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자전거길까지 더 걸어 실제 운행거리 5,361km
코리아둘레길 일시종주자 이형기씨
극한 산행은 단순히 체력만 좋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산을 대하는 올곧은 태도와 이념, 탄탄한 지식과 경험을 두루 갖춰야만 안전히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넷플릭스 인기 예능 <피지컬100>에서 피지컬이 뛰어난 이를 탐구했듯, 월간<山>은 ‘산지컬’이 뛰어난 이들을 만나본다.
2024년 8월 6일. 인천 강화도 평화통일전망대에 평범해 보이는 한 남성이 나타났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딱히 근육질 몸매도 아닌 듯한 그는 등 뒤에 ‘한반도 지도 그리기’라고 적힌 깃발을 달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지도를, 특히 강화도까지 와서 그리겠다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좀더 찬찬히 살펴보다가 다른 깃발을 보니 이해가 간다. 그는 걸어서, 본인의 GPS 트랙을 이용해 한반도 지도를 그릴 작정이었다. 그것도 한 번에.
거리는 약 4,500km. 물론 중간에 매점, 식당 등을 이용한다거나 숙소에서 자려고 잠깐씩 벗어나는 거리까지 더하면 훨씬 늘어난다.
이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일단 그는 시계 방향으로 출발한다. 강화도에서 강원도 고성으로, 해파랑길을 따라 고성에서 부산으로, 그리고 남파랑길을 따라 땅끝마을을 지나 서파랑길로 다시 강화도로 돌아오는 것이다.
강화도에서 고성으로 가는 건 자전거길로 조성된 DMZ평화누리길을 따랐다. 순조롭게 도전을 이어가는데 한 달이 지나 9월이 되자 변수가 생긴다. 국토 전체 둘레를 도는 걷기길이 ‘코리아둘레길’이란 이름으로 정식 개방됐다. 그런데 기존에 걸은 DMZ평화누리길이 아니라 걷기길 중심의 ‘DMZ평화의길’이라는 노선을 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지도를 보니 기존 평화누리길에서 자전거길을 30~40% 정도 덜어내고 산길을 채운 식으로 조성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제 와서 다시 강화도로 돌아가 새 출발을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는 이미 남파랑길에 있었다.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해야만 했다.
그는 500km를 한 번 더 걷기로 결정했다. 11월 12일 강화도로 돌아온 그는 또 다시 고성으로 향했다. 그리고 11월 24일, 고성 통일전망대에 섰다. 그의 도전은 그래서 이 두 가지 숫자로 축약된다.
‘111일, 5,361km.’
코리아둘레길 일시종주 중 대부도의 한 억새밭을 지나고 있다.
최단시간, 최초 일시종주 유력
먼저 그의 얘기를 시작하기 전, 코리아둘레길 일시종주를 꿈꾸고 있는 다른 사람을 위해 엄밀한 기록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처음에 평화누리길을 따라 DMZ 방면을 지났기 때문에 그의 코리아둘레길 일시종주 기록은 8월 17일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동남서해안을 지나 DMZ평화의길을 따라 다시 고성으로 온 것이 11월 24일이다. 딱 100일 걸렸다.
현재까지 코리아둘레길을 일시종주한 기록은 각종 GPS앱이나 러닝, 등산 커뮤니티를 통틀어서 찾아보기 힘들다. 워낙 장거리다 보니 구간을 쪼개서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기에 현재로선 그가 최초이자 최단시간 일시종주자인 것으로 보인다(이보다 먼저, 혹은 빨리 코리아둘레길을 일시종주한 사람을 알고 있다면 제보 blackhouse@chosun.com).
단순하게 따지면 하루에 마라톤 풀코스 거리만큼 이동한 셈이다. 그것도 매일매일. 심지어 코리아둘레길이 걷기길이지만 완전한 평지는 아니다. 분명한 오르내림이 있다. 그런 길 5,361km를 한 번에 걸은 이형기씨다.
40대인 그는 경기도 화성 병점, 능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이어 수원으로 이사한 후 현재까지 쭉 살고 있다고 한다. 어릴 때 운동 능력이 탁월한 편은 아니었다. 단지 시골이라 논에서 축구하거나 동네 친구들과 같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을 뿐 운동을 좋아하거나 잘하는 축에 들진 않았다. 추수할 무렵 동네 부잣집 할아버지 집에 들러 용돈벌이로 농사일을 돕고 그랬는데 그러고 나면 다음날 힘들어서 몸살이 나고 했다고 한다.
