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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지도 위를 걷다 적석산, 인성산] 모든 걸 갖춘 산과 길을 만들어 가는 산. 극과 극 1박 2일

白馬 2024. 3. 9. 06:32

 

경남 적석산·인성산

 

 

적석산 산행의 백미인 구름다리. 바위봉우리 사이를 잇는 52m 길이의 다리는 걸을 때마다 출렁거려 스릴 넘친다.

 

 

기막힌 장면이었다. 마을로 들어서자, 놀랄 만한 산이 나타났다. 훤칠한 바위봉우리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비현실적인 구름다리가 놓여 있었다. 

암봉 사이를 이은 허공의 구름다리라니,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골짜기에는 여러 마을이 있었는데, 고개만 들면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외국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었으나, 산 입구의 너른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했는데 더 일찍 도착한 한국산악회 경남지부 회원들이 배낭을 메고 스틱을 조립하고 있었다. 

김민효·이인섭 부지부장과 신홍국·이기근 이사, 김효숙 회원이다. 악수할 때의 돌 같은 손바닥 촉감과 세월의 흔적이 깃든 등산장비에서 베테랑 냄새가 철철 넘친다. 실제로 회원들은 역전의 용사들이다. 

음나무재에서 사유지 철망을 따라 걷는다. 음나무재에서 남쪽은 적석산, 북쪽 임도는 낙남정맥 깃대봉으로 이어진다.

 

이기근(마산 산바래등산클럽) 이사는 1992년 알프스 3대 북벽을 완등했다. 홀로 가서 일본팀과 경남대학교 팀과 함께 줄을 묶어 올랐다. 1990년부터 3년 연속 설악산 토왕폭을 완등했으며, 지난해 겨울에도 토왕폭을 완등했다. 2012년에는 키르기스스탄 악사이 데케토르 북동벽을 초등했다. 

마산산악동지회 1986년 창립멤버인 김민효 부지부장은 1989년 에베레스트 캠프4(7,900m)까지 진출했으며, 아마다블람(6,812m)을 등정했다. 2022년에는 한국산악회 카조리봉(6,151m) 원정대장으로 참여해 변기태 회장과 정상에 올랐다. 김효숙 회원은 바룬체(7,129m) 등반에서 6,800m까지 진출한바 있다. 완만한 임도를 따라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사이, 평범한 중장년 산꾼들이 역전의 용사로 변신한다. 

적석산(497m)은 대부분 성구사에서 주능선을 오르거나, 저수지에서 오르는 코스를 택하는데 길게 산행하고자 음나무재를 들머리로 삼았다. 낮은 산치곤 등산로가 복잡해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간 엉뚱한 곳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다행히 마산 형님들이 앞장서서 길을 잡는다. 

 

칼로 벤 듯 반듯한 기암을 지나는 한국산악회 경남지부 이인섭 부지부장.

 

조심스럽다. 긴 임도가 끝나고 산길인가 싶었는데, 길이 무너져 위태롭다. 절벽까지는 아니지만 3~4m 추락 가능한 높이다. 다행히 사유지 철망이 손잡이 역할을 한다. 이후로는 편안하다. 무언의 경고를 하는 사유지 철망을 지나자, 솔잎 쌓인 소나무숲이다. 거칠지만 따뜻한 할머니 손처럼 도시인의 복잡한 속내를 토닥인다. 산은 어떻게 마음의 응어리를 알고 풀어주는 걸까? 걸을수록 몸 안팎이 가벼워진다.

절정이 빠르게 찾아온다. 땀을 아직 흥건히 쏟지 못했는데 마산 아구찜 상처럼 맛깔난 경치가 사방으로 몰아친다. 평범한 내용의 드라마가 큰 스케일의 액션 영화로 탈바꿈한다. 붉은 난간이 있어 안정감이 있는 바위능선의 시작이다. 경치만 놓고 보면 평일에도 등산객이 적지 않을 듯한데 마주치는 이 한 명 없이 조용하다. 

벼랑을 막아선 바위. 우회로가 없어 보이는데 바위 안에 답이 있다.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는 의미를 담은 통천문이다. 좁지 않지만 배낭을 멘 채로 지나려면, 자연스레 허리를 숙이고 몸을 비틀게 된다. 누구든 여기선 간절한 몸짓이 된다. 바위틈을 빠져나오면 한 단계 더 높은 마당바위가 기다린다. 멋진 경치에 사진기자의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산꾼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셔터 소리에 맞춰 천천히 산을 오른다. 

