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절 느린 걸음으로 그대와 함께 황홀한 곡선의 길을 걷습니다.
창창한 초록의 여운이 물결치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대나무가 가지를 뻗어 하늘을 막고 병풍처럼 드리우고 있는 수직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서걱거리는 댓잎과 그윽한 죽향을 묻힌 바람이 이는 대나무 숲으로….
돌돌돌 흐르는 개울물에 장단 맞춰 뽑아내는 시조가락이 들리는 툇마루에 앉습니다.
선비들의 풍류가 가득해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정자에….
발길 닿는 곳마다, 시선 닿는 곳마다 정겨운 풍경화가 펼쳐지는 고을이 있습니다.
그 속에 서서 꿈꾸듯 가만히 눈을 감아 봅니다.
시계바늘이 슬로모션으로 움직이는 담양의 풍경이…. 가슴 속 깊이 스며듭니다. 하늘 가득 초록물이 차 오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우리나라에게 가장 아름다운 길로 유명하다
호남고속도로 백양사IC에서 나와 장성읍을 지난 뒤 15번 지방도를 달리다보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유명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과 조우하게 됩니다. 누구든 이 길에 들면 하릴없이 걸음을 멈추어서게 됩니다. 무려 8.5km에 이르는 국도변 양쪽에 자리잡은 아름드리 가로수 길은 마치 장난감병정들이 질서정연하게 사열하는 모습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장난감 나라의 꼬마열차 같기도 합니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지나는 객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듯 일렁입니다. 함께 걷는 연인들의 모습에도, 쟁이 끌고 가는 촌로의 뒷모습에도 초록의 낭만이 줄지어 지나갑니다. 그림 같은 풍경을 잊어버릴세라 사진도 찍어놓습니다. 영화 ‘가을로’ 의 마지막 장면이 떠 오릅니다. 주황빛의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연초록으로 바뀌었을 뿐, 필름 속 낭만이 그대로 펼쳐집니다. 영화 속 주인공인 민주(김지수 분)이 이 길을 걸으며 말했지요.
“길 위에 길이 만들어지는 거겠죠.”
정말로 그렇습니다. 이 길을 드는 누군가에겐 사랑의 길로,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리움의 길로, 그리고 그 길에 새로운 기억들이 추억을 덮으면서 또 다른 길이 만들어질 테니까요.
竹 늘어서 있는 풍경 … ‘수직의 세계’ 로의 초대
대나무골 테마공원
대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결, 그리고 햇빛을 느껴보자
메타세쿼이아에 취해 대숲에 듭니다. 땅끝까지 길게 뿌리를 내리고, 하늘 끝을 관통하는 듯 빽빽하게 쭉 뻗어 내린 대나무 숲인 ‘대나무골 테마공원’ 입니다. 워낙 빽빽한 대숲이라 보통 들어가기는 힘들지만, 이 곳은 일반인들이 출입하기 쉽게 공원으로 조성되었습니다.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는 길은 수직의 세계 입니다. 20m 이상 높이의 굵은 대숲에 들어서 있는 숲에 들어서면 자신이 한없이 낮아짐을 느낍니다. 온 몸을 감싸는 죽향 앞에선 값비싸게 주고 산 명품 향수의 향기도 금세 사그라져버립니다. 대숲 사이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결을 느끼며 걸어봅니다.
대숲 산책로(좌)와 자세히 들여다본 대나무(우)
푸른 댓잎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은 에메랄드빛처럼 곱기만 합니다. 3개 코스의 산책로도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곳곳에 드라마 ‘여름향기’ , ‘다모’ , 영화 ‘청풍명월’ 등 촬영사진을 담은 안내판도 보입니다. ‘싸아악~ 싸아악’ 연초록 융단처럼 펼쳐져있는 대나무숲에 서면 댓잎들이 바람결에 부딪히는 소리 마냥 일상에 지쳐있던 심신에 ‘싸아악’ 청량감을 불어넣어줍니다.
맑은 영혼을 마신다! …죽로차 한 잔의 여유로움
죽녹원
죽녹원은 "사랑이 변치 않는 길" 등 여러가지 재미있는 테마로 꾸며졌다
대나무 숲에 빠진 김에, 죽녹원도 둘러봅니다. 대나무골 테마공원보다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인 죽녹원. 영산강의 시원인 담양천을 끼고 있는 향교교를 지나면 죽녹원으로 가는 돌계단이 보입니다. 벌써부터 댓잎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대바람이 불어옵니다. 분죽, 왕대, 맹종죽 등의 대나무가 죽죽 뻗어있던 5만여 평의 부지에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운수대통길 등 색다른 이름의 산책로 8개를 만들었습니다. 곳곳에 팬더곰, 우마차모형, 팔각대나무 정자 등의 휴식공간을 마련하였고 생태 전시관에서는 다양한 대나무 제품과 대나무분재 등 생태자료를 관람 및 구입할 수 있습니다. 대나무 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 한 잔에 목을 적셔봅니다. 대나무와 댓잎이 풍겨내는 향기는 마치 영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거센 비, 바람과 싸우며 끝내 소중한 숲으로 거듭나다
관방제림
아름다운 숲 관방제림
400년 전, 조선 인조 때 담양천의 사나운 물길을 막기 위해 한 그루, 두 그루 나무를 심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무는 거센 비,바람과 싸우며 철종에 이르러서는 거대한 숲이 되었고, 오늘날에는 ‘관방제림’ 이라는 이름으로, 그 풍치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져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 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숲은 상류 남산리 동정자 마을서부터 팽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등 고목들이 하류의 대전면 강의리까지 장장 6km에 걸쳐 두터운 그늘을 드리워 줍니다. 특히나 동정자마을부터 천변리 구간 2km 의 풍치가 가장 뛰어납니다. 여행객들에겐 멋진 관광명소인 ‘관방제림’ 은 여름철 담양 사람들에겐 절대 휴식의 공간입니다. 한 여름 땡볕을 피해 놀러 나온 사람들은 의자나 돗자리를 펴고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바둑을 두기도 한답니다. 과연 선풍기를 틀 필요도 없이 불어오는 바람으로 등줄기가 시원해짐을 느 끼게 될 정도입니다.
