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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한국인들 왜 이렇게 많나?” 독일 등반객의 폭풍질문 [카자흐 투육수산군]

by 白馬 2024. 11. 8.
 

카자흐스탄 투육수산군 ‘한국산악회 알파인 캠프’ 등반기

 

투육수빙하 전진캠프 가는 길.

 

산꾼들에겐 사전적 정의가 무색한 몇 가지 용어들이 있다. 등산과 등반, 산악인과 알피니스트, 해외 원정과 해외 등반. 그래서 궁금했다. 이번 ‘카자흐스탄 알파인 캠프’는 캠핑인가? 아니면 원정인가? 

국어사전에 해외 원정의 예로, 등산으로는 에베레스트가 대표로 나와 있다. 아마도 나는 모호한 사전적 정의 뒤에 숨어 있는 ‘알파인 캠프’가 그저 캠핑 같은 일정이기를 바랐던 것이 분명하다. 

항공권을 발권한 지 한 달쯤 뒤 한국산악회 카자흐스탄 알파인 캠프에 참가하는 23명 중 대구지부 8명의 단체 채팅방에 눈이 번쩍 뜨이는 공지가 올라왔다. ‘1.더블로프 시스템에 능숙한가? 2.크레바스에 빠진 동료를 구할 수 있는가? 3.자력으로 탈출 가능한가?’로 시작하는 7개의 자가 체크 리스트였다.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불안감이 덮쳤으나 이미 발을 빼기엔 늦었다. 

 

해발 3,500m 모레인 지대에 자리한 투육수빙하 전진캠프. 막 캠프 설치를 마친 대원들이 라면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다.
 

그렇게 불안과 기대의 공존 하에 훈련이 시작됐다. 하루에 7~8피치 한 개 루트도 간신히 오르는 나였다. 랜턴 불빛에 의지해 새벽부터 시작, 연속해서 두 개 루트를 연장 등반 훈련을 하고,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던 여름 주말에는 인공 외벽 등반이나 실내에 모여 구조시스템 훈련을 했다. 

 

바위 각이 90°를 넘는 오버행은 완력이 약한 내겐 큰 도전이었다. 피치의 시작부터 후배의 어깨를 밟고 올라서는 굴욕을 겪으면서 깊은 후회에 빠지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예전 같지 않은 체력이라면, 평소에 등반과 운동을 게을리 하지 말았어야 했다. 30대 3명, 40대 2명, 50대 3명, 8명 중 최고령은 나였다.

 

이제는 중앙아시아가 대세

아름다운 봉우리들이 즐비하고 유럽 알프스에 버금가는 훌륭한 산군이 있다는 이야기를 5년 전부터 들었다. 몽골,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땅이라는 뜻의 ‘스탄’에 어울리게 드넓은 영토를 가진 이 나라엔 만년설, 빙하, 해발 4,000~7,000m에 이르는 고봉이 즐비하다. 

유럽에 비해 거리, 항공료, 체재비 등 훨씬 적은 부담에 접근도 쉽다는 이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미지의 봉우리라는 점이다. 유명한 봉우리 몇 개를 제외하고는 수많은 첨봉들은 등반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초등을 기다라는 산들이었다. 

 

투육수빙하 등반. 이중화에 크램폰을 착용하고 피켈을 들었다. 사계절이 모두 섞여 있는 이곳 특성상 암벽, 설상, 빙벽 장비가 필요했다.
 

등반 정보는 물론이고 등반 가능 여부조차 알 수 없는 봉우리들이 줄을 서 있었다. 8,000m 등반에 목숨 걸고 도전하던 등반 패러다임은 어느덧 급변하고 있고, 좀더 낮고 좀더 안전하면서도 도전적인 등반을 원하는 현 알피니즘의 흐름에 이처럼 적절한 대상지는 없었다. 

작년 여름 카자흐스탄 투육수산군 옥타이브로노크Oktybronok(3,650m) 일명 ‘바스띠오뇌’ 암벽에서 ‘제1회 아시아 록클라이밍 대회’가 열렸다. 한국산악회는 이 대회 참가 경험을 토대로 산악기술위원회를 중심으로 2024년 여름 ‘알파인 캠프’를 기획했다. 각 지부 회원 23명이 참가해 각 지부의 목적과 계획에 맞게 자유로운 휴가 일정으로 참여하는 신 개념 등반캠프인 것이다. 

