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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봄이 오는 곳에 그리움이 먼저 핀다

by 白馬 2007. 2. 21.

봄이 오는 곳에 그리움이 먼저 핀다

동백꽃 여행

남쪽 끝에서 동백의 붉은 기운이 서서히 번지고 있다. 봄이 오는 곳에는 언제나 동백이 먼저 핀다. 올해도 겨울의 끝자락에 동백꽃 소식이 들려 왔다. 동백은 보통 거문도에서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해 거제도 해금강과 충남 서천 춘장대로 올라온다. 남자는 거제도, 여자는 여수 오동도에서 붉디 붉은 동백을 만났다.
 

● 파란 바다와 붉은 동백의 입맞춤 - 거제 학동

 

▲ 동백숲 너머 펼쳐진 해금강 전경.

 

지난해 통영까지 개통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따라 4시간 30분을 달렸다. 거제대교를 넘어서면 고층건물이 운집한 시가지가 먼저 나타나기 때문에 이곳이 섬이라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하지만 장승포를 지나면서 만나는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느덧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입춘 지나 따뜻해진 바닷바람이 섬을 감싼다. 봄이면 거제의 바다와 동백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거제도에서도 장승포에서 20㎞ 정도 떨어진 학동마을의 동백숲(천연기념물 제233호)과 해금강의 울창한 동백 숲이 화려하다.


 

 
학동 몽돌 해변의 동백꽃을 먼저 찾아갔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백그루의 동백나무가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3만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자생하는 거대한 숲. 2월말이면 일제히 꽃을 피운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동백 잎은 햇살에 은빛으로 부서진다. 서서히 꽃망울을 피워내기 시작하는 동백이 유난히 붉다.

진초록 잎사귀 사이로 붉은 속살을 드러내는 동백꽃. 눈부시게 파란 바다와 어우러지면 새색시의 연지곤지처럼 야릇한 매력이 느껴진다.

 

학동 동백 숲은 예로부터 유명한 동백 서식지였다. 하지만 나라에서 큰일을 당해 이곳으로 유배 온 사람들이 동백꽃을 마뜩찮게 생각해 많이 뽑아냈다고 한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목이 잘리듯 떨어지는 꽃송이가 서글픈 느낌을 준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다시 거제도 곳곳의 동백꽃이 화사해지고 있다. 거제시에서 동백나무를 꾸준히 심고 가꾼 덕분이다. 해금강 입구에서 만난 동백도 인상적이다. 해금강호텔 앞의 동백 숲에 만개한 동백꽃이 많다. 여행객들도 해금강으로 내려서다 동백꽃과 동박새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거제의 동백 여행은 학동 동백 숲에서 출발해 해금강을 거쳐 여차해변으로 가는 길이 편하다. 이 길은 에메랄드 빛 바다를 곁에 두고 이어진다. 파란 바다를 바라보며 치마폭을 들썩이는 봄바람처럼 붉은 사랑을 품어본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자동차의 질주가 경쾌해 보인다.


 

●가는 길=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이용해 동통영IC로 빠져 나와 거제대교를 넘은 뒤 14번 국도를 달린다. 장승포에서 해안도로를 타고 20km 정도 달리면 학동 삼거리. 식당과 호텔이 몰려있는 삼거리에서 1km 정도 더 가면 동백 숲이 양쪽으로 펼쳐진다. 해금강의 동백 숲도 아름답다.

●볼거리=학동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5분만 달리면 거제의 명승지 해금강이 나온다. 해금강 직전에 있는 전망대에서 해금강을 내려다보는 전망도 좋고, 유람선 타고 해금강을 둘러볼 수 있다.

●맛집=해금강호텔 바로 옆에 있는 천년송횟집(055-632-3118)은 신선한 자연산회와 홍합죽으로 소문난 맛집. 자연산 우럭회 5만원, 홍합죽 1만원, 해산물 모듬 5만원.

 

 

● 꽃송이 그대로… 여인의 눈물처럼 떨어지네 - 여수 오동도

▲ 산책하기 좋은 오동도 동백나무 숲길.

 

집게손가락 끝에 겨울이 대롱거린다. 기차가 여수 만성리 해수욕장을 지나자 엄지손가락으로 팅 겨울을 퉁겨버린다. 여수 바다는 봄이다. 오동도 꽃구경 가는 길이 따사롭다.

길이 768m라는 긴 방파제를 따라서 오동도로 들어간다. 국내 최대 동백군락지 오동도는 3000여 그루의 자생 동백이 자라고 있다. 며칠 전에는 눈을 내려서 봄볕에 먼저 핀 동백꽃을 얼렸다. 꽃이 피지 않은 숲은 어둡다. 나뭇가지 사이를 유심히 살펴보면 동백이 꽃망울 터트렸다. 오동도 동백은 2월말 절정을 이룬다.


오동도 동백 수령은 50살부터 300살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어린 나무나 고목이나 꽃은 똑같이 붉다. 수줍게 벌린 꽃망울은 이제 막 화장을 시작한 소녀의 입술처럼 붉다. 공중전화 박스에 서서 전화기 들고 질근질근 씹는 소녀의 입술 같다.

동백꽃은 지고 난 후도 아름답다. 동백은 벚꽃처럼 지지 않는다. 장미처럼 핀 자리에서 시들지도 않는다. 피어 있는 그대로 꽃송이 통째로 뚝 떨어진다. 사람들은 동백꽃 떨어지는 것을 여인의 눈물과 비유한다. 동백꽃이 떨어지는 소리는 분명 떠나는 발길을 잡는다. 섬뜩하다. 떠나는 사람에게 꽃 길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그래서 동백꽃을 ‘여심화’라 불리는지 모르겠다.

여수역을 사이에 두고 오동도 반대쪽에 있는 만성리해수욕장으로 간다. 검기보다 회색에 가까운 모래해변이 인상적이다. 연인들이 오동도를 둘러본 후 조용한 해변을 찾아 이곳으로 온다.


 

해변을 따라 걷다가 새 한 마리를 만났다. 부리로 자꾸 깃을 쪼는 것이 다친 것 같다. 젊은 연인이 애처롭게 바라보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본다. 주말이라 연락되는 곳이 없다. 옆에서 지켜보다 119에 구조 요청을 했다. 기차 시간이 되어서 나는 떠나고 젊은 연인들이 구조대가 올 때까지 다친 새를 지켜주기로 했다. ‘여심화’는 아마 새 곁에 서서 밀물이 들어올까 걱정하는 마음일 것이다. 사람들은 오동도 동백꽃 같은 사랑을 피우며 살아간다.


 

●가는 길=용산역에서 여수역까지 가는 기차(한국철도공사 1544-7788 www.korail.go.kr)는 6시 50분부터 22시 50분까지 12회 운행. 무궁화호는 5시간 40여분 정도 소요, 새마을호(하루 3회 운행)는 5시간 정도 걸린다. KTX를 이용할 경우 익산역에서 여수행으로 환승. 환승시간 포함해서 보통 3시간 40여분 소요.

●볼거리=해를 향한 암자 향일암은 남해 금산 보리암, 양양 낙산사 홍연암, 강화도 보문암과 함께 우리나라 4대 관음기도처 중 하나. 남해에 뜨는 일출이 장관.

●맛집=여수시 중앙동에 위치한 구백식당(061-662-0900)은 서대회가 유명. 매콤 달콤한 양념 맛과 쫄깃쫄깃 씹히는 서대 맛이 일품. 서대회 1만원, 아구탕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