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걸 기피하는 세태라지만 집요하게 산을 오르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산행 방식은 단순히 체력만 좋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산을 대하는 올곧은 태도와 이념, 탄탄한 지식과 경험을 두루 갖춰야만 안전히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넷플릭스 인기 예능 <피지컬100>에서 피지컬이 뛰어난 이를 탐구했듯, 월간<山>은 ‘산지컬’이 뛰어난 이들을 만나본다.
“국립공원 3개를 한 번에 탄다고요?”
한 번에 여러 산을 오르는 행위가 그리 낯선 시대는 아니다. 100대 명산 붐 이후로 1일 2산, 1일 3산, 1일 5산 등의 형태로 산행하는 이가 현저히 늘어났다. 이런 등산이 가능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가령 들머리 인근에 주차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 또한 정상까지 왕복해서 다녀오는 등산로의 거리가 비교적 짧아야 한다는 것 등이 있다.
그래서 국립공원은 이런 식으로 오르기 어렵다. 산의 풍채가 걸출한 경우가 많고, 국립공원 간의 거리도 꽤 멀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에 일부 장거리꾼들은 이런 국립공원을 적어도 3개 이상 엮어서 정맥·지맥 등 산줄기를 따라 한 번에 걸어보자는 유쾌한 상상을 했다.
호남국공연산 개념도.
일단 산줄기 지도를 놓고 그 위를 눈으로 걸어보며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배분하고 운행하면 가능하지 않을까란 정도로 시작했다가 실제로 구간을 나눠 시도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국공연산(국립공원 연계산행의 준말. 3개 이상의 국립공원을 한 번에 걷는 길을 뜻한다)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여러 길들이 시도되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을 한 번에 걷는 지리국공연산이다. 그리고 그중 가장 까다로운 축에 속하는 것이 호남에 있는 무등산, 내장산, 월출산을 잇는 호남국공연산이다.
각 산들만 놓고 보면 어렵다는 평이 의아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실제로 각 국공연산 길을 걸어본 이들은 국립공원 내를 걷는 것보다 국립공원 간을 걷는 길이 너무 험하고 오지라는 평이다. 또한 중간에 물자를 보급하거나 식량, 식수를 구매할 수 있는 음식점이나 매점의 부재도 난이도를 한층 더 끌어올리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한다.
그런 호남국공연산을 처음으로 개척, 완주한 이가 바로 조대호씨다.
지리국공연산 종주.
열 살 많은 선배 따라가다 큰코다쳐
조대호씨는 1971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대전에서 대학교를 나왔다. 첫 직장은 수원에서 얻었지만 곧 재취업해 대전으로 도로 왔다. 당시 한국담배인삼공사, 현 KT&G에 입사한 것.
“중고등학교 때 태권도를 5~6년 정도 했어요. 3단까지 땄죠. 그래서 몸은 건강한 편이었어요. 병원도 간 적 없죠. 하지만 대학 졸업 후 회사에 들어와서 운동을 따로 열심히 하진 않았어요. 그러다 하루는 직장 선배들이랑 술을 마시는데 이 분들이 설악산을 한 번 가보자고 하더라고요. 저보다 열 살 정도 많은 선배들이라 젊음으로 가뿐하게 따라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박살이 났다. 산에 적응되지 않은 30대의 몸은 산에 적응된 40대들을 따라가지 못했다. 오색코스로 대청봉을 오르는데 정말 ‘이러다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들은 중력을 거스르듯 올라가는데 이를 속절없이 바라만 볼 뿐이었다. 제일 젊으니까 힘든 소리나 쉬어가자는 소리도 제대로 못 하고 눈치만 보면서 따라가니 더 죽을 맛이었다.
조씨는 등산지도어플로 오룩스맵을 사용한다. 경기도 가평 연인산 일대의 170km 산길을 완주한 기록.
“날씨도 안 좋았어요. 중청대피소에서 김밥을 먹었는데 우의 입고 비를 쫄딱 맞으며 벌벌 떨었죠. 그리고 길도 잘못 들었어요. 원래 한계령으로 내려 갔어야 되는데 시야가 안 좋아서 백담사 방면으로 한참 간 걸 뒤늦게 깨달았었죠. 결국 그대로 진행해서 하산한 뒤 택시 타고 오색으로 돌아왔어요. 당시에는 백담사 버스도 없던 시절이라 저녁에 완전히 뻗었죠. 가볍게 생각하고 등산에 도전했다가 큰코다쳤어요.”
