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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산따라 맛따라] 가평 - 포천 운악산

by 白馬 2007. 12. 27.

        [산따라 맛따라] 가평 - 포천 운악산

        산천의구하니 맛도 따라 가는구나
        가평 하판리쪽과 포천 화현리쪽의 먹거리집들

운악산은 경기 오악(감악, 관악, 송악, 운악, 화악) 중 한 산이다. 이들 오악 중 개성의 송악은 가볼 수 없는 곳이고, 관악은 서울과 경기의 경계선상에 솟아 있는 도시공원 같은 산이다. 나머지 삼악 중 운악은 서울에서 비교적 가깝고 또 교통편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많은 산꾼들이 즐겨 찾는다. 60~7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의 산꾼들은 도봉 북한을 근교의 산으로, 그리고 운악산은 원정 개념으로 생각했었다.

운악산은 필자가 한국 현대인물사의 거목 반열에 올라 있는 노산(이은상)과 한솔(이효상) 두 분을 따로 따로 모시고 오른 적이 있다. 어느덧 40여 년의 긴 세월이 흘러갔지만, 아직도 그 기억은 엊그제의 일인 양 생생하게 남아 있다. 두 차례 다 현등사 앞뜰에 목련이 곱게 피던 화창한 계절이었다.

노산과의 운악산 산행은 당대 최고 클라이머였던 김정태 선생이 인솔한 산행이었다. 정상까지는 지금과는 달리 아무런 보조물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는데, 일행 모두가 김정태 선생을 따라 등정했고, 선생께서는 사방을 둘러보며 산 이름 하나하나를 설명해 주셨던 일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산악회 회장직을 맡기 이전의 노산은 많은 국민들에게 ‘가고파’와 ‘오륙도’의 시조시인으로 크게 알려져 있었고, 그 분의 글들은 당시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었기에 자연히 읽게 되었고 배우게 되었다. 함께 산행하며 점심자리를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이었는데, 젊은 산꾼들에게 들려주신 국토사랑의 격려 말씀은 지금도 그대로 재생되곤 한다.

대학 은사(경북대 문리대 학장)이자 1960년대 경북학생산악연맹 회장으로 지근의 거리에서 모셨던 한솔과의 운악산 산행은 필자가 인솔한 산행이었다. 존경받던 은사께서는 4.19(1960년) 후 양원제 국회의 참의원으로 정계로 나섰다. 9개월만에 5.16(1961년)으로 하루 아침에 백수(?) 신세가 되시기도 했지만, 민정이양(1963년 12월) 때는 화려하게 국회의장으로 정계에 복귀하셨다. 이런 사연으로 서울 중구 장춘동, 작은 언덕 꼭대기에 있었던 국회의장 공관은 한 때 대구 산꾼들의 모임장소가 되기도 했었다.

운악산 산행은 국회의장 8년의 임기가 끝날 무렵 봄날의 일이었다. 산행에 본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대구 산악계 제자들이 선생님께 국회 진출(지역구) 철회를 건의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묘하게도 그 건의를 필자가 맡게 되었는데, 건의는 묵살(?)되었고 국회 진출도 좌절되었다. 그 일로 인해 그 후 선생님과의 만남은 매우 불편했었다.
지금은 대선을 눈앞에 둔 정치의 계절, 당시의 상황들이 운악산의 절경들과 착잡하게 오버랩이 되어 수시로 떠오른다.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는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운악산 종숙 누님댁
산마을

운악산 산행은 현등사로 오르는 길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즉 현등사 입구 가평군 하면 하판리가 운악산 산행의 나들목이라는 뜻이겠다. 이곳에는 옛 모습 그대로 상가가 형성되어 있고 20여 업소가 영업하고 있다. 이들 여러 업소 중 ‘운악산마을펜션’, ‘운악두부골(031-585-6172)’이란 간판이 걸린 집이 단연 눈에 띈다. 실제로 운악산을 잘 아는 산꾼이나 산악회에서는 이 집만을 고집하며 단골로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러 차례 이 집을 들러 많은 시간 머물면서 알게 된 것은 음식맛이 끝내준다는 것이다. 음식점으로서 기본이 튼튼하다는 것이 많은 단골을 확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란다. 이 마을의 대부분 업소가 두부를 주재료로 하고 있는데, ‘산마을’에서는 ‘이모’로 호칭되는 70대 할머니가 그 오랜 손맛을 발휘, 식당 입구에서 직접 두부를 만드신다.


집주인이자 주방장 역할까지 맡고 있는 상냥한 미모의 여인, 박종숙님이 이 두부로 조리해내고 식탁 서빙까지 해주고 있다. 단골 산꾼들은 이 여인을 보고 ‘종숙 누님’이라고 부르며 누님이 바쁠 때면 직접 주방까지 뛰어 들어가 도우기도 한다니 ‘산마을’의 편안함과 인정은 알만했다. 원점회귀형태의 산꾼들은 산행에 앞서 필요치 않은 장비를 이곳에 맡겨 두기도 하고, 회귀 때는 먼저 내려온 대원들이 미리 진을 치고는 하산주 한 잔 먼저 걸친다.

