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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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처분’을 받은 8명의 아이들이 지리산부터 태백산까지 400km의 백두대간 능선을 걷는다. 한 달간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재범 방지이다. 살레시오청소년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8명의 아이들은 센터의 신부들과 히말라야 14좌 완등 산악인 김미곤 대장, 광주전남 등산학교 강사들과 동행한다. 한 달간 함께 산을 걷고 생활하며 새로운 발자국을 내딛기 위한 준비를 해나갈 것이다. 그중 덕유산을 지나 대덕산, 민주지산을 거쳐 가는 12~14구간을 동행했다.
군데 군데 자란 억새가 이제 가을이 됐음을 알린다. 내리쬐는 햇볕에 구슬땀이 맺히지만 차근차근 걸어 올라간다.
특종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머릿속이 복잡했다. 동시에 마음도 복잡했다. 기자로서 첫 취재였다. 그런데 그 이름도 무서운 ‘백두대간’이라니. 취재지부터 이미 충분히 어려운데 ‘소년보호처분’ 청소년들과의 산행이라는 말을 듣고 순간 머리가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기분이었다.
취재가 잡힌 날부터 ‘어느 길을 가는 것인지’, ‘어떤 아이들과 걷는 것인지’ 차곡차곡 머릿속에 채워뒀다. 그렇지만 편견을 가지고 아이들을 만날까 무서웠다. 있는 그대로 아이들을 보고 백두대간을 걷고, 어떠한 선입견 없이 스윽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빠져나오고 싶었다. 2박3일 동안 이질감 없이 팀에 섞여 솔직한 눈과 귀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렇게 백지의 마음으로 산행에 임하기로 결심하고 무주행 버스에서 내렸다.
아침마다 출발전 동그랗게 모여 준비운동을 한다. 교사들도 아이들도 열심이다. 꽤 긴 준비운동 시간이지만 누구하나 대충하지 않는다.
‘백두대간’과 ‘6호 처분 아이들’
길가에서 접선해 한 명씩 돌아가며 이름을 말했지만 머리에 제대로 넣지 못한 채로 산행이 시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두대간종주’라고 적힌 리본들이 한 움큼 달린 나무를 지났다. ‘말로만 듣던 백두대간에 오다니.’ 신기해 할 틈도 없이 착착착 발소리만 들렸고 팀은 앞으로 나아갔다.
여덟 명의 아이들은 세 팀으로 나뉘어 산행하고 있었다. 아이들 두세 명에 강사 한두 분, 거기에 센터 지도자 한 명이 팀을 이룬다. 이 팀 저 팀 옮겨가며 취재했고 덕분에 다양한 페이스를 맛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중학교 2학년에서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다양한 연령이었다. 학교폭력, 사기, 무면허운전 등의 비행경험으로 모두 6호 보호처분을 받고 센터에 들어온 아이들이었다. 오전 산행이 힘들었는지 무거운 인상을 쓰고 있었고 몇 명은 그만 걷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얼굴을 마주하니 어떤 생각으로 이 길을 걷고 있을지 궁금한 마음이 더욱 커졌다.
백수리산을 지나는 길. 첩첩산중의 풍경이 이어진다. 새파란 하늘과 솔솔 부는 바람이 영락 없는 가을 날씨다.
감탄이 나오도록 파란 하늘에는 사이사이 깃털 같은 구름이 떠 있었고 지나가며 보이는 억새들은 한층 더 가을 같은 느낌을 주었다. 바람 없이 쨍한 햇살이 내리쬐는 날씨에 나뭇잎들은 예쁜 연두색을 내며 반짝거렸다. 우거진 수풀을 빠져나와 짧은 갈대밭을 지나니 대덕산 정상이었다. 아이들은 멀리 펼쳐진 첩첩산중의 풍경이 눈에 안 들어오나보다. 내려가면 라면이 있다는 소리에 허리띠를 고쳐 매고 얼른 다시 출발한다.
덕산재에 오니 수박과 컵라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오후 3시, 평소 같았으면 산행이 끝날 무렵이지만 오늘은 갈 길이 멀다. 컵라면 먹고 힘내서 잘 걸으라며 내려오는 대로 한 개씩 육개장을 건네신다. 산에선 물이 귀한 터라 짜디 짠 육개장이었지만 김치까지 곁들여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는 나무에 기대두었던 수박을 쩍쩍 갈라 한 조각씩 나눠 주셨는데 그게 또 꿀맛이었다.
