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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이런들 어떤’ 능선 따라 ‘일백 번 고쳐’ 걷는 산길 [송전탑 산행]

by 白馬 2025. 1. 16.
 

용인시청과 정몽주묘 잇는 16km 낮은 산줄기 주파

 

할미산성 억새밭을 걷는 김대영·김광명 독자. 석성산 사면을 따라 송전탑이 아득히 이어진다. 석성산 지나 고속도로를 횡단하는 성산교를 지나면 할미산성에 이른다.

 
 

정몽주가 죽었다.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부하에게 철퇴를 맞아 죽었다. 한국인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시조가 여기서 나왔다. ‘하여가何如歌’의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와 ‘단심가丹心歌’의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가 그것이다. 

“왕조가 바뀐다고 한들 무슨 상관이냐, 우리와 손잡고 부귀영화를 함께 누리자”는 이방원의 권유를 “죽더라도 고려를 향한 충심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답한 것. 이에 마음을 바꿀 여지가 없다고 본 이방원은 부하를 시켜 정몽주를 죽였다.

 

개성에 있던 유해를 그의 후손들이 선산이 있는 포항으로 이장하기를 청했고, 당시 왕은 허락은 물론이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상여를 짜고 격에 맞추어 이장하던 도중 용인에 이르렀을 때 바람이 불어 명정銘旌(고인의 관직과 이름을 적은 깃발)이 바람에 날아간다. 매장할 때 관 위에 이름이 잘 보이게 펴서 관과 함께 묻는 것이 관례였기에, 깃발을 찾느라 며칠을 허비하게 되었다. 이에 왕은 포항이 아니라 용인이 그가 원하는 장소라 여겨, 그곳에 묘소를 차리라 어명을 내리고 그 지역을 하사한다. 이곳은 왕골터라 하여 왕들이 사후 묻힐 장소로 미리 정해 놓은 곳 중 하나이며, 왕의 재산이었기에 큰 호의를 베푼 것이다.

 

만차다. 용인시청의 넓은 주차장과 뒷길 노상주차장까지 빽빽하다. 두 바퀴를 돌아 차를 세우고, 들머리에 모였다. 김대영·김광명 독자와 함께 가야 할 산길을 가늠한다. 석성산石城山 등산로와 유래가 적혀 있다. 용인의 진산鎭山이며, 산성과 봉화가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용인을 대표하는 산인 것. 

깔끔한 이정표가 산행 내내 길잡이가 된다. 

꾸준히 오르내림이 있지만 비교적 완만해 어렵지 않다. 

 

471m 높이에 걸맞게 지금은 산책로 역할을 한다. 안내판에는 5km 이하 코스만 적혀 있으나, 용인시청과 정몽주묘를 잇는 16km 코스를 간다. 용인을 상징하는 현대와 과거의 두 기점을 잇는 것. 송전탑, 영동고속도로, 산성, 골프장, 에버랜드 지나 100번 고쳐 죽겠다 했던 포은圃隱 선생께 가는 여정. 장거리 산행에 칼바람까지 성성하다. 완주를 예측하기 어렵다. 일행들 얼굴에 역력한 긴장감. 팽팽히 당겨진 기타줄 같은 분위기. 연주를 시작한다.

 

 

멱조현에 얽힌 슬픈 사연

할미산성 정상부근에서 본 석성산. 용인의 진산답게 능선에 힘이 실려 있다. 

 

쓰러진 소나무가 시작과 동시에 환영 인사를 건넨다. 산길만은 편할 거라는 예상이 빗나간다. 야자매트와 이정표는 깔끔하지만, 간간이 쓰러진 나무들이 불량배처럼 시비를 건다. 숙이거나 돌아서, 요리조리 피해서 산을 오른다. 능선을 기준으로 겨울과 가을이 교차한다. 낙엽이 쌓였거나, 흰 눈이 쌓였다. 상반된 풍경을 끼고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능선 한 굽이 올라설 때마다 지능선들과 합류하며, 점점 능선의 힘이 강해진다. 용인 삼가동과 동백지구로 이어진 산길이 만나는 곳에 해설판이 있다. 삼가동과 동백지구를 잇는 고개 부근에 옛날  한 아낙이 살았다. 아낙이 메주를 만드는데 쇠파리가 계속 내려앉아 신경이 쓰여 파리를 잡으려 쫓아다니다 고개까지 이르러, 메주고개란 이름이 생겼다는 것. 이 고개를 ‘멱조현’이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에 얽힌 사연이 있다. 

