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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몽환의 땅, 단양 온달산성

by 白馬 2008. 9. 22.

       몽환의 땅, 단양 온달산성

  • ▲ 고구려 장군 온달이 신라군과 맞서 싸우던 산성이다. 온달은 이곳에서 신라군 화살에 맞고 전사했다. 이 가을, 산성으로 가지 않으시려나!(모든 이미지는 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로 보실 수 있습니다)

    청북도 단양(丹陽). 도담 삼봉이며 고수동굴 기타 등등 ‘전통적인’ 관광지다. ‘전통적’이라는 말이 가끔은 ‘낡았음’라는 말과도 통하기도 한다. 그래서 단양은 본질과 상관없이 젊은이들에게 외면 받는 관광지가 되었다. 이제는, 다르다! 이 가을 단양에는 몽환과 전설이 있다.


    낮에는 너무나도 예쁜 산성, ‘온달산성’에서 전설을 만난다. 밤이 되면 낮 동안 숨어 있던 풍경들이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나그네로 하여금 24시간 내내 숨을 막히게 만드는 도시, 단양 여행. 물론 이번에도 외계인 마시무스 뷁과 함께였다.(우리의 마시무스 뷁은 2005년 10월 우연히 알게 된 토성의 위성 이오(Io) 출신 외계인이다. 저렇게 생겨먹었다.)
     

    ::: 이정표의 도시, 단양

    일단, 아래에 있는 지도는 무용지물이다. 중앙고속도로 북단양IC에서 빠져나오면 그때부터 이정표가 사태(沙汰)를 이루니, 어지간한 길치가 아니라면 지도 없이도 자기 동네처럼 차를 몰고 다닐 수 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객을 맨 처음 반겨주는 것은 채석장이다. 5번 국도로 단양쪽으로 가는데, 왼편에는 정말 처참하게 잘려나간 산들이 맥을 이룬다. 필요하되 악(惡)이다. 그 산들을 깎아내 만든 시멘트가 대한민국을 재건하는 데 일등공신이었으니 필요였고, 훗날 환경에 눈을 뜨면서 그를 악이라 재단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이없고 덧없다. 하지만 대도시에 사는 여행객들에게 그 어마어마한 인공미 또한 볼거리이니, 크게 욕만 할 일은 아니겠다. 어쨌든! 이번 주 ‘몽환과 전설’ 일정은 이렇게 잡으면 되겠다. 1박2일.
     
    도담 삼봉 ⇒ 봉우산 활공장 ⇒ 태왕사신기 세트장 ⇒ 온달산성 ⇒ 그리고 1박 및 야경 감상 ⇒ 고수동굴 ⇒ 사지원리 태장이묘 ⇒ 선돌 ⇒ 집으로.
     
    도담 삼봉 이야기는 생략한다. 너무나도 유명한 관광지요, 물 위로 솟은 바위 봉우리 세 개에 정자가 걸쳐 있어 “눈 감고 찍어도 그림이 되는” 곳이다. 낮에는 잠깐 가서 구경하고 서둘러 온달산성으로 가시라. 아니면 그냥 방문을 생략. 삼봉의 진면모는 밤에 드러나니까. 신단양 읍내를 거쳐 고수대교를 지나 ‘온달산성’ 이정표를 따라 왼쪽으로 가면 이제 본격 여행이 시작된다. 다시 말하건대, 지도는 필·요·없·다. 네비게이션도 필·요·없·다. 다리를 건널 때, 그 모습을 잠시 기억해두시라. 팍팍한 콘크리트 철교가 밤이 되면 아래와 같이 요염한 분칠을 하고 나타난다. 믿어지겠는가. 이게 ‘다리’다.

  • ▲ 밤의 고수대교. 교통로로 쓰이는 다리가 아니라, 예술이다 예술


    ::: 하늘과 맞닿은 고원, 봉우산 활공장

    그 예술을 건너서 남한강을 따라 차를 모시라. 고수령이라는 작은 고개가 나오는데, 고개를 넘고 1㎞ 정도 가면 왼편으로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바로 깜빡이를 켠다. 오른쪽으로 나오는 시멘트 포장길로 들어간다. 길은 끝없이 하늘로 솟는다. 갈림길이 나오면 무조건 왼쪽으로 간다. 마을이 나오고 ‘활공장 가는 길’이라는 작은 이정표들이 계속 나타난다. 이 산길에도 이정표가 다 있다.