남은 부항령까지는 육개장과 수박의 힘으로 갔다. 끝났다 싶으면 다시 올라가고 또 이제 끝이다 싶으면 또 다시 언덕이 나오길 반복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 무려 6시가 넘어서야 부항령에 도착할 수 있었다. 끝없는 산길에 표정을 잃었던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퍼졌고 역시 마지막 내려오는 길은 즐거은 얼굴들뿐이었다.
“저, 돼지국밥에 공깃밥 추가해도 되죠?”
히말라야 14좌 완등 산악인 김미곤 대장. 김미곤 대장은 백두대간이 끝난 후에도 아이들과 연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네팔에서 사온 밀짚 모자가 잘 어울린다.
버티는 법을 배우는 아이들
“요즘 아이들은 나비만 봐도 무서워해요.”
팔에 개미만 올라타도 기겁하던 아이들이 옷에 붙은 벌레를 아무렇지 않게 털어낸다. 산에서 아이들은 버티는 법을 배운다. 쉽고 빠르고 간편한 것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불편함은 피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산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루 종일 땀을 흘리고 씻지 못한 채 잠에 들어야 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 이슬에 축축해진 텐트를 정리해야 한다. 무거운 짐을 옮기고 때로는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들로 배를 채워야 한다. 황철현 신부는 이런 과정을 이겨내는 훈련을 하는 것이라 말한다. “불편함을 수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신부의 말에 공감하며, 불편함, 위험함을 피하는 것만을 가르치는 우리의 교육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 보았다.
“산을 걸으며 아이들이 변화했다고 느끼시나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백두대간의 의미를 잘 모르고 신청했어요. 센터에서의 생활이 답답해서, 밖에 나가서 한 달간 생활한다는 것에 호기심이 생겨 신청하고, 초반에는 후회하는 소리를 했습니다.”
욕설과 짜증이 오갔다는 첫 산행과 비교하면 동행 취재를 간 2박3일은 비교적 평화로웠다.
신부는 센터에 들어오기 전과 들어온 후, 그리고 백두대간을 걷게 된 후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바뀌었다고 한다.
대덕산 정상. 배가 고픈 아이들은 풍경을 오래 즐기지 못하고 하산했다. 앞에 보이는 산을 설명하는 홍흥기 강사(가운데).
백두대간이라는 의미 있는 장거리 산행을 하면서 아이들은 수많은 어려움들을 겪을 것이다. 매일 산을 올라가야 한다는 부담감, 육체적인 피로, 위생적 불편함 등. 체력의 한계에 부딪힐 때 그동안의 건전하지 못한 모습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다. 소리 지르고 짜증내고 욕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는 모습이다. 그럴 때마다 김미곤 대장과 교사들이 해주는 조언은 아이들이 생각하게 만든다. 왜 화가 났는지, 왜 짜증이 났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질문을 던져준다. 산은 그런 생각과 대화의 배경이 되어줄 뿐이다.
신부는 한 달 걷는 것이 아이들에게 당장에 큰 변화를 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먼 훗날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 ‘내가 산을 갔었지’ 생각할 수 있겠죠. 자기 자신에게서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으니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리라 믿습니다.”
아이들과 첫 인사를 나누고 아직은 서먹한 첫 식사시간 때였다. 합류하고 한 시간 정도 걸어 도착한 초점산 정상. 표지석을 가운데 두고 하나 둘 보라색 배낭을 내려놓는다. 전달 받은 것은 초콜릿이나 에너지 바 같은 행동식뿐이었는데 흔쾌히 전복죽을 선물 받아 식사다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후식으로 쁘띠첼을 먹으려는데 숟가락이 없어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고 누군가 연노란 일회용 숟가락을 건넨다.
“곧 나뭇잎을 주워 쓰실 것 같아서요.”
센터에서 아이들 생활지도를 맡고 있는 김한비 교사다.
