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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나무에서, 사람으로 치자면 환갑을 두어 번 넘겼을 늙은 나무에서, 막 씨앗에서 얼굴을 내민 듯한 새싹이 돋는다는 건 얼마나 경이로운가. 만약 사람에게도 해마다 봄이 오면 아이 같은 손이 돋아나 새로운 삶을 살아낼 수 있다면, 세상의 모습은 지금과 다를 것이다. 전쟁도, 감옥도, 죄 지을 사람도 죄 줄 사람도 없을 것이다.
- ▲ 가막살나무의 고운 손 위로 햇살 한 줌.
-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류는 나무처럼 살아갈 운명을 타고나지 못했다. 모든 동물이 그러하듯, 인간이 목숨을 부지한다는 것은 다른 생명에 빚지는 일이다. 스스로를 돌보는 능력에 있어서 인간은 동물 가운데서도 가장 약하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나약함이 문명을 이루었다. 어떤 의미에서 인류 문명의 발달사는 자연과 인간의 전쟁사다. 털마저도 없는 원숭이들의 나약함이 죽기 살기로 자연을 향해 싸움을 걸게 만들었다. 무릉도원이라는 곳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인류는 지금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량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먹을 양의 1.5배나 될 만큼. 그런데도 8억 명의 사람들이 일상적인 굶주림에 고통 받는다. 인류의 발명품 가운데서 그래도 쓸 만하다는 ‘민주주의’의 성능은 고작 이 정도다.
해마다 이맘때면 낯이 붉어진다. 며칠 동안 수락산 진달래 꽃밭을 헤맨 탓이라고 딴청을 피워 보지만, 중랑천을 건너 집 앞의 개나리꽃을 마주치면 더는 속일 수 없다. 딱 막걸리 세 잔. 개나리가 내게 묻는다. 매연에 소음에 악취에 시달리면서도 이렇게 꽃피는 내 삶이 욕되 보이느냐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쩌자고 개나리는 저리도 제멋대로 고운가. 사람들이 ‘개’나리라고 하건 말건.
해마다 이맘때면 지상에는 하늘의 별만큼 태양이 떠오른다. 나뭇가지마다 풀씨마다 돋아나는 새싹들. 저마다 태양의 분신이다. 적자와 서자의 구분 따위는 없다. 그들 모두 ‘봄비’라는 지구와 태양의 부드러운 포옹으로 태어난 빛나는 존재들이다.
- ▲ 서어나무, 느티나무, 때죽나무의 연초록 물결이 숲 사이로 흐르는 개울과 함께 흐른다.
- 하늘같은 마음으로 봄을 맞는 나무들
해마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숲이 있다. 경상남도 함양의 상림(上林). 그곳의 새싹들은 꽃보다 더 곱다. 물론 세상 모든 새싹들이 다 그렇지만, 그것의 아름다움에 눈 뜨게 해 준 숲이 바로 상림이다.
상림을 처음 만난 건 지금은 고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가 아장 걸음을 걸을 때다. 그때 아이와 함께 걸으면서도 상림의 진면모를 몰랐다. 지금도 조금밖에 모르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오로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라는 사실과 그 숲을 일군 사람이 고운 최치원이라는 점이 관심의 초점이었다. 숲 자체보다는 숲의 이력이 더 크게 보였던 것이다. 그 후 몇 번의 걸음이 이어지면서 조금씩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숲이, 하다못해 가시덤불도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상림의 존재감은 특별했다.
늙은 나무 젊은 나무, 큰 나무 작은 나무들의 조화로운 공존. 사람이 가꾼 여느 숲은 물론 자연림에서도 보기 드문 모습이다. 이들도 경쟁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조금이라도 빛을 더 얻기 위해서. 그렇지만 그들은 구불구불 뒤틀릴지언정 저마다 적절한 위치와 높이에서 함께 살아간다. 숲 가장자리의 층층나무는 조금 느긋하게, 숲 사이로 흐르는 개울가에는 느티나무와 때죽나무들이 길게 허리를 늘어뜨리고 물결 위로 잎을 찰랑댄다.
- ▲ 벚꽃과 어우러진 신록의 상림 숲.
- 숲 속으로 들면 아름드리 서어나무와 졸참나무 느티나무가 또 다른 하늘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그야말로 하늘같은 마음으로 봄을 맞는다. 이들보다 키가 작은 가막살나무 때죽나무 쪽동백나무 단풍나무 나도밤나무들이 잎을 다 내어놓을 때까지 기다려 준다.
