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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낭만야영] 초록색 쓰나미 못 잊어…산으로 간 ‘에어컨 노예’

by 白馬 2024. 8. 21.
 

백두대간 이화령~백화산

 

황학산 근처의 가는잎그늘사초 군락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텐트를 치고 하룻밤 보내기 안성맞춤인 장소다.

 

어제는 한바탕 폭우가 내릴 듯 습기가 온 몸을 불쾌하게 감싸는가 싶더니, 오늘은 지구 생명체를 모조리 말려버리려는 듯 태양빛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변화무쌍한 여름날의 연속이다. 어디 시원한 계곡물에 발 담그고 앉아 달콤한 수박 잘라 먹으며 신선놀음이나 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에어컨의 노예가 되어 모니터나 끌어안고 있다. 밖으로 나가자는 산우들의 권유에 날씨 핑계를 대고 있다. 처음 백패킹에 발을 들였을 때, 선배들에게 두 다리가 버틸 힘이 없어질 때까지 배낭을 메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떠들었었다. 80세가 넘어서도 산을 올라야 한다며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등산화는커녕 운동화에 발을 끼워 넣는 행위조차 귀찮아지는 요즘이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무기력하게 만드는 걸까? 매너리즘? 번아웃? 의욕 없이 일만 하며 조용히 늙어가는 나에게 동정심마저 들 지경이었다. 

나태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던 어느 날 월간산 신준범 기자에게 연락이 왔다.

“문경에 있는 산을 취재해야 하는데, 다녀와 볼래?”

“이 더위에 문경을요?? 어디 산인데요?”

“백화산.”

“백화산이면 이화령에서 이어지는 백두대간 코스 아니에요?”

 

흘러내리는 초록 물결을거슬러 올라가는 김효주씨.

 

어릴 적 처음 등산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호회 선배의 권유로 백두대간 팀에 합류했었다. 매달 한 번씩 금요일 밤에 출발해 1무 1박 3일로 종주하는 식이었다. ‘무박’, ‘종주’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때였다. 항상 컴컴한 자정 전후에 들머리에서 출발했다. 희미한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앞선 이의 뒤꿈치만 보며 달렸다. 아마도 그 시절 백화산도 가을과 겨울 사이에 달렸을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달렸지만 내가 지나온 산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결국 중도 하차했다. 이후 마음이 내킬 때마다 가고 싶은 구간만 여유롭게 걷는다. 이 기회에 종주 한 번 하고 무기력증에서 탈출해 볼까 해서 등산화 끈을 질끈 동여맸다. 마침 휴무가 같은 김효주에게 연락했다. 그녀도 무더운 날씨에 몸을 사렸다. 

“언니. 이 날씨에 계곡 가자니까, 백두대간이라니! 열사병 걸려요!!”

“어차피 여름이라 장비도 가볍고 비화식으로 가면 되니까 짐은 내가 다 들게. 너는 같이 가서 모델만 해!”

“그럼 좋아요!” 

효주도 흔쾌히 동의했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었다. 나뭇잎이 마치 모자이크 작업처럼 보인다.

 

백두대간 종주는 지겨웠다

백화산白華山(1,064m)은 백두대간의 숨은 명산이다. 눈이 오면 하얀 천을 두른 것 같다 하여 이름 지어졌다. 그만큼 겨울 명산으로 이름나 있지만, 여름에는 짙은 녹음과 함께 우거진 숲을 뚫고 솟은 바위 전망대의 시원함과,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암릉 구간을 넘나드는 거친 산행의 즐거움을 맛 볼 수 있다. 백화산에서 황학산과 이화령으로 이어진 백두대간 줄기에는 드문드문 솟은 암릉과 더불어 월악산과 주흘산을 조망할 수 있다.

택시를 타고 가다가 이화령 고개에서 내렸다.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다. 이화령휴게소에는 인기장소답게 평일임에도 등산객과 라이더들이 제법 있었다. 터널을 지나자 도로 가장자리에 백화산 들머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였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경사면으로 이어진 길로 들어갔다. 본격적인 숲길이 나왔다. 평평한 능선길을 걷다 보니 곧 아담한 조봉鳥峰(673m) 정상석이 나왔다. 정상석이라고는 하지만, 쉼터처럼 널찍한 공터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작은 돌덩어리가 앙증맞았다. 자리가 넓어 텐트를 치기에 안성맞춤이었지만, 이화령에서 고작 3km남짓 떨어진 곳이라 멈출 수 없었다. 

