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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남난희의 느린 산 지리산둘레길] "반찬 없다"는 민박집 할머니, 밥상 받아 보니 12첩 큰상

白馬 2024. 3. 13. 06:33

 

남난희는 1984년 여성 최초로 태백산맥을 겨울에 단독 일시종주했으며, 1986년 여성 세계 최초로 네팔 강가푸르나(7,455m)를 등정했다. 1989년 여성 최초로 백두대간을 종주했으며, 74일간의 태백산맥 단독 일시 종주기를 담은 <하얀 능선에 서면(1990년)>을 펴내 등산인들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4년부터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아 살고 있다. 2022년 백두대간을 선구적으로 알린 공로로 한국인 최초로 스위스 알베르 마운틴 상을 수상했다.


 

지리산둘레길 하동 구간의 대나무숲.

 

오랜 세월을 살아낸 나무를 보면 존경심이 생긴다. 당당함, 유연함, 우아함, 품위 때문일 것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나무처럼 늙고 싶다. 과연 그렇게 품위 있게 늙을 수 있을 것인가?

하동 땅에 들어왔지만 길은 다른 지역보다 조금 길다. 예전에는 엄청 가난한 오지였을 동네. 이제 세월이 흘러 사통팔달 뚫린 도로와 기계로 짓는 농사로 인해 부농이 되었다. 농번기 때는 여러 농사를 한꺼번에 지어야 해서 많이 힘들지만, 예전에 비하면 일도 아니라며 팔고 난 후에 남은 농산물도 넘쳐나는 농촌이다. 우리 농촌도 잘 살게 된 것이다. 농산물뿐 아니라 공산품도 넘치게 많아 보인다. 농촌의 너무 과한 풍요로움이 나는 아직 익숙하지 않다.

궁항마을 민박집에서 한 팀이 옆방에 들었는데 방음이 되지 않는 관계로, 듣게 되었다. 남해에서 시작해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간다는 이들은, 말하자면 땅 끝에서 산꼭대기까지 이어서 가는 길이었다. 요즘 워낙 걷기길이 많고 걷는 사람들 취향도 다양하니 그런 길도 있겠다 싶기는 했다. 그들이 걷는 길이 궁금했지만 말을 섞지 않아서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아궁이에 불을 때어 난방하는 시골 민박집 할머니가 밭에서 막 뽑아온 채소들. 이것들로 저녁상을 차려주었다.

경남 하동군 적량면 삼화실 민박집의 밥상. “반찬 없다”고 걱정하는 할머니의 저녁상은 푸짐했다. 배꽃, 복숭아꽃, 오얏꽃 피는 이곳 골짜기를 통틀어 삼화실이라 부른다.

 

하동 땅의 한 곳은 낙동강 수계와 섬진강 수계가 갈리는 곳이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낙남정맥이 뻗어 나와 동쪽으로 달리던 능선이, 남쪽으로 각도를 틀어 삼신봉에 이른다. 삼신봉에서 갈라져 나온 능선 중 하나는 내삼신봉을 지나 악양을 둘러싸고 흐르다가 구재봉을 지나 섬진강으로 풍덩 빠져버린다.

다른 하나는 낙남정맥으로 계속 능선을 이어오다가 양이터재에서 지리산 둘레길과 만난다. 만약 양이터제에서 오줌을 눈다면 한쪽은 낙동강이 되고 다른 쪽은 섬진강이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상상이지만 이것은 우리나라 산맥체계의 정설인 것이다. 산이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하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 그것이다. 

 

지리산둘레길에서 본 섬진강과 평사리 들판.

 

배꽃, 복숭아꽃, 오얏꽃 피는 골

양이터재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둘레길을 버리고 능선을 따라 가면 백두대간을 만난다. 지리, 덕유, 속리, 월악, 소백, 태백, 오대, 설악을 만나고, 결국은 백두산을 만나 백두대간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만으로 백두대간 따라 백두산을 다녀온다,

 

하동은 대나무숲을 자주 만난다. 여름에는 시원했을 대숲은 겨울이라 그런지 약간 어둑하다. 좀 으스스한 느낌이라 걸음을 빨리한다. 바람과 함께 유연한 대나무는 몸을 이리 저리 흔들며 이상한 소리를 내기도 해서, 더 그런 분위기가 난다. 가끔 새가 인기척에 놀라 푸드득 날아가기도 해서 놀란다.

그러고 보니 지리산 남북을 경계로 수종도 조금 차이가 있다. 북쪽은 소나무류가 많고 단일 품종이 군락을 이루는 곳이 많고, 남쪽은 소나무류도 많지만 대나무, 밤나무, 참나무류와 서어나무, 사람주나무, 쇠물푸레나무, 비목나무, 단풍나무, 때죽나무 등 다양한 나무가 많다.

 

화개의 녹차밭에 눈이 쌓였다.

 

하긴 계절 따라 내가 알지 못하는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잎을 내밀고 꽃을 피우겠는가. 다양한 숲을 지나고 임도를 지나고 고개를 넘어 하동댐에 이른다. 당시 여러 마을이 수몰되었다는데 그들은 어디서 새로운 터를 잡고 잘살고는 있는가.

 

하동호를 지나면 청학동의 관문 청암면 소재지를 지난다. 길은 잘 나 있고, 표지목과 리본도 자주 있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임도를 걷고 고개를 넘고, 대나무 숲을 지나고 몇몇 마을을 거쳐 삼화실로 들어왔다. 삼화실은 이름이 예쁘고 우리 동네와도 멀지 않다. 봄에는 꽃이 빨리 피는 관계로 가끔 왔던 곳이다. 