큰키나무들이 살짝 눈을 뜰 무렵 가막살나무는 제 몸통보다 더 넒은 잎을 펼쳐 놓는다. 함박웃음 같은 잎사귀를 까만 몸통 옆으로 내민 모습은, 숨바꼭질하는 아이가 머리 다 내놓고 꼭꼭 숨었다고 혼자서 흐뭇해하는 것 같다. 해맑은 소년의 얼굴 같은 나도밤나무 잎이 웃는 모습은 또 어떤가. 실핏줄 같은 잎맥 사이로 하늘이 다 비친다. 쪽진 머리를 한 여인의 달걀 같은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쪽동백나무 잎은 함빡 햇살에 수줍다. 보일 듯 말 듯 꽃을 매달고 돋아나는 단풍잎의 홍조 띤 얼굴은 가을 단풍잎보다 더 곱다.
참나무과보다 조금 먼저 얼굴을 내미는 느티나무 잎은 몸태의 우아함 만큼이나 섬세하다. 작설(차잎)처럼 조심스럽게 내미는 잎은 갓난아기의 손 같다. 여리면서도 꼴은 다 갖췄다. 여럿이 어울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다. 다 자란 모습은 조금 우악스러워 보이는 졸참나무 잎도 새싹 때는 전혀 그렇지 않다. 솜털 보송보송한 해사한 잎들이 여러 겹 포개진 모습은 꿈꾸는 아기의 꼼지락거리는 손 같다. 가만히 귀 대어 보면 꿈길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이즈음 상림 숲속으로 드는 일은 생명의 고갱이 속을 꿈길인 양 헤매는 일이다.
- 1100살이나 된 인공림이면서도 자연림인 숲
- ▲ 늙은 나무 젊은 나무, 큰 나무 작은 나무도 똑 같이 갓 태어난 아이처럼 봄을 맞는다.
- 상림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숲이다. 지금으로부터 1.100여 년 전,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함양 태수로 있을 때 함양읍 사이를 흐르는 뇌계를 지금의 위천으로 돌리고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성했다는 숲이다. 동국여지승람 같은 옛 문헌에 전해오는 이름은 대관림(大館林)이었으나, 숲 사이가 끊어져 상·하림으로 나뉘어졌다가 하림에 마을이 들어서는 바람에 상림만 남아 이름도 그리 불리게 된 숲이다. 본디는 길이가 십 리였다 하나 지금은 절반 이상 줄었다. 그래도 길이 1.6킬로미터에 폭은 수십 미터에서 200여 미터에 이른다. 면적은 약 12헥타르로 상당히 넓은 숲이다.
상림은 나이가 1100살이나 된 인공림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1100살 먹은 나무를 찾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한 그루만 홀로 떨어져 사는 용문사 은행나무 같은 경우가 그 정도의 나이를 추정한다. 상림처럼 인공의 흔적이 거의 지워져 자연림에 가까운 숲에서 그런 나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숲은 개체 중심의 삶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숲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였으나 이제는 목숨을 내려놓은 사운정 앞의 졸참나무가 350살 정도라고 추정하는데, 이를 기준으로 하면 약 350년을 주기로 숲의 천이 즉 생로병사를 거듭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상림의 경우는 인공림이면서도 자연림에 가까운 상태라는 것이 하나의 딜레마로 보인다. 안정된 형태의 극상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굴참, 갈참, 졸참 같은 참나무과와 서어나무 느티나무 등이 주종이기는 하나 이외에도 40여 종의 떨기나무를 포함하여 나이와 크기가 다른 120여 종이 함께 살아간다. 대체적으로 나무의 건강 상태는 최상이 아니다. 이럴 경우 솎아베기나 식재 같은 인간의 간섭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최선이라는 확신이 어려울뿐더러 그렇게 되면 상림의 매력은 거의 사라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허허벌판이 되어 새로이 시작하는 단계를 거친다 하더라도 그냥 자연의 섭리에 맡기는 것이 최선일 듯싶다.
- ▲ 서어나무의 수줍게 고운 새싹. 지상에 뜬 태양의 분신.
- 상림의 매력은 독자적 존재감이다.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 남해 물건의 방풍림, 대관령의 소나무숲도 매력적이긴 하나 단순림이거나 부차적이다. 내소사를 뺀 전나무숲이나 남해(바다)를 뺀 방풍림은 매력의 상당부분을 잃을 것이다. 상림처럼 심미적, 역사적, 생태적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숲은 드물다.