큰 방 4개로 민박손님까지 받고 있는데 1박2일로 단합대회를 하겠다는 산악회에게 방이 없어 요청을 들어 주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운악산 산행의 캠프로 이용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업소라 할 만하다. 묵은지손두부 7,000원, 생굴도토리전·산나물도토리무침 각 10,000원. 가평잣막걸리 3,000원. 동동주 5,000원.

마시자 칵테일! 침실의 여왕
산이 좋은 사람들

카페 이름이 ‘산이 좋은 사람들’(031-585-8645)이다. 현등사 가는 길, 다리를 건너 주차장에다 자동차를 세워 두고 오른쪽으로 바라보면 ‘마늘오리’ 간판이 걸린 큰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건물로 가다 보면 건물 아래 오른쪽으로 그림 같은 뾰족지붕 집 하나가 눈을 즐겁게 해준다. 어떤 사람이 이 산 중에 저런 집을 짓고 살고 있을까 하고 다가가보니 ‘산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간판에 카페임을 밝혀 놓았다.

한 쌍의 잉꼬 같은 김명화(53)-최진아(46) 님 내외가 산이 좋아서 서울 대학로에서 운영하던 커피점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이전, 둥지를 튼 지 7년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번화한 도시의 여느 카페와 별다름 없는 분위기의 카페이긴 하나 주변 경관만은 도시의 어떤 카페도 추종이 어렵겠다.

물 좋고 공기 맑은 곳에서 전원생활을 꿈꾸던 안주인 최진아 님의 ‘소녀의 꿈’은 아들 하나 잘 키워 놓은 후에야 드디어 이루어졌다며 환하게 웃는데, 남편 김명화 님의 착하디 착한 모습이 아내의 얼굴 위로 오버랩 된다. 남편은 10여 가지 칵테일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그런데 여자 손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메뉴판 위에 적힌 ‘침실의 여왕(Queen of Bedroom)’만을 주문한다니 그 또한 즐거운 일이겠다. 칵테일 침실의 여왕 7,000원. 돈까스 8,000원.

운악산 나들목 하판리 큰 머슴
천기섭 회장

‘한 가정이 잘 되려면 사람이 잘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옛부터 혼사를 할 때 며느리를 잘 보아야만 집안이 흥할 수 있다는 뜻으로 즐겨 하던 말이다. 마찬가지로 한 마을의 발전에도 충분히 적용되는 말이겠다. 운악산 산행나들목 하판리의 상가번영회 천기섭(千璣攝·55) 회장이 바로 이런 사람이다.

서울 한강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공부했고 서울에서 일하던 사람이 어떤 사연으로 해서 이곳으로 들어왔다가 14년 전인 1993년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통의 경우처럼 정착하는 데 어려움은 있었지만 지금은 마을 일을 맡아 봉사활동하면서 마을 발전과 운악산을 찾는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한다.

130여 가구 500여 명의 주민들 중 토박이와 외래 주민이 3대 1 정도의 비율이라는데, 이들의 융화단결에도 큰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가 추진하고 있는 마을CEO 양성과정을 연수 중이고, 무엇보다 먼저 마을 발전의 저해요인부터 파악하고 제거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했다. 마을의 큰 머슴으로 큰 역할을 다짐하는 그의 눈에서 반짝 빛이 났다. 앞으로 이 마을에는 수도권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여 이용할 수 있는 스키장을 위시, 휴양 레저시설들이 들어선다고 소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마을에서 폐교된 운악분교를 임대하여 ‘안마당’이라는 수련장과 ‘마늘오리(031-584-6600)’라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생업에 임하고 있다. 운악분교는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을 촬영했던 장소로 도시사람들에게는 눈에 익은 곳이기도 하다.

가방 크다고 우등생인가
고바우집

운악산은 경기오악 중 한 곳이고, 산림청이 선정한 한국의 100명산의 한 곳이기도 하다. 현지에서는 가평8경 중 6경으로 지정되어 있다.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룬 운악산 중에서도 ‘운악망경’이 그것이다. 그만큼 탐승객들이 많은데 산행나들목의 상가는 규모가 크지 않아 주말이면 식당 자리차지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한두 집 찾아갈 집을 점찍어 두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 손두부 전문점 ‘고바우집(031-584-3996)’을 대상에 포함시켜 두는 것도 좋겠다.

‘고바우식당’은 4인용 식탁이 고작 8개밖에 되지 않는 소규모지만, 두부 만드는 공간만은 식탁수에 비해 무척 넓다. ‘가방 크다고 꼭 우등생인가.’ 식탁은 언제나 대만원으로 알찬 경영이다. 그만큼 고바우집의 손두부는 정평이 나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손두부 7,000원. 두부전골 6,000원 x 2인분.