그래도 산의 기억이 나쁘게 남진 않았다. 직장 산악회에 가입해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지역 산악회에 가입해 좀더 본격적으로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 꾸준히 산을 오르니 산행 실력이 꽤 좋아졌다. 산악회 안에서 나름 대장이란 직책을 맡아서 사람들을 인솔해 다니게 됐다. 그러자 조금 더 거칠게 산을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됐다. 그게 2010년이다.
“그때 처음 장거리 산행을 시작했어요. 장거리 전문 산악회에 가입해서 여러 정보도 얻고 동행도 했죠. 그렇게 처음 걷게 된 것이 강화도 남북종주 40km와 덕유산 환종주 55km입니다. 이후로 점점 장거리에 몰입하게 됐죠.”
남덕유 종주 중 무룡산.
첫 장거리의 기억은 첫 설악의 기억과 흡사했다. 너무 힘들었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대책이 없었다. 평지에서 걷는 40km와 산지를 걷는 40km는 차원이 달랐다. 필요한 것이 많아 짐이 자꾸 무거워졌다. 지금 장거리꾼들의 분위기는 모여서 함께 가는 것이지만 당시엔 아니었다. 각자도생이었다. 알아서 먹고, 알아서 독도법 공부해서 길 찾아 걷고, 또 그러다 안 되면 알아서 중도하차해 집에 가야 했다. 등산지도 어플도 지금처럼 손쉽게 사용할 수 없는 시대였다.
“자연히 실력이 확 늘었죠. 등산대회 나가서 우승도 했어요. 대전시산악연맹에서 주최했던 복만식계 대전 종주대회 60km였죠. 2인 1조로 최소 10kg 이상의 짐을 짊어지고 누가 더 빨리 가는지 경쟁하는 대회였어요. 중간에 짐을 버리지 않는지 불시 검사도 하죠.
그런데 이 대회가 4회 정도 열리고 지금은 없어졌어요. 산악단체들이 그때는 트레킹 쪽 대회도 신경을 썼었는데, 지금은 암벽등반이랑 스포츠클라이밍 대회만 챙기면서 이쪽 신경을 아예 끊어버렸죠. 이런 점은 좀 아쉽네요.”
115시간, 260km의 대장정
그는 쾌조의 컨디션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호남국공연산을 도전하게 됐다. 2017년 4월, 당시 여러 국공연산 길 가안들이 제시돼 있었고 호남국공연산도 그중 하나였으나 길이 워낙 까칠한 탓에 아무도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또한 실제 걸으려면 보급을 확실하게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더 치열한 연구와 생각이 필요했다.
태백, 소백, 월악을 연달아 걷는 월악공연산 180km 중 월악
“식량은 건식으로 준비해서 최대한 부피와 무게를 줄이고, 또 중간에 만나는 식당에서 최대한 먹고, 최대한 구매하는 동선을 계산한 뒤 도전하게 됐습니다. 월출산에서 출발해 무등산을 경유, 내장산까지 가는 260km의 대장정이 만들어졌죠. ‘추사’라는 닉네임을 가진 분하고 같이 걸었어요.”
그는 한창 산을 탈 때라 몸도 가볍고 의기가 넘쳤다고 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산에서 ‘방방 날아다닐 때’였다. 그래서 중간에 입맛 살릴 용도로 양념 갈비를 배낭에 넣고 출발할 정도였다. 무등산까지 동행과 보조를 맞추다가 여기서부터는 자신의 속도를 유지해 먼저 치고 나가기도 했다.
“역시 쉽지 않았어요. 극한의 힘듦이란 말이 딱 맞았어요. 길의 끝에 가까워질수록 힘듦이 곱절로 늘어났죠. 무엇보다 계속 내리는 봄비가 말썽이었어요. 비가 오면 잠깐 누워서 눈을 붙일 수도 없거든요. 그래서 쉬어야 되는데 비가 오니 억지로 계속 걸었어야 했어요. 그렇게 115시간이 걸렸죠.”
호남국공연산을 완주했다고 알리자 곧바로 이를 똑같이 따라 걷는 사람들이 뒤를 이었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따르면 되니 한결 수월했다. 물론 여전히 국립공원을 연계한 걷기길 중 최고 난이도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또한 이 길이 개척되면서 국립공원을 이어서 걷는 개념이 확립되며 각종 규제를 지킬 수 있는 노하우도 공유됐다. 그는 이러한 현상들을 보면서 “한 획을 그은 것 같아 뿌듯했다”고 했다.
