 사이에서는 ‘주산인 용문산이 남서 방향으로 바라보며 좌청룡인 도일봉, 우백호인 백운봉이 둘러 있는 까닭에, 완전한 용곡龍谷의 형국이 드러난 산’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용문산은 옛 이름이 미지산彌智山이었다. ‘미지’는 ‘미리’의 옛 형태이고, ‘미리’는 ‘용’의 경상도와 제주도 방언. 결국 예로부터 ‘용의 산’이었던 셈이다.
용문산은 용을 이름삼은 산답게 높고 크고 넓다. 산군의 동서 양단이라 할 수 있는 동쪽 비슬고개에서 서쪽 농다치고개에 이르기까지 능선 줄기는 20km가 넘고, 북쪽 봉미산에서 남쪽 백운봉까지의 능선 길이도 15km에 이른다. 이렇게 커다랗고 높다란 덩치 때문에 용문산은 양평뿐만 아니라 북쪽 홍천강변까지 산자락을 뻗어나가고, 그 산그늘 아래 주민들이 아늑한 삶을 누리고 있다.
명봉은 당연히 여럿이다. 남서쪽으로 뻗친 주맥에만 해도 용문봉(911.7m), 함왕봉(887.4m), 백운봉(940m) 등 명봉 대접을 받을 만한 봉우리가 여럿 있고, 동으로 중원산(800m)과 도일봉(864m), 서쪽으로 어비산(822m)과 유명산(862m), 소구니산(798m) 등 등산인들 귀에 익숙한 멋진 산봉이 여럿이다.
양평의병 근거지이자 6·25 때 대표적 승전지
굵은 산줄기가 빚어낸 명품 계곡 또한 여럿이다. 용이 훑고 지나간 듯 오묘한 형상의 용문사계곡을 가슴팍 한가운데로 흘리고, 동쪽 중원산과 도일봉은 그 사이에 중원계곡이라는 명품 계곡이 흘러내린다. 어비산과 유명산 역시 당당하고 빼어난 산릉으로 이어지면서 설악의 명계곡을 옮겨 놓은 듯한 풍광의 입구지계곡을 흘리고 있다.
후삼국 군웅할거 시대, 강력한 세력을 지닌 양평의 호족인 함규咸規가 함왕봉 서쪽 기슭에 성을 쌓고 살았다는 얘기가 전하는 용문산에는 고찰도 여럿이다. 가섭봉 남쪽 용문사龍門寺는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던 중 꽂아놓은 지팡이가 변했다는 수령 1,100년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 거목으로 유명한 신라고찰이다. 용문사정지국사부도 및 비(보물 제531호)는 1395년(태조 4)에 입적한 정지국사正智國師를 기념해 조안祖眼 등이 건립한 것으로, 여기에 새겨진 비문은 권근權近의 글이라고 한다.
용문사계곡 서쪽에 기암절벽을 등진 채 자리한 상원사上院寺 역시 913년 이미 존재했고, 원증국사 태고보우(1302~1382)가 30세 때 이곳에서 큰 사찰을 여럿 세우고 정진하여 득도했다 전한다. 용문산 남서릉 서쪽 함왕골(절골) 들머리의 사나사舍那寺 역시 923년(태조 6) 고려 태조의 국정을 자문한 대경국사 여엄(862~929)이 제자 융천과 함께 세웠다고 전하는 고찰이다.
세 산사는 양평의병 근거지이자 6·25 때 중공군을 물리친 격전지로 이름 높다. 일제가 광무제를 퇴위시키고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키자 의병의 대일항전은 격화되었다. 이때 봉기한 양평의병은 용문산 용문사를 비롯해 상원사, 사나사를 근거지로 활동했다. 이 산사들에 식량과 무기를 비축해 놓고 인근 지역의 관아와 파출소, 우편소 등을 습격해 일제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이에 일제는 의병 탄압을 위해 군대를 파견했고, 양평의병은 1907년 8월 24일 일본군과 격전을 벌였다. 이때 사찰들은 일본군에 의해 소멸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복원됐다.
사방 100km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용문산은 미 육군사관학교 전술교범에 기록될 만큼 한국전쟁의 대표적인 승전지였다. 1951년 5월 17~ 21일 6사단 용문산연대 전 장병은 결사항전으로 중공군 3개 사단 2만여 명을 격멸했다.