산을 좋아해 이 프로그램이 본인에게도 반갑고 설레는 산행이기도 하다는 김한비 교사는 인솔자들 중 가장 아이들에 시선에 맞추어 산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들이 좋은 어른들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산행하는 동안 대장님, 선생님들이 해주시는 조언을 듣고 함께 산행하는 것만으로 많이 배울 겁니다.”
평소에도 산행을 즐겨 센터에서 주기적으로 산행 프로그램을 연다는 황철현 신부. 프로그램과 아이들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잠시 걱정을 내려놓고 산행을 즐긴다.
충동적이고 빠르고 쉬운 것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산은 인내하고 배려하고 버티는 법을 배우게 해줄 것이라 이야기한다. 덧붙여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이어나갈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산행을 통해 많이 배워가겠지만 저도 아이들에게 많이 배웁니다.”
저녁 미팅 시간에는 “처음엔 민호(가명)를 돕고 있었지만 마지막엔 민호에게 도움을 받았다”며 겸손하게 배움을 이야기하시는 모습에 나 또한 배운다.
새까만 밤하늘 반짝이는 별들 아래
첫날 산행 후 도착한 야영지는 하늘이 탁 트인 공원 같은 곳이었다. 밤이 되어 하늘이 어두워지니 버릇처럼 고개를 꺾어 별을 찾았다. 시선을 옮길 때마다 하늘에 가득 찬 별이 쳐다볼수록 늘어 눈을 뗄 수 없이 아름다웠다. 가만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니 홍흥기 강사가 옆에 와 발라당 눕는다. 그 옆에 나란히 누워 한참동안 북두칠성을 같이 찾았다. 우리는 더블유W 모양의 카시오페이아 자리를 찾아두고 북두칠성은 끝내 찾지 못한 채 텐트를 치러 일어나야 했다.
저녁 미팅이 끝나고 취침시간까지 시간이 남았다. 아이들 텐트에서 두 명이 튀어 나왔다. 그 중 한 명이 손에 든 것은 발포매트였다. 별 보러 가자는 소리를 엿듣고는 “같이 가요!”하며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불빛을 피해 제일 어두운 곳에 매트를 펴고 누웠다. 셋이라 머리만 겨우 낑겨 넣어 여치들이 몸을 오르고 내렸지만 괜찮았다. 이제 아이들은 자칭 ‘산쟁이’니까.
야영지에서 텐트를 치는 아이들. 텐트에서 자는 것에 대한 의견은 극명하게 나뉜다. 마음껏 하늘을 보다 잘 수 있어 좋다는 의견, 불편하고 추워서 싫다는 의견. 몇번 해봐서인지 이제는 익숙하게 텐트를 쳐낸다.
잔디밭에 누워 꿈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간호사가 되고 싶다’하는 것을 슬쩍 엿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들른 병원에서도 “간호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왜 간호사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예상치도 못한 세례명 이야기를 꺼낸다. 얼마 전 치유의 천사로 전해지는 ‘라파엘’이라는 이름을 세례명으로 받았다고 한다. 거기에 간호대에 가면 예쁜 여학생들이 많다고 한 센터 내 간호사의 말이 인상깊었나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름대로 생각해서 만들어 놓은 꿈같다. 종주 첫 날 걸으며 한 생각이라니 뜬금없다고 느껴지다가도 기특하기도 하고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아무튼 추운 초가을 밤 쏟아지는 별을 보며 꿈 얘기를 나누는 것은 여러모로 기분 좋은 일이었다.
텐트로 돌아가기 전 노래 한 곡씩을 선물했다. 나중에 아이들이 이 노래를 듣고 이날 밤을 떠올릴까?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랑 노래였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친 길과 따뜻했던 대화들
출발 지점에 도착해 차 문을 열고 내려 보니 동쪽에서 주황빛 해가 뜨고 있었다. 깃털 구름과 뒤섞여 파스텔 그림 같은 풍경이다. 일출을 배경으로 동그랗게 둘러 모여 등산화를 신고 준비운동을 한다. 한 아이가 리딩하며 시작된 준비운동은 뒤로 갈수록 신기한 동작들이 튀어나온다.
거친 길을 뚫고 도착한 삼두봉에서 낮잠을 청하는 모습. 시원한 나무데크에 등을 대고 누우니 잠이 몰려왔다. 일어나보니 약속한 듯이 일렬로 맞추어 나란히 자고 있었다.
