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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주말산행코스] 영남의 산 - 금성산~비봉산

by 白馬 2007. 6. 1.
[주말산행코스] 영남의 산 - 금성산~비봉산

 

530.1m & 671.8m·경북 의성
삼국시대 때부터 산성 있었던 군사요충지
금성산(金城山·530.1m)과 비봉산(飛鳳山·671.8m)은 경북 의성군 금성·가음·춘산·사곡면에 걸쳐 있으며, 의성읍 남쪽에 우뚝 솟은 명산이다. 이 두 산봉은 동서에 서로 마주보고 있으나 말발굽형의 산등성이로 연결돼 있고, 산 사이에는 깊은 협곡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두 산을 연계한 원점회귀산행이 가능하다.
아직까지도 대중교통편이 불편한 관계로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장점이기도 한 이 산은 조용하고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어 좋다. 금학산(金鶴山), 금산(金山)이라 불리기도 한 금성산은 서쪽에 탑리를 끼고, 남으로는 산운리 마을을 감싸고 솟아 있는 모습이 흡사 가마(轎)를 닮았다고 해서 이곳 사람들은 가마산이라고도 한다.

▲ 비봉산 암릉에서 조망되는 가음 일대의 구릉과 소류지. 뒤편으로 선암산이 솟아 있다.
옛 기록에는 영니산(盈尼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금성산은 금성(金城·초기 경주를 이르는 지명으로, 신라 도성에는 대궁·양궁·사량궁 세 대궐이 있었는데, 대궁의 다른 이름이 금성이었다)의 이름을 딴 것이라 하는데, 그 유래에 대해서는 아리송할 뿐이다.
한편 동쪽의 비봉산은 인근 의성군 다인면 대곡사가 자리 잡은 산도 똑 같은 비봉산이라 자칫 헷갈리기 쉽다. 병풍을 둘러놓은 듯이 깎아지른 절벽 위에 우뚝 솟은 형상이 마치 봉황이 날아가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고려시대부터 그렇게 불려왔고, 산 남쪽 구릉지대에는 봉황이 날아와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세 번이나 사방에 울렸다하여 가음(佳音)이라 붙여진 면(面)이 있다.

두 산은 중생대 백악기 후기에 발생한 화산활동의 흔적을 보존하고 있다. 금성산과 비봉산을 중심으로 타원형의 말발굽처럼 생긴 지형이 약 7천1백만 년 전에 분출한 백악기 칼데라(화산함몰체)로 밝혀진 것이다. 산중턱에는 용암과 화산재의 흔적으로 띠 모양의 암석층이 산을 둘러싸면서 연속적으로 둥근 고리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칼데라의 타원형 구조는 상당부분 풍화와 침식으로 깎여나가고 그 흔적만 남아 있다.

▲ (좌) 금성산이 여성의 산이라면 비봉산은 거친 암릉으로 이뤄진 남성의 산이다. (우)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그 형태와 모양을 달리하는 금성산(왼편)과 비봉산.
산운생태공원서 원점회귀

산행 들머리는 폐교된 산운초등학교. 지금은 산운생태공원으로 단장된 이곳 왼편으로 이어지는 콘크리트도로를 따라 수정사쪽으로 20분쯤 오르면 금성산 산행 입구다. 제법 널찍한 주차장에 화장실까지 마련돼 있어 승용차를 이용할 때 편리할 것 같다. 개울 건너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숲속에는 영천이씨 납골묘와 용문정이 있다.

안내판과 ‘金鶴城址(금학성지)’라 새겨진 자연석이 서있는 소나무숲 왼편으로 오른다. 곧이어 시골집 담장 같은 옛 성터를 넘어 된비알의 산길이 열린다. 성터를 왼편에 끼고 정상까지 40분 정도는 만만찮은 경사여서 땀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

금성산성은 금성석성, 금학산고성, 또는 조문성이라고도 한다.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조문국이 쌓은 성으로, 조문국이 신라에 병합되기 전 신라군에 대항하여 싸우던 최후의 패전장(敗戰場)으로 전해진다. 이후 신라는 고구려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이 성을 보수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비교적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조선조 때 왜인들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에서부터 근세에 이르러 의성지방의 연합의병들이 일제에 항거하던 곳이 또한 이 장소였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경사가 극에 달할 쯤이면 석축이 앞을 가로막고 로프가 매달려 있다. 로프를 타고 올라서면 옛 산성의 관망대터. 망루가 있던 곳으로 주변 조망이 한눈에 펼쳐진다. 발 아래로 정자골 일대와 건너편의 비봉산 산등성이, 그리고 가음면 일대의 너른 벌판이 풍요롭게 다가온다. 확 트인 조망으로 본다면 적의 침입을 감시하고 동태를 살필 수 있는 망루로서 최적지가 아닌가 싶다. 