 

인성산 사면을 휘감아 도는 임도. 인성산은 임도가 잘 나있으나 등산로는 거의 없어 산행에 주의를 요한다.

 

경치 좋으나 오래 머물기 어려워

칼로 자른 듯한 마당바위에서 오래 머물지 않은 건, 하늘색 구름다리가 손짓해서다. 이제야 바다가 보인다. 남쪽으로 당항만, 동쪽으로 진해만이 사람들과 어우러져 온화하게 살고 있다. 흔들리지 않는 다리인줄 알았는데, 걸을 때마다 흔들린다. 

수백 미터 산 아래까지 시야가 열려 있고 바닥이 나무로 되어 있어 스릴이 상당하다. 오래 머무르고 싶었으나 바람길이다. 바쁘게 지나는 바람이 “누군데 길 한복판에 서 있냐”고 호통 치는 통에 빠르게 지난다. 

다리를 지나 너른 바위에 닿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이 침묵한다. 마음이 놓이는 양지 바른 터는 쉼터로 제격이다. 

동시에 허기를 느낀 우리는 도시락을 꺼내 느긋한 점심을 먹었다. 싸온 김밥을 먹으며 시선은 구름다리로 향한다. 산꼭대기 벼랑에 어떻게 만들었는지 신기하다. 2005년에 설치된 52m 길이의 다리는, 두 봉우리를 철골 와이어 공법으로 연결한 것이다. 

 

적석산은 작지만 산행의 즐거움은 작지 않다. 바위능선에는 난간이나 사다리가 있어 초보자도 산행 가능하다.

 

적석산은 마산 사람들이 몰래 아껴먹듯 찾는 명산인데, 봄에는 진달래가 좋고, 가을에는 단풍이 수려하다고 자랑한다. 산행의 완성도를 높이는 건, 하산 후 마무리다. 산 앞에 양촌온천이 있고, 대정마을엔 돼지두루치기로 유명한 식당가가 있다. 개운하고 배부른 마무리가 가능한 것. 

얼마 안 가 정상 표지석이다. 뻥 트인 바위에 있어 시원한 맛은 탁월하지만, 바위능선에서 과하게 경치를 즐긴 탓에 감흥이 덜하다. 바윗길과 철계단을 조심스레 내려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소곳한 육산이 푸근한 흙길을 내어준다. 산불초소에서 마지막으로 경치를 둘러보고 내려서자 고풍스런 한옥이 있는 성구사다.

초계 변씨 변빈, 변연수, 변립 3인을 모신 사당이다. 변빈은 고려가 망하자 절개를 지키려 두문동에서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다는 72인 중 한 명이다. 변연수와 그의 아들 변립 이야기가 이곳 마을에 전한다. 

 

적석산 암릉지대 들어서는 관문인 통천문. 구멍 속에 계단이 놓여 있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적석산 정상에서 내려서는 달 표면 같은 바윗길. 산행은 통천문부터 정상까지가 하이라이트다.

 

조선시대 무관인 변연수는 학문과 무예에 뛰어나 무과에 급제했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이곳에 낙향해 살았다. 그의 나이 55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들 변립과 함께 “신하된 자 몸을 던질 때로다”하고는 격문을 내어 지역 의병을 모아 연해에 출몰하는 왜적을 격퇴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합류해 옥포해전에서 적선을 크게 무찔러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당포해전에서 변연수가 전사하고, 아들 변립은 아버지 시신을 안고 통곡하며 분전하다가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변씨 부자의 행적은 귀감이 된다 하여 사후 명예관직으로 변연수에게 병조판서를, 변립에게 좌승지를 내렸다. 한편 남편과 아들을 동시에 잃은 부인 안동 김씨는 소식을 듣고 식음을 전폐하다 8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의 모친 역시 초계 변씨다. 임진왜란이 터지고 떠나는 아들 이순신에게 “나라의 치욕을 씻기 전에는 돌아오지 마라”고 말한 것으로 <난중일기>에 남아 있다. 1597년 이순신이 모함으로 파직 당하고 한양의 감옥에 갇히자, 초계 변씨는 83세의 고령에 “내가 죽고 아들이 살아야 한다면 마땅히 죽겠다”며 여수를 떠나 뱃길로 상경하다 숨을 거뒀다. 아무 생각 없이 성구사 앞의 비석을 읽던 중, 문득 손이 모아지며 공손해진다. 저토록 힘 있는 산세에 변연수·변립 장군의 애국심이 깃든 게 아닌가 싶다. 