해발 2,000m 이하의 국내 등반으로 실력을 쌓고 있던 젊은 회원들에게 아득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고산과 고봉 사이에서 4,000m대의 투육수산군은 암벽, 설벽, 빙벽, 믹스등반 같은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대상지이자, 도전적인 첫발이었다.

투육수빙하 등반을 위해 트레킹을 하던 중, 웬 수다쟁이 독일 아저씨를 만났다. 자신은 매년 투육수산군으로 트레킹을 하고 있는데 올해 유난히 한국인이 많아졌다며 “대체 한국에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폭풍 질문을 해댔다. 그는 한국산악회 23명을 투육수 이곳저곳에서 만났을 테니 그럴 만도 했겠다 싶어 웃음이 났다. 

하지만 실제로 매스컴이나 입소문을 타고 최근 침볼락과 이곳을 찾는 한국인 등산객과 관광객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 그는 그동안 만났던 동양인이 대부분 까레이스키(고려인)였던 것과 달리, 이번 시즌에 유독 한국인이 많은 것이 몹시 놀라웠나보다.

 

캠프 주변의 야생화 군락. 이곳은 천국이 아닐까? 이 길을 따라 40분을 걸으면 ‘블랙 워터폴’이라는 예쁜 빙하동굴이 나온다.
 

고도와 고소, 그리고 최연장자인 나 

일행들의 운행 사진을 찍느라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하다가 잠시 수다도 떨다가, 그사이 멀어져간 일행을 잡으려 뛰다시피 좇아가느라 심장 박동수가 마구 빨라지더니 두통이 시작됐다. 고소증상은 아니겠지? 설마 그럴 리가 ‘아직 3000m대라고, 벌써부터 그러면 안 돼’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러나 불길한 예상은 적중하고 결국 진통제를 먹었다. 최근 최대의 도전 과제는 노화와 체력이다. 고소 증세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여러 차례 자신만의 데이터를 모아보는 것도 좋겠으나 빅데이터를 얻기엔 해외 등반 횟수보다 나이라는 숫자가 먼저 쌓인다. 고소증을 느끼는 고도의 숫자는 나이와 반비례해 그 고도가 점점 내려오고 있다. 

 

어린 시절엔 심한 두통이 시작되고 괴로운 밤이 지나고 나면 얼굴이 달덩이처럼 붓기도 했다. 당시 모든 사진을 찢어 없앨 정도로 내 모습은 스스로에겐 충격적이었다. 고산 등반의 성패를 결정짓는 것은 등반 실력보다 고소 적응력이라 했던가? 우울한 마음으로 6시간의 트레킹을 끝내고 전진 캠프에 도착해 텐트를 설치했다. 손닿을 것 같은 거리에 원래 등반 대상지였던 말라죠즈나야Молодёжная/Young road(4,147m), 파르티잔Партизан(4,390m), 콤소몰Komsomol(4,376m) 피크가 병풍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알마티 피크(4,376m) 정상에 선 김대현 대원. 석회 흙과 바위, 눈과 얼음을 올라 ‘콤소몰 피크’라고도 불리는 정상에 섰다.
 

작년인가 젊은 후배들에게 솔직하게 답해 보라며 짓궂은 질문을 해댄 적이 있다. 

“엄마 나이 같은 우리와 등반하는 게 매번 좋을 리만은 없지?” 

답하는 사람은 난감하고 묻는 사람은 답이 정해져 있는 그런 의미 없는 질문에도 이들은 웃으며 정말 괜찮다고 답했다. 

“엄마랑 먹는 김치찌개도 좋아요.” 

포기하지 않고 재차 물었다. 

“아무리 좋아도 엄마랑 매일 김치찌개만 먹으면 맛있을 리 없잖아.” 

그러자 “가끔은 오마카세도 먹고 싶겠죠. 그럴 땐 몰래 갈게요”한다. 현실적이면서도 센스 있는 답으로 명쾌히 정리되었다. 참으로 우문현답이다. 그런데 정작 약을 먹고 텐트에 누워 있는 상황이고 보니, 그냥 몰래 가게 둘 걸 그랬나 하는 생각마저 드는 씁쓸한 밤이다. 

