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구녕 뒤넘어 개심사(開心寺) - 서산 천수만
충남 천수만 서산2방조제 뒤편에 ‘용 구녕 뒤넘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바다와 맞닿은 절벽에 용이 뒤로 지나간 구멍이 있다고 해서 용구녕 뒤넘이라 합니다. 천수만에 있는 지명인데, 간척사업이 이뤄진 지금은 논밭으로 변해 용구녕을 찾기 힘듭니다. 용은 간 데 없고 대신에 아직 남쪽나라를 찾아가지 못한 기러기 떼 오리 떼가 칼바람 부는 수면 위에서 떨고 있었습니다. 바다와 산이 만나는 서산 천수만에서 띄웁니다. 자, 서산쪽에서 출발해 홍성으로 간 다음 다시 서산으로 돌아 나온 1박2일.
용구녕 뒤넘이에 숨은 새들
충남 천수만은 철새의 낙원입니다. 작년 12월초까지 천수만에는 온갖 새들이 날아와 물 반 새 반의 형세를 이뤘습니다. 수십만 마리가 떼를 지어 맴돌다 그 다음 비행궤도는 며느리도 모른다는 가창오리 떼의 군무, 그리고 어미 잃고 헤매며 울어대던 오리들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가끔은 떼 무리를 지어 다니는 족속들보다는 외따로 있는 것들이 애틋하고 정겨울 때가 있습니다. 지금이 그러합니다. 지금 천수만에 오시면 무리를 잃고서 강남으로 떠나지 못한 새들을 만납니다. 광활한 호수, 광활한 바다 위에 해봤댔자 몇 백 마리씩 서로 날갯죽지를 맞대며 떠 있는 새들을 보십시오. 새들은 몇 백 만 마리씩 날아올라도 서로 부딪치지 않습니다. 하물며 그 만분의 일 되는 무리가 이 추운 겨울을 함께 견디는데, 누가 다툴 것이며 누가 남엣것을 탐하겠습니까.
엊그제 맑은 아침이었습니다. 홍성에서 서산, 태안에 이르는 천수만과 서산 방조제를 차를 몰고 가는데, 차창을 열었더니 그들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습니다. 멀리 동쪽 산등성이가 발갛게 물들어가는 아침, 그 새들이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지도에 용구녕 뒤넘이라고 표시된 곳으로 어렵사리 차를 몰고 들어갔습니다. 밑동만 남은 논길 옆으로 기러기 몇 마리가 엔진소리에 화들짝 날아갔습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새들이 안개를 뚫고 하루를 준비중입니다. 방조제 군데군데에 새들을 만날 수 있는 탐조대가 설치돼 있습니다. 차를 대고, 무리에서 이탈한 그들을 만나보세요. 길섶에 논이 나오면 가만히 차를 세우고 귀를 기울이십시오. 먹이를 찾는 기러기 떼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달을 보라는데, 손가락을 보다니! - 간월암(看月庵)
철새들과 작별했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이에 동상에 걸린 듯 손끝이 아려왔습니다. 이번에는 간월암으로 갑니다. 간월암(看月庵). 달을 바라보는 작은 절이라는 뜻입니다. 삼국시대에 세워진 절이라 합니다. 그리고 조선 초에 무학대사가 이 곳에서 달을 바라보다가 문득 도를 깨우치니, 이후 이 절 이름이 간월도라고 전합니다. 이후 피폐하다가 해방 직전에 만공 스님이 이 절을 중창했다고 하지요.
자, 달을 보고 득도했다고 했습니다. 누군가가 한 고승에게 이리 물었다 합니다.
- 달이 어디 있나이까.
- 저깄다.
스님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자 그러자 그 사람이 보라는 달은 보지 않고 스님의 손가락을 뚫어지게 쳐다봤답니다. 이를 가리켜 견지망월(見指忘月), 보라는 달은 잊어버리고 손가락을 본다, 라고 합니다. 무학대사의 에피소드가 단순한 전설만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간월도에 가시면 님께서도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청천 대낮, 휘영청 달이 뜬 밤, 혹은 해가 떠오르는 이른 아침 아무 때건 간월암은 그 광채를 달리하며 님을 반깁니다.
그 무렵 간월도 아낙들은 호미와 고무다래랑 망태를 걸머쥐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간월도의 명물인 영양굴밥을 짓기 위해 굴을 캐러 갑니다. 파파 할머니들이 어찌나 걸음이 날랜지, 그 분들의 건강한 걸음걸이를 바라보다가 도시에 찌든 저는 승용차에 올라탔습니다.