 

정상 부근의 구름다리. 바닥이 나무로 되어 있고, 디딜 때마다 흔들려 보이는 것과 달리 스릴 넘친다.

 

정상에 선 한국산악회 경남지부 회원들. 왼쪽부터 김민효, 신홍국, 김효숙, 이기근, 이인섭 회원.

 

다음날 의림사를 찾았다. 적석산 동쪽 맞은편에 648m의 비교적 큰 산이 있는데, 의림사를 기점으로 원점회귀한 산행기가 여럿 있어 찾았다. 인성산 서쪽 양촌리나 금암리에서 오르는 산행기도 있었으나, 대부분 산길이 없어 고생했다는 내용이었다. 

의림사는 적석산 주변에서 가장 유서 깊은 절이다. 신라시대에 세워졌다는 고찰이며,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이곳에 머물자 의병들이 숲처럼 모였다 하여 원래 이름 봉국사에서 지금의 ‘옳을 의義’와 ‘수풀 림林’으로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산 이름도 ‘어질 인仁’과 ‘별 성星’자를 쓴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이 산에 올라가면 밤에 큰 별을 볼 수 있는데, 그 별을 보면 장수한다는 설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어제의 마산 산악인들이 다시 모였다. 이기근 회원이 빠진 자리를 이미경 회원이 메웠다. 의림사의 축구장만 한 주차장과 편안한 임도만 봤을 땐 이날 산행이 고생일지 몰랐다. 이름처럼 인성 좋은 어진 산으로 여겼으나, 아니었다. 

 

인성산 능선의 바윗길을 지난다. 정상 표지석과 이정표는 있으나 등산로가 없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정도로,산길이 희미하다.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고찰인 의림사.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머물자 의병들이 몰려들었다고 전한다.

 

인성을 시험하는 인성산

푸른 비자나무 잎과 예쁘장한 삼지닥나무 겨울눈이 긴장의 끈을 풀어놓았다. 편한 임도로 어느 정도 고도를 높이자, ‘인성산 정상’이라 적힌 이정표를 만났다. 불안감 없이 등산로로 들어섰으나 불안이 커졌다. 이정표는 띄엄띄엄 있으나 등산로가 희미했다.  

베테랑 산꾼들과 함께하는 산행이라 두려울 게 없었으나, 비등산로의 막강한 비탈은 쉼 없이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아예 진행이 불가하면 하산할 텐데, 희미하게 산길이 있어 산꾼의 승부욕을 자극한다. 

낙엽의 바다에 발이 미끄러지고, 나뭇가지에 옷이 찢기기를 반복하자, 보상처럼 드러나는 마당바위. 폭발하는 호흡을 가라앉히며 풍경을 안주삼아 벌컥벌컥 생수를 들이킨다. “캬”소리 절로 나는 물맛은 거친 산줄기 덕분이다. 

 

임도에서 등산로로 올라서는 길. 고정로프가 있으나 낙엽이 워낙 깊어 미끄러지기 쉽다.

 

도저히 속도가 나지 않는 오르막을 올라 주능선에 합류하니, 나뭇가지에 누군가 정상 방향을 알리는 안내판을 걸어 놓았다. 자상한 선답자의 마음에 감사하며 주능선부터 쉬운 줄 알았으나 조심스런 바윗길이 속도를 더 늦춰 놓는다. 어렵지 않지만 절대 방심할 수 없는 길이다. 

매복하고 있던 군사들의 기습처럼 정상이 찾아왔다. 지도에 표시된 것보다 더 이른 곳에 정상 표지석이 있다. 좁지만 암릉이라 경치가 터지는 곳에 표지석을 세운 것 같다. 워낙 좁아 기념사진도 한 명씩 찍는다. 