“제대로 된 등산을 한 적도 없었어요. 아. 생각해 보니 동네 뒷산에 사슴벌레 잡으러 올라간 적은 있네요. 그게 전부였어요. 산은 아주 늦게 알았죠.”
수원마라톤클럽 회원들이 2024년 11월 24일 그의 코리아둘레길 완주를 축하해 주기 위해 강원도 고성으로 왔다.
사회에 진출한 후 그는 여러 일을 전전했다. 아산물류센터에서도 일을 해봤고, 삼성반도체에서도 하청 직원으로 일했다. 그러다 2007년에 기술 하나를 배웠다. NCT 가공이다. 그는 “쉽게 말해 프로그램을 짜서 기계에 전송하면 기계가 그 프로그램에 따라 제품이나 부품을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기술을 배운 해, 산도 배웠다. 당시 입사한 회사에서 간 야유회 장소가 바로 청계산이었다. 청계산 정상에 오르니 너무 좋았다. 운동이 되는 느낌도 좋았고, 스트레스도 확 풀렸다. 산행의 맛을 알게 된 것. 하지만 그 맛을 자주 맛보진 못했다.
“일이 너무 바빴어요. 야근도 많았고요. 그래서 6개월에 한 번 가는 정도로 산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 특성상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납품기한 전까지 일을 해서 보내야 되기 때문에 24시간 긴장하고 대기해야 해요. 당장 내일 일하게 될 수 있는 거죠. 그러니 1박 2일 산행 같은 건 꿈도 못 꿨어요.”
시간이 흘러 2013년이 되자 그때부터는 주말에 시간을 내기 좀 수월해졌다. 그러면서 등산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여전히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기에 언제 일이 시작될지 몰라 멀리 가지는 못했다. 먼저 광교산, 청계산 등 주변 산 위주로 산행했다. 그러다가 서울 쪽도 가봐야겠다 싶어서 수락산, 북한산, 도봉산 등을 올랐다.
100대 명산이란 것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걸 완등해 보고 싶었다. 지역 산악회에 가입해서 3명의 회원을 본인의 차 아반떼에 동승하고 유류비를 나눠 내며 전국을 다녔다. 그렇게 전국의 산을 조금씩 알게 되자 더 길게 걷고 싶어졌다. 그는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라며 “더 길게, 더 많이, 더 높이 등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 차올랐다”고 했다.
그렇게 점점 길어졌다. 불수사도북, 광청종주 등 수도권 내 장거리 코스들에 도전했다. 첫 불수사도북은 24시간 조금 안 된 기록으로 완주했다. 일반인 기준으로 불수사도북은 완주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지만, 극한장거리계에선 24시간 가까이 걸린 것은 그다지 좋은 기록은 아니다. 불수사도북을 14시간 안에 끝내야 더 힘든 길도 완주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모종의 시금석 같은 것.
수원마라톤클럽 회원과 고성 통일전망대로 가는 일시종주 마지막 걸음을 함께했다.
등산으로 입문해 울트라마라톤까지
그는 이때까지는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2018년,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하게 되면서 무서운 속도로 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진행하고 있던 백두대간과 9정맥 완주를 2019년 안에 완료하자는 목표를 스스로 세웠다. 미친 듯이 산으로 침잠하는 나날을 보낸 끝에 목표를 달성했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MZ세대는 코로나로 인해 산으로 유입됐는데, 그는 정반대로 산에서 내려왔다.
“1대간 9정맥 약 3,000km를 완주하고 다음으로 기맥이나 지맥을 타볼까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코로나로 예전처럼 같이 어울려 등산을 할 수 없으니 운동 삼아서 마라톤을 해보자고 생각했죠. 그렇게 훈련을 해서 2021년에 언택트 한반도횡단이란 대회에 출전했죠. 된통 깨졌어요.”
해당 대회는 강화도와 강릉을 잇는 308km 코스로 열렸다. 그는 분전했으나 275km에서 컷오프, 즉 제한시간 내 도착 실패를 겪었다. 비록 대회 규정상 탈락이었지만 300km까지는 뛰고 그만뒀다. 아직 배가 좀 나와 있을 정도로 몸이 완벽히 준비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체력엔 자신이 있었기에 자존심이 상했다.
