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침대 위에서의 신비로운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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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림2리~월봉~월봉산~보티재~양지광산~원효암~정상~보석사 14km
신비로운 능력이 있는 산이다. 정상에서 눈을 뜬 아침, 구름의 바다가 펼쳐졌다. 몇 천 미터 고산 풍경이라 해도 믿을 법한 신비로운 구름의 바다였다. 구름의 망망대해 너머 멀리 서대산이 섬처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반대편도 못지않게 황홀해 서쪽과 남쪽의 무수한 산봉우리들이 섬으로 변해 있었다. 당황한 건 우리였다. 높지도, 유명하지도 않은 산에서 맞닥뜨린 딴 세상 풍경에 반해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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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악산은 곧 금산이다
진악산은 금산을 대표하는 산이며, 금산의 민초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해온 산이다. 737m로 충청남도에서 4번째로 높고, 평야인 금산읍내를 내려다보듯 솟아 금산의 여간한 학교 교가에는 그 이름이 등장한다. 이런 지리적인 특성상 예부터 정상에 봉화대가 있었다. 금산하면 인삼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인삼을 최초로 심기 시작했다는 개삼터 역시 진악산 자락에 있다.
하지만 들머리는 진악산 입구가 아닌 화림2리다. 1~2시간 만에 정상에 설 수 있는 쉬운 코스를 버리고 식장지맥을 타고 진악산을 만나러 간다. 식장지맥은 계룡산이 솟은 금남정맥 인대산 부근에서 갈라져 나온 56km의 산줄기로 금산을 거쳐 대전으로 뻗었다. 최고봉인 식장산(592m)의 이름을 따 식장지맥이 되었다. 진악산은 식장지맥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에 솟았다.
북쪽에서 능선을 타고 남진해 진악산 정상에서 야영하고, 다음날 보석사로 하산하는 코스다.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미련한 코스지만 그것이 진심으로 진악산을 맞는 산꾼의 방식이라 여겼다.
당연히 등산 안내판은 없다. 화림리와 엄정리 사이 고개에서 산에 든다. 희미한 임도를 따라 오르자 무덤 곁 능선이다. 능선이 휑하다. 간벌해 기존 숲을 깨끗이 밀어내고 소나무를 다시 심었다. 덕분에 땀 흘리는 족족 경치로 되갚는다.
식장지맥을 따른다. 등산로는 희미하지만 능선이라 길찾기는 어렵지 않다. 간간이 보이는 지맥꾼들의 표지기가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한다. 1km를 걷자 산신령 같은 나무가 인사를 건넨다. 보호수로 지정된 200년 된 문배나무다. 황금비율로 가지를 뻗어 균형 잡힌 모양새다. 주변에 나무가 없는 것은 보호수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배려해 간벌한 것이다. 5월이면 특유의 희고 풍성한 꽃으로 온 산을 잠 못 들게 할 것이다. 돌탑이 있는 월봉재를 지나자 산이 벽처럼 일어선다.
숨이 차오른다. 월봉이다. 멀리서 차로 접근할 때부터 뾰족한 모습으로 긴장하게 했던 그 봉우리다. 아침까지 비가 왔기에 산은 철옹성이다. 코 닿을 듯 가파른 오르막, 진흙에 발이 쭉쭉 밀린다. 지체하면 더 힘들다. 스틱을 쓰고 악착같이 나무를 잡아 거친 숨을 토해 내며 확 치고 오른다.
급한 숨을 뿜어내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올라온 이는 서현우(25) 월간山 인턴기자다. 산행 전날 구입한 등산화에서 보듯 초보지만 젊은 패기로 능선의 리듬을 탄다.
젊은 산악인의 모임 회원인 정관구(33)씨는 당일산행은 숱하게 해왔지만 야영산행은 오늘이 처음이다. 김준영 사진기자 또한 처음 월간山 산행에 동행한 프리랜서 사진가다. ‘처음’이란 공통점을 가진 이들이 한 팀을 이뤄 미지의 능선을 헤쳐 간다.