님은 갔어도…만해 한용운과 백야 김좌진 장군
간월도에서 나와 홍성쪽으로 남하하면 갈산터널을 지납니다. 터널을 지나자마자 나오는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니, 대한민국 현대사에 큰 공헌을 한 두 인물을 만납니다. 백야(白冶) 김좌진(金佐鎭) 장군(1889~1930)과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선생(1879~1944)입니다. 두 분은 충남 홍성 10리 사이를 두고 태어나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할일이…할일이 너무도 많은 이때에 내가 죽어야 하다니, 그게 한스러워서….”
장군의 유허지는 큰길에서 들어가 바로 왼편에 있습니다. 볼 것 없는 역사유적이라고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그의 정신과 혼과 백을 가슴에 담기 바랍니다. 아이들이 함께라면 반드시.
김좌진 장군 생가터에서 이정표를 따라 8킬로미터 정도 더 들어가면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가터가 나옵니다. 장군보다 10년 일찍 태어난 만해 선생은 기미독립선언문 공약3장을 쓰신 분이지요.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이시고요. 훗날 이들 대표 가운데 변절한 사람들과는 평생을 의절하고 살았습니다. 그 또한 이곳 홍성에서 태어났습니다.
한적한 산길 끝에 그의 집터가 있습니다. 뜻밖에 규모가 큰 기념관이 나타나 처음에는 당혹스럽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우리 지사들을 홀대해온 경력을 생각하면 김좌진 장군, 그리고 만해 선생의 생가를 이렇게 복원한 것이 오히려 뿌듯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른 공원 한켠에 그의 생가가 복원돼 있습니다. 방에 걸린 그의 사진. 먼 곳을 응시하는 깡마른 사내의 얼굴을 보십시오. 그가 만해입니다. 방 앞에 놓인 방명록에 누군가가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병들어가고 있는, 내 나라를 살리고 싶은 생각이 났다”
“正義立國”
“애국의 뜻을 새삼 느낍니다.”
청년 장교 이순신의 해미읍성
자, 길을 돌립니다. 이번에는 서산으로 올라갑니다. 목적지는 해미읍성(海美邑城). 만해, 김좌진 장군 생가터를 나와서 우회전하면 다시 사거리가 나옵니다. 여기에서 이정표 따라 좌회전하면 됩니다. 15분 정도?
해미읍성은 무과에 급제한 청년 장교 이순신이 젊은 날을 보낸 일종의 군사시설입니다. 천주교도의 슬픈 역사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1970년대에 복원이 시작돼 지금은 옛 모습을 거의 다 되찾았습니다. 남쪽을 방어한다는 의미에서 정문의 이름을 진남문(鎭南門)이라 했습니다. 문을 들어가면 산책하기 딱 좋은 너른 공간이 나오고 그 뒤로 관헌과 옥사가 보입니다. 커다란 나무 한그루가 보이시나요?
300년 넘은 이 나무에는 천주교 박해의 역사가 살아 있습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조선은 ‘자발적으로’ 서학, 그러니까 천주교를 받아들였지요. 하지만 선말의 쇄국정책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래서 정부는 이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철저하게 배척했습니다. 새 세상을 꿈꾼 지식인들과 민초(民草)들이 집단으로 순교했습니다.
이 나무는 서산 일대에서 서학을 믿다가 발각된 사람들을 매달아놓고 고문하던 나무입니다. 세월이 흐른 탓에 가지도 부러지고 늙어버렸지만 철삿줄 흔적은 희미하게 남아서 100년도 전의 일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뒤로 보이는 담장이 옥사(獄舍)입니다. 전하기로는 이 나무의 동쪽 가지에 철사를 묶고 사람들을 매달았다 합니다.
그런 사연, 그런 역사를 머릿속에 넣고서 이 낭만적인 읍성을 둘러보십시오. 바람이 차갑지만 가족, 친구, 연인과 어깨를 부딪치며 걷기에 정말 좋은 공간입니다.
마음 씻고 돌아오는, 개심사(開心寺)
해미읍성에서 나와서 운산쪽으로 길을 잇습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 개심사(開心寺)로 가고 있습니다. 물론 덕산으로 가면 온천이 있고, 태안으로 가면 낭만적인 겨울바다가 있지요. 하지만 과욕은 금물입니다. 바로 옆에 있으니까 거기까지 더 보고 가자고 하면 전국 일주를 하는 게 낫지요. 이번 여행은 개심사에서 맺기로 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팍팍한 세상, 마음 한번 열고, 열린 마음 한번 씻어보는 게 어떨까요.