다시 10분쯤 더 오르면 약간 평지에 짙은 소나무숲이 쉼터로 적당하다. 산중턱의 이 평지는 과거 조문국의 병마훈련장이다. 경사진 암릉을 타고 오르려니 숨은 차오르고 땀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비탈길에 설치된 로프를 붙잡고 힘들게 올라서면 금성산 정상이다. 산정에는 헬기장이 있고, 삼각점과 의성산악회가 세운 정상표석이 길손을 맞는다. 주변이 탁 트인 이곳이 예로부터 영남 제일의 명당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 비봉산 능선길은 금성산 능선을 비롯해 가려졌던 계곡까지 훤하게 볼 수 있다.

산길은 정상표석 뒤편의 소나무가 울창한 숲속으로 연결된다. 색깔 고운 솔잎이 깔린 부드러운 능선길은 한적하고 조용하다. 가끔 새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릴 뿐이다. 능선에 삐죽삐죽하게 서 있는 바위군을 지나면 흔들바위 갈림길. 그대로 직진하면 그윽한 솔향이 코끝을 자극하는 오붓한 길이 계속된다.

낮은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면 용문정 갈림길 안부. 왼편은 샘터를 거쳐 기도원 가는 길, 오른편은 용문정, 봉수대는 직진으로 800m를 가리킨다. 안부에서 10분 정도 오르면 549.7m봉에 이른다. 금성산의 실질적인 최고봉인데도 아무런 표지판도 없다. 여기서 잠시 내려서면 봉수대터.

 ‘영니산 봉수대 유지’라는 푯말이 서있고, 주변에는 석축 흔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에 의하면 이 봉수대는 ‘청로의 승원산 봉수대에서 봉화를 받아 만천의 대야산 봉수대에 전달했다’고 한다.

이제부터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5분쯤이면 네 갈래 갈림길의 안부를 지난다. 맞은편 봉우리의 오른편 산허리를 에돌아 나아가면 조망이 뛰어난 전망대 바위를 만난다. 바위에 자리 잡은 소나무 한 그루가 정원수를 연상케 할 정도로 이채롭다. 여기서 길은 오른편으로 꺾어들며 급경사 내리막으로 치닫는다.

20분 정도면 노적봉 갈림길을 만나고, 곧이어 산등성이 왼편을 돌아 5분이면 수정사 갈림길(비봉산 정상 900m, 수정사 1,000m, 운곡리·금성산 정상 4,950m)이다. 금성산과 비봉산이 갈라지는 분기점으로 오른편 절골에 자리한 수정사를 들르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수정사는 용문정에서 콘크리트 포장도로로 1.8km 거리로 승용차 이용시 답사 가능). 

절 주변의 계곡물이 수정처럼 맑고 깨끗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수정사(水淨寺). 신라 신문왕 때 의상대사가 금성면 탑리 인근을 지나다가 숲속에서 새가 노래하고 나비가 춤추는 것을 발견하고 처음 절을 지었다. 이후 절집은 화재로 소실되고 지금의 수정사는 구담선사가 산골짜기로 옮겨지었다고 한다.


▲ (좌) 석축 흔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영니산(금성산) 봉수대유지. (우) 영남 제일의 풍수지리적 명당이라는 금성산 산정.

갈림길에서 밋밋한 능선을 따라 20분쯤 오르면 비봉산 정상에 선다. 사방이 툭 트인 산정에는 헬기장이 터를 잡고, 정상표석과 삼각점(의성 12, 2004 재설)이 있어 금성산 정상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주변 조망은 너무나 시원하다. 금성산에서부터 지나온 능선은 물론 의성군에서 제일 높다는 선암산(878.7m)이 동남쪽에 솟아 있다. 또 춘산, 가음 일대의 기름진 벌판이 펼쳐지고, 가야할 암봉들도 고만고만하게 머리를 내밀고 있다.

이제부터 날아오르려는 봉황의 등줄기를 타고 남서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잠시 후 정상보다 약간 높아 보이는 제2봉을 지난다. 암릉길의 비봉산은 금성산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금성산이 부드러운 여성을 닮은 육산이라면, 비봉산은 거친 암릉으로 이루어져 울룩불룩한 근육을 자랑하는 남성의 산이 아닐까 싶다.

