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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좋은 산 좋은 절 / 칠현산 칠장사]

by 白馬 2007. 5. 10.
[좋은산 좋은절/칠현산 칠장사]물소리는 부처의 법문, 산색은 부처의몸
▲ (왼쪽) 종각에서 바라본 산신각. 월통전 옆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고운 돌 축 위에 앉아있다. 절집에서 주불전보다 높은 곳에 자리한 건물은 산신각밖에 없다. 한국인들에게 산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오른쪽) 대웅전 앞 삼층석탑. 절하는 이의 모습도 탑의 모양새도 소박하게 곱다.
산하대지가 은근히 웃는 계절입니다. 파안대소가 아닌지라, 근육의 미세한 떨림까지 전해오는 참 맑은 웃음입니다. 이른 봄 산색은 푸름을 다 드러내지 않아 더 곱습니다. 이제 막 새순을 내놓기 시작하는 활엽수와 늘 푸른 나무들이 어우러진 모습은, 한 올 한 올의 자존이 빛나는 결 고운 모시를 보는 느낌을 자아냅니다.

이즈음 우리의 산하는, 어딜 가든 어느 모로 보든, 세상 그 어떤 꽃보다 더 꽃 같습니다. 천하절경으로 일컬어지는 승경과 두루뭉술한 동네 뒷산을 견주어도 아름다움에 차서를 매기기 어렵습니다. 흔하면 천하다는 말도 봄산의 아름다움 앞에서는 비켜서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자연에 대해서 극도로 섬세한 심미안을 지녔던 고인들은, 매화에 대한 끔찍한 사랑의 반쯤이라도 이른 봄 산색에 나누어 주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과문한 탓으로 근거 박약한 추측을 하건대, 나만 홀로 혹은 뜻이 통하는 몇몇이서 즐기는 모종의 은밀함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녹음유초승화시(綠陰幽草勝花時)’라는 왕안석의 절창도 무성한 수풀에 대한 상찬이었지, 야단스럽게 푸르지 않아서 더 고운 이즈음의 산색을 노래한 건 아닌 듯합니다.

▲ 산벚꽃 은근히 웃는 칠현산 기슭에 기대앉은 칠장사. 절 뒤란을 둘러싼 단풍나무들이 내어놓는 새싹들이 새벽햇살처럼 곱다.
칠장사 가는 길 내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고속도로가 아무리 빠른 속도로 산을 밀어내도, 꽃 같은 산은 내 눈길 밖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부처의 현현이라는 통찰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도 같습니다.

천하에 문명을 떨친 소동파(1036-1101)가 동림(東林) 상총(常總·중국 송나라 1025-1091) 선사를 찾았습니다. 스스로를 ‘칭(秤) 거사’, 즉 도인을 저울질하는 이라 일컬으며, 찌를 듯한 오만을 굳이 숨기려 들지 않았습니다. 이에 동림 선사는 느닷없이 “할(喝)!” 하고는 그 소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를 달아보라고 했습니다. 단 한 마디에 할 말을 잃은 소동파는 무참하게 자존심이 내려앉은 채 물러나 말을 타고 돌아가다가, 개울물 소리를 듣고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소동파는 그때 깨달은 바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 원통전 천장의 천녀상.

흘러가는 물소리는 부처의 다함없는 법문이요
산색은 그대로 부처의 몸.
어젯밤 깨달은 무량한 가르침
훗날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할까.

溪聲便是廣長舌  山色豈非淸淨身
夜來八萬四千偈  他日如何擧似人

칠장사 산문을 들어서며, ‘훗날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할까’ 하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한 소동파의 오도송을 떠올리며 매무새를 가다듬습니다. 사천왕문을 지나며 꾸벅 절을 올립니다. 벚꽃과 어우러진 절집의 단아한 옆모습이 사천왕문이 만들어준 액자로 들어와 한 폭의 그림이 됩니다. 흙으로 빚은 사천왕상(도유형문화재 제114호)의 험상궂은 눈매가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 (왼쪽, 가운데) 대웅전 계단의 구름 조각. 지상 위에 구현된 하늘 세계를 보는 느낌이다. (오른쪽) 1060년에 조성된 혜소국사비(보물 제488호) 귀부(부분).
사천왕문을 통하여 모퉁이 진입을 하게 한 가람 배치로 인하여 대웅전은 건물 사이와 지붕선 너머 대각선 방향으로 단정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대웅전 뒤로는 무리를 이룬 단풍나무가 뾰조록이 붉은 잎을 내놓고 있습니다. 대웅전 옆 원통전 가에는 늙은 벚나무 한 그루가 몸통에 비해 눈에 띄게 가냘픈 가지에 꽃잎을 걸어 산사의 고격을 더해 줍니다.