월봉에는 산꾼들이 달아놓은 정상 안내판이 여럿 있다. 반가운 건 ‘준·희’ 안내판이다. 골수산꾼들 사이에선 유명인사다. 부산의 70대 산꾼 최남준씨로 대간과 정맥, 기맥, 지맥을 대부분 완주했다. ‘준’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고 ‘희’는 하늘나라로 간 아내의 이름이다. 생전 아내와 함께 갔던 산을 추억하기 위해 ‘준·희’란 이름으로 길찾기 어려운 곳에 표지기와 안내판을 걸고 있다. 야산에서 만나는 아는 사람의 표지기는 그의 웃음과 목소리가 들리는 것마냥 무척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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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다 하여 쉽지 않다. 심장 박동 그래프마냥 요동치는 산줄기가 예상치 못한 어퍼컷 펀치처럼 날아온다. 월봉산을 넘어 열두봉재에서 식장지맥과 이별한다. 우측으로 방향을 꺾는 지맥을 버리고 남진해서 진악산으로 간다.희미한 산길 곳곳에 그녀의 흔적이 있다. 달이 걸리는 봉우리 구석구석 분홍 진달래가 피었다. 우리가 아니었다면 이번 봄 내내 아무도 보지 못했을 진달래꽃. 산길을 막고 삐죽삐죽 분홍 입술을 내밀었다. 머리로, 가슴으로, 팔로, 다리로 분홍 잎을 떨구며 걷는다. 아무 계산 없이 마음 내어주는 깊은 산동네 여인마냥 와락 안겨온다. 지나온 자리마다 떨어지는 그녀의 분홍빛 마음을 모른 척, 두고 떠난다.
무릎 상태가 좋지 않은 일행이 있어, 부득이하게 보티재에서 탈출한다. 다행히 옛길이 있고, 길 상태가 좋아 별도의 개척산행 없이 광산 앞 도로에 닿았다. 결정의 시간, 읍내로 나가 여관에서 자고 내일 산을 다시 오를 것인가, 아니면 바로 정상으로 가서 야영할 것인가. 오후 5시 반이 넘었지만 산으로 간다. ‘처음’인 이들이기에 훌륭한 산행보다 포기하지 않는 산행을 하기로 했다. 고생스러울수록 기억에 남는 법, 진한 첫 경험을 하기로 의기투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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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워낙 늦어 원래 코스였던 진악산휴게소를 포기하고 최단코스인 원효암으로 향한다.
최단코스인 만큼 가파르다. 원효암으로 이어진 콘크리트임도는 승용차로는 오르기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바싹 섰다. 임도가 끝나는 곳에 깜짝 선물이 있다. 원효폭포가 의외로 예쁘장하다. 계단을 따라 오르자 신라 때 창건했다는 천년암자 원효암이 있다.
진악산이 ‘악산’의 이름값을 한다. 암릉이 줄기차게 나타나 발걸음을 긴장케 한다. 무게감 있는 대형배낭을 메었기에 더 조심스럽다. 정관구씨와 서현우 기자가 망설임 없이 무거운 것들을 자신의 배낭에 담아 주었기에 더 힘내어 오른다. 여러 위기가 서로를 오히려 더 똘똘 뭉치게 한 덕분에 팀워크를 발휘해 진악산 정상에 닿았다. 너른 전망데크가 있다. 전망대에서 ‘진악산이 곧 금산이다’라고 했던 어느 문헌의 글귀를 바로 이해한다. 평야지대인 금산 읍내가 막힘없이 다 보인다.
서서히 번화가의 불빛이 꽃처럼 피어오른다. 데크에 텐트를 치고 뚝딱 허기를 채우고 나니, 금산 읍내가 거대한 장미꽃으로 피어올랐다. 여러 색상의 불빛이 꽃처럼 곱다. 정상에도 웃음꽃이 핀다. 고생하여 정상에 오길 잘했다며 모두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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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악산은 ‘아직 꿈결인가’ 싶은 아침 운해로 신선의 경지를 보여 준다. 진악산(進樂山)은 ‘깊고 큰 풍류가 있는 산’이란 뜻을 담고 있는데, 그 진가를 제대로 맛본다. 진악산을 찾았다면 꼭 들러야 하는 곳은 보석사다. 큰 산은 그 산을 대표하는 절을 품고 있게 마련이다.
정상보다 더 높지만 봉우리다운 풍모에서 밀린 737m봉에는 물굴봉 안내판이 있다. 절구처럼 독특하게 솟았다는 도구통(절구의 충청도 방언)바위를 지나자 골짜기를 따라 급격히 고도를 내린다. 휑했던 능선과 달리 밝은 초록의 신록이 봄소식을 전한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적당한 계곡은 티 없이 맑다.
산행의 끝을 알리는 건 40m 높이의 수령 1,000년이 넘은 은행나무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에는 소리 내어 울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문화재관람료를 받지 않아 마음 편한 사찰은 천년고찰 보석사다.
보석사는 영규대사가 수도했던 사찰로 알려져 있다. 영규대사는 계룡산 갑사와 보석사를 오가며 도를 닦았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집한 뒤 중봉 조헌 선생의 의병과 합세해 유명한 금산벌 전투를 벌였다.