캠프 숙소에서 4~6시간 트레킹으로 투육수빙하 초입 전진 캠프에 닿을 수 있다. 거기서 크램폰을 착용하고 2시간 빙하를 따라 오르면, 목표하는 피크들의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된다. 선발대로 들어온 막내 김대현은 정찰을 끝내고 알마티 피크Almaty peak로 불리는 콤소몰 피크 정상을 밟았고, 본대로 들어온 김정한, 최지훈, 한정희, 고유선 대원은 말라죠즈나야 설상 리지 등반을 시도해 정상 2시간 전 불안한 설질로 뒤돌아서야 했다. 설벽에 피켈을 꽂아두면 스스륵 흘러내리는 아주 불안한 상태였다. 

 

침볼락 피크 가는 길. 고소 적응을 위해 가벼운 복장으로 오를 수 있는 트레킹 코스로 투육수산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며칠 뒤 후발대인 나와 김명화, 한혜영 대원을 포함해 박인천 이사까지 합류해 다시 꾸린 8명의 대원은 이미 설상 등반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장비를 모두 착용하고 투육수Tuyuk-su 빙하 등반을 재시도했다. 

예년과 달리 6월에 많은 비가 내렸고, 우리의 예상과 달리 7~8월은 설상 등반을 하기에는 몹시 부적절했다. 그렇다고 1~2월 겨울은 너무 많은 눈과 강추위로 인해 역시 등반 적기가 아니며, 오히려 9~10월이 얼음과 눈이 단단해지는 시기로, 설상 믹스 등반이 가능한 적기라고 한다. 그러나 방학과 긴 휴가를 이용해 참여한 대원들로서는 가을 시즌에 등반을 위해 이곳을 찾기는 쉽지 않아, 몹시 실망하며 무거운 하산을 시작했다. 

산은 역시 아름다웠다. 알파인 캠프의 베이스로 삼았던 투육수 캠프 숙소는 2,450m에 위치해 있으며 블랙 워터폴Black Waterfall이라는 빙하로 만들어진 얼음 동굴이 40분 거리에 있어 산책 겸 관광객들의 발길을 끈다. 

가는 길은 ‘천국이 여기일까’ 싶을 만큼 아름다운 야생화로 뒤덮여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침볼락으로 내려가 케이블카를 잠시 이용하면 그 위로 일반인들이 트레킹으로 오를 수 있는 침볼락 피크Shymbulaq tayy(3,529m) 정상에 닿을 수 있는데, 본격적인 등반을 앞두고 가볍게 오르면 전체 투육수산군을 파노라마처럼 훑어볼 수 있는 좋은 고소 적응지가 된다. 

또한 캠프 숙소에서 20분 거리에는 메모리얼 파크 옆에 하드프리 자연 암장이 있고, 1시간 거리에 작년 록클라이밍 대회가 열렸던 옥타이브로노크 암벽, 일명 ‘바스띠오뇌Big Rock’가 위치해 있다. 

 

바스띠오뇌 암벽등반. 낙석은 여전했으나 작년과 달리 루트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더블로프 등반으로 오버행을 넘어서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 속 3,000m대 암벽등반

1시간쯤 걸어 거대한 벽 아래 서면, ‘이제 다 왔구나’ 싶지만 오산이다. 그때부터 첫 피치 시작점까지 올라가는 너덜지대는 참으로 만만찮다. 

2,950~3,250m 지대까지 7~9피치로 구성된 10여 개의 코스가 만들어져 있으며, 난이도는 5.11대의 자유등반 능력을 요구하는 루트, 그리고 5.13~5.14대 스포츠클라이밍 루트, 그 외 5.10a 루트도 있지만 대부분 수직, 오버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암질이 약하기에 홀드를 잡기 전에 흔들림이나 낙석 조짐을 주의 깊게 확인해야 한다. 실제로 작년에 일본에서 온 등반자가 디딘 발 홀드가 빠져 갈비뼈가 골절되는 사고가 있었고, 지역 특성상 의료 시설이 가깝지 않아 큰 부상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8번 루트를 선택해 등반을 시작했는데, 예상과 달리 작년 대회 이후에 볼트를 새롭게 설치하는 등 등반 코스들이 재정비되어 있었다. 물론 암질 특성상 여전히 낙석 위험은 많았고 두 개의 로프로 자일의 움직임을 쉽게 하는 것이 관건이긴 했지만, 3,000m대 고도에서 전보다 안전한 등반을 즐길 수 있었다.

