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턴화한 허위 등정 보고…실패한 등반도 인정해 주는 분위기 필요
지난 10월 말, 제주산악연맹 원정대가 네팔 동부에 있는 미등봉 샤르푸5봉(6,328m 또는 6,076m)을 초등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언론에 공개된 ‘정상’ 사진에는 등반가들이 정점에 올라선 게 아니라 암벽 앞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정상이 맞는지 의문을 제기할 만한 상황인 것. 본지 기자를 포함해 필자도 원정대 측에 연락을 취해 진위 파악에 나섰고 문제를 제기했다. 세계 최초 등정이 걸린 일이라서 더욱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주장이었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초등정이라는데 그저 박수로 화답해 주는 게 좋지 않나?” 이는 등반의 진정성을 무시하는 말이다. 초등, 등정, 미등정과 같은 기록의 영역은 전 세계 수많은 알피니스트들이 진지하게 몰두하는 토대다. 산악인으로서 합리와 신의의 문제다.
원정대는 “네팔 정부로부터 ‘등정증’을 받았다”며 그게 증거라고 내세웠다. 더 큰 문제다. 국제산악계는 네팔 등정증을 신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네팔 관광청이 등정 검증 과정 없이 등정증을 발급해 왔기 때문이다. 국내가 아니라 국제적 사안이 됐다. 미국 <산악연감>에서는 초등 기록을 치밀하게 검증해 수록한다. 등정 과정을 국제 산악계에 밝혀야 하는 책무가 한국 산악계에 남아 있다. 검증 없이 지나치면 한국 산악계가 허위 주장 의혹을 한 번 더 안게 된다.
원정대원들의 진지함, 노력, 감동의 순수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해가 있다면 풀릴 것이다. 근본 문제는 이런 일이 숱하게 반복되었다는 데 있다.
1962년 다울라가리2봉 인근 미답봉을 오르는 박철암의 경희대산악부 원정대.
패턴화한 허위 등정
우리나라 고산등반의 역사는 ‘등정 허위 보고’로부터 시작됐다. 국내 최초 히말라야 원정대는 고故박철암 선생의 경희대산악부 원정대가 1962년, 네팔 다울라기리2봉 인근의 약 6,700m 높이 무명봉을 목표로 올랐다.
이듬해 출간한 보고서에서 선생은 다른 대원 및 셰르파와 함께 정상에 올라서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썼다. 그러나 선생은 2010년대에 이르러 ‘커밍아웃’했다. 정상에는 오르지 못했고, 그때 흘렸던 눈물은 ‘정상을 눈앞에 두고 더 전진할 수 없는 원통함’에 터진 대원의 절규였다고 밝혔다.
정상을 올랐든 못 올랐든 그 원정의 선구적 업적은 비할 데가 없다. 그러나 등정 허위 보고는 패턴으로 남았다. 뜨거운 해외등반의 열기 속에 소문으로만 맴돌던 이야기들이 1989년 어느 산악 매체 기사에서 터졌다. ‘등정의혹 14개 팀’을 낱낱이 고발하는 분석기사로 산악계가 한바탕 시끄러웠다. 그중 두어 팀은 반박문을 올렸고, 미등정을 고백한 대원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침묵했다. 칸첸중가 동계, 자누 동계, 가우리상카르, 초오유, 안나푸르나1봉, 로체샤르, 에베레스트 서릉, 낭가파르바트, 가셔브룸4봉, 메루피크 등이었다.
훌륭한 결단으로 칭송된 사례도 여럿이다. 남선우와 박정헌은 각각 1992년과 1997년에 시샤팡마에서 주봉 못미처 중앙봉까지만 올랐음을 인정했다. 악우회는 1998년 브로드피크에서 전위봉까지만 올랐음을 인정했다. 엄홍길은 1993년 시샤팡마를 오른 뒤 제시한 정상사진이 명확한 정상임을 보여 주지 못했다. 청문회까지 열린 끝에 그는 2001년 다시 시샤팡마를 올랐다. 오른 지점은 1993년의 정상과 같은 지점이라고 했다. 의혹 불식을 위해 두 번 오른 셈이다.
