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어디까지 아세요] 제주올레 10코스
소나무가 많아서 ‘송악松岳’이라 불린다는 송악산은 지금은 잊혀진 ‘절울이’라는 예쁜 우리말 이름을 가졌다. 박용후의 <제주도 옛땅이름 연구>에 따르면 거친 파도가 절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우레 같다는 뜻이라고 한다. 모슬포 앞바다로 요새 마냥 툭 튀어나온 송악산은 바다에 접한 면이 전부 깎아지른 절벽을 이룬 채 쉴 새 없이 거친 파도를 맞닥뜨리고 있다.
송악산은 오름이다!
송악산은 ‘오름’으로보다 산방굴사를 품은 산방산, 용머리해안, 하멜상선전시관과 함께 서귀포 남서쪽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그래서 수학여행에 나선 학생이나 내외국인 단체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꼬리를 물고 송악산을 찾는다. 이렇게 송악산을 찾은 이 대부분은 오름 트레킹보다는 전망대가 있는 부남코지까지 왕복하는 짧은 코스를 택한다. 송악산이 가진 매력이 워낙 대단해서 부남코지까지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적지 않지만, 송악산의 진가를 보기엔 어림도 없는 걸음이다. 정상 굼부리를 오르내리고, 탐방로 전체를 한 바퀴 걸어봐야 송악산이 가진 매력을 가늠할 수 있다.
남쪽 상공에서 본 송악산. 북쪽만 외륜산 일부가 남았다.
주차장에서 송악산을 쳐다보면 바다에 접한 쪽이 온통 절벽이다. 이 절벽지대 아래로 시커먼 아가리를 벌린 동굴이 여럿 보인다. 한류열풍에 불을 지핀 드라마 <대장금>의 마지막 장면이 이곳 송악산의 해안동굴에서 촬영되었다. 그래서 더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이 동굴들은 일제강점기의 생채기다. 전쟁에 미쳐 있던 일제는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일본 본토로 향하는 미군을 상대하기 위한 결사항쟁지로 제주를 택했다. 그래서 제주도 전체를 요새화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송악산 일대다.
절벽 위로 굽이 트는 송악산 둘레길. 그 아래로 해식동굴이 아찔하다.
송악산 동쪽 해안의 절벽을 따라 파놓은 굴이 15개다. ‘일오동굴’이라 부르는 이곳은 소형 잠수정을 숨겨두던 진지로, 미군 함대가 접근해 올 경우, 어뢰를 싣고 돌진해 자폭하기 위한 용도였다고 한다. 제주도 동쪽 끝 성산일출봉 기슭에도 같은 기능의 동굴이 여럿 있다.
송악산 표석을 지나 둘레길에 접어들면서 왼쪽으로 펼쳐지는 풍광이 장관이다. 사계해안을 따라 바굼지오름과 산방산, 월라봉, 군산이 연이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뒤로 한라산이 듬직한 배경을 이루지만, 이 풍광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산방산이다. 벙거지 모양의 산방산은 제주 동쪽 끝의 성산일출봉만큼이나 인상 깊다. 그 앞바다에 떠 있는 형제섬과의 조화도 아름답다.
하늘에서 본 송악산 내륜산 굼부리. 거대한 아가리를 벌린 이곳은 깊이가 69m에 이른다.
곧 작은 언덕을 넘으며 송악산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난다. 절벽을 끼고 구불거리며 뻗은 둘레길이 숨 막힐 듯 아름답고, 그 끝에 부남코지가 도드라진다. ‘부남’은 바람이 많이 분다는 뜻, ‘코지’는 바다로 돌출된 부분을 가리키는 제주 방언이다. 절울이오름이 바다와 맞닥뜨리는 전초기지 같은 곳이다. 여기서 이 아름다운 길은 눈으로만 담고 발길을 오른쪽으로 돌려야 한다. 송악산 굼부리로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오름 코스로 탐방해야 제맛
작은 승마장을 지나면 송악산 굼부리로 오르는 입구가 나온다. 다양한 화산 쇄설물이 잘 보존되어 학술 가치가 높은 송악산 굼부리는 그만큼 연약하기도 해서 훼손이 심했던 곳이다. 그래서 오랜 기간 출입이 통제되다가 2021년에 다시 일부 코스에 한해 길이 열렸다.
말타기 체험을 하고 있는 관광객들. 뒤로 형제섬이 보인다.