  • ▲ 하늘과 나그네 사이에는 오직 바람뿐. 봉우산 활공장이다

    길 끝 무렵은 교행이 어려운 좁은 길이다. 절대 속도는 내지 마시라. 갑자기 텅 빈 평지가 나타나고 그 뒤로 끝없이 산자락이 펼쳐진다. 평지 아무데나 차를 세우고 잠시 하늘을 감상한다. 패러글라이딩, 행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 단양군에서 만들어준 길이요, 활공장이다. 아래로는 남한강이 산줄기 사이로 흐르고, 여행 초입에서 봤던 채석장이 산줄기 중간을 잘라놓았다. 왼쪽으로 키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그 아래에 누군가가 묻혀 있는 무덤이 오롯하다.
     
    여기에서, 이 풍경이 맘에 들었다면 이 마을에 있는 ‘드림 마운틴’이라는 펜션을 찾아보시라. 이 까마득한 고원지대에 멋들어진 펜션이 숨어 있다. 펜션 단지에 구멍가게도 있으니 일용품, 음식, 술도 해결된다. 한 마디로 괜찮다.


    ::: 전설의 성(城) 온달산성

    그리고 온달산성으로 간다. 1400년 전, 온달이라는 고구려 바보 하나가 장군이 되어 싸우다 죽은 곳이다. 고집불통 평강공주는 “자꾸 울면 바보 온달한테 시집보낸다”는 아버지 평강왕(559~590) 말을 곱씹으며 자라나 진짜로 바보에게 시집을 갔다. 바보와 공주의 사랑, 그리고 고토(故土) 회복을 외치며 칼을 뽑아든 고구려 사내의 웅혼이 깃든 곳, 산성이다.
     
    아니, 온달산성이 단양에 있다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온달산성은 경기도 아차산성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내력은 이러하다. 단양 온달산성 주변 4㎞ 이내 47개 자연마을 가운데 36군데에 온달에 얽힌 전쟁 용어가 지명으로 쓰이고 있다. 장군목은 온달이 전투를 지휘했던 본부요, 면위실은 신라의 맹공격에 포위된 온달이 위기를 피한 곳으로 6·25때도 인민군이 그냥 지나갔다. 이때 피범벅이 된 옷을 갈아입은 곳은 자삽(자습·自習)이라 한다. 군간교가 있는 군간(軍看) 나루는 전쟁 당시 초소였다. 온달과 평강이 윷을 놀았다는 윷판바위도 남아 있다.
     
    정발1리 선돌은 성을 쌓는 온달을 돕기 위해 마고 할멈이 들고 왔다가 온달이 성을 버리고 후퇴했다는 소식에 땅에 꽂아버린 돌이다. 온달 전사 소식에 굳어버린 여동생이라는 말도 있다. 사지원리에는 태장(泰葬)묘가 있다. 죽은 온달을 묻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새마을 운동 때 길 뚫리고 돌을 거둬가 무척 초라했으나, 지금은 복원이 이뤄져 웅장하다. 몹시 가물었던 1994년, 마을에서 “장군 자리를 이제 더럽힐 터이니 비로 씻어달라”며 닭피와 개피를 뿌리자 30분도 안돼 비가 내렸다고 했다. 최근 발굴 결과 고구려 유적이 아니라 신라 유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전설이 퇴색됐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온달 무덤으로 믿고 있다.
     
    산성 아래 최가동(最佳洞·최개울) 마을은 고구려 병사들이 고향 식구들을 생각하던, ‘살아 생전 마지막 보는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했다. 병사들 피로 적신 피바위, 무기를 제련했던 쇠골, 지친 병사들이 대굴대굴 떠내려간 망굴여울, 전쟁 뒤 함께 남은 양국 부상병들이 마을을 이룬 안이골…. 대충 결론은 나왔다. 온·달·은·단·양·에·서·죽·었·다.
     

    ::: 산성 가는 길

    생수 한 병을 준비해서 그 산성을 올랐다. 산 아래 온달동굴이 있는데, 습기로 인해 곰팡내가 가득하다. 입구에는 지난해 TV 드라마 ‘태왕사신기’와 ‘연개소문’을 촬영했던 세트장이 있다. 제법 잘 만들어서, 아이들과 함께 들러볼만한 곳이다.
     