곧이어 큼직한 바위가 있는 제3봉이다. 이어지는 능선을 바라보면 왼편으로는 깎아지른 절벽 위의 날등이 아찔한 스릴을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발걸음을 옮겨 바윗길을 이리저리 돌다보면 갑자기 앞을 가로막는 절벽에 로프가 매달려 있다(우회로도 있음). 15m 정도의 절벽에 로프를 잡고 하강하면 왼편에 전망바위가 있다.


▲ (좌)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절벽에 매달려 있는 남근석. (우) 비봉산 정상은 사방이 툭 트인 관계로 조망이 시원하다.

이곳에서 내려온 제3봉을 되돌아보면 봉우리는 보이지 않고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절벽에 매달린 남근석을 볼 수 있다. 옆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감로수를 먹고 자라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있어 달리 보면 소나무 아래서 자라는 송이버섯을 떠올리게 한다. 묘한 장면에 웃음만 흘릴 뿐이다. 발걸음을 되돌려 내려서면 갈림길이 있는 안부. 오른편은 수정사, 왼편은 가음면 이리 마을로 연결된다.

정면의 606m봉까지는 경사가 가파른 능선길로 20분이면 닿는다. 곧이어 주변 조망이 시원한 암릉으로 연결되는 날등을 탄다. 오른편으로 금성산의 능선은 물론이고 가려졌던 계곡의 속살까지도 훤히 내려다보인다. 왼편으로는 가음면 일대의 부챗살처럼 펼쳐진 구릉과 16만 평 규모의 가음(양지)저수지를 비롯해 수많은 소류지가 한낮의 햇빛에 반사돼 반짝인다.

601m봉을 지나 발아래 산등성이 끝에 있는 산불감시초소를 바라보고 내려선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마지막 봉우리에 다다르면 암릉길에서 느끼던 묘미도 끝나고 하산로는 다시 부드러운 숲길로 변한다. 곧이어 용문지 앞의 도로에 닿으면서 산행은 끝나고, 산운리 마을까지는 도로를 계속 따라 20분이면 이른다.


산행길잡이

○산운리 버스정류장~영천이씨 납골묘~금성산 정상~수정사 갈림길~비봉산 정상~606m봉~산불감시초소~용문지~영천이씨 납골묘~산운리 버스정류장 <5시간30분 소요>
○산운리 버스정류장~영천이씨 납골묘~산불감시초소~606m봉~비봉산 정상~수정사 갈림길~수정사~용문지~산운리 버스정류장 <4시간 소요>
○산운리 버스정류장~영천이씨 납골묘~금성산 정상~수정사 갈림길~수정사~용문지~산운리 버스정류장 <3시간30분 소요>


교통

대중교통편이 약간 불편하다. 의성 시외버스터미널(054-832-0180)에서 탑리 경유 산운리까지는 읍내버스(의성여객)를 이용한다. 탑리는 금성면 소재지로 의성 기점 시외버스(금성 시외버스정류장:054-834-1215)의 경유지다. 대구, 부산, 영천 등지에서는 굳이 의성읍내까지 갈 필요 없이 탑리에서 내리면 된다.

탑리에서 산운리까지는 읍내에서 출발하는 읍내버스를 이용한다. 산행들머리인 용문정(영천이씨 납골묘)까지 택시(탑리 콜택시 054-833-1577, 합동택시 054-833-0880)를 이용할 경우 편도 6,000원 안팎이다. 산행 전 돌아올 교통편과 시간을 잘 파악해야 하며, 읍내버스는 시간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여유있게 기다리는 지혜도 필요하다. 

서울→의성 동서울터미널(02-446-8000ARS)에서 1일 6회(07:30, 09:30, 12:30, 14:30, 17:30, 19:30) 운행.
부산→의성(탑리) 노포동 부산종합터미널(051-508-9966)에서 의성 경유 안동행이 1일 4회(08:30, 10:45, 13:50, 15:50) 운행.
대구→탑리 북부시외버스터미널(053-357-1851~2)에서 25분 간격(06:30~19:30) 운행.
탑리→산운리 의성여객(054-832-1001)이 1일 6회(07:30, 08:25, 09:30, 11:00) 운행.


숙식(지역번호 054)

의성읍내에는 깨끗한 여관과 식당이 많아 숙식에는 그다지 큰 어려움이 없지만, 탑리는 면소재지인 관계로 다소 불편하다. 숙박은 탑리를 비롯한 인근에 금성장여관(832-3135)을 비롯해 해림장여관(832-7920), 석화장여관(833-1291)이 있다. 특별한 먹거리집은 없지만 초원식당(833-2794), 탑리기사식당(834-1178), 탑리실비식육식당(834-040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