47번 국도상 화현리 명업소
장수촌

운악산은 가평군과 포천시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그런데 운악산 산행 나들목으로는 가평의 현등사쪽만 생각하기 쉽고, 실제로 또 그렇게 오르내리고 있다. 그렇지만 골수 산꾼들은 회귀형 산행을 하지 않고 등산과 하산 코스를 달리 하는데, 운악산 한쪽 자락이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쪽이다. 이 47번 국도쪽에는 골프장이 여럿 있고, 스키장 베어스타운도 있다. 그만큼 국도변에는 음식점들도 많이 들어서 있는 편이다.

운악산 서북자락에는 배상면주가와 운악승마장이 있고, 이곳을 들르는 사람들이 많아 한동안 주변 식당들이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지만, 지금은 확 트인 우회도로가 개통되어 47번 국도의 옛 도로변 식당들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화현2리의 ‘장수촌(031-533-9207)’은 꾸준히 영업할 수 있다고 하니 그동안 쌓아온 명성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겠다. 운악승마장을 이용하는 승마인들의 단골집이자 연예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집의 동갑내기 주인 김두천(49)-이종순(49)씨 내외는 장수촌의 세 가지 인기 메뉴가 효자노릇을 해준 결과일 것이라며 즐거워했다.
좌석수 100석. 승용차 20대 동시 주차 가능. 순두부보리밥 5,000원. 생선구이쌈밥 6,000원. 생선구이 청국장 7,000원.

◆배상면주가◆
술과 술문화에 흠뻑 빠져들다

옛 사람들에게 술은 음식이기도 하고 때로는 약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옛 여인들은 집에서 술을 빚었다. 운악산 서북쪽 자락에는 ‘배상면주가’(031-531-0440)가 있다. ‘산사원(山査園)’으로도 불리는 이곳에는 각기 다른 여러 기능의 술문화 공간이 부드럽게 어우러져 흐르는 물길마냥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이들로 하여금 술과 술문화에 흠뻑 빠져들게 만든다.

첫 번째 공간 ‘산사원 주제공간’에 들어서면 조선조 말엽의 어느 양반댁 젊은 부인이 손님을 반갑게 맞는다. 그 여인은 자신이 술을 빚던 모습을 마치 스냅사진을 찍은 듯 늘어 놓았다. 금주령이 엄하게 내렸던 시절에도 조상에게 올리는 제주(祭酒)와 약제를 넣어 담그는 약주(藥酒)만은 허용하였다니 결국은 금주령이야 있으나 마나였겠다.

다음 산사원 갤러리로 들어가 본다. ‘술 없어도 살 수야 있겠지만 술 없는 세상에는 살고 싶지 않다’는 문구가 눈을 크게 자극한다. 어디 세상에 이 이상의 ‘술 예찬’ 카피가 있겠는가. 그러면서 산사원에서 빚은 술에서는 인생과 예술의 향기가 묻어 나온다고도 했다.

산사원박물관에는 1천여 점의 전통술 역사자료와 ‘가양주문화’라는 전통술의 철학과 정성을 담아 술 빚던 조상들의 모습과 마음을 ‘술빚기 인형’을 만들어 재현해 놓았다. 전통술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술빚기와 술도자기 빚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하면 무료시음마당까지 펼쳐져 있다. 무료관람 전통술박물관에 무료시음 마당까지 펼쳐져 있는 터라 연평균 3만여 명의 탐방객이 다녀간다는 통계가 잡혀 있다.

산촌미락회 윤광규 부회장과 견학 갔던 날에는 고양 풍산산악회(회장 이강범) 회원 41명이 운악산 하산길에 산사원을 들렀는데, 견학을 마치고는 하산주를 무료로 마시게 되었다며 회원 모두가 활짝 웃으며 즐거워했다.

배상면주가 술 중에 산사춘(山査春)은 대표적인 술이면서 가장 많이 알려진 대중적인 술로 많은 애주가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산사와 산수유를 원료로 빚는데, 식전에 마시면 독특한 신 맛으로 식욕을 돋구고, 식후에 마시면 소화를 크게 돕는다. 궁합이 맞는 안주로는 찜이나 편육 등을 들 수 있겠다.

작금, 우리 사회에는 와인 열풍이 불어 귀한 달러가 외국으로 많이 빠져 나가고 있다. 이런 추세에 대항이라도 하는 것일까. 배상면주가에서는 한국 전통술을 세계화하기 위해 배상면주가의 역작으로 산자락(山子樂)과 오매락(烏梅樂)을 출시하고 있다.

배상면주가는 1952년 대구 동촌 소재 기린양조장이 그 뿌리인데, 1924년생인 창업주 배상면(裵商冕) 회장은 경북대 농예화학과 출신으로 자서전 ‘신께서 무한한 지혜를 나에게 주셨다 감사합니다’와 ‘전통주조기술’, ‘조선주조사’ 외 30여 권의 저서와 ‘백화주를 통해서 본 전통약주의 문헌적 고찰’ 등 많은 논문을 쓴 분이다. 지금도 80대 중반 나이의현역으로 한국의 술문화 창달에 큰 이바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