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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트레일 러닝 초보, 북한산 65km 뛰다 [북한산둘레길 65K 챌린지]

by 白馬 2025. 1. 23.

 

1년 준비 끝에 12시간 8분 기록

 

지난 2024년 11월 북한산 일대에서 스위스 애슬레저 브랜드 브랜드 오들로odlo가 주최한 ‘오들로 북한산둘레길 65K 챌린지’가 열렸다. 대회 전 오들로는 트레일 러닝 초보자를 모집해 1년 동안 교육을 진행했다. OBC65 1기라고 이름 붙은 팀원의 대회 후기를 전한다.

 

2023년 11월, 오들로 북한산둘레길 65K 챌린지, ‘OBC65’ 선발 공고가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다. 트레일 러닝 초보를 선발해 오들로의 지원 하에 1년 후 북한산둘레길 65km 대회 완주에 도전하는 1년짜리 프로젝트였다. 당시 나는 북한산둘레길 완주에는 관심이 없었고, 단지 오들로 옷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는 속물적인 마음으로 지원했다. 운 좋게도 챌린저로 선발됐고, 참가자들이 모여서 함께 훈련하는 정규 세션 및 트레이닝 데이(훈련)에 참여하면서 점점 완주에 욕심이 생겼다.

 

OBC65 1기는 챌린지를 이끄는 멘토 여섯 명을 중심으로 북한산둘레길 완주에 도전하는 트레일 러닝 초보인 챌린저들, 그리고 챌린저들의 완주를 돕는 트레일 러닝 경력자인 서포터들로 구성되었다. 발대식에서 받은 상자에 적힌 문구가 인상 깊었다. 

 

‘우리는 당신에게서 영감을 받습니다.’ 

 

나를 포함한 챌린저들의 1년간의 성장 스토리가 브랜드에게 어떤 영감이 될지 궁금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편으로는,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있어 이 챌린지를 지원한 내가 조금씩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부끄럽지 않고 싶었다. 그래서 매서웠던 한겨울부터 뜨거웠던 한여름을 지나 낙엽이 지는 가을까지 산을 달렸다. 그 과정에서 트레일 러닝은 로드 러닝과 등산의 교집합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운동임을 깨달았다. 복장, 에너지원, 주법 등 모든 게 달랐다. 또한 산은, 같은 길이라도 계절마다 풍경도 다르고, 지형도 조금씩 달라진다는 걸 깨달았다. 1년 동안 북한산둘레길을 몇 번에 걸쳐 나눠 뛰면서 눈에 익은 구간이 있었지만, 몇 번을 와도 낯선 구간도 있었다. 가을의 북한산둘레길은 어떤 풍경일지 궁금했다.

 

‘전지현’이 옆에 있어도 ‘무시’

대회 당일 오전 7시, 우이동 만남의 광장에서 65K 선수들이 출발했다. OBC65는 챌린저들의 무사 완주를 위해 네 팀으로 나누어 팀끼리 함께 달렸다. 내가 속한 팀의 멘토는 장동국 선수였다. 그는 챌린저들의 체력과 강점, 약점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페이스를 조절해 줄 뿐만 아니라, 뛰는 내내 트레일 러닝 전반에 필요한 팁도 알려 주었다. 

 

일출이 함께하는 가을의 북한산둘레길은 굉장히 아름다웠다. 금빛 일출을 받아 빛나는 단풍 아래서 10km를 달려 첫 번째 CP에 도착했다. 콜라를 한 컵 마시고, 과일을 먹으려 하는데 CP1에 준비된 샤인머스켓이 다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제 첫 번째 CP인데 벌써? 우리 속도라면 이후 CP에 가더라도 샤인머스켓을 못 먹을 게 뻔했다. 다행히 스태프 한 분이 융통성을 발휘해 CP3으로 가야 하는 샤인머스켓 중 한 박스를 뜯어 주었다. 당 보충을 든든히 하고 CP1을 출발할 수 있었다.

 

CP1과 CP2 사이에는 평창마을길이 있다. 평소 훈련 중 평창마을길을 지날 때마다 체력적으로 힘든 기억이 있었기에, 이 구간은 내게 트라우마 같았다. 그런데 이날 평창마을길 중간에 드라마인지, CF인지 모를 촬영 현장을 지나갔는데 알고 보니 배우 전지현 님이 계셨다. 천천히 걸어갔으면 신기하다고 구경도 했을 텐데, 내가 달리기에 미쳐서(!) 전지현을 옆에 두고도 뛰어 가는구나! 싶어 새삼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트라우마 같은 구간을 웃음이 나는 기억으로 남기고 WP1에 도착했다.