 

옛날 화목한 가족이 있었는데, 남편이 관아의 부역을 위해 여러 날 집을 비우게 되었다. 시아버지는 아들을 대신해 나무를 해서 시장에 내다 팔았고, 며느리는 해질 때쯤이면 항상 아이를 업고 고갯마루에서 시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런데 밤이 깊어도 시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아, 아이를 업고 나가 기다리던 중 호랑이와 사투를 벌이는 시아버지를 찾았다. 며느리는 호랑이에게 “네가 정말 배가 고파서 그런다면 등에 업힌 아이라도 줄 테니 우리 시아버님은 상하게 하지 마라”며 아이를 주자, 호랑이는 아이를 물고 갔다고 한다. 시아버지가 “나는 이미 늙어 죽어도 한이 없는데 어찌 아이를 죽게 했느냐”고 하자, “아이는 다시 낳을 수 있지만 부모는 어찌 다시 모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아이의 할아버지를 찾던 고개라 하여 멱조현覓祖峴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용인시청에서 석성산 정상으로 이어진 길의 이끼 고운 산길. 

 

야자매트에 설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난간이 있는 좋은 능선길을 두고 우회로로 권한다. 행여 군 사격장에서 빗나간 총알에 대한 보험으로 안내판 하나를 세워둔 것. 사면으로 고도를 내렸다가 올라서자, 직선의 미학을 보여 주는 거인이 섰다. 송전탑이다. 김대영 독자가 전자파 측정기를 켜고 송전탑 아래를 거닐다 가운데에서 멈춘다. 측정 수치는 16.7mG밀리가우스이다. 

 

지난 기사에 ‘전자레인지 같은 가전제품 앞에서도 측정해서 비교해 달라’는 댓글이 있어, 집에서 전자레인지를 켜고 측정했더니 491.9mG가 나왔다. 국내 전자파 기준인 833mG보다 낮지만, 소수점을 반올림해도 17mG인 송전탑에 비하면 가전제품 전자파가 훨씬 높게 나왔다. 

우회로를 지나 주능선과 만나는 곳에 두 번째 송전탑은 8.1mG가 측정되었다. 전자레인지의 전자파 수치를 감안하면, 송전탑 전자파는 거대한 겉모습으로 인한 선입견에 가까웠다.

 

 

난데없이 시멘트 임도다. 군시설로 이어진 길인 것. 통화사 방면 우회로를 지나 산길 우회로를 따른다. 느닷없는 험산이다. 응달로 만들어진 빙판의 좁은 비탈길. 신중하게 발을 딛고 스틱으로 균형을 잡아 살포시 내려선다. 계단을 올라서자 비로소 눈앞이 트인다. 6개의 봉화가 있었다는 정상 부근이다. 

제단을 쌓은 것처럼 높은 터에 올라서자 용인이 한눈에 잡힌다. 서쪽으로 아파트가 빽빽하고, 동쪽으로 도로와 공장 지대가 펼쳐진다. 471m는 높지 않지만, 이곳에 봉화대를 세울 만한 압도적 전망이다. 

실제 정상에는 전망데크와 벤치를 성대하게 꾸몄다. 셀프카메라를 찍을 수 있게 표지석 앞에 폰 거치대도 세웠다. 다른 지자체에 비해 등산로를 더 꼼꼼하게 만들었다. 

주능선의 송전탑. 8mG의 전자파가 측정되어, 가정집 전자레인지 측정 수치인 491.9mG의 61분의 1이 측정되었다.

 

석성산 정상 부근의 봉화대 조형물. 예부터 봉화대와 산성이 있던 요충지였다.

 

안내판에는 조선시대 한양으로 소식을 전하는 중요한 봉화대였으며, 산성은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고쳐서 썼다고 한다. 석성산 정상에서 모처럼 만난 등산객들과 이별하고, 걸음을 서두른다. 16km를 가야 하는데 이제 5km 왔다. 