‘돌돌돌’ 흐르는 계곡에 선 정자 …탐닉할 만한 산수화 펼쳐지다
소쇄원
소쇄원의 백미는 광풍각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다
담양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또 있지요. 바로 보길도의 부용동 원림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별서정원’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소쇄원입니다. 여기서 소쇄(瀟灑)라는 것은 상쾌하고 깨끗하다는 뜻이지요. 계곡, 연못, 돌, 화목 등 자연 그대로의 풍취 속에 인공의 정자가 다정하게 조화를 이루는 소쇄원은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하자 제자였던 처사 양산보가 벼슬에 대한 꿈을 버리고 자연 속에 살기 위해 짓게 되었답니다. 후에 팔지도 말고 어리석은 후손에게 물려주지 말라는 양산보의 유언에 따라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자연의 풍치와 인공의 미가 조화를 이룬 소쇄원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봉대와 광풍각 그리고 제월당이 있는데 긴 담장이 동쪽에 걸쳐 있고, 북쪽의 산사면에서 흘러내린 물이 담장 밑을 통과하여 소쇄원의 가운데로 흐릅니다. 과연 탐닉할 만한 산수화가 펼쳐집니다. 햇빛이 잘 드는 산기슭에 자리한 ‘제월당’ 아래에 있는 광풍각은 소쇄원의 백미입니다. 계곡 물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높이에 자리한 광풍각은 바로 주인과 방문객들이 온갖 풍류를 벌였던 곳이지요. 광풍각에 앉으니 과연 무릉도원이 예인가 싶습니다. 사실 소쇄원의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그저 한낱 나그네의 몸으로 감히 툇마루 난간에 걸터앉아 잠시 쉬었다 가게 해주기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니까요.
잘 닦은 거울 속에 저절로 그려진 병풍…그림자도 예서 쉬어가노라
식영정
누각 뒤쪽 낙락장송(좌)와 식영정 아래에 있는 송강 정철 가사의 터(우)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의 4대 가사 중 ‘성산별곡’ 을 탄생시킨 식영정도 가봅니다. 주변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뜻의 식영정은 주변 낙락장송과 짙푸른 물색의 광주호가 한 눈에 보이는 언덕에 서 있습니다. 정자로 올라가는 돌계단 아래에는 송강 정철 가사의 터라는 석물도 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뗄 떼마다 서정적 정경이 펼쳐지니 경치에 푹 빠져 함께 모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던 선인들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있을 듯 합니다. 식영정 담 위 기왓장에 낀 이끼와 뒤로 수령 수 백 년이 넘는 소나무가 예스러운 운치를 더합니다. 툇마루에 올라 양반다리를 하고 앉습니다. 과연 선경입니다. 늦봄에 나른한 오후, 누각의 마루 위에 앉아 옛 시인 묵객의 풍류를 떠올리며 시조 한가락 읊어 보는 건 어떨까요.
『매창 아침볕의 향기에 잠을 깨니/ 산늙은이의 할 일이 아주 없지도 아니하다/ 울타리 밑 양지 편에 오이씨를 뿌려 두고, 김을 매고, 북을 돋우면서 비 온 김에 가꾸어 내니/ 짚신을 죄어 신고 대나무 지팡이 를 흩어 짚으니, 도화 핀 시냇길이 방초주에 이어졌구나/ 잘 닦은 거울 속에 저절로 그린 돌 병풍, 그림자를 벗삼아 서하로 함께 가니/무릉도원이 어디인가, 여기가 바로 그곳이로다.』
-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 중 봄 풍경-
《떠나고 싶다면?》 ◎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 가는 방법 - 중부고속도로 → 호남고속도로(담양IC) → 금성면 - 서해안고속도로 → 고창IC → 장성 → 담양IC → 메타세쿼이아 길 자세히 보기
◎ 담양 죽녹원 가는 방법 광주 두암동 정류소 → 국도 15호선을 따라 담양정류소에서 국도 29호선을 이용, 향교 건너편에 위치 → 죽녹원 자세히 보기
◎ 담양 대나무골 테마공원 가는 방법 담양 IC → 24번 국도 순창 방향 → 약 5Km 진행 → 석현교 건너 우회전 → 마을 앞 좌회전 2Km → 대나무골 테마공원 → 대나무골 테마공원 자세히 보기
◎ 담양 소쇄원 가는 방법 호남고속도로 → 동광주 I.C → 광주로 진입→ 광주교도소 방향 → 887번 지방도로 (5.3km쯤 남하) 식영정 앞 →(1.2km) 좌회전 → 250여m → 소쇄원 → 소쇄원 자세히 보기
◎ 담양 숙박 및 먹을거리 담양읍내로 가면 그린파크 모텔(061-383-5858)등 새로 리모델링한 모텔들이 있다. 모텔이 아니라도 담양 호텔(061-380-5000)도 괜찮다. 담양의 별미는 단연 대통밥과 떡갈비. 특히 남도음식대축제에서 대상을 차지한 덕인관(061-381-3991)의 떡갈비의 맛은 단연 최고다. 대통밥은 죽녹원 입구에 있는 향교 죽녹원 (061-381-9596)이 담백하면서도 깔끔하다. 죽순회도 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