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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경상도의 숨은 명산 상주 갑장산] 러브 스토리와 다정불심…각별했던 ‘사벌국 鎭山’

白馬 2024. 3. 1. 06:36

정상에서 바라본 상주벌, 한 때 사벌국이었다 

 

 

눈 내리는 아침, 차들은 거북이걸음 하지만 일 년 중 가장 로맨틱한 시절, 눈은 서로에게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감각적인 날씨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창문을 열고 내다보기도 하고 이야기 나누거나 사진을 찍거나 전화를 건다. 한적했던 시가지는 술렁거린다. 나뉘었던 세상이 합쳐지며 모두에게 눈이 내린다. 풋눈처럼 조금씩 푸설푸설 흩날린다.

상주는 옛날 초기국가 시대에 사벌국沙伐國이었다. 경상북도에 있었던 소국으로 일명 사량벌국沙梁伐國, 조선시대에는 영남의 큰 읍락으로 농경지가 넓어 물산이 풍부하고 학문의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사통팔달 교통의 중심지다. 예로부터 쌀·누에고치·곶감의 산지로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했다. 

눈 내리는 상주 시내를 벗어나니 왼쪽으로 보이는 갑장산은 회색빛이다. 용흥사주차장에 닿으니 관광버스로 온 등산객들이 준비 운동을 한다. 식당 근처를 기점으로 삼아 오르는데 디디는 발밑은 미끄럽고 겨울나무마다 눈을 안고 섰다. 계곡 물소리 따라 걷는데 오른쪽 절집의 기와지붕이 하얗다. 

 

눈 덮인 상사바위와 갑장산.

 

갑장산은 경북 상주시 낙동면에 있는 해발 806m, ‘연악淵岳’으로도 불리며 상주의 안산案山이다. 상주 삼악인 갑장산淵岳, 노음산露岳, 천봉산石岳 가운데 제일 높다. 정상에 서면 덕유산에서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낙동강과 상주 벌판을 바라볼 수 있다. 용흥사주자장에서 갑장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원점회귀 갑장사 코스, 굴티·승장·용포·와목 구간 등 여러 갈래 길이 많아 1~6시간까지 등산코스, 산책코스 등 다양하게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주차장에서 오른다면 되돌아오는 데 대략 3.8km, 3시간 정도 걸린다.

 

긴 계곡 따라 걷는 사람들에게 산에 왜 오르냐고 물으니 미치지 않고서 제정신으로 어떻게 눈 내리는 산에 왔겠냐고 한다. 멀리 보이는 산 위로 구름은 연기처럼 회색빛으로 가득하고 모든 소리를 머금고 내려앉은 듯, 눈 온 날은 다른 때보다 더 고요하다. 사각사각 뽀드득뽀드득. 오전 10시 반, 사방砂防 사업을 한 계곡의 중간지점(정상 1.6·용흥사입구 1.5km)에는 눈 덮인 바위 밑으로 흘러가는 물소리 졸졸 들린다. 산벚·상수리·오리·신갈나무 잎은 지고 사방오리나무 까만 열매는 눈 위에 떨어져 더 검게 보인다. 눈발이 잠시 약해지니 구름 속에 흐릿한 해는 달처럼 떴다가 이내 사라진다. 

 

갑장사 오르는 길.

 

 

눈 내린 산길의 겨울연가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정상, 약수샘, 문필봉이요 바로 걸으면 갑장사에 닿는다. 맞기 좋을 정도로 내리는 눈은 걸음을 더디게 하고, 햇살은 구름에 가려 반쯤만 보여 준다. 눈을 밟으며 몇 번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으려 바득거리다 보니 땀이 뚝뚝 듣는다. 두꺼운 등산용 바지를 입었더니 땀에 젖어 걸음이 부자연스럽다. 눈 속에 비목·당단풍·신갈·상수리·산벚·고욤나무. 