석성산 정상의 전망데크와 정상 표지석. 셀프 카메라 촬영을 위해 스마트폰 거치대를 설치해 놓았다. 

 

마성IC를 지나는 마성의 다리 성산교

고도를 내리자, 영동고속도로 마성IC를 지나는 통로인 성산교다. 석성산과 할미산성을 이은 생태 통로인데 영동고속도로 위를 걷는 독특한 경험이다. 관광지처럼 유리 구간이 있어 스릴도 즐길 수 있다. 다시 산에 집중해 올라서자 할미산성이다. 경기도 기념물인 산성은 거대한 벌판이라 맞은편 석성산과 주변 경치가 탁 트인다. 야산 같은 능선이라 경치가 없을 줄 알았는데, “오길 잘했다”며 일행들이 웃음 짓는다. 차량 소음만 아니라면 비박으로 하룻밤 묵을 만하다. 

영동고속도로 마성IC를 지나는 성산교. 석성산과 할미산성을 잇는다. 바닥에 통유리판을 설치해 스릴을 더했다. 

 

고어텍스 재킷을 입었는데도 사방에서 칼을 찌른다. “휭휭” 흉포한 바람이 사정없이 몰아붙인다. 숲으로 들자, 산과의 독대다. 잔설과 쓰러진 나무가 긴장을 불어넣고, 문득 산이 속삭인다. 우리들의 시간이라고.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자연 그대로의 능선, 산길만은 뚜렷해 불안감 없는 능선이 덩실덩실 춤을 춘다. 능선의 몸짓에 호흡을 맞추는 완벽한 산행으로의 몰입. 아무도 모르는 능선을 칼바람 맞으며 주파하는 즐거움이란, 산꾼이 아니고서야 이해할 수 없다. 

6·25 썬더볼트 작전 유해발굴 지역 안내판에 관우의 적토마처럼 달리던 걸음이 숙연해진다. 막걸리 한잔 진득하게 올리고 싶지만, 물과 행동식뿐이다. 짧은 묵념을 하고 능선의 속도를 놓칠세라 따라잡는다. 빠르게 걷기 좋은 산길이라 기분 좋게 땀을 낸다. 거리는 길어도 어렵지 않아 쉽게 주파한다.

 

눈 쌓인 향수산 능선을 지난다. 할미산성 이후로는 마주치는 등산객이 없었다. 인적이 드물지만 산길이 비교적 선명하고 이정표가 있어, 주의하면 길찾기 어렵지 않다.

 

향수산 지나 포은 선생께로

골프장 철망과, 군부대 철망이 사면으로 내려오지 말라고 막고 섰으나, 사면으로 갈 일도 없다. 오직 능선을 따를 때, 걸음을 세우는 전망데크가 있다. 교실 넓이는 될 법한 깨끗한 전망데크 앞으로 에버랜드와 포곡읍 일대가 드러난다. 백패커라면 군침 흘릴 만한 좋은 터다. 

대기가 고요하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는 순한 능선의 맥박이 느껴진다. 스스로 능선의 맥박이 되어 산을 넘는다. 걸음을 따라 번져오는 흙냄새이자, 구수한 향수. 향수산 정상이다. 457m 높이와 경치 없는 순박한 정상임을 감안하면 과한 표지석이다. 

 

빠르게 지는 해에 발걸음도 조급해진다. 몇 곳의 갈림길을 지난다. 쉬운 하산의 유혹을 버리고, 정몽주 선생께로 향한다. 슬그머니 고도를 높이는 문수산(221m)을 넘자, 비로소 포은 선생 묘다. 깔끔한 잔디밭을 지나 주변에서 가장 큰 무덤인 포은 선생 앞에 서자, 비로소 완주의 기쁨이 와락 솟는다. 