“준형(가명)아 이거 원래 있는 거 맞지?”
“맞아요. 크큭.”
이른 시간에도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이다.
둘째날 산행은 1조와 함께 출발했다. 어제 많이 힘들어하던 막내 한성(가명)이가 있는 조였다. 고개 하나 넘을 때마다 배가 고프다며, 자기는 너무 연비가 떨어진다고 하소연을 한다. 그렇게 체감상 30분마다 쉬어가며 먹었고, 그 많던 행동식을 다 먹고도 신부님의 지퍼백까지 탐낸다. 지금껏 준비해 갔던 산행 행동식과는 차원이 다른 풍족한 행동식에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에게는 부족한가보다. 덕분에 한성이 페이스에 맞춰 먹다가 산행 이후 몸무게가 2kg이나 찌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수풀로 우거진 길을 뚫고 지나가느라 한참 고생을 했다. 키가 작아 편한 구간과 그렇지 않은 구간을 번갈아 지나갔다. 예를 들어 나는 슥슥 지나가는 구간에 한성이는 몸을 구겨 넣느라 애를 먹었고, 나뭇가지들이 우거진 구간을 지나가는 길에선 한성이 배꼽에 걸치던 나무가 내 얼굴을 마구 쳐 따가웠다. 그렇게 고생 끝에 박석산을 지나 삼도봉에 도착하자마자 선선한 날씨에 스르륵 그대로 데크에 쓰러져 낮잠을 청했다.
“기자님, 기사거리 많이 생기셨어요?”
내 기사를 걱정 해준 아이, 준우(가명)다. 준우는 어색했던 첫 식사 때부터 소금 한 톨 나눠주며 먼저 말을 걸어준 붙임성 있는 친구였다. ‘이제 일한 지 얼마 안 된 기자다. 심지어 첫 취재다’ 하는 것을 이야기하면 부족해 보일까봐 들키지 말고 이박삼일 버텨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첫날 밤 둥그렇게 앉아 이야기하는 미팅 시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보고 홀라당 일주일 된 경력을 고백하고 말았다. 첫 기사에 쓸 내용이 없을까 걱정이 됐는지 이제는 먼저 와 말을 걸어준다.
우두령으로 가는 하산길. 떡볶이의 힘으로 폭풍질주하는 아이들을 잡으려면 열심히 걸어야 했다.
“생각이 너무 많은 편인데 걸으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체력도 기르고 싶어서 백두대간 왔어요.”
남들보다 너무 편하게 살아왔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며, 산에서의 이야기를 하나둘 꺼내는 아이가 기특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백두대간 종주가 끝나면 산에 다시 안 올 것 같다”고 말하던 아이가 산의 좋은 점을 이야기한다. 걷다보면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고 평소 안 해본 생각도 떠오른다고 말하며, 백두대간을 걸으며 적은 버킷리스트도 보여 준다. 더우면 바람이 불고, 추우면 곧 또 바람이 멈추고 하는 신기한 그런 게 있다며 웃는다. 나는 그것이 바로 자연의 섭리가 아니겠냐고 맞장구 쳐주었다.
“기자님 제 이야기 써주실 거면 이 말 좀 꼭 적어주세요.”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는 아이. 그리고 꿈을 찾으려고 열심히 노력 중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뭉클한 마음이 들어 “직접 말씀드리는 건 어떠냐”고 말하니, “얘기했는데 안 믿으신다”고, “근데 지금 여기 와서 믿으실 것 같다”며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말뿐이던 아이의 목소리에 산에서의 생각들이 군데군데 묻어 부모님의 마음에 닿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곧 퇴소를 앞두고 있다는 아이에게 “나가서 잘 지낼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지금은 절대 다시 안 하겠다는 마음뿐인데 나가서 또 마음이 어떻게 변해버릴까봐 무섭다”고 이야기한다. “그럼 마음이 변해서 다시 나쁜 마음이 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미리 생각해 두면 어떨까?” 하는 방법을 제시해 보았다. 나와 교사들과 신부들과 나눈 산에서의 대화가 의미 있기를 바랐다. 산에서 나눈 이야기는 땅에서 나눈 이야기보다 고생 한 스푼이 더 묻어 조금은 더 길고 의미 있게 기억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선두에 선 맏형 재호(가명). 아이들이 잘 따라오는지 뒤돌아 확인해 가며 속도를 조절한다. 이제는 쉬어가며 풍경을 살필 여유도 있다.