이를 악물었다. 그 다음해에 같은 대회에 출전해 제한시간 내 완주했다. 마라톤 풀코스는 3시간 13분 20초에 완주할 정도로 몸 상태를 끌어올렸다. 땅끝 해남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뛰는 622km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독한 훈련은 효과가 있었다. 대회 3등을 차지했다. 이듬해에 부산에서 파주까지 뛰는 537km 대회에 또 참가해 완주했다. 한국 3대 울트라마라톤 대회 완주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울트라마라톤 대회가 생소한 분들도 계실 것 같네요. 308km 대회는 매년, 537km, 622km 대회는 격년제로 열려요. 완주자는 매년 몇 십 명 정도밖에 없고요. 물론 일정 수준 이상의 체력이 필요하니 참가자도 많지 않아요. 거기다 체크포인트마다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서 참가자보다 5배의 인원이 지원을 위해 붙어요. 그러니 다들 단체 소속으로 참가하죠. 저는 수원 마라톤 클럽 소속입니다.”
한반도 횡단 울트라마라톤 대회 강화 출발점에서 응원을 나온 울트라연맹 회원과 만났다.
종주하며 러닝화 5켤레 닳아
그렇게 일과 러닝, 그리고 가끔 등산을 병행하던 생활이 이어졌다. 하지만 2024년 7월 그 균형이 무너졌다. 가뜩이나 월급이 밀려 스트레스 받고 있었는데 회사가 더 어려워지면서 일을 그만두게 됐다. 2018년에 퇴사했을 땐 1대간 9정맥에 그 설움을 쏟았는데, 이번엔 무엇을 하며 이것을 털어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이 대한민국 둘레였다.
“퇴사의 설움도 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어요. 장거리, 장시간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긴 셈이잖아요. 그래서 GPS트랙으로 대한민국 둘레를 그려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한 자전거 동호인이 자전거가 갈 수 있는 길을 통해서 연륙교가 있는 섬까지 다 포함해서 7,000km를 그렇게 한 번 완주한 적이 있다고 들었었거든요. 저는 해파랑, 서파랑, 남파랑, DMZ평화누리길을 이용할 생각이었죠.”
언제까지 어느 구간을 끝낸다든가 하는 청사진은 갖고 있지 않았다. 시작 날짜만 정했다. 8월 6일. 그는 “일단 머리를 박아보자”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강화도에서 출발, 고성으로 향했다. 의욕이 넘쳤다. 하루에 100km씩, 두 달에 끝낼 생각이었다.
곧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하나는 걷는 도중에 뭐라도 사먹을 만한 곳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자전거길이라 그늘도 많이 없었다. 그나마 위도나 고도가 높아 더위를 비교적 덜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른 하나는 바로 무게. 첫 시작 때 배낭 무게가 16kg였다. 태양열 충전기와 보조배터리 3개, 여벌 티셔츠 3벌 등 기본장비만 13~14kg였다. 거기에 물 2리터를 상비하고 식량도 추가되는 식이었다.
러닝화 5켤레를 소모한 끝에 일시종주에 성공했다.
“강화에서 파주까지 하루 운행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죠. 데미지가 너무 많았고, 무거우니 뛸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바로 짐을 빼서 택배로 집에 보내버렸어요. 10kg로 맞췄죠. 그리고 다음날 또 하루 운행했는데 그래도 무거워서 1~2kg를 더 빼서 택배로 보냈습니다.”
짐이 가벼워지고 몸이 풀리자 궤도에 올랐다. 하루에 50km 내외로 쭉쭉 거리를 채워 나갔다. 오래 걷자 다른 건 크게 문제가 없었는데 신발 밑창이 엄청난 속도로 닳아버렸다. 처음 신은 걸로는 1,900km까지 문제없었는데 다음에는 500km 만에 닳았다. 그리고 다시 1,000km마다, 마지막 500km에 하나를 또 썼다.
“신발은 평소 러닝 훈련할 때 200~300km 정도 신었던 트레일러닝화 위주로 신었어요. 알트라, 살로몬, 아식스, 호카 등 여러 브랜드에서 세일할 때 사둔 것들이죠. 처음 신발이 닳았을 땐 어떻게 할까 고민했는데 요령이 생겼어요. 바로 택배였죠.”