“길에 대한 생각과 고민도 많이 깊어졌어요. 죽은 길과 살아 있는 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죠. 지금 우리나라 산길을 보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길들이 있는 반면, 점점 잊혀 가는 길들도 굉장히 많아요.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막상 볼 것도 없는 그런 길들이죠. 산꾼들이 깊은 고민을 담아 땀 흘려가며 만든 길과 지자체에서 대충 임도 몇 개 엮어 만든 길들은 그런 차이가 있어요.”
태백, 소백, 월악을 연달아 걷는 월악공연산 180km 중 소백.
국공연산은 지금도 장거리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국립공원에 어울리는 보전 상황과 비경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퇴근 후 계룡, 주말엔 무박 종주
호남국공연산 개척의 성취감은 그에게 또 다른 새 길에 대한 열망을 열어줬다. 2018년에는 ‘산태극수태극’이란 길을 만들었다. 첫 아이디어는 지역 산꾼 선배에게서 얻었지만 구체적인 경로는 모두 그의 생각이었다.
“풍수지리적으로 물이 산을 태극 모양으로 감싸고 도는 형국이 좋은 지형이라고 합니다. 태백산에서부터 내려와 소백산, 속리산, 남덕유산, 마이산, 계룡산 등을 거쳐 보령으로 가는 길이 딱 이런 형세를 띠고 있어요. 산 이름들만 봐도 아시겠지만 그만큼 볼 것도 많고, 의미도 깊은 길이죠.”
산태극수태극은 호남국공연산처럼 한 번에 완주하진 못했다. 중간에 배낭끈이 끊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비가 오는데 탈출로도 없고, 배낭도 버리지 못해 스틱으로 배낭을 아기 업듯 업고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그는 “실패하고 나니 기분이 꿀꿀해서 계속 머릿속에 산태극수태극 생각이 남았다”며 “그래서 몇 달 지나 다시 가서 완주했던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또 최근에는 ‘강원국공연산’이란 길을 개척할 요량으로 구간별로 정찰하고 있는 단계다.
새 길에 도전하는 가운데 기존에 있던 다양한 장거리 코스도 틈틈이 다녔다. 설악태극, 지리태극은 물론 백두대간도 탔다. 특히 3교대 근무라 평일에도 등산을 했다. 계룡산에 가서 수통골 코스를 돌기도 하고, 야간 등산도 많이 했다. 국가숲길로 지정된 대전둘레산길 12개 구간 138km를 한 번에 완주하기도 했다. 평일엔 퇴근 후 등산, 주말엔 무박 종주를 하며 한 달에 몇백 km씩 산길을 걸었다. 속도 욕심도 조금 있어서 가급적 빨리, 많이 걸으려고 했다.
산태극수태극이란 장거리 코스도 홀로 개척했다.
그렇게 산에 미쳐서 살다가 문득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같이 걸었던 사람들 중 일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장거리꾼들과 같이 활동하다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들이 있어요. 처음 온 사람들이 선두에서 미친 듯이 황소처럼 걸어가다가 어느 순간 무릎이 고장 나서 안 보이는 경우죠. 또 진통제를 먹고 버티면서 걷다가 또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사라지는 사람들도 많이 봤어요. 몸에 이상을 느낀 건 아닌데 갑자기 저도 이렇게 걷다보면 오래 못 걷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산천을 즐기기 위해 속도를 조금 줄이기로 했죠.”
전체 코스 3분의 1 전엔 추월 금지
그는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빨리 가려는 사람과 함께 가면 보조를 맞춰서 빨리 가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서두르지 않는다. 또한 늘 후미에 서서 가려고 한다. 최우선을 보행 속도가 아니라 보행 재미에 둔다. 장거리 코스라면 3분의 1 지점까지는 전체 인원 대열의 중간 이상에서 절대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다만 3분의 1 이상 걸으면 몸이 풀리니 그때부터는 본인 페이스대로 간다. 그리고 절대 뛰지 않는다. 항상 걷기만 한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지도를 보면서 산행을 준비할 때라고 한다. 그리고 산행철학을 바꾼 지금은 행복의 강도가 좀더 증가했다. 과거에는 빠른 주파를 목적으로 식수를 얻을 수 있는 곳, 식당의 실제 운영 여부, 야간에도 미리 주문해 두면 조리된 요리를 식당 처마에 매달아놔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곳 등을 파악했다. 현재는 전망이 멋진 구간은 낮에 걷고, 보는 재미가 없는 구간은 밤에 통과하도록 배치한다. 그렇게 100여 시간의 운행 계획을 수립하는데 그 과정이 그토록 재밌고 설렐 수 없다고 한다.
