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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신례천생태탐방로] 제주 주민들의 신성한 기도터 품은 청정 숲길

by 白馬 2024. 8. 14.
 

[제주, 어디까지 아세요] 서귀포시 남원읍의 주민들만 아는 은밀한 트레일

 

 

이끼가 많은 신례천생태탐방로. 제주 숲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제주에는 제주올레나 한라산둘레길이 아니어도 걷기 좋은 길이 수두룩하다. 한남리의 머체왓숲길과 유명한 사려니숲길, 한라생태숲에서 출발해 절물오름 일대를 지나는 숫모르편백숲길, 노꼬메오름 주변을 두르는 상잣질, 수망리의 마흐니숲길, 가시리의 갑마장길 등 저마다의 매력을 지닌 걷기길이 마니아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남원읍의 신례천생태탐방로도 그중 하나다. 길 끝에서 이승악둘레길이 이어지니 함께 걸으면 더할 나위 없다. 

‘신례천’은 한라산의 진달래밭 일대에서 발원해 남원읍의 위미항 서쪽, 공천포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물길이다. ‘신례천생태탐방로’는 십수 년 전, 신례천의 상류에 조성된 걷기 길로, 5·16도로 남단에서 성산까지 이어지는 서성로를 기준으로 두 코스로 나뉜다. 

 

돌로 쌓은 벽만 남은 수악주둔소. 비교적 잘 보존된 4·3 유적지다.

 

남쪽의 올리소에서 서성로에 걸린 송목교까지 2.4km가 1코스고, 여기서 이승악까지 3.1km가 2코스다. 사람들은 이승악이나 한라산둘레길과 연계할 수 있는 2코스를 더 즐겨 찾는다. 중간에 제주 4·3 유적지 수악주둔소와 화생이궤, 해그머니소 같은 명소를 거친다. 제주 관광안내 책자는 물론, 제주의 숱한 관광지를 다룬 여행 책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 길로, 그야말로 제주 지역민들이 알음알음 찾아서 걷는 비밀스러운 트레일이다. 

이승악휴게소에서 서성로를 따라 서쪽으로 600m 남짓 간 곳의 송목교에서 길이 시작된다. 입구에 4·3 유적지임을 알리는 동백꽃 그림이 선명하다. 4·3의 영혼들이 붉은 동백꽃처럼 차가운 땅으로 소리 없이 스러져갔다는 뜻에서 동백꽃은 4·3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동백은 제주 사람들에게 예쁘면서도 슬픈 꽃이다. 

 

화생이궤 안에서 본 풍광. 내부가 꽤 크고 넓다.

 
 

깊은 숲속 동백꽃 한 송이, 수악주둔소

생태탐방로답게 숲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귀나무, 산가막살나무, 참꽃나무, 굴거리나무, 구실잣밤나무 등 생경하거나 익숙한 이름표를 단 나무들이 인사를 건네고, 아래엔 빨간 열매를 매단 백량금도 자주 보인다. 산호수나, 자금우, 백량금 같은 식물은 제주 오름이나 숲에서 잡초처럼 자라는데, 뭍에서는 모두 비싼 값에 팔린다. 

가느다랗게 위로만 자란 나무로 빼곡한 숲 사이에 아름드리 둥치들이 섞여 눈길을 끈다. 뿌리로 커다란 바위를 통째 감싼 나무도 자주 보인다. 낙엽이 가득해 밟는 촉감이 좋은 길을 따라 신례천 상류로 점점 들어선다. 길을 따라 붉가시나무 군락, 모새나무 군락, 참꽃나무 군락을 알리는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 목마장과 관련된 유물인 상잣성을 지나자 곧 수악주둔소로 길이 갈린다. 

 

신례천의 이름 없는 궤. 안이 무척 넓다.

 

수악주둔소는 신례천생태탐방로에서 서쪽으로 5분쯤 걸어간 곳에 있다. 제주에 남은 4·3 주둔소 유적지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형태도 온전한 곳이다. 돌로 잘 쌓은 정방형 석성 안에 또 성을 쌓아서 내성과 외성으로 벽이 구분되고, 그 안에 세면장과 숙소, 초소, 취사장, 망루 같은 시설이 구획을 나눠 들어섰다. 주둔소 성곽 안에 민묘도 보인다. 

남로당 제주도당 무리와 무장대가 오름이나 한라산 산간으로 피신하자 군인과 경찰로 구성된 토벌대는 제주 중산간 곳곳에 이러한 주둔소를 설치하고 무장대와 주민들의 연결을 차단하며 토벌작전을 전개했다고 한다. 우리 세대와는 먼 이야기여서 피부로 와 닿지 않지만, 4·3 사건의 생채기는 제주 곳곳에서 아픈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악주둔소의 깨진 솥단지와 그릇. 아픈 역사만큼이나 여운이 짙다.

 

여전히 인기 있는 화생이궤

다시 돌아온 삼거리에서 생태탐방로를 따라 잠시 오르자, 일제강점기 표고 생산을 위해 설치한 건조장과 표고를 말리기 위한 부대시설인 숯가마 터다. 숯가마가 한국전쟁 후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의 화전민 흔적인 줄로만 알았는데, 일제의 수탈 현장이기도 했다니! 생각할수록 참 모진 역사다. 