모두의 기억에 아직도 선명한 오은선의 2009년 칸첸중가 등정 의혹도 있다. 본인은 등정을 확실히 믿는다고 했다. 그게 타인들의 검증에는 미흡했다. 셰르파 말만 의지해 오른 게 오해의 출발점이었다. 여기서 셰르파의 미숙함은 핵심이 아니다. 등반가 본인이 인증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 이렇게 공개된 사례 말고도 ‘허위 등정 보고’는 무수하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스위스 머신’이라 불렸던 율리 스텍의 사례가 있다. 2013년 가을, 스텍은 단독으로 안나푸르나1봉 남벽을 오른 뒤 하산까지 완료했다. 28시간이라는 가공할 속도였다. 문제는 카메라를 잃어버려서 사진이 없었다. 정상부에 대한 묘사는 전문가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듬해 황금피켈상을 수상했다. 그러자 심사위원장에게 스위스인을 포함해 여러 엘리트 등반가들로부터 항의가 쇄도했다.
스텍의 등반력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문제는 산악인들은 등반의 어떤 면에 가치를 부여하느냐다. 체력과 기술, 판단력인가? 정점까지 완벽하게 도달하는 치밀함인가?
1962년 다울라기리2봉을 향해 캐러밴 중인 박철암 대장.
논란은 자연스럽다
등반은 체력의 경연장일 수도 있고, 고도의 판단력을 시험하는 무대일 수도 있다. 엄밀한 고증과 탐사를 중시하는 이도 있다. 등반이 매혹적인 까닭은 그런 다양한 점이 혼재하기 때문이다. 관점은 서로 다를 수 있고 따라서 논란과 갈등은 자연스럽다. 논란이 없는 게 이상하다.
정상 등정은 중요한 성과지만, 과도한 의미 부여가 문제다. 기업이나 지자체로부터 지원받았을 경우 미등정을 깨끗이 시인하기가 어려워진다. 히말라야를 ‘세계무대’라든지 초등을 ‘국제적 인정’이라고 하는 프리미엄이 아직도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프리미엄은 산악계가 기업, 언론과 공조 속에 만들어냈다. 등반가들은 해외에서 성과를 거두고 오면 ‘받아쓰기’만 하는 일반 언론, 성과를 곧잘 부풀리는 지역 언론에 먼저 보고한다. 동급 산악인들에게 그 내용을 인정받으려는 시도는 없다. 산악계 공론장이 그만큼 부실하다. 폭넓게 의견을 공유하는 토대가 없으니 이런 문제가 터지고 또 반복된다.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에게 떳떳해야 한다. 실수나 착오, 기망, 무지가 있었다면 깨끗이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도록 산악인들은 서로 격려해야 한다. 미등정이라도 좋은 시도였다면 상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등반 과정을 서로 들여다보고 의견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영웅시되는 ‘등정 프리미엄’은 산악계에 해롭다.
히말라야에서 등정은 어떻게 입증할까?
① 주변이 잘 나온 정상 사진.
② 주위 환경에 대한 자세한 묘사.
③ 각종 물건으로 입증한다. 예컨대 2005년 야간에 올라 정상 사진이 없었던 광주전남 낭가파르바트 원정대(김창호·이현조)는 정상에 두고 온 깃발이 외국팀의 정상 사진에서 확인됨으로써 등정 의혹이 해소됐다.
④ 최근에는 GPS 트랙도 사용된다. 엄밀한 기록이 중시되는 8,000m 14좌나 극지 탐험에서는 GPS 장치 휴대는 일상화되었다. 다만 극한 상황에서 배터리 문제는 여전하다. 미등봉의 경우 현장 판단이 중요하고 사진으로 등정을 입증하는 게 일반적이어서 좌표를 사용할 일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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