그런데 생각보다 택배 받는 것이 쉽지 않았다. 택배를 맡아줄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고, 또 그 장소에 제 시간에 딱 도착해야 한다. 택배가 너무 일찍 와도, 또 늦게 와도 안 된다. 배송시간은 늘 미지수. 일단 택배를 보내두면 제한시간이 걸린 것처럼 마음이 급해졌다. 몸에 데미지가 심해 언제 휴식일을 가질지 모르는데 계속 가야 하니 더 골치 아팠다. 그나마 지역 지인들의 자택으로 보내거나 묵으려는 숙소에 보내두는 방식으로 이를 풀어낼 수 있었다.
수원 팔달산에서 만난 이형기씨.
한국인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길
한 번에 걸은 코리아둘레길은 그에게 어떤 인상으로 남았을까. 그는 매력보단 의미를 강조했다.
“길만 놓고 보면 농로가 굉장히 많아요. 어림잡아 50% 이상입니다. 거기에 자전거도로나 임도도 더해지죠. 산길은 20~30% 정도예요. 산 좋아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아무래도 마음이 덜 동하는 편이죠. 하지만 이걸 생각해 보세요. 전 국토의 둘레를 본다는 그 의미를요.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한, 로망 그 자체죠.”
물론 마음을 사로잡은 길들도 많았다. 가장 예뻤던 곳은 진도에 있는 코스모스 펼쳐진 길을 꼽았다. 또 영덕 블루로드길 구간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간월곶에서 본 일출도 잊지 못할 광경이었다. 새벽 2시에 도착, 4시간을 기다려서 얻은 장면이었다. 또 부산 남파랑길 시작 구간 일몰도 멋있었다.
길뿐만 아니라 사람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해남이다. 행색이 거지꼴이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를 붙잡고 식사는 했냐고 물어본다. 일시종주 중이라고 밝히면 집으로 데려가 문어도 삶아 주고 집 밥도 먹여 주고 그랬다. 그런 인심이 아침 점심 저녁으로 이어져서 세 끼를 모두 챙긴 적도 있었다.
“사실 코리아둘레길이 생긴 뒤 구간 종주하시는 분들이 늘어나며 현지인들하고 마찰을 빚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해요. 남해 쪽 고사리밭을 지나는 구간에서 그런 얘길 좀 들었어요. 아무래도 그렇게 걷는 분들은 무리 지어 다니면서 소음도 많이 일으키고, 또 슬쩍 서리하시는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 분들 때문에 한국인의 정이 사라질까봐 무척 안타까워요.”
이씨의 코리아둘레길 일시종주 복장과 깃발.
다른 길들에 대해서도 듣고 싶었지만 그는 기억이 좀 흐릿하다고 답했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힘들었던 건 거제 구간. 누적거리가 1,900km에 달한 상태에서 울퉁불퉁한 돌이 많은 산을 넘으려니 발에 통증이 엄청 심했다. 그래서 통영까지 가는 데 하루에 20km밖에 진행하지 못했다.
일시종주는 어떤 식으로 이뤄졌을까. 먼저 그는 하루 운행 일정을 정확히 정해 놓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힘들면 자고, 걸을 수 있으면 걸었다. 초반에는 팔각정이나 버스정류장에서 3시간 정도 눈을 붙이며 2~3일 운행하고, 그 다음 숙박시설로 들어가서 푹 쉬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서 리듬이 불규칙했다. 여름에는 이 방식이 괜찮았는데 서해랑길에 접어들면서 점차 밤이 추워지자 결국 숙소 위주로 다니게 됐다고 한다.
“현지 민박집이 두루누비 앱(코리아둘레길 전용 기록 앱)이나 포털 검색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힘들었어요. 아무래도 그런 시골들은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곳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묵을 수 있는 곳이 없다고 해서 열심히 가는데 정작 주변에 떡하니 민박집이 있고 그런 경우가 꽤 있었죠. 이런 정보는 나중에 잘 업데이트됐으면 좋겠어요.”