    산길은 인공적인 배려를 최대한 절제한 오솔길이다. 메뚜기, 여치, 쓰르라미, 그리고 어딘가에서 이들을 노리는 새들이 노래를 한다. 꽃들도 많다. 구절초, 벌꽃, 나리꽃, 엉겅퀴, 조팝나무…. 정말 여기가 전쟁터였던가?
     
    800m 남짓한 오솔길 딱 중간에 정자가 하나 나온다. 사모정(思慕亭)이다. 전사한 온달을 실은 관이 꿈쩍도 않자 “생과 사가 갈렸으니 이제 움직이시라”며 공주가 통곡했다는 자리다. 너무나도 한적한 오솔길을 이어간다. 조금 급한 길에는 반드시 밧줄로 난간을 만들었으니, 막말로 ‘삐딱구두’를 신고도 오를 수 있는 길이다.
     
    시끄럽기 짝이 없는 풀벌레 우는 소리를 벗삼아 깔딱고개를 지나자, 1400년을 버틴 웅장한 석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직선이라고는 보이지 않던 대자연의 끝에서 돌을 촘촘히 쌓은 수직 성벽이 나타난 것이다. 그때의 갑작스러움과 긴장감이란! 머릿속에서 예술, 전설, 마법 따위의 단어들이 소용돌이를 쳤다.

  • ▲ 대자연의 끝에서 우아한 곡선과 직선으로 구성된 예술을 만났다. 온달산성이었다

    나무로 만든 계단을 올라 성 안으로 들어가니, 이건 거인의 정원이다. 웅장한 석벽으로 푸른 초원을 에워싸고, 거기에 거인 하나가 온갖 꽃들을 심어놓았다. 녹색과 흰색 융단이 담쟁이 덮인 성 안을 가득 메웠다. 군사 요새가 아니라 정성 들여 만든 정원이다. 그것도 아주 멋진 강변 풍경을 가진. 9년 전에 산성에 왔을 때는 키 작고 귀한 하늘나리꽃이 많았었는데, 이 가을에는 몽땅 사라지고 없었다. 필시 꽃을 귀히 여기는 이기주의자들이 뿌리째 훔쳐간 탓이리라.
     
    벽을 따라 걸었다. 혹시 모를 전쟁의 흔적을 찾고자 함이었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민족이 이를 갈며 싸우던 흔적 말이다. 하지만 꽃과 나비와 새와 바람과 하늘 뿐, 아무도 기억 못하는 옛날 일. 오직 바보와 공주의 사랑만이 남아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래서 참으로 근사한 소풍이었다.
     

    ::: 마늘 진미(珍味)

    산을 내려오니, 제법 몸이 고단하다. 자, 숙소를 정하고, 맛집을 찾는다. 단양 특산은 뭐니뭐니해도 마늘이다. 그 맵싸한 마늘로 단양 사람들은 온갖 요리를 개발해 놓았다. 마늘 샐러드, 마늘 무침, 마늘 구이 기타 등등. 그리고 이들을 몽땅 한 상에 내놓는 마늘 정식이 식당마다 다 있다. 버스 터미널 부근이 그 맛집들의 소굴이다. 아래 여행수첩에 몇군데를 적어놓았는데, 일인분은 절대로 팔지 않으니 유념하시라.
     

    ::: 밤, 그리고 몽환(夢幻)

    밤이 되었다. 고수대교로 산책을 떠난다. 낮에 건넜던 그 다리, 그 팍팍한 다리가 빛의 예술로 변신했다. 오색영롱한 빛이 광채를 수시로 바꾸며 너울너울 춤을 춘다. 어찌 이렇게 화려한 다리를 그냥 차로 건널 수 있으랴. 좁은 인도를 따라 빛 속으로 들어간다. MP3라도 있다면 귀에 꽂고 음악을 곁들여 산보를 한다. 기름값도 오르고, 환율도 팡팡 뛰지만 이 다리만은 조명을 거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 ▲ 밤에만 물이 내려오는 양백폭포

    그리고 눈을 돌려 오른편 강 건너를 보면 뭔가 희끄무레한 물체가 눈에 들어온다. 양백폭포다. 밤에만 물을 퍼붓는 인공폭포다. 눈부신 조명 속에 세 줄기 폭포가 물을 쏟는다. 뱀 같기도 하고, 용처럼 보이기도 한다. 조명이 없었다면 다리도 폭포도 없는 무덤덤한 도시였을 단양이 그렇게 화려하게 변한다.
     