해미읍성에서 5킬로미터 정도 운산쪽으로 가면 주유소와 맞붙어 개심사 이정표가 나옵니다. 우회전을 해서 시멘트포장길로 산 속으로 들어갑니다. 드문드문 잔설이 남았으니 운전을 조심하세요. 아무것도 없는 길 끝에 상점들이 나오고, 주차장이 나옵니다. 거기에 차를 대시고, 산길로.
우람한 송림 끝에 작은 바위 두개로 만든 입구가 나옵니다. 오른쪽에는 ‘開心寺’라 적혀 있고, 왼쪽에는 ‘洗心洞’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른 아침, 간월암에서 깨우친 견지망월(見指忘月)의 경구가 생각나는 순간입니다. 선입견을 버리고, 사물을 본질 그대로 볼 것.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깨끗하게 씻고 비울 것. 개심사는 그런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오르시기 바랍니다.
널찍한 돌들을 이어 만든 계단을 오릅니다. 적당히 힘들고 적당히 편안합니다. 눈을 하늘로 올리면 푸르른 소나무들이 겨울 하늘을 버티고 서 있습니다. 그 송림 끝에 절이 있습니다. 네모반듯한, 얼어붙은 연못이 나오고, 이파리 다 떨군 나무들이 나오고, 그 뒤로 절집들이 도열합니다. 님께서는 반드시 첫 번째 나오는 범종각 기둥을 보십시오.
고건축을 연구하는 한 교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 고건축은 지붕이 크고 무겁다. 그 무게를 견디려면 이렇듯 휜 기둥을 써서 무게를 분산시켜야 한다.” 그 말이 맞다면, 자연이 곧 과학입니다. 개심사에서 저는 과학을 배우고,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열었습니다.
마음을 씻고
용구녕 뒤넘이에서 시작한 여행이 마침내 끝을 맺었습니다. 자연을 보러 갔다가 역사를 접했고, 마음을 열라는 화두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겨울바람, 차갑습니다. 주말에 그 바람 속으로 들어가 보십시오. 거기에 님께서 혹시 잃어버렸을지 모를 마음 하나와 달 하나가 훨훨 날고 있을 겁니다.
- 서산에서 박종인 드림
::: 여행수첩
▶ 가는 길(서울 기준)
일정은 간월호→용구녕 뒤넘이→간월호→김좌진, 한용운 생가터→해미읍성→개심사 순.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29번도로 갈산 방면→서산방조제, 태안 방면→A지구 방조제 지나 간월도 이정표 보고 좌회전, 간월도. 간월도에서 영양굴밥으로 점심→간월도 나와서 좌회전, 천수만방조제 지나 B지구방조제 지나자마자 나오는 삼거리에서 좌회전→지하통로로 방조제 아래 횡단→용구녕 뒤넘이. 단, 길이 험하므로 차를 세워놓고 걸어갈 것→여기에서 1박. 안면도나 간월도에 숙소. 안면도에 펜션들 다수→다음날 해 뜨기 전에 간월도로 갈 것. 아침노을에 비치는 간월도 풍경이 장관이다→홍성IC쪽으로 가다가 갈산터널 지나 갈산교차로에서 우회전→김좌진 장군 기념관→한용운 선생 기념관 순으로 순례. 이정표만 따라가면 된다.→길을 나와서 우회전, 다시 큰 사거리에서 해미 방면 좌회전, 이하 해미 이정표 따라 갈 것→해미읍성 왼쪽으로 운산 방면→5킬로미터 가면 개심사 이정표. 우회전→개심사 관람 후 길 돌아나와 우회전, 서산IC 이정표 따라 갈 것→서해안고속도로 서산IC
▶ 묵을 곳
1.간월도에서 서산B방조제 방면으로 5분 거리 도희모텔 추천. 딱히 시설이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곳이든 쉽게 갈 수 있는 입지가 좋다. (041)662-7434
2.비싸고 멀지만 낭만과 바다를 함께 충족하려면 안면도 펜션들 추천. 펜션 정보는 www.anmyondo.org 참고
▶ 먹을 곳:간월도 영양굴밥
도시에서 흔히 보는 돌솥비빔밥에 굴을 덧보태 내는 영양밥. 양념간장에 비벼 먹는 맛이 일품이다. 반찬으로 어리굴젓과 미역국 등이 나온다. 1인 1만원.
▶ 서산 여행 정보:tour.chungnam.net/ctnt/seos/index.html
▶ 홍성 여행 정보:tour.hongseo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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