경기도 안성시 이죽면의 칠현산(七賢山) 칠장사(七長寺). 자장 스님이 636년(신라 선덕여왕 5)에 창건했다는 고찰입니다만, 창건주 자장 스님보다는 고려 때 크게 절을 일으킨 혜소(慧炤) 국사의 자취가 더 짙은 절입니다.

칠현산 칠장사라는 이름도 혜소 국사와 관련한 이름입니다. 절에 전하는 얘기에 따르면, 절에 들이닥친 일곱 명의 도적을 혜소 국사가 교화하여 모두 도를 깨쳤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절은 나한전에도 일곱 분의 나한을 모시고 있습니다.


또 재미있는 전설은 어사 박문수가 바로 이 나한전에서 기도를 드린 후 과거에 급제했다는 것입니다. 이것 말고도 칠장사에는 흥미진진한 얘기가 많습니다. 조선 명종 연간의 의적 임꺽정이 한때 이 절에 머문 적도 있다고 합니다. 얘기는 이렇게 살이 붙습니다.

백정 출신이라 스승을 구할 길 없던 임꺽정이 칠장사에 갖바치 출신의 고승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절을 찾았습니다. 당시 생불로 추앙받으며 개혁주의자 조광조와도 친분이 두터웠다는 병해(昞海) 대사는 임꺽정을 제자로 거두었습니다. 아마도 임꺽정은 병해 대사를 만남으로써 신분제의 모순과 정치의 혼란, 관리의 타락에 대해 공분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병해 대사의 개혁 성향과 갖바치 출신이라는 신분은 귀족 불교로 타락한 고려 불교 전반의 정서와는 달리 기층민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라는 추정은 가능하겠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되, 지금도 칠장사는 절 아래 동네에서 굶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견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죽이든 밥이듯 나누어 먹어야 한다는 공동체 정신은 영원히 지켜나가야 할 절집 본연의 모습이겠지요.

 

▲ 명부전의 시왕들. 이생에서 살아온 업의 무게를 읽는 모습이 근엄하다.

칠장사는 그리 큰 절이 아닙니다만 규모에 비해서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국보 제296호 오불회 괘불탱, 보물 제1256호 삼불회탱, 보물 제488호 혜소국사비, 보물 제983호 봉업사 석불입상, 도유형문화재 제34호 인목대비 칠언시 친필족자 등이 그것입니다. 이중 국보인 오불회 괘불탱은 광해군에 의해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 영창대군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인목대비가 시주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칠장사와 세속의 인연은 귀천을 가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신분을 가리지 않은 열린 마음과 궁벽한 산골이라는 입지가 이런 독특한 내력을 이룬 바탕이 되었겠지요. 이 절이 얼마나 궁벽한 곳인지는 1383년(우왕 9)에 가야산 해인사에 보관하다 충주 개천사로 옮겼던 고려 왕조의 실록을 이곳으로 옮겼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습니다(신증동국여지승람 죽산현 불우조).

내륙 깊숙이에 자리한 칠현산(516m)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인천에서 평택, 천안, 아산, 서산에 이르는 서해안을 감싸는 산줄기의 정점에 있습니다. 백두대간의 속리산에서 뻗어나온 한남금북정맥이 이 산과 북쪽으로 맞닿은 칠장산(492m)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나뉘는 것입니다.
나한전 옆에 서 있는 500년이 넘었다는 소나무를 보며 칠장사와 깊은 인연을 맺은 혜소국사, 병해대사, 조광조, 임꺽정, 박문수, 인목대비, 그리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이 나무와 칠현산은 그 모든 사람들을 지켜봤겠지요. 말 못할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한숨을 들어주고, 도저히 삭힐 수 없는 분노와 한을 다독여 주고, 말없이 지켜봐 주었겠지요. 자연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절은, 그러한 자연의 내밀한 소리에 귀를 열게 합니다.

한 줄기 바람을 따라 벚꽃이 흩날립니다. 피어날 때 그랬던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없이. 사소한 것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나는, 언제쯤에야 저 꽃잎을 닮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득한 봄날입니다.


칠현산 산행 쪽지정보

칠장사에서 칠현산을 오르는 일은 가벼운 산책에 가깝다.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올라 충분히 땀을 식히고 내려와도 1시간이면 족하다. 혜소국사비를 지나 나한전 옆으로 약수터라고 써 붙여놓은 팻말이 등산로 입구다. 초입은 완만하지만 중턱부터는 제법 가파르다. 정상 전 칠장산 갈림길부터는 다시 부드러워진다. 갈림길에서 오르는 방향 왼쪽 능선이 칠현산 가는 길이다. 칠장사쪽 기슭은 전형적인 활엽수림이고, 능선은 소나무숲으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