모든 등반을 끝내고 캠프로 돌아왔을 땐 같은 핏줄의 고려인들로부터 따뜻한 도움도 받았다. 러시아어를 쓰기에 소통은 불가하지만 보고만 있어도 눈이 흐뭇한 카자흐스탄 미인들 사이에서 우리와 비슷한 외모를 가진 고려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이 중앙아시에 정착하게 된 것은 1937년의 사건이니 이 젊은이들은 어느덧 이주 3세대인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도움과 마음을 주고받았다. 마음 아픈 역사로 시작되었지만 그들은 비극적 과거와 상관없이 아주 당당하게 생활하는 젊은이들이었다. 특히 산에서 만나 느끼게 되는 ‘산우山友의 정’ 같은 것이었을까? 그들의 삶의 방식과 태도는 우리 눈에 참으로 보기 좋았다. 

 

침볼락 피크에 선 대원들. 선발대와 후발대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날이라 유난히 분위기가 좋았다.
 

인생 큰 전환점이 된 등반

특히 현지에서 가이드 겸 등산교육을 맡고 있던 데이빗David은 등반지 정보와 상태를 친절하게 알려주고, 무전으로 우리 일행의 위치와 상태를 매시간 체크하는 등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 주었다. 비록 한국어는 잊었지만 한국에 대한 향수와 애정 어린 감정은 우리 모두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자세한 정보를 알지 못한 채 발을 디뎠으나 기대했던 대로 4,000m대 루트는 꽤 다양했다. 투육수산군 초입부터 병풍처럼 둘러선 봉우리들은 낮게는 푸르고 아늑했으며, 높게는 희고 청명했다. 사람의 발길이 덜 닿은 토양과 숲은 매우 치유적이었다. 

 

찜통처럼 달아오른 우리나라의 무더위와 달리 뜨거운 햇살 아래의 땅과 골짜기들은 더워도 상쾌했다. 몇 시간만 걸으면 만날 수 있는 하늘선과 맞닿은 능선은 빙하와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등반 선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미지의 길이라 더 신비롭게 보였다. 이름도 길고 낯선 저 수많은 봉우리의 능선을 하나하나 잇는 연장 등반의 가능성을 꿈꾸며, 저마다의 눈에 비친 등반 라인을 그려봤으리라. 

 

저기를 오르면 한국 초등(한국인 중 최초 등정), 저기도 초등, 즐거운 장난을 섞으면서도 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닌 실현 가능한 시도이고 의미 있는 도전임을 확신했다. 당장은 구글에 의지하거나 현지에서 어깨너머로 얻는 몇 가지 정보에 의지해 시도와 후퇴를 반복했지만, 몇 차례 더 문을 두드린다면 결국 실현될 거라 믿으며 귀국하는 길에는 알마티 시내에서 현지 러시아어로 발행된 가이드북을 구입했다. 

 

물론 영문판 번역이라도 있다면 좋으련만 그나마 사진만으로도 흐뭇했다. 앞으로 가이드 데이빗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온라인 정보를 업그레이드한다면 계절의 한계가 따르긴 하겠지만 산악인들이 즐겨 찾는 하계 또는 동계 알파인 등반의 거점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외에도 이번 등반이 가져온 가장 큰 성과는 젊은 후배들에게 경험과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귀국 길에서 한 후배는 첫 해외 등반을 마친 소감을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산으로 인해 일상이 건강하고 즐겁게 바뀌었어요. 지도 어디쯤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카자흐스탄이 내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되어주었거든요. 상상도 하지 않았던 다른 세계의 산들을 꿈꾸게 해주었어요. 다시 기회가 온다면, 그땐 더 멋지고 즐거운 등반이 될 수 있도록 매일 스스로를 단련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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