 

널찍한 공터에 위치한 황학산 정상석. 백두대간 종주를 하다보면 봉우리가 아닌 곳에 정상석이 놓인 것을 여러 차례 볼 수 있다.

 

다음날 백화산을 지나 하산하려면 적어도 황학산까지는 가야 했다. 어차피 백두대간 길 위에서는 전망 좋은 야영지를 기대하지 않는다. 조망만 포기한다면 텐트를 칠 장소는 무궁무진하다. 조금 더 걷다가 멈춰야 할 시간이 되면 멈추면 되는 것이다. 등산로는 낯설었다. 문득 어느 늦가을 밤 숲을 가득 채우는 낙엽 밟는 소리가 백두대간 기억 속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퇴근 후 바로 이동했던 탓에 피곤해서 눈은 거의 감은 채였을 것이다.

어둠 속 앞선 산우의 발에서 풍기는 먼지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백두대간 하면 트라우마처럼 떠오르는 낙엽 밟는 소리와 먼지 냄새가 났다. 지금 내 눈앞에는 청량하기 그지없는 녹음이 펼쳐져 있는데도 그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당시 나는 백두대간 종주가 지겨웠을지 모르겠다. 보이지도 않는 길을 무작정 걷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백두대간을 얼마나 짧은 시간에 완주했는가? 몇 회를 왕복했는가? 누군가에게는 산행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겠지만, 누군가는 못 하는 게 아니고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사람마다 산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 산에서 굳이 정상 인증을 하지 않는다. 산은 그냥 길을, 그 순간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황학산과 백화산 사이 암릉 구간에는 직벽도 있다. 초보자들이 이 구간을 지날 땐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절 나는 산을 잘 타는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싶어서 백두대간과 100대 명산을 시작했던 것 같다. 결국 둘 다 중도 포기했지만.

황학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숲이 우거져 있었다. 바람 한 점 파고들 틈이 없어 보였지만, 뙤약볕을 피할 수 있어 걷기 수월했다. 황학산에 가까워지자 가는잎그늘사초 군락지가 나타났다.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한 초록빛 쓰나미가 신비롭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홀린 듯 그늘사초 쓰나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런 즐거움이 있다면 백두대간을 몇 번이라도 왕복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이 멋진 곳에 배낭을 풀고 하룻밤 묵었다.

숙영지인 그늘사초 군락지에서 황학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경사가 심했다. 이른 아침부터 땀이 나기 시작했다. 바람이 절실할 때 즈음 작은 전망대가 나왔다. 그 끝에 서서 시원한 아침바람을 맞았다. 멀리서도 월악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망바위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는 김효주씨. 문경시내와 산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황학산 정상석은 조봉처럼 나무가 우거진 공터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정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평평한 능선이지만, 1960~1970년대에는 주변이 목장이었다. 이정표 역할을 위해 세워두지 않았을까? 이름도 독특한 흰드메 삼거리를 지나 10분 남짓 걸으니 시원스럽게 조망이 터지는 암릉이 나왔다. 백화산에서 희양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제서야 이화령에서 출발해 희양산을 지나 은티마을에서 막걸리 한 잔 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악휘봉을 지나 버리미기재까지 달려야 했지만 은티마을 주막은 백두대간의 참새 방앗간 같은 곳이다.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산객들의 낭만이 깃들어 있는 명소인 것이다. 조만간 은티마을에 다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전망바위 아래로 직벽이 나왔다. 고정로프가 있었지만, 백두대간 길에는 낡거나 훼손된 로프가 많기 때문에 내려가기 전에 안전한지 당겨 보았다. 묵직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왕년에 바위 좀 탔던 효주는 안정된 자세로 하강했다. 암릉을 지나 다시 기어오르자 산행 내내 숨겨져 있던 전망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효주가 등산로를 살짝 벗어나 바위 끝에 섰다. 오전 안개가 바람에 일렁이며 구름과 뒤섞였다. 장관이었다. 길은 다시 숲속으로 이어졌다. 백화산 정상을 향해 고도를 높였다. 하염없이 이어지는 된비알 끝에 옥녀봉 갈림길이 나왔다. 백화산 정상은 옥녀봉 갈림길에서 100m 거리에 있었다. 정상에 앉아 문경시와 그 너머 운달산을 보며 잠시 쉬었다. 최종 목적지에 앉아 축축하게 젖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앞서 걷던 김효주씨가 아름답게 피어 있는 산딸나무 꽃을 바라보고 있다.