고려의 대학자인 이색이 ‘성리학의 창시자’라고 인정한 포은 선생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 외교적 마찰을 없앴다. 반대하는 이들이 그를 제거할 목적으로 껄끄러운 관계였던 일본에 사신으로 보냈는데, 오히려 잡혀간 수백 명의 조선인 포로를 데려오는 성과를 거뒀다. 관리를 양성하는 공립학교를 세웠고, 흉년 때 가난한 백성에게 곡식을 빌려주는 의창을 세우기도 했지만,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고려의 운명을 돌이키진 못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모든 역사를 통틀어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고 한 이순신 장군과, 선죽교에서의 정몽주의 죽음은 그야말로 전설이 되었다. 정몽주가 죽을 것을 알고 피하라고 했던 머슴은 같이 죽겠다고 하여 뒤따라갔다. TV에 방영된 여러 역사 드라마의 공통된 내용이다. 학계에서 의문으로 남은 것은 정몽주가 자신을 죽이려는 암살계획을 알면서도 이성계의 병문안을 갔다는 것이다. 고려와 운명을 함께하려고 했던 것일 게다. 

 

할미산성을 걷는 김광명·김대영 독자 너머로 용인시 처인구의 아파트숲이 펼쳐진다. 

 

정몽주 동상은 어딜 보고 있는지 근심스런 표정이다. ‘단심가’는 없고, ‘하여가’로 가득한 세상을 바라보는 걸까. 

 

산행길잡이

산행거리는 16km인데 보통 수준의 난이도. 거리는 길지만 산행은 수월하다. 흙이 많은 육산인데다 석성산은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서 쉽다. 할미산성 이후부터 야생의 산길이지만, 이정표가 충실하고 산길이 비교적 뚜렷하다. 능선이 갈라지는 곳에서 잘못 들지만 않으면 길찾기는 쉽다. 송전탑을 지나면 시멘트 임도가 나오는데 이 길은 부대 정문으로 연결된다. 임도를 만나는 곳에서 오른쪽 통화사 방향으로 우회하거나, 산길 우회로를 따라 가면 정상에 닿는다. 

석성산 정상은 봉화대가 있는 곳과 정상석이 있는 실제 정상으로 나뉜다. 마성IC 입구의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성산교는 등산로에서 곧장 이어지는 다리여서 산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볼거리다. 

 

할미산성은 트여 있어 기념사진 찍기 좋은 명소다. 너른 데크가 있지만 차량 소음이 심해 야영지로 권하기는 어렵다. 능선 왼쪽으로 골프장 두 곳을 지나며 철망이 있지만 산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향수산에는 대형 정상석이 있다. 정몽주묘 뒷산인 문수산은 벤치만 있고 정상석이 없다. 문수산에서 왼쪽 능선을 따르다가 왼쪽에 잘 관리된 묘가 있는 곳으로 넘어가야 한다. 뚜렷하게 연결된 산길은 없으나 어렵지 않다. 잔디 묘 몇 기가 있는 곳을 내려서면 큼직한 정몽주묘가 비탈 위에 보인다. 문수산 정상에서 438m 진행 후 왼쪽 잔디 묘로 넘어서 내려간다. 포은 묘 입구에는 넓은 주차장과 2곳의 화장실이 있다.

 

교통

용인경전철 시청역에서 등산로 입구까지 300m 거리다. 시청 정문에서 지하차도를 따라 계속 직진해 시청을 관통해서 후문으로 나오면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하산지점인 정몽주묘에서 1151번 광역버스를 타면 판교역을 거쳐 서울 강남역에 닿는다. 1시간 소요. 자가용 이용 시 용인시청 주차장은 주말 무료. 평일 1일 주차요금 최대 1만5,000원이며, 10분 300원. 정몽주묘 주차장은 무료.

 

맛집 (지역번호 031)

용인시청 앞에는 굴정식(1만5,000원) 전문 바위꽃(323-1535)과 중국요리집 수풍정 (0507-1468-0418), 냉면과 숯불고기 세트(1만1,000원)가 별미인 팔당냉면(323-5007) 등이 있다. 정몽주묘 앞에는 숙주를 올린 탕수육(小 2만2,000원)과 철판해물짜장 1만 원)이 별미인 연남각(0507-1398-9792), 생선구이 전문 어머니와고등어(332-6338, 고등어구이 1만1,000원), 두부요리 전문 기와집(0507-1406-4300), 설렁탕(1만2,000원) 전문 부잣집설렁탕(0507-1396-8804)이 있다. 

