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밍허선무 한국등산학교 기술 자문(산빛산악회)
도봉산 선인봉 '가을의 전설' 루트를 오르고 있는 개척자 허선무씨. 이 루트는 2022년 10월 개척됐다.
2022년 가을 도봉산 선인봉 동면에서 한국 등산학교 강사 안치영(고산 등반가) 후배와 오름짓을 하다가 멋진 사선 크랙 라인을 발견했다. 우리는 사선 크랙이 있는 옆 라인을 올라 등반가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있는지 확인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도 등반한 흔적이 없었다. 이렇게 멋진 크랙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안치영과 나는 눈빛을 교환하고 바로 개척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1년 동안 우리는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다. 긴 확인 작업 끝에 결국 아름답게 뻗어 있는 사선 크랙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쿨와르는 어두웠다. 축축하게 젖어 있기도 했다. 이끼와 흙이 가득했다. 나는 이러한 크랙 안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이곳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작업하기로 했다.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었다. 등반 루트를 만들다보면 등반자의 안전에 너무 신경 쓴 나머지 볼트를 쓸데없이 많이 박을 수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최소한으로 하고자 했다. 등반은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행위이고, 등반가는 그 상황을 즐기면서 여러 장비와 본인이 가진 등반 기술로 극복해 오르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을 보호하는 클린 등반을 전제로 개척의 가닥을 잡아가기 시작했고, 생각한 루트로 자연스럽게 연결해 보았다.
‘가을의 전설’을 개척한 허선무씨. 그는 등반가 안치영과 2022년 가을 선인봉을 등반하다가 사선 크랙을 발견하고 수 차례 확인 작업 끝에 개척에 나섰다.
3피치 크랙 구간이 하이라이트
1피치는 어렵지 않다. 난이도 5.8 정도 되는 크랙이다. 2피치는 개척 당시 고민을 가장 많이 한 부분이다. 첫 번째 피치에서 크랙 라인을 그대로 따라 올라가면 3피치 크랙 라인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크랙 안에 흙과 나무가 많았다. 이것을 억지로 처리하면 자연을 훼손하는 행위와 같았다. 어쩔 수 없이 크랙을 벗어나 슬랩과 칸테로 넘어가는 라인을 선택했다. 아마도 등반자는 크랙을 벗어나 슬랩을 통과하면서 짜릿함을 맛볼 것이다.
선등자 확보를 보고 있는 안치영(왼쪽), 이연희(한국등산학교 99기). 선등자를 보는 눈빛에서 아슬아슬함이 엿보인다.
3피치는 길이 30m 정도 되는 사선 크랙이다. 볼트는 없고 오로지 캠만 설치해야 한다. 설치한 캠을 믿고 등반자의 힘과 기술로만 올라야 하는 구간이다. ‘가을의 전설’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3피치를 오르려면 과감한 등반 동작을 취해야 한다. 팔을 활짝 벌려 홀드를 잡고 발을 사뿐히 옮겨야 한다. 첫 번째로 쓰이는 캠은 4호가 적당하다. 이후 주먹과 어깨, 손과 주먹을 함께 크랙 속에 쑤셔 넣거나 발까지 크랙 안에 넣고 올라야 한다. 학이 날개를 펼치는 듯한 우아한 등반 동작은 이때부터 쓸모가 없다. 어떤 클라이머라도 3피치에선 바둥바둥댈 것이다. 크럭스를 통과해도 긴 크랙 구간이 클라이머를 기다린다. 여기는 레이백과 재밍 기술 등을 현란하게 써야 한다.
‘가을의 전설’ 하이라이트 3피치를 오르고 있는 허선무씨. 사선 크랙의 난이도는 5.11급에 이른다.
4피치는 직선으로 이뤄진 짧은 코스다. 3피치를 오르면서 느꼈을 긴박함과 긴장감을 해소할 수 있다. 햇빛이 비쳐들고 그제야 주변의 유려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3피치 등반을 끝내고 4피치 시작점에 서면 선인봉 아래 풍경이 훤히 드러난다.
코스를 개척하고 얼마 후 전화가 왔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니 자칭 크랙 전문가라고 하는 박명원 변호사였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형! ‘가을의 전설’ 완등했어요.”
그는 개척자인 나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한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 반가웠다. 이전까지 ‘가을의 전설’ 완등자는 없었다. 나는 그의 열정과 도전에 박수를 보냈다. “막걸리 한 잔 살게!”라면서 통화를 종료했다.
이연희씨가 크랙을 오르고 있다.
안치영씨가 2피치 슬랩을 오르고 있다.
‘가을의 전설’을 개척한 주역 허선무씨와 안치영씨. 이날 함께 등반한 사람은 오태환(산빛산악회), 이연희씨다.
4피치로 이뤄져 있다. 도봉산 선인봉 동면(진달래길 오른쪽)에 위치하며, 최고난이도는 3피치 5.11에 이른다. 3피치 크랙 구간에는 볼트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오로지 캠으로만 확보해야 한다.
루트명 : 가을의 전설
위치 : 선인봉 동면(진달래길 오른쪽)
난이도 : 5.8(1p), 5.10b(2p), 5.11-(3p), 5.10a(4p)
개척일자 : 2022년 10월
개척자 : 허선무(한국등산학교 대표강사), 안치영(알파인클라이머, 동탄 프리월클라이밍짐 대표)
등반길이 : 1p(20m), 2p(15m), 3p(30m), 4p(12m)
필요한 확보장비 : 퀵드로 6개, 캠(캐머롯 기준) 소형 0.4~0.7(1개씩), 중형 3호(3개), 4호(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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