탐방로 정상에서 보는 제주가 그야말로 압권이다. 아래서 보던 한라산과 산방산 일대 풍광이 훨씬 더 넓고 깊어지며, 남쪽으로 가파도와 마라도까지 한눈에 들어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제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최고의 조망 명당이다. 둘레 400m가량, 깊이가 69m인 굼부리는 평균 70도의 경사각을 가져 거의 벽처럼 느껴진다. 높이가 104m인 송악산의 진짜 정상은 반대쪽 봉우리지만 아쉽게도 출입 통제 중이다.
일방통행인 정상부 탐방로를 내려서면 부남코지가 가깝다. 기암으로 이뤄진 부남코지에서 서쪽으로 둘레길이 이어진다. 제주올레 10코스와 겹치는 구간이기도 하다. 많은 이가 올레길 중 10코스를 으뜸으로 꼽는 이유는 송악산 둘레길의 영향이 크다. 어디라도 절경인 해안 절벽의 꼭대기를 따라 걷는 길은 이국적이며, 신비롭고, 아름답다. 풍광이 수려하니 쉬엄쉬엄 가라고 전망대도 자주 나온다. 이 구간에서 빨리 걷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놓치기엔 너무나 아쉬운 ‘솔잎길’
송악산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이중화산체’다. 즉, 화산이 폭발한 후 그 속에서 또 화산이 폭발해서 두 개의 굼부리를 가졌다. 왼쪽으로 계속 이어지던 바다 풍광이 끝나는 작은 고개에서 길이 갈린다. 왼쪽은 울창한 솔숲으로 들어서고, 오른쪽은 능선으로 이어진다. 제대로 송악산을 즐기려면 오른쪽을 택해야 한다. 이중화산체인 송악산의 외륜산, 즉 바깥 굼부리 능선이다. ‘솔잎길’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능선길을 걷노라면 외륜산이 감싼 주봉과 화구원을 중심으로, 관광코스에서는 볼 수 없는 송악산의 색다른 모습을 만나게 된다. 송악산 굼부리 북사면의 거친 모습도 잘 보인다. 무엇보다 찾는 이가 적어서 호젓하다.
송악산 외륜산의 ‘솔잎길’ 탐방로. 송악산의 진면목을 살필 수 있는 코스다.
10분 남짓이면 솔잎길이 끝나고 주차장에서 이어진 관광코스 탐방로로 내려서게 된다. 3km쯤인 송악산 둘레길이 끝나는 지점이다.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가 잘 가라 인사한다.
교통 모슬포항에서 안덕면 곳곳을 오가는 752-1 지선버스가 송악산주차장이 가까운 ‘산수이동’ 정류장에 선다. 승용차일 경우, 내비게이션에 ‘송악산 공영주차장’을 입력하면 된다.
주변 볼거리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송악산 동쪽에 솟은 395m 높이의 거대한 용암덩이인 산방산은 멀리서 보는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산방산이 품은 산방굴사와 함께 둘러보는 것은 특별하다. 봄날 유채꽃이 만발한 사계리와 어우러진 풍광이 절경이다. 산방산 남서쪽 200m 높이 지점의 자연 석굴에 들어선 산방굴사에 올라 조망하는 앞바다가 멋지다.
산방산 바로 앞에는 바다 쪽으로 툭 튀어 나간 사암층 절벽인 용머리해안이 있다. 길이 600m, 높이 20m의 거대한 절벽은 표현하기 힘든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모양을 한 채 신비로움을 준다.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사계해변 화순층
사계해변은 모래가 퇴적된 해안 지형인 사빈沙濱이 발달한 곳으로, 화산 쇄설층인 화순층이 두텁게 나타나기도 한다. 동쪽 끝, 사계항과 만나는 지점은 화순층이 점차 침식을 받으며 곳곳에 구멍(마린 포트홀)이 뚫린 신비로운 풍광을 보여 준다. 오묘한 색과 독특한 질감의 퇴적층이 만든 곡선이 아름다워 포토스팟으로 인기다. 단, 간조 때만 볼 수 있다.
사계해안 화순층.
맛집 산방산 앞 식당가의 ‘올레마당 제주산방산점(064-792-7881)’은 가성비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네 종류의 생선구이가 함께 나오는 ‘모둠 생선구이(1인분 1만1,900원)’가 대표 메뉴. 함께 차려지는 반찬도 모두 입맛 저격이다.
올레마당 모둠 생선구이.
갈치구이 소(2인) 5만5,000원, 갈치조림 대(3인) 6만5,000원, 갈칫국 1만6,000원.
★오늘의 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