 

©동아지도 제공

 

 

“송전탑은 필수 시설… 조난시 위치 파악 도움” [송전탑 오해와 진실]

 

관리자 인터뷰

 

석성산 정상에서 본 용인 기흥구 일대. 송전탑 너머로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다.

 

고석성(가명)

안녕하세요. 한국전력 협력사에서 40여 년간 일했습니다. 30여 년은 송전탑에 올라가서 관리하는 일을 했고, 지금은 사무실에서 송전탑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수도권과 제주를 비롯한 각지의 송전탑을 올랐습니다. 송전탑 꼭대기에 올라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충실히 답변해 보겠습니다. 

 

송전탑은 보기만 해도 엄청 높은데, 무섭지 않나요? 

고소공포증이 있으면 이 일을 못 해요. 송전탑 관리직원 중에서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어요. 물론 처음 시작할 때는 무서웠죠. 송전전기원 자격증 같은 것이 있어야 입사할 수 있는데 이 교육을 받을 때, “무서워서 도저히 안 되겠다”하는 사람은 그만두죠. 덜 무서운 사람들이 남게 되고, 일에 익숙해지면서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송전탑 높이가 몇 미터인가요? 어떻게 올라가나요?

기본 100m이고 요즘 나오는 송전탑은 130m 정도 됩니다. 기둥의 볼트 같은 사다리가 있어요. 이걸 잡고 올라갑니다. 와이어가 있어서 여기에 안전장치를 연결해서 오릅니다. 안전합니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데 5~7분 정도 걸립니다. 사다리를 수직으로 올라가는 거라, 팔 힘이 아닌 다리 힘으로 올라가야 하거든요. 직업적으로 다리가 아주 튼튼해집니다.  

 

송전탑에 톱니가 달린 엘리베이터 같은 장치가 있던데, 이걸 사용하나요?

이동용 엘리베이터 시설인데, 송전탑이 대부분 산에 있잖아요. 엘리베이터 설비를 산에 가져가는 것이 더 어려워요. 그러다보니 사다리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아요. 

 

30여 년 전에도 안전와이어처럼 만약을 대비해 주는 장치가 있었나요?

과거에는 안전장치로 추락 방지대를 주로 사용했고, 지금은 만약을 대비한 이중 안전장치로 철탑에 안전 와이어가 설치되어 있어요. 과거에는 이중 안전장치 없이도 올라갔던거죠. 그래도 불안했던 적은 없어요. 긴장되기보다는 올라가는 게 힘들어서 그렇죠. 숨이 차면 로프를 연결해서 안전하게 매달려 잠깐 쉬었다 올랐어요.

 

하루에 송전탑을 몇 번 정도 올라가나요?

정기순시, 예방순시, 기별점검, 정밀점검 등 점검이 있을 때마다 올라갑니다. 저희 지역에 송전탑이 1,200여 개가 있어요. 보통 한 라인이 70기 정도 되는데 라인별로 정비를 합니다. 한 달 동안 매일 올라갈 때도 있지만, 평균 일주일에 1~2일은 올라갑니다. 특히 정밀점검 기간에는 하루에 5~6개를 올라갑니다. 

 

송전탑을 내려온 뒤 다시 올라가나요? 

전선을 정전시켜놓고, 전선을 타고 다음 철탑으로 갑니다. 양 손으로 전선을 잡고 외줄타기 하듯이 아래쪽 전선을 밟고 이동하는 거죠. 무섭지 않냐고요? 곡예 같아 보이지만 무서운 건 없어요. 안전와이어를 걸고 가서 안전해요. 이동이 힘들죠. 전선이 수평인 경우는 거의 없어요. 내리막이나 오르막인데, 오르막이 길면 체력적으로 힘들어요. 

석성산 산길에서 마주친 송전탑. 
 

송전탑 관리에서 가장 힘든 건 뭔가요?