대전 보문산에서 만난 조씨.
가장 좋아하는 산은 설악산이다. 여러 장거리 코스로 올랐는데 늘 짜릿하고, 숨이 엄청나게 거칠어지면서, 볼 것도 엄청나게 많다고 했다. 그래서 과거에는 지리산보다 설악산을 곧잘 위에 뒀다. 전에는 지리산을 주능선만 타다가 최근 여러 골짜기로 올라가는 길들을 걸어보면서 지리산의 깊고 웅장한 계곡미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두 산을 거의 같은 반열에 두는 상태다.
“가장 힘들었던 산행으로는 2019년 75km 남덕유환종주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순수한 코스 피로도를 따지면 호남국공연산이 으뜸이겠지만, 남덕유환종주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비가 내렸거든요. 보통 장거리를 걸으면 힘들 때만 쉬는데, 이때는 처음으로 비가 조금 잦아들기를 기다리느라 걸음을 멈췄어요.”
그렇게 힘들어도 계속 진행했던 건 암릉도 멋졌지만 무엇보다 덕유평전에 피는 원추리를 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지금은 많이 죽었다”며 “백두대간을 걸어도 지자체가 관심이 있는 곳들은 길이나 주변 식생이 잘 정리돼 있는데, 관심이 없는 곳들은 길이 다 묵어 있고, 이정표도 박살나 있고, 식생도 엉망진창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등산을 마친 뒤 길이나 이정표가 잘돼 있는 지자체에선 조금 더 많이 사고 먹으려고 한다. 나름대로 지역 환원을 하는 셈이다.
조씨의 등산장비. 나침반과 침낭 등 빠짐없이 모두 들고 다닌다.
산의 높이만큼만 욕심을 내라
완주의 기쁨, 건강 증진…. 장거리를 걷는 여러 이유 중에 그는 ‘자기 확인’을 들었다. 장거리 완주 경험이 많이 쌓인 지금은 1~2개월 정도 60km 이상 코스를 걷지 않으면 몸이 둔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렇게 몸이 좀 둔한 것 같은 상태에서 산에 들어 걷다 보면 몸이 풀리면서 결국 끝까지 걸을 수 있게 되고, 그 순간 ‘아직 내가 괜찮구나’란 말을 내뱉게 된다고 한다.
“중간에 포기한 길은 꼭 다시 찾아서 걸어요. 다른 길을 찾지 않아요. 이게 사실 병이고 중독인데, 포기한 길들은 숙제처럼 마음에 남게 됩니다. 결국 욕심인 거죠.
저는 이 욕심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봐요. 어떤 사람들은 산에서 아예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하는데, 산에 대한 욕심이 없으면 체력이나 등력이 늘어날 수 없어요.”
조씨는 한겨울 심설산행만 아니면 무조건 발목이 낮고 가벼운 트레킹화를 신고, 상황에 따라 스패츠를 착용한다. 발목 높은 등산화는 물을 머금었을 때 너무 무거워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제안하는 것은 ‘산의 높이와 거리만큼만’ 욕심을 내면 된다는 것이다. 산의 높이 이상 욕심을 내면 몸에 이상이 오게 된다는 것. 그리고 욕심의 방향도 중요하다. 자기 스스로에게 욕심을 내야 하는데 타인을 향해 내면 안 된다. 쉽게 말해 남한테 으스대려고 산행하는 행태다.
“요즘 SNS를 보면 대부분 종주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자랑하기에 급급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면 몸이 망가지기 마련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문화가 만들어진 배경, 즉 제도와 규제가 근본적인 문제이긴 해요. 입산시간지정제가 있어서 이 시간 안에 최대한 무언가를 하려다 보니 산꾼들이 무리하게 되고, 다치게 되죠. 그래서 장거리꾼들은 국립공원이 늘어나는 지금 상황이 결코 달갑지 않아요. 예전처럼 텐트치고 야영하며 모닥불을 피우고, 술 마시고, 쓰레기 버리고 하는 사람들이 거의 사라졌는데 여유 없는 산행을 강제하는 면이 조금 아쉬워요. 일단 백두대간이 불법인 것이 말도 안 되고요. 언젠가는 신고제를 도입해서 우리나라의 장거리 트레일 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갔으면 좋겠습니다.”
대전시내를 배경으로 인터뷰 중인 조씨가 미소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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