상림의 또 다른 매력은 편안하고 덤덤하다는 것이다. 함양읍에서 빨리 걸으면 10여 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동네 숲이자 공회당 같은 곳이다. 그렇지만 숲에 들어서면 완전히 별유천지다. 위압적이지도 않다. 다가오는 누구나 활짝 가슴으로 안아준다. 사람의 손길도 이 정도 되면 하늘의 일에 끼어들어도 좋을 것 같다. 과연 고운(孤雲) 최치원이다. 그러고 보니 이 숲 이름을 최치운 선생의 호를 따서 ‘고운 숲’이라 부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역사와 실제에도 부합하고 어감도 딱 좋지 않은가. 차라리 동네 사람들의 입말대로 ‘윗숲’이라 하든지. 이런 숲에 그저 편의상 붙인 상림이라는 이름은 좀 그렇다. 함양 동네만의 숲이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 모두가 좋아하는 숲이 된 지금은 더더욱.
- ▲ 하늘로 스며드는 때죽나무 잎. 때죽나무 잎으로 스며드는 하늘.
- 상림에서 나와 상림을 보면 ‘다볕[咸陽]’이라는 뜻의 이 고을 이름이 이 숲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 고운 빛이 이곳에 다 모여 있는 듯하다. 숲 전체가 그대로 커다란 꽃 같다. 왕안석(王安石)이 노래한 것처럼 ‘녹음유초승화시(綠陰幽草勝花時)’, 꽃보다 아름다운 신록이 거기 있다.
상림은 숲도 나무도 거기에 깃들어 사는 풀도, 지난해에 떨어진 낙엽도 아름다운 그런 숲이다. 상림 숲에 가면 ‘사람답게’ 사는 게 무언지는 잘 모르겠지만, 덜 부끄러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은 보인다.
짧은 인터뷰
“상림은 함양사람들의 정신적 고향입니다”
- 상림 숲의 실제에 대해서는 함양 사람의 입을 통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상림을 찾는 외지인들에게 숲 해설을 해주는 문화관광해설사 전양순씨를 통해서 상림 숲의 다양한 면모를 알아본다.
―상림 숲은 어떤 곳인가?
“들어서는 입구부터 너무나 착한 곳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을 돈으로 셈하는 세상에 입장료는 물론 주차비도 무료이고 온종일 간섭받지 않고 편안히 자연의 품에서 뒹굴어도 좋을 곳이 어디 또 있을까? 누구에게나 내 집 정원 같은 숲이다.”
―함양 사람들에게 상림 숲은 어떤 의미인가?
“함양사람들이 즐겨 하는 말이 있다. 외지에 나가 사는 함양 사람들에게는 ‘친구보다도 더 그리운 게 상림’이라고. 함양 사람들에게 상림 숲은 심신을 편안히 누일 수 있는 곳이다. 숲길을 걸으면서 일상의 고단함과 상념을 푸는 곳이다. 그래서 숲을 나오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상림 숲의 특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으로 그 역사가 1100여 년이다. 온통 낙엽활엽수림으로 아이들이 맘껏 뛰어 놀거나 맨 발로 걸어도 다칠 염려가 없다. 평지의 숲인 것도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요인이다. 노인들이나 휠체어가 다니는 데도 아무런 불편이 없다.”
―상림 숲에 서식하는 식물의 종류와 수는?
“초본 목본 합쳐 120여 종의 6만여 그루다. 3대 주요 수종은 참나무과(떡갈과 신갈은 없다), 서어나무, 느티나무다. 이름도 예쁘고 특이한 사람주나무, 가막살나무, 쪽동백나무, 국수나무, 대팻집나무, 싸리나무, 윤노리나무, 이팝나무, 작살나무, 자귀나무 등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상림 숲을 찾는 사람들의 수는? 그리고 계절별 분포는?
“연간 60만 명 정도다. 2007년도엔 100만 명 이상이 다녀간 것으로 통계가 잡혀 있다. 함양의 상징물과 특산물을 테마로 한 물레방아축제와 산삼축제를 상림에서 하기 때문에 더 증가된 것으로 보인다. 연중 절정은 연꽃이 피는 7월, 석산이 피는 9월, 단풍과 낙엽 길을 즐기는 10월이다. 봄과 겨울은 숲 마니아들이 많이 찾는다.”
상림관광안내소 055-960-5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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