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나는 인간의 앞잡이로 동족을 배신했습니다”
섬진강 별미 기행 '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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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은어는 돌에 낀 이끼만 먹고 살기 때문에 미끼를 이용한 낚시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인간들은 ‘놀림낚시’라는 낚시법을 고안해냈다. 미리 잡아둔 은어 주둥이에 낚시바늘을 끼운다. 그리곤 같은 낚시줄에 연결된 세발갈고리바늘을 배지느러미에 고정시킨다. 낚시줄에 연결된 은어를 또다른 은어가 있는 강바닥 바위 뒤로 침투시킨다. 이 침투 역할을 맡은 게 바로 나였다.
물이끼를 뜯던 나의 동료 은어는 나를 무섭게 공격했다. 타고난 본능에 따라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내 동포에게는 미움도 서운함도 없다. 아래에서 치솟으며 나의 배를 들이받으려는 순간, 불쌍한 나의 동료는 세발갈고리바늘에 코를 꿰이고 만다. 인간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낚시줄을 끌어당긴다. 친구를 이용해 친구를 잡는 낚시법. 그래서 일본에선 ‘도모즈리’(友釣)라고 부른다. 잔인한 이름 아닌가.
인간이 우리 은어를 잡으려 기를 쓰는 건 그만큼 우리가 맛있기 때문이다. 섬진강 같은 1급수에서 물이끼만 먹고 살기에 비린내나 잡내가 없다. 대신 독특한 수박향이 몸에서 향수처럼 배 나온다. 인간은 우리를 ‘민물고기의 귀족’이라고도 부른다. 오죽하면 영남의 한 선비가 “은어를 더 이상 먹지 못하고 죽는 건 괜찮으나 상놈 입에 들어갈까 슬프다”고 유언까지 했겠는가.
작년 9월에서 11월 사이로 기억한다. 나는 섬진강 상류 맑은 물에서 고아로 태어났다. 실은 우리 은어는 모두 고아다. 바다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우리 부모들은 알을 낳고 정액을 뿌린 뒤 사망한다. 은어나 연어처럼 자기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 모천회귀어들의 공통된 운명이기도 하다.
강물이 차가워지고 겨울이 다가올 무렵엔 바다로 이동했다. 바다에서 겨울을 나면서 나는 치어(稚魚)로 컸다. 댐으로 봉쇄된 하천에서는 댐으로 형성된 깊은 호수 밑바닥에서 겨울을 나는 은어도 생겼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한 나의 친척들은 ‘육봉형(陸封型) 은어’라 불린다.
4월쯤 되자 바닷물과 강물의 온도가 비슷해졌다. 문득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집념에 사로잡혔다. 나는 고향을 향해 강을 거슬렀다. 자석이 쇠를 끌어당기듯.
뜨거운 여름은 나의 청춘기였다. 섬진강 세찬 물살에 매끈하게 씻긴 호박돌에 붙은 물이끼를 먹으며 하루 1.5㎜, 0.37g씩 자랐다. 살이 오르고 단맛이 최고로 높아지는 이때가 우리 은어가 가장 맛있는 시기라고도 한다.
섬진강과 화개천(花開川)이 만나는 경남 하동에서 잠시 방심한 사이, 낚시꾼에 붙들리면서 나는 인간의 앞잡이로 치욕적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결국 나도 인간에게 먹히는 신세가 될 것이다. 은어낚시꾼들은 갓 잡아 힘 좋은 은어로 계속 교체해가며 낚시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은어 요리를 다양하게 개발했다. 굵은 소금을 솔솔 뿌려 센불에서 멀찍이 떨어뜨려 천천히 구워야 수박향과 담백한 살을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회로 먹고 튀겨도 먹으며 매운탕도 끓인다. 은어밥이란 별미도 있다. 쌀을 씻어 밥을 짓다가 밥물이 줄어들면 은어 서너 마리를 머리부터 밥에 박아 넣은 뒤 뚜껑을 덮어 뜸 들인다. 살만 발라내 밥과 섞어 양념장을 비벼 먹는다. 멋대로 요리하시라. 쟁반에 담기든, 밥그릇에 처박히든 나는 동포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담담하게 생을 마감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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