 

WP1에는 부상으로 대회를 뛰지 못하는 챌린저가 스태프로 함께하고 있었다. 비록 그는 완주에 도전하지는 못했지만, 어떻게든 이 챌린지의 종착점에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져 그의 응원이 더욱 마음에 와닿았다. 

 

CP2는 오들로 북한산성점 앞이었다. 절반가량 왔다는 안도감도 잠시, 이후에는 북한산둘레길에서 가장 긴 업힐인 사패산 산너미길이 남아 있다. CP2에서는 식당을 대관해 김밥과 어묵탕이 제공됐다. 팀원 모두 든든히 속을 채우고 남은 37 km를 뛰러 나섰다.

 

나는 더위에 매우 약한 편인데 이날 기온은 14~19℃로 11월 중순치고는 꽤 높았다. 아니나 다를까, 해가 뜰수록 뜨거워졌고 CP2를 출발한 후부터 속이 울렁거렸다. 혼자였다면 대회를 포기하고 싶었을 정도로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다. 하지만 팀을 생각하며 꾹 참고 산너미길을 올라가는데, 팀원들이 내 얼굴을 보고 놀랐다. 얼굴이 하얗게 창백해질 정도로 질려 있었다고 한다. 마침 그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비로 인해 기온이 내려가며 울렁거리던 속이 진정되었고 컨디션이 살아났다. 게다가 산너미길을 넘은 후 나온 CP3에서는 박영규 멘토님이 아이스크림과 마사지 크림을 준비해 주었고, 나는 그를 만나자마자 길바닥에 철퍼덕 앉아 마사지를 받았다. 그러자 잠겨 있던 다리가 가벼워졌다. 이제 약 16km 남았다. 여기서부터 우리 팀원들이 서서히 지쳐갔다. 팀원 중 한 명은 대회 초반에 발목을 접질렸고, 한 명은 부상 중이었다. 우리 팀 챌린저들 모두 산길을 50km 이상 달린 것이 처음이었다. 설상가상 비가 거세지며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트레일 러닝 대회에서 같이 뛰는 것이 항상 즐거운 것은 아니다. 속도가 맞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긴 시간을 같이 뛰어야 하는 것은 모두에게 고역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팀의 전략은 업힐에서는 업힐에 가장 약한 사람을, 다운힐에서는 다운힐에 가장 약한 사람을 선두로 세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가장 느린 사람의 속도에 맞춰서 꾸준히 걷고 뛸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느린 사람이 선두에 있기 때문에 뒷사람들은 답답할 수 있었다.

 

“내년엔 100K 가자!”

 

그러나 우리는 누구 하나 짜증이나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않고, ‘다 같이 완주하자’는 생각으로 웃으며 파이팅을 외치며 달렸다. 느린 사람을 재촉하지도 않았다. 해가 지고 새까만 어둠 속, 퍼붓는 빗속에서 서로의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뛰었다. 간간이 헤드랜턴 불빛에 비친 대회 마킹 리본이 내가 맞는 길을 가고 있다는 또 다른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12시간 8분 동안 서로를 응원하며 우리 팀은 다 같이 완주에 성공했다. 분명 뛰는 중간에는 ‘내가 미쳤다고 이걸 뛰고 있나. 다신 산에서 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완주하고 나니 그간의 과정이 언제 힘들었냐는 듯 미화되었다. 대회 후 뒤풀이 자리에서는 ‘내년에 100K 대회를 같이 가자’며 웃기도 했다.

 

이번 대회는 트레일 러너인 OBC65 신용문 멘토님이 디렉터로 함께 해준 덕분인지, 트레일 러너의 시선에서 대회를 준비했다는 게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우천 소식에 WP2에서 추위를 대비해 따뜻한 꿀물이 준비되어 있었고, 완주 후에는 따뜻한 오리탕이 제공됐다. 이전 대회와 달리 편의점에서 자체 보급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CP 간격과 제공 음식이 적절했고, 중간에 히든 CP를 제공하는 등 참가 선수를 최우선으로 생각했음이 느껴졌다.

 

이런 대회를 운영하는 것이 브랜드 입장에서는 적자라고 한다. 특히 OBC65 1기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들로 제품으로 도배할 수 있을 정도로 오들로에서는 많은 제품을 지원했다. 그에 맞는 홍보 효과가 일어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브랜드의 트레일 러닝에 대한 진심이 굉장히 와닿았다. 완주 직후, 발대식 날 보았던 ‘우리는 당신에게서 영감을 받습니다’라는 문구가 다시 떠올랐다. 트레일 러닝을 거의 해보지 않은 초보들이 1년의 시간을 통해 65K를 완주하기까지 나를 포함해 모든 멤버들에게 각자의 사연이 있었다. 그 사연들이 오들로뿐만 아니라, 추후 트레일 러닝에 도전하는 누군가에게도 영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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