 

“언니! 여름마다 웬 고생이에요!? 내년에는 진짜 계곡으로 갑시다!”

“그러게 말이다. 근데 나는 오랜만에 여기 오길 잘 한 것 같아. 옛날 생각도 나고. 하하!”

“옛날 생각이요? 뭐 언니가 잘 됐다니 좋네요! 하하.”

효주는 늘 그렇듯이 이유도 묻지 않고 호응해 주었다.

옥녀봉 갈림길로 되돌아왔다. 마원리로 향하는 이정표를 따라 10분 남짓 내려가자 길이 사라졌다. 이정표도 없었다. 왼쪽은 절벽은 아니지만 길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팔랐다. 오른쪽으로 큰 슬랩이 있어 미끄러져 내려가 보니, 시그널 하나가 붙어 있었다. 저걸 떼어서 위에 붙여 놓을까 하다 슬랩을 다시 올라가면 땀을 한 바가지 쏟아낼 것 같아 포기했다. 하산길은 급경사로 이어졌다. 이따금씩 등산로가 희미해질 때면 시그널이 보였다. 

계곡을 지나 오서골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너덜길의 연속이었다. 백화산 정상에서 마원리까지 고도 900m를 시속 4km 속도로 하산하느라 다리가 후들거렸다. 고된 만큼 엔돌핀이 뿜어 나왔을까? 나는 긍정의 산꾼으로 되돌아왔다. 곧 다음 여름사냥을 떠나야겠다. 

 

오랜 세월 온갖 풍파를 견뎌왔을 고목. 오랫동안 이 자리에서 산객들을 마중하고 배웅했을 것이다.

 

백화산의 교통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점촌시내버스터미널에서 하초리로 연계된 21번 버스(1일 10회 운행)로 이동 후 이화령 고개까지 택시를 이용하거나, 현지 펜션을 이용한 후 차량 지원을 부탁할 수 있다. 마원리에서 점촌시내버스터미널까지는 20-1번 버스(1일 6회 운행)를 이용한다.  

자가용 이용 시 종주의 경우, 들머리인 이화령 고개에 차를 세워두고 택시를 이용하거나, 펜션 이용 픽업을 부탁할 수 있다. 

 

백화산 근처의 먹거리

하초리는 펜션 밀집지역으로 약돌을 갈아 먹여 키운 ‘문경 약돌 돼지’ 삼겹살이 유명하다. 

 

백화산 근처의 볼거리

문경 오미자 테마공원 - 전국 오미자 생산량의 45%를 차지하는 문경오미자를 테마로 한 체험관이다. 오미자를 이용한 쿠킹 클래스, 아로마 체험 등 다양한 체험과 오미자 트리 전망대가 있어 공원을 둘러싼 아름다운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 하절기(3~10월) 09:00~18:00 

▶ 동절기(11~2월) 10:00~17:00

▶ 월요일 / 1월 1일 / 명절 당일 (공휴일이 월요일인 경우, 화요일 휴무)

 

문경 단산 모노레일 - 왕복 3.6km로 국내 최장 길이의 모노레일이다. 해발 866m에서 문경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 백두대간 줄기인 주흘산, 조령산, 희양산, 백화산, 월악산, 속리산, 대미산 성주봉 등 아름다운 산들을 동서남북으로 볼 수 있다. 

 

위치 경북 문경시 문경읍 활공장길 106

 

운영 시간 

▶ 하절기(4월~10월) : 매일 09:00~18:00 (하부 탑승 종료 17:00, 상부 탑승 종료 17:30)

▶ 동절기(11월~3월) : 매일 09:30~17:00 (하부 탑승 종료 16:00, 상부 탑승 종료 16:30)

▶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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