수리산으로 이어진 능선도 등산로가 있다고 말하긴 모호하다. 등산객이 적은 탓에 산길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다. 일행도 “월간산 기사로 소개하면 욕먹을 수 있겠다”고 긁힌 자국을 털어내며 말한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수리산 능선으로 올라탔으나 산길은 더 희미해져간다. 등산로를 찾기보다는 장애물이 적은 곳을 무의식중에 찾아간다고 하는 게 맞겠다. 선답자의 지도에는 의림사 주차장으로 꺾어서 내려서는 하산길이고, 표지기도 몇 개 달려 있는데 산길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조심스럽게 계곡을 따라 많은 장애물을 치고 내려선다. 인성 좋은 산이라기보다는 인성을 시험하는 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의 체력과 인성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실감하며, 의림사에 닿았다. 숲처럼 모여들었던 의병 대신 고요가 짙게 쌓여 있었다. 

 

인성산의 전망바위. 마당바위 두 곳이 연이어 나오는데 정상보다 이곳 경치가 더 탁월하다.


 

산행길잡이

현지 등산 안내도와 인터넷에 떠도는 등산지도는 대부분 잘못되었다. 현지 안내판이나 인터넷상에는 본지 지도보다 더 많은 등산로가 표시되어 있는데, 일부는 없는 등산로다. 지도만 믿고 갔다간 산길이 없어 덤불에 갇히거나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 

 

창원 방면에서 적석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성구사, 도솔암, 미나리농원, 음나무재 4곳이다. 고성 방면 등산로는 옥수골, 적석암, 번듯치 3곳이다. 이외에도 표시된 등산로가 여럿 있으나 답사 결과 사람이 다니지 않아 산길이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돌아갔거나, 초입부터 출입을 막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공영주차장에서 도솔암으로 올랐다가 성구사로 하산하는 코스다. 통천문부터 하이라이트인 바위 능선을 즐기려면 음나무재나 미나리농원을 기점으로 삼는 것이 좋다. 미나리농원 등산로 입구에 차량 몇 대를 세울 터가 있다. 음나무재는 비포장 임도라 차량 진입이 어렵다. 성구사 앞에도 차량을 세울 만한 터가 없다. 

 

마음 편하게 무료로 운영되는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이동하는 것이 낫다. 정상으로 이어진 최단 코스는 고성방면 적석암이다. 1km만 걸으면 정상에 닿는다. 적석암까지 도로가 이어져 있어 승용차도 올라오지만 상당히 가파르다.  

 

전체적으로 적석산 산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고, 이정표가 있어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산행 가능하다. 음나무재에서 낙남정맥인 준봉산 깃대봉에 올랐다가 381m봉을 거쳐 연화사로 내려오는 방법도 있다. 다만 연화사 코스는 등산객이 많지 않아 산길이 희미하므로 길찾기에 주의해야한다. 대부분 등산지도는 381m봉 이후에도 산길이 있다고 표시했으나, 진행하면 개척산행의 고행을 겪어야 한다.   

 

대형지도에 인성산 등산로를 표시하면서 고민을 했다. 이걸 등산로가 있다고 해야 하나, 없다고 해야 하나 갈등했을 정도로 길 상태가 좋지 않다. 이정표는 있으나 등산객이 적어 길이 상당히 희미하며 개척산행을 번갈아해야 한다. 산악자전거 마니아들의 임도 라이딩 코스로 추천하며, 독도에 능하고 개척산행을 즐기는 경우가 아니라면 인성산 산행은 추천하지 않는다.  

 

교통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환승센터에서 성구사 앞을 지나는 75-1번 버스가 하루 4회(4~5시간 간격) 운행한다. 마산역에서 출발해 마산고속버스터미널을 거쳐 성구사로 오는 76번 버스(07:55~21:45)는 3~4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창원과 고성 경계에 적석산이 있어 대중교통으로는 접근이 불편하다. 

적석산 공영주차장은 무료이며 화장실이 있다. 주차장 주소: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적석산길254

 

맛집(지역번호 055)

산행 후 양촌온천에서 피로를 풀고, 대정에서 돼지두루치기를 먹는 것이 적석산 산행의 공식이다. 경남의 흔치 않은 자연온천인 이곳에는 창원양촌스파월드(271-8070), 산수랜드찜질방(272-0028), 양촌원탕(0507-1337-5270)이 있다. 대정삼거리 부근에는 돼지두루치기로 유명한 대정식육식당(271-7034), 양촌식당(0507-1376-9110) 등이 있다. 든든한 추어탕을 내어놓는 부영돌솥밥추어탕(271-3312), 대정추어탕(271-7731)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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