삼도봉에서 우두령까지의 하산길은 그리 쉽지 않았음에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오후 5시까지 하산하면 떡볶이다!”
김미곤 대장의 파격 제안에 마음이 들뜬 아이들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빨랐고, 결국 강사들이 제지해 정상적인 속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이들은 마치 유튜브 쇼츠를 보는 것 같은 스피드로 대화 주제를 바꿔 갔고, 따라가려다 지친 나는 김수양 강사와 웃으며 결국 듣기만 했다.
바람이 심상치 않더니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졌다. 금방 지나갈 가랑비이길 바랐지만 순식간에 안개가 차더니 비가 쏟아져 내렸다. 설상가상 밧줄을 잡고 내려가야 하는 급경사 구간을 지나야 했다. 빗물에 땅은 진흙이 되었고 뚝 떨어진 기온에 다들 추위에 떨었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하산길이 계속되었고, 차 소리가 들리고 도로가 보이기 시작할 때쯤에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도로로 내려와 마주한 소 석상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우두령牛頭嶺’ 오늘의 목적지다.
“떡볶이 먹으러 가자!”
방금까지 지쳐 있던 아이들의 표정은 순식간에 바뀌어 있다.
갑자기 쏟아진 비에 난이도가 급상승한 하산길. 줄을 잡고 내려가야 하는 급경사 구간을 지난다.
산에는 따질 것 없는 정이 있다
여덟 명 모두의 이름을 외운 것에 대단하다고 인정 받았지만, “근데 기자님, 이제 가시잖아요” 라는 말에 왠지 미안하고 섭섭했다. 백두대간에서 꽤 유명하다는 괘방령 산장이 오늘의 숙소다. 먼저 도착한 교사들과 인사를 하고 기차 시간에 맞춰 천천히 아이들과도 인사를 나눌 준비를 했다.
쭈뼛거리던 한 아이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넨다. 꼬깃꼬깃 접은 쪽지와 볼펜을 왔다갔다 거리며 웃는 얼굴을 그려놓은 작은 조약돌이다. 조금 있다가는 길 건너에 있는 감나무에서 떨어진 홍시 한 알을 깨끗이 씻어왔다. 아까 나무에 달린 감을 유심히 보던 모습을 본 것일까. 아무튼 그 따뜻한 마음이 고마워 감이 떫든 말든 맛있게 다 긁어 먹었다.
돌아오는 길, 한 명 한 명과 나눈 인사에 오갔던 따뜻한 말들로 서울행 기차는 포근했다.
산은 아무 조건 없이 사람을 받아 준다. 산에 오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따지지 않는다. 산은 그저 그 자리에서 걷고 달리고 질문하고 되돌아볼 길이 되어준다. 아이들은 백두대간 종주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으리라. 동행한 어른들과의 멋진 인연도 생겼고, 조건 없이 그들을 받아 주는 산을 알게 되었다. 한 달간 동행한 끈끈한 동지들도 생길 것이고, 무엇보다 평생을 기억하고 떠올릴 자신과의 추억을 만들어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지는 본인의 몫이겠지만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만났던 나무와, 산과, 사람들이 그들이 걸어가는 길에 한 몫 해주기를 바라며 앞으로 아이들의 삶을 응원한다.
김미곤 대장과 신부, 강사들. 이들이 있어 아이들의 백두대간 종주는 더욱 의미 있는 배움의 장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마음으로 아이들을 응원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살레시오청소년센터
살레시오청소년센터는 소년보호처분 아이들을 수용해 보호하는 아동보호치료시설로 보호 처분 중 6호 처분을 받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6호 처분은 비행 정도가 중하지 않고 개선 가능성이 있는 청소년을 아동복지시설이나 종교 재단 등에 감호 위탁하는 제도이다. 소년보호처분은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닌 소년의 교화가 목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한 재범 방지를 목표로 둔다.
★오늘의 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