영규대사는 용맹과 담력이 출중해 싸움마다 크게 공을 세웠다고 한다. 임진년(1592)에는 조헌 선생과 함께 청주성을 수복하고, 금산벌에서 고바야가와 다카가게가 이끄는 1만5,000명의 막강한 왜적과 맞붙었다. 이때 충청과 전라의 관군이 협공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관군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혈전 끝에 전멸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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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싸움이 끝난 나흘 후 조헌 선생의 제자들이 700명의 의병 시신을 수습해 한 무덤에 모신 것이 금산의 칠백의사총이다. 영규대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양한데, 주를 이루는 것은 금산벌 싸움에서 살아남은 영규대사가 큰 부상을 입은 채 지원군을 보내지 않은 공주감사를 죽이러 가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전설 같은 은행나무를 지나자, 거대한 전나무숲이 나타난다. 천년고찰 보석사를 품은 풍경은 산을 떠나기 싫을 정도로 아늑하다.
압도적인 모양의 은행나무에 영규대사의 숨결이, 시원하게 뻗은 전나무에 칠백의병의 정신이 담겨 있는 것만 같다. 신비로운 운해의 산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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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악산
737m
충남 금산군 남이면ㆍ금산읍
산행 거리 1일차 10km, 2일차 4km
산행 시간 1일차 5시간, 2일차 2시간 30분
산행 난이도 중(월봉산 구간 오르내림 많고 길찾기 까다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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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길잡이
일반적인 산행 코스는 진악산휴게소 (진악산광장) 주차장에서 시작해 정상을 거쳐 보석사로 하산하는 길이다. 7km 거리에 3~4시간이면 끝나는 짧은 코스라 취재진은 북쪽의 화림2리에서 월봉과 월봉산을 지나 진악산까지 종주하는 코스를 택했다.
들머리는 화림리와 엄정리 사이 고개다. 화림2리 마을회관에서 서쪽으로 400m 가면 들머리 고개다. 고개에서 엄정리 쪽으로 30m 내려가면 밭 사이로 희미한 임도가 있다.
진악산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길이 희미하고 길 찾기도 주의를 요한다. 문배나무 보호수를 지나 오르막을 올라서면 큰 능선에 닿는데 여기서 좌측으로 가야 한다. 월봉은 짧지만 무척 가팔라 제대로 땀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 진악산까지는 크고 작은 오르내림이 계속 이어지므로 500m대의 낮은 능선이라도 절대 방심할 수 없다. 월봉과 월봉산은 트인 경치는 없지만 산꾼들이 달아놓은 정상 안내판이 있다. 열두봉재에서 식장지맥은 우측 능선으로 가지만, 진악산은 좌측으로 가야 한다.
주의를 요한다.
여건이 따르지 않으면 보티재에서 탈출 가능하다. 등산로라기보다 옛길에 가깝지만 비교적 선명해 20분이면 도로에 닿는다. 원효암은 정상으로 이어진 최단 코스다. 암자 입구의 원효폭포까지 콘크리트임도가 있지만, 워낙 가팔라 위험하므로 입구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기를 권한다.
정상까지는 고정로프가 있는 암릉이 간간이 나오지만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코스다. 정상에는 너른 전망데크가 있어 여러 동의 텐트를 칠 수 있다. 정상에서 물굴봉으로 이어진 길에 간간이 암릉이 있지만 위험한 곳은 없다. 진악산 구간은 산길이 잘 나있고 이정표가 많아 길찾기 쉽다. 영천암부터는 임도가 나있다. 원효암에서 정상으로 이어진 길은 산불방지 입산통제 기간이 끝나는 5월 15일부터 산행 가능하며, 진악산휴게소 코스와 보석사 코스는 항상 산행 가능하다.
화림2리에서 양지광산까지 7km 거리에 3시간 정도 걸린다. 원효암에서 정상까지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정상에서 보석사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코스라 산행이 수월하며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교통
금산읍내에서 화림2리로 가는 버스가 있다. 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서쪽으로 150m 가면 사거리가 나오는데, 길 건너 고려약국 인근 읍사무소네거리 버스정류장에서 화림리행 버스(06:00, 09:20, 12:30, 14:20, 16:35)를 탄다. 보석사에서는 금산읍내로 가는 버스가 1일 5회 운행한다. 콜택시를 타더라도 1만 원대면 금산읍내에 닿는다. 금산택시(041-753-2580, 752-7272).
숙식(지역번호 041)
보석사 앞에는 식당이나 숙소가 없다. 보석사에서 7km 떨어진 남이면사무소 소재지에 식당이 여럿 있다.
특히 전주식당(753-1055)은 소문난 맛집이다.
직접 만든 손두부가 고소하며 버섯찌개도 산행 후 허기를 채우기에 제격이다. 이외에도 금산식당(753-5651), 남이닭집(753-1164), 신일식당(753-1006) 등이 있다.
숙소는 금산읍내에 많다.
가장 유명한 곳은 인삼호텔(751-7735)이다. 인삼호텔 주변의 인삼시장에 들러 인삼튀김에 막걸리 한 잔 정도는 해줘야 금산에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밖에도 한방호텔인 금산한방스파 (750-1000)가 있으며, 목욕 가능한 칠성한방사우나(753-9926)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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