    다음, 어제 처음 들렀던 도담삼봉으로 간다. 이 또한 맑은 조명을 받으며 수면에 산그림자를 비치고 있다. 가끔은 불이 꺼지기도 하는데, 그때는 승용차 전조등을 켜서 조명을 대신하면 된다. 아래 사진은 불 꺼진 삼봉에 승용차 전조등을 비추고 찍은 모습이다. 근사하지 않은가. 때마침 보름달이 떠서 거대한 풍경화를 만들어주었다. 자, 여기에서 첫날 일정은 끝. 과욕은 금물이니, 하루에 다 보려는 자는 반드시 체한다.
     

    ::: 태장이묘, 선돌, 고수동굴

    단양에 왔는데 고수동굴을 아니 볼 수 없다. 각종 동란 때마다 사람들이 피란을 떠나 숨었던 동굴이다. 고수동굴 여행은 탐험과도 비슷하다. 좁은 길, 너른 길, 수직 길, 호수 기타 등등 그 추운 동굴 속에서 땀이 다 날 정도다. 아이들과 함께 가면 흥미진진한 여행이 될 수 있다.

  • ▲ 온달이 묻혔다는 사지원리 태장이묘. 최근 발굴 결과 신라 유적으로 밝혀졌다

    태장이묘와 선돌은 온달산성 가는 길에 나오는 가대교 건너에 있다. 사지원 마을과 정발1리 마을을 찾으면 된다. 딱히 볼 거리는 없으나, 온달의 전설을 완성하려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그 길을 죽 이으면 중앙고속도로로 빠지는 대로와 만나게 된다. 초입에서 봤던 채석장이 길 양편으로 들어서 있다. 그렇게 여행을 끝낸다.

    또 다른 관광지 영월과 평창이 지척이지만, 욕심은 부리지 마시라. 대한민국은 넓고, 주말은 다음주에 또 온다. 마시무스 뷁은 여행 내내 말이 없었다. 산성도 하늘이요, 활공장도 하늘이요, 그리고 밤의 몽환이 내내 향수를 불렀다고 했다.

  • ▲ 도담삼봉 야경


    ::: 여행수첩

    ▶ 가는 길:중앙고속도로 북단양IC에서 나와 단양쪽으로 빠진다. 이후에는 지도 자체가 필요없다. 과분할 정도로 이정표가 많다.

    - 온달산성:이정표 따라 군간교를 건너 우회전. 가기 전에 이미 연개소문 촬영 세트장이 보인다. 입장료 어른 5000원, 어린이 2500원. 그 값을 한다.

    - 태장이묘·선돌:가대교를 건너 직진하면 태장이묘가 있는 사지원리가 나온다. 태장이묘는 사지원리 마을 입구에서 4㎞ 정도 들어가면 길 옆에 보인다. 선돌은 사지원리에서 2㎞ 정도 가면 왼편에 있다. 구 도로와 신작로로 나뉘는 길이 나오는데, 구 도로로 들어갈 것. 고추밭 너머 산등성이에 있다.

    ▶ 먹을 곳:터미널 부근에 있는 온누리회관 추천. 마늘보쌈밥을 비롯해 여러가지 마늘 요리를 낸다. 친절하다. 1인분 1만 원. (043)423-3311. 터미널 건너편 고수대교 앞에 올갱이해장국을 파는 식당이 몇군데 있다. 남한강에서 잡은 올갱이에 된장을 풀고 시금치를 넣어 찌개를 만든다. 6000원. 어디든 맛은 비슷하다.

    ▶ 묵을 곳: 1.읍내를 원한다면 터미널 옆 강변에 있는 호텔 럭셔리 강추. 단양 사람에겐 미안하지만, “도저히 단양이라고 믿을 수 없는” 깨끗하고 예쁜 부티크 호텔이다. 영화, 드라마 촬영을 나온 연예인들이 단골로 묵는 호텔. 일반실 1박 5만5000원. 주말에는 뛴다. (043)421-9911, www.hotel-luxury.co.kr 2.한적하고 은밀한 여행? 앞서 말한 드림 마운틴 강추. 산꼭대기의 은밀한 숙소다. 주중 6만원부터. 011-481-8324, www.dreammount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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