송전탑까지 가는 게 힘들어요. 대부분 송전탑이 산에 있어요. 등산로에 있는 송전탑은 드물어요. 산 중턱의 비탈진 곳에 많은데, 산길이 없어요. 어떤 송전탑이든 1년에 몇 번씩 꼭 가거든요. ‘순시로’라고 해서 작은 산길을 만들어 놓죠. 낫과 톱을 가져가서 한 사람 걸을 만한 작은 산길을 개척해요. 이 길을 정비하고 보수하는데, 계속 수풀이 우거져서 산길이 뚜렷하지는 않아요. 희미한 길을 찾아가는 개척산행을 하는 거죠. 송전탑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보다, 산행이 힘들어요. 송전탑으로 가는 산길 찾는 것도 쉽지 않아서, 5년차 이상은 돼야 길찾기가 가능해요. 

 

송전탑 관리원들은 바이킹이나 롤러코스터를 타도 무섭지 않겠어요?

바이킹을 한 번 타 봤는데, 무서웠어요. 철탑은 예측 가능하고 튼튼하다는 걸 알고 올라가거든요. 철탑이 움직이는 일은 없어요. 위험할 일이 없죠. 근데 바이킹은 믿을 수 없어요. 안전장치도 부실한 것 같고. 그때 공포감을 느꼈죠.

 

송전탑이 쓰러지는 경우는 없나요?

20~30년 전에는 태풍이나 산사태로 넘어간 사례가 있었죠. 최근에는 철탑을 훨씬 더 튼튼하게 세우고, 관리를 잘하고 있어서 그런 사고가 없어요. 안심해도 됩니다.  

 

고압선 가까이서 일하면 위험하거나,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나요?

고압선 작업을 30년 넘게 했는데, 전혀 위험하지 않습니다. 옛날 분들은 고압선 자주 올라가면 자식 못 낳는다고 했는데, 저는 아들딸 잘 낳고, 건강에도 전혀 이상 없어요. 환경단체에서 생각하는 자연에 나쁜 영향을 준다든지 하는 것도 없어요. 고압선 아래 풀이 잘 자라서 관리원들이 주기적으로 간벌을 하고 있어요.

 

송전탑이 있으면 지역 주민들의 암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주장이 있어요.

전자파를 측장해 달라는 민원이 간간이 들어와요. 저희 직원들이 측정하면 모두 기준치 이하예요. 한 번도 기준치 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전자레인지보다 송전탑 아래가 전자파가 적은 건 당연한 결과예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송전선로가 있으면 건강 염려증이 생기는 경우는 봤어요. 자주 병원을 가게 되고, 여러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서 방사선에 많이 노출되어 오히려 병이 생긴 것도 봤어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지, 송전선로가 있어서 암 발병률이 높다는 식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송전선로를 지하화하고, 발전소를 수도권에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요.

땅속으로 전선을 넣으면 비용이 10~20배 정도 더 들어갑니다. 설치비와 관리비가 어머어마합니다. 발전소를 지으려면 여건이 맞아야 하거든요. 열을 식혀 줘야 하니까 바닷가 부근이어야 하고,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어요. 수도권은 이런 조건들이 맞지 않아서 발전소를 세우기 어려워요.  

 

혹시 조난당했을 때 송전탑을 어떻게 활용하면 될까요?

송전탑마다 고유 번호가 있어요. 119에 연락해서 그 번호를 얘기하면 현 위치를 바로 확인할 수 있어서 빠른 구조가 가능해요. 또 송전탑 부근에는 점검원들이 다니는 산길이 있어요. 다만 동물길처럼 엄청 희미해요. 이 산길에 빨간 표지기와 노란 표지기를 달아요. 다만 송전탑 순시가 목적이라 철탑과 철탑 연결하는 산길일 가능성이 높거든요. 조난 시 무작정 이 리본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등산을 즐겨 하나요?

제 아내가 처녀시절부터 아주 대단한 등산 마니아였어요. 취향과 상관없이 아내를 따라서 자연스럽게 산에 다니게 되었고, 저도 산행과 암벽등반을 즐겨 합니다. 2022년에 100대 명산을 완등했어요. 한창 때는 별일 없으면 거의 매주 산행했어요.  

 

월간山 독자께 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송전탑이 부족해서 전기 부족 사태가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로 인해 전기요금이 대폭 인상되는 일도 없었으면 합니다. 늘 안전산행 하시고,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송전탑이 이정표가 될 수도 있으니, 혐오시설보다는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존재로 봐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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