‘삼화’는 이 주변의 배꽃, 복숭아꽃 그리고 오얏꽃을 말한다. ‘실’은 이것들의 열매를 의미하는 말로 이 골을 통틀어서 삼화실이라고 한다. 폐교를 둘레길 쉼터로 만들었는데, 비수기라 그런지 학교는 텅 비어 있다. 바람만 빈 운동장을 우우 몰려다닌다.

 

나뭇잎에 내린 서리. 겨울 지리산에서 볼 수 있는 소소하지만, 섬세한 자연의 손길이다.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아궁이에 불을 넣어주는 민박집에 들었다. 아궁이 앞에서 불을 쪼이며 나무 타는 소리를 들었다. 어떤 향수와도 비교할 수 없는 불 냄새를 맡으며 요즘 말로 ‘불멍’을 해본다. 내 집도 아궁이로 난방을 하고 있어 사실 일상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집을 떠난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것과의 만남이자, 이렇게 익숙한 것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노곤함에 따뜻함과 편안함을 “밥 먹으러 오라”는 전갈이 올 때까지 마음껏 누린다. “반찬이 없다”고 걱정하던 할머니는 겨울에도 밭에 남겨진 시금치, 쪽파, 대파, 무, 당근을 뽑아 부엌에 들어갔다. 그 사이 무슨 요술이라도 부린 것처럼 큰 상 가득 온갖 반찬을 푸짐하게 차려 나와서는 자꾸만 반찬 부실하다고 반찬타령이다.

 

동네 부녀회장 부부까지 불러서 막걸리를 곁들였다. 잔치상 같은 저녁을 대접받았다. 음식 솜씨도 좋고 인심도 좋은 어른이다. 그러고 보니 지리산둘레길에서 만난 이 할머니를 비롯해서 모든 분들이 둘레길의 주인이다.

 

따뜻한 방에 누우니 꼭 고향에 온 것 같다. 이제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불로장생 한다는 길지吉地로 알려진 ‘3점’ 중 먹점과 미점을 지나 다시 섬진강을 조망하며 걷는다. 나머지 하나는 동점이라는 마을로 안쪽 깊이 있어서 둘레길에서는 만나지 못한다. 순한 솔밭 길을 걸으며 이 길을 만들고 관리하는 이들의 수고에 마음으로 감사를 전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하동 축지리 문암송文岩松. 600년 수령의 나무 앞에서 허리 숙여 존경을 표했다.

 

600년 나무에게 고개를 숙이다

이제 나의 이웃 마을 악양으로 들어선다. 매화나무와 감나무 과수원을 지나면 그 끝에 국가 지정 천년기념물인 문암송文岩松이 있다. 바위 사이로 뿌리를 내리고도 당당하고 품위 있게, 세월을 초월한 표정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대략 600년을 살았다고 하니 도대체 인간인 나는 허리 숙여 깊은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 이외에 무엇을 한단 말인가?

이제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로 유명한 평사리 들판을 지나 마지막 하루를 접을 것이다. 집이 가까워 다녀와도 되겠지만 길이 끝날 때까지 그냥 바깥 잠을 자기로 한다. 악양에는 많은 지인들이 있어서, 어디에 가도 반기겠지만 나는 영실 언니 집을 선택한다. 

 

오랜 세월을 살아낸 나무를 보면 존경심이 든다. 당당하면서도 유연하고, 우아하다.

 

그는 지리산 학교 숲길 걷기반에서 내 수업을 받으며 함께 걸은 인연이다. 몇 년 전 ‘빡센 산행반’의 일환으로 백두대간을 걸을 때 산 아래까지 픽업해 준 백두대간 엔젤이다. 지리산이 좋아서 아예 집을 하나 얻어두고 대전과 악양을 오가며 살고 있다.

악양에서 화개로 넘어가는 길은 서어나무와 소나무 군락이다. 나는 이 길을 걸으며 송이버섯을 따 먹은 적이 있었다. 송이버섯은 한 번 나왔던 곳에서 또 나오는데 그 자리를 알고 있다. 겨울인데도 그 자리를 살펴보는 내가 우스워 혼자 “하하”하고 웃었다.

 

민박집 아궁이 앞에서 불을 쬐며 나무 타는 소리를 들었다. 요즘 말로 불멍을 했다.

 

이제 나의 동네인 화개로 들어왔다. 급경사 낙엽 깔린 길을 내려오고 개울을 건너고 원부춘에서 긴 임도를 걷는다. 임도 끝에 형제봉이 있지만 그곳까지는 가지 않고 바로 아래에서 살짝 각도를 튼다. 지리산 주능선이 조망되는 곳이다. 반야봉은 어디서 봐도 사람 엉덩이처럼 생겼지만 유일하게 화개에서만은 그냥 당당한 한 봉우리로 보인다.

 

거기서부터는 급경사 내리막이다. 올라올 때도 거의 코가 닿을 정도지만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그 길 아래로는 온통 차밭이다. 화개는 차의 고장임을 알 수 있다. 마침 축복처럼 눈이 내린다. 차밭 풍경이 더 아름다워졌다. 저 멀리 내 집이 눈에 들어온다. 왈칵 궁금해진다. 잘 있겠지? 갑자기 빨리 가고 싶다.

집 떠나 길 위의 날도 좋지만 내 집의 안락함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다. 이렇게 동그라미 하나를 완성했다. 모두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지리산둘레길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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