용문사 들머리에 세워진 한국민족독립운동발상비, 양평의병기념비, 용문항일기념비 등 6기의 기념비들은 이러한 선인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고자 세운 것이다. 또한 산 북쪽 가평군 설악면에 용문산전투 가평지구 전적비 일원에서는 매년 전승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용문산 일원은 산세가 좋다 보니 자연휴양림이 여럿 있다. 유명산·중미산·산음 등 국립자연휴양림만 해도 세 곳이나 되고, 양평군에서 운영하는 용문산자연휴양림과 사설인 설미재자연휴양림도 환경이 좋은 시설물로 손꼽힌다. 여기다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임도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멋진 무대가 되고 넓게 펼쳐진 개활지는 활공인들에게 환상의 활공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용문산, 중원산, 용문산 3개 권역으로 산행
용문산은 수도권에서 전철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고봉이라는 점, 산세가 웅장하고 다양하다는 점, 사철 색다른 풍광을 자아낸다는 점 등으로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 등산인들에게 인기 높은 산이다. 특히 여름이면 옥수가 흐르는 계곡이 곳곳에 있다는 점이 더해져 더욱 많은 등산인과 피서객들이 몰려든다. 여기에 수령 1,100년 은행나무로 이름난 용문사를 비롯해 고찰이 산기슭에 자리해 또다른 볼거리를 주고, 주변 곳곳에 쉴 곳, 놀거리, 먹거리들이 더해져 2, 3일 여행으로 찾기에는 그만인 산이다.
예전에 용문산을 찾았던 이들은 군사시설 때문에 용문산 정상에 오르지 못해 아쉬워했다. 하지만 2007년 11월 17일 정상이 개방됐고, 한동안 잊혀졌던 정상 이름 ‘가섭봉’도 되찾았다. 그래도 정상석 뒤편 정상 능선은 군시설물과 중계탑, 통신시설 때문에 접근은 불가하다.
용문산은 크게 용문산, 장군봉, 중원산, 유명산 지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용문사 기점 산행이 가장 대표적이다. 용문사~마당바위~가섭봉 왕복 코스(또는 정상에서 능선을 타고 내려서다 절고개에서 용문사로 내려선다)가 가장 인기이며, 취재팀이 답사한 용문사~가섭봉~장군봉~상원사~용문사 산행 코스는 긴 편이라 걷는 데 자신 있는 등산인들에 한해 권하고 싶다.
용문사 매표소를 지나 전적기념비 뒤쪽 능선을 타고 용문봉(970m)과 문례재를 거쳐 가섭봉에 올라선 다음 용문사로 하산하는 코스는 용문산 마니아들이 꼽는 코스다. 하지만 문례재~정상 아래 쉼터까지 이어지는 허리길이 너덜을 이룬 데다 간혹 헷갈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중원계곡은 깊고 아늑하면서도 웅장한 곳에 위치해 있다. 봄에는 연분홍 진달래로,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인기가 좋지만 누가 뭐래도 중원계곡의 보석은 여름 피서철의 물놀이 대상지다. 도일봉을 경유해 싸리봉(811.8m)~단월산(778m)~중원산(800m)을 오르고 중원리로 되돌아오거나, 싸리재에서 계곡으로 하산하는 코스는 여름철 최고의 계곡산행 대상지로 인기가 좋다. 도일봉 정상은 헬기장에 조망이 좋아 백패킹이나 비박하기에도 적당하다.
용문산 북서쪽에 솟아 있는 유명산은 유명산자연휴양림 기점 원점회귀 산행이 주를 이루지만 자가용 2대 혹은 대절버스를 이용할 경우에는 농다치고개에서 소구니산~유명산 정상~입구지계곡~유명산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추천하고 싶다.
농다치(약 430m)에서 660.6m봉과 775m 삼거리까지 된비알 구간을 올려치면 이후 유순하면서도 조망이 빼어난 능선이 유명산 정상까지 이어지고, 이후 경기 최고의 비경을 자랑하는 입구지계곡에서 더위를 씻어내며 하산할 수 있다(4시간30분).
한강기맥 구간종주 산행도 시도해 볼 만하다. 구간종주는 동쪽 비슬고개(약 380m)에서 서쪽 농다치고개에 이르기까지 약 20km 거리로, 싸리봉(811.8m), 천사봉(1,004m), 용문산, 소구니산 등 제법 높은 봉우리를 넘어야 하는 강도 높은 산행 코스다. 준족도 8시간 이상 걸리며, 배너미재에 닿기 전까지 샘이 전혀 없어 특히 한여름 산행 때에는 식수를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오늘의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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