해파랑길은 가장 걷기 편했다. 아무래도 관광지라 식당이 많아서 매식하기 편했다. 주 메뉴는 물회비빔밥. 또 숙박시설도 많았고, 여름이라 해수욕장에 설치된 샤워시설을 간단히 이용할 수 있어 더더욱 좋았다.
“그런데 걸으며 보니 민폐 캠핑카들이 진짜 많았습니다. 전기나 물도 자기들 마음대로 끌어다가 쓰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공공화장실 몇 군데는 아예 콘센트를 막아놨어요. 콘센트하니 생각나는데 남파랑길 버스정류장 몇 곳은 태양열로 전기를 충전할 수 있게 만들었더라고요. 그게 엄청 큰 도움이 됐습니다.”
수원 팔달산의 수원화성서암문을 큰 걸음으로 지나는 이형기씨.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단단해져
그는 각 구간을 떼어서 보면 등산이나 트레일러닝에 비해 코리아둘레길의 난이도는 낮은 편이라고 한다. 물론 일반사람이 일시종주하기엔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많이 걸어 보고, 많이 뛴 사람이면 해볼 만한 도전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이라면 몸 쓰는 건 큰 문제가 아닌데 머리 쓰는 게 문제다. 온갖 현지 정보를 잘 조율해야 하고 하루마다 계획을 잘해야 한다. 또 계획대로 안 되면 즉각 수정하고 임기응변으로 일정을 수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랑이 필요하다.
“저는 울트라마라톤연맹, 수원마라톤클럽, J3클럽 이렇게 3곳의 단체 분들이 도와주셨어요. 전국 여기저기 살고 계신 분들이 본인 지역에 왔다고 하면 밥도 사주고, 같이 산행도 해주곤 하셨죠.”
정리하면 이렇다. 울트라마라톤연맹은 황선용 회장, 김경란, 함재호, 정화국, 김도형, 이기호, 양주현, 박광수, 이외재, 조효훈, 이승복, 권영상, 임병조, 이명배, 신경희, 박미애, 박창연씨 등이다. 수원마라톤클럽은 우성상 회장, 강승현 부회장, 임병조 팀장, 이경순, 이용근, 한미숙, 이명희, 안광수, 이상배, 김동수, 윤미경, 김성중, 김정환, 김화문, 안주원, 이승복, 한미순, 심재륜, 정연금, 최준석, 김경석, 김현호, 구명회씨 등이다.
J3클럽은 배병만, 신은경, 이연호, 이상복, 김상근, 정형배, 김용미씨와 (이하 닉네임) 뛰어갈꺼다, 영스, 앵경, 본드, 지음, 사자자리, 콩썰기얌, 알프스 등이다. 대부분 그보다 선배들인데 이들이 파주, 포항, 부산, 창원, 거제, 순천, 보성, 진도, 태안, 오이도, 소래포구, 김포, 강화, 부안 등지에서 그와 함께 걸었다.
“처음 한 달은 혼자 걸었었어요. 혼자서 그 모든 험난한 과정을 참고 견뎌야 했죠. 그러다가 다른 분들의 지원과 응원을 받기 시작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그 마음들이 따라다니지 않았다면 완주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다시 할 엄두도 안 나고요.
소감이오? 글쎄요. 완주하고 나니 사람들은 제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좀 더 단단해졌다’고 이야기해 주고 있어요. 사실 제가 봤을 땐 잘 모르겠어요. 다만 일시종주 중인 9월에 어머니 생신이 있었어요. 7세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 홀로 저랑 동생을 키우셨거든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택배로 꽃다발을 하나 주문해서 보내드렸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머니께 꽃을 선물한 거였죠. 좋아하시더라고요. 이것도 ‘단단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오늘의 날씨★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특권, 준비된 자만 누린다 [만화등산백과 겨울산행 준비] (1) | 2025.01.22 |
---|---|
국민 78%가 등산·트레킹 즐겨…한국인에게 산은 ‘민족 정체성’ [척척박산] (3) | 2025.01.20 |
“으악!” 190cm 거구가 추락했다 [거벽 등반과정 수료기] (2) | 2025.01.18 |
지리산 ‘성중종주’ 부럽잖은 팔공산 ‘소능종주’ [소야고개~능성고개 32km] (0) | 2025.01.17 |
‘이런들 어떤’ 능선 따라 ‘일백 번 고쳐’ 걷는 산길 [송전탑 산행] (5) | 2025.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