10시50분 갑장사주차장(정상 1·갑장사 0.4km) 근처에 눈이 많이 쌓였는데 등산객들은 산을 포기한 듯 눈을 즐기고 있다. 엎드려서 사진을 찍는가 하면 눈싸움하며 뒹구는 사람들, 하늘 바라보며 반듯이 누운 연인들. 마치 영화 ‘러브스토리’ 주인공처럼 즐거운 표정이 역력하다. 아쉽게도 지난 12월 주연 배우 라이언 오닐은 세상을 떠났다. 1980년대 겨울 로맨스를 이곳에서 느끼고 있다. “사랑이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 한 대 쥐어박아도 미안하지 않은 것이라 하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라고 한다.

하늘에서 눈은 풀풀 내리고 절집을 오르는 돌계단마다 하얗게 쌓였다. 습관처럼 이마를 닦으니 장갑이 다 젖는다. 피나무, 비목나무에 얹힌 눈이 와드득 떨어지는데 아무 자국 없는 돌계단에 발자국 딛기도 조심스럽고 엄숙해진다. 11시경 절집의 설중탁송雪中鐸頌에 마음을 놓고 있으려니 갑자기 창문 여는 소리에 낭랑한 비구니 목탁 소리 싹 망가졌다. 

“빠대지 마요.” 

눈길을 왜 밟느냐는 말이었다. 얼어붙으면 절집까지 차가 다닐 수 없으니 밟지 말라는 것이리라. 녹으면 금세 눈이 사라질 것인데 다정불심多情佛心은 어느 산천을 떠도는가?

 

갑장사, 정상과 가깝다.

 

상사 바위 전설과 명당 터

절집의 남쪽 낭떠러지 낙락장송에 마주 선다. 솔숲의 상사바위(용흥사주차장 2.5km)에는 눈이 하얗게 덮였고, 건너편 산자락은 안개인지 눈구름인지 한 줄기 바람 되어 계곡 아래로 늘어진다.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 겨울 동안 수도를 하기 위해 젊은이가 찾아왔다. 이 절에 있던 여승이 젊은 수도승을 위해 정성껏 시중을 드는데 날이 갈수록 애정을 느낀다. 스스로 마음을 억누르고자 하나 번뇌는 끊일 줄 몰랐다. 겨울 지나 산에는 눈이 녹고 개울물이 다시 흘러도 차마 입을 열지 못한 여승은 몹쓸 병에 걸리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수도승이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떠나도 말 못 한 여승은 소복을 입고 바위로 올라갔다. 괴로울 때마다 찾던 벼랑이었다. 젊은이는 어느새 저만치 멀어지는 것이다. 한 번만 봐달라고 애절하게 부르는 여승의 목소리는 메아리 되어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 순간 하얀 치마는 벼랑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나무아미타불, 젊은 수도승의 염불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상사바위 전설은 경향 각지에 있는데 할아버지와 소녀, 농부의 딸과 원님 아들, 부잣집 처녀와 가난한 어부, 동자승을 사랑하다가 죽은 처녀, 주인 과부를 사랑한 머슴 돌쇠 등 상사바위 전설은 무수히 많다.

11시15분 능선길(주차장 3.6·정상 0.3·갑장사 0.2km)에는 조릿대가 눈을 맞아 더 푸르고 하늘에는 해가 달처럼 떴다. ‘수석송죽월水石松竹月’의 ‘오우가五友歌’를 생각하며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을 벗 삼아 한결같은 삶을 살리라 다짐한다. 인간본능과 지조, 눈길을 걸으면서도 상사바위 이야기가 쉽사리 떠나질 않는다. 왜 사랑을 가슴에 묻고 목숨을 버려야 했을까? 

 

능선 아래 소나무 숲길.

 

고려 충렬왕이 붙인 산 이름

바람은 오른쪽에서 불어와 귀가 시리고 상주 시가지는 왼쪽으로 흐릿하게 보인다. 헬기장(정상 1km) 지나 긴 나무 계단 따라 정자를 두고 어느덧 11시 반 해발 806m 갑장산 정상에 닿는다. 남쪽으로 나옹바위·백길바위, 낙동강은 흐려서 도무지 보이지 않고 상주 벌판은 능선보다 조망이 좋다. 개박달·신갈·물푸레·진달래·철쭉·쇠물푸레·소나무. 개박달나무에 맺힌 눈꽃과 노송에 눈이 쌓여 겨울 수채화를 그렸다. 멀리 구병산·속리산·청화산·대야산의 백두대간이 흐리고 눈바람에 손이 시리다. 