제주의 여느 계곡이 다 그렇지만, 이곳 신례천 상류 또한 골이 깊다. 곳곳에 소가 자리하고, 한라산의 강수량이 많아지면 크고 작은 폭포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 곳마다 궤(땅속으로 깊숙이 파여 들어간 굴을 뜻하는 제주어)도 여럿 보인다. 탐방로 옆에 성인 10명쯤은 거뜬히 들어갈 만한 궤가 눈길을 끈다.

이름 없는 궤를 지나 조금 더 오른 곳에 이 코스의 하이라이트인 화생이궤가 있다. 계곡 옆의 커다란 궤 안에 제단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아치형인 궤의 크기가 정면에서 볼 때 폭이 12m, 깊이는 5m가 넘고, 천장의 가장 높은 곳이 3m에 달한다. 

 

송목교 옆의 신례천생태탐방로 들머리. 수악주둔소를 안내하는 동백꽃 그림이 선명하다.

 

안쪽의 콘크리트 비석은 1972년에 세운 것이라고 적혔다. 비신 전면엔 ‘奉請山王大神之位봉청산왕대신지위’라는 한자가 음각되었는데, ‘奉請’은 법회나 제의를 진행할 때 부처나 보살, 또 다른 신을 청하는 의식을 말한다. 

그런데 ‘청’의 한자가 이 비에는 잘못 적혔다. 오른쪽 아래에 화폐단위인 엔(円-또는 둥글 원)자가 와야 하는데, ‘달 월’을 새긴 것. 옥편에도 이런 한자는 없다. 헷갈리기 쉬운 글자여서 비를 주문하거나 새긴 사람 중 한쪽이 실수한 모양이다. 

 

신례천생태탐방로 안내도

 

이 신당은 신례리는 물론, 남원과 효돈의 여러 마을에서 우마의 번영과 치병을 위해 산신제를 지내던 곳으로, 지금도 많은 이가 애환을 풀기 위해 오가는 현역 신당이다. 막돌을 박아 쌓은 제단에 촛대가 여럿이고, 오른쪽 벽에 걸린 실꾸러미엔 소원을 빈 이들이 복전으로 꽂아둔 지폐도 꽤 보인다. 궤 이름(화생이)의 유래와 관련해서는 어떤 자료도 전해오는 게 없어 아쉽다.

 

이승악둘레길, 한라산둘레길도 연결

탐방로는 곧 한라산둘레길 5구간인 수악길을 만난다. 잠시 후 나타난 구분담. 잣성 같아 보이는데, 상잣성이나 중잣성이 아닌 구분담이라니 생소하다. 해설판을 읽어 보니 일제강점기에 토지조사를 하면서 개인 소유지와 구분하기 위해 쌓은 것이라고 한다. 

 

숲이 짙은 신례천생태탐방로. 코스 모든 구간에 거의 해가 들지 않는다.

 

구분담을 지나 오른쪽으로 건천을 건너자 이승악이다. 이승악 탐방로와 만난 삼거리에 ‘이승이오름 순환코스’ 안내도가 서 있다. 그러니까, 신례천생태탐방로는 여기서 끝나고 이승악둘레길에 접어든 것이다. 안내도엔 총 4km에 1시간 반쯤 걸린다고 적혀 있다. 

숯가마 터와 해그머니소, 일본군 갱도진지, 화산탄과 삼나무숲 등 흥미로운 볼거리로 가득해 걷기 좋은 숲길이다. 이승악을 오르지 않고 자락을 따라 한 바퀴 도는 길로, 활엽수와 삼나무숲 사이를 지난다. 이승악둘레길을 돌지 않고 오른쪽으로 바로 내려서면 날머리인 이승악 주차장이 가깝다. 

 

이끼로 뒤덮인 여름날의 신례천. 온통 신록의 세상이다.

 

Info

교통 

버스가 다니는 5·16도로가 3km쯤 떨어져 있어서 대중교통으로 찾기엔 불편하다. 내비게이션에 ‘이승악식당’을 입력, 간이 편의점을 겸한 식당 앞에 화장실을 갖춘 넓은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에서 들머리까지는 600m, 이승악주차장은 2.5km 거리다.  

 

원앙폭포.

 

주변 볼거리

원앙폭포 백록담 남벽에서 발원한 영천에 걸린 폭포다. 사이좋은 원앙이 살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 사철 마르지 않는 폭포수가 흐르고, 소 또한 깊고 맑아서 여름 피서지로 인기다. 한여름에도 물속에서 5분을 견디기 힘들 만큼 물이 차다. 원앙폭포 주변은 멧돼지(돈)가 물을 마시던 내의 입구(코)라는 ‘돈내코’로, 오래전부터 제주 주민들이 즐겨 찾는 유원지다. 

 

삼보식당의 옥돔구이.

 

맛집(지역번호 064)

들머리에 편의점을 겸한 이승악식당(767-2299)이 있다. 그러나 간이휴게소여서 제대로 식사하려면 서귀포 시내의 식당을 이용하는 게 좋다. 서귀포 구시가지의 제주올레스테이 건너편에 옥돔구이와 각종 생선구이·조림을 잘하는 삼보식당(762-3620)이 먹을 만하다. 갈치조림·옥돔구이 3만 원, 고등어구이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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