 

고려 충렬왕이 일본 원정에 나선 김방경을 김해까지 전송하고 돌아올 때 동쪽에 있던 승장사에 머물며 갑장산을 영남의 명산이라 했고, 천간天干의 으뜸인 갑자甲字를 붙여 갑장산, 일설에 갑장사에서 산 이름이 비롯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 산에 네 개의 절이 있었는데 승장사와 용담사는 없어지고 지금은 용흥사와 갑장사만 남았다. 일대에 천석꾼과 정승이 나는 명당이 있다고 해서 몰래 무덤을 많이 썼는데 묘만 쓰면 비가 오지 않아 가물 때 새로 쓴 묘를 찾아 파내면 비가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11시35분 내려가면서 능선길 갑장사 갈림길(갑장사 0.2km)에서 절집으로 가지 않고 문필봉 방향으로 걷는다. 부산 산악회 사람들은 이제 올라오고 있다. 정자에서 일행들이 기다린다고 말하니 연신 고맙다고 한다. 잠깐 사이 오른쪽으로 약수 샘터(주차장 3.5·정상 0.4km) 이정표를 두고 문필봉이다. 이곳의 정기를 받아 주변에 인물이 많이 났다 하여 갑장산 일대를 장원향壯元鄕이라 전한다. 영남학파 정경세를 비롯해 권민수, 성람,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친 이준 등이 있다. 또한 상주 관아와 가깝고 절경이 많아 사대부들의 유상처遊賞處로 시문詩文의 창작공간이 된 학문의 산실이었다.

 

정오 무렵 하얀 바위 상산(주차장 2.9·정상 1.0km)을 두고 내리 걷는 능선길에는 햇살이 조금씩 내려온다. 오후가 되면 눈이 녹아 진흙 길이 되어 애를 먹을 것인데 부산에서 온 산악회원들은 미끄러지지 않을는지. 오른쪽으로 보이는 상주 시가지도 안개구름이 걷혀 제법 선명하게 다가온다. 신갈·쇠물푸레·노간주·진달래·철쭉·소나무 군락지. 오른쪽으로 고속도로 자동차 소리, 하늘에는 쌕쌕이 소리. 잠시 더 내려오니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강산이다. 

12시15분 내려가는 숲길 나무 아래 앉아 쉰다. 보온병에 담아온 따뜻한 보리차 맛을 느끼며 무릎보호대를 꺼낸다. 박달·비목·소나무 사이 내리막길이 덜 부담스러울 것이다. 눈 속의 솔가지는 독야청청獨也靑靑 푸르지만 일단의 소나무군락보다 송무백열松茂栢悅이 낫지 않나. 능선 왼쪽으로 상산, 갑장산 줄기 부옇고 산천은 겨울 판화처럼 거칠며 흐릿하다. 사방오리·리기다·산벚·소나무, 예전에 사방사업을 했는지 사방수종들이 많다. 

오후 1시경 식당 근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녀야. 연밥 줄 밥 내 따 줄게 이내 품에 잠자 주소~.” 

시내로 들어서 80년 더 됐다는 시래기 국밥집에 들렀더니 일행은 마뜩찮은 표정이지만 상주 가락 한 구절에 쌓인 눈이 다 녹는다.  

 

갑장산 정상.

 

산행길잡이

용흥사주차장 → 등산로 입구 → 갑장사 길 → 갑장사 → 상사바위, 솔숲 → 능선 갈림길 → 정자 → 정상 → 능선 갈림길 → 문필봉 → 상산 → 용흥사주차장(원점회귀)

※ 왕복 3.8km, 3시간 정도

 

교통

경부고속도로 남상주IC(하차) → 상주 남부 초등학교 → 용흥사 입구 주차장(등산로 입구)

※ 내비게이션 → 경북 상주시 지천1길 223-35(용흥사 입구 주차장에서 하차)

※ 주차장 무료, 대중교통 불편

 

숙식

상주 시내 다양한 식당(산버섯 식당, 남천식당)과 모텔 많음. 

 

주변 볼거리 

경천대, 상주박물관, 낙동강 생물자원관, 상주 곶감 공원, 함창 공검지(공갈못)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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