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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남난희의 느린 산] 아낌없이 내어주는 집

白馬 2024. 6. 4. 05:56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 기슭의 낮은 산 같은 우리집

 

 

남난희는 1984년 여성 최초로 태백산맥을 겨울에 단독 일시종주했으며, 1986년 여성 세계 최초로 네팔 강가푸르나(7,455m)를 등정했다. 1989년 여성 최초로 백두대간을 종주했으며, 74일간의 태백산맥 단독 일시 종주기를 담은 <하얀 능선에 서면(1990년)>을 펴내 등산인들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4년부터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아 살고 있다. 2022년 백두대간을 선구적으로 알린 공로로 한국인 최초로 스위스 알베르 마운틴 상을 수상했다.

 

대문에서 본 마당과 본채와 별채.
 

내가 살고 있는 집 이야기다.

집 뒤로 아주 낮은 산이 있다. 그 아래 그 산을 닮은 오두막이 동네와 약간 떨어져 자리 잡고 있다. 산과 집 사이에는 약간의 차 밭이 있다. 그 옆으로 대나무 숲이 방풍림 역할을 한다.

집은 정남향이다. 이 동네에서 드물게 아래 세상이 내려다보이고 겹겹이 뻗어 내리는 산 능선들 뒤로 백운산이 정면이다. 지리산과 백운산을 가르는 섬진강은 아쉽게도 보이지 않는다. 서쪽으로 조금 큰 바위와 박쥐가 사는 동굴이 있고 그 끝에 작은 우물이 보물처럼 있다. 

 

대문 안쪽에 걸린 현판. 30년전, 전토민 선생이 글씨를 쓰고양각해서 선물로 주었다

 

박쥐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대문간이나 마루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서 자고 가는 탓에 아침에는 박쥐 똥을 치우는 일이 많다. 더운 여름에 마당에서 밤늦도록 있다 보면 가끔 놈들을 볼 수 있지만 기척이 없을 때 만이다. 

집에서 가장 자랑하는 것이 우물인데 작은 우물은 사계절 온도가 변하지 않는 덕분에 여름에는 시원하게 느껴지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느껴진다.

 

마당 한쪽 작은 텃밭에서먹을 것을 키운다.

 

바위틈엔 오래된 차나무가 자란다. 늦가을부터 차 꽃이 피고 지기를 한겨울까지 반복하는데 차 꽃이 우물에 떨어져서 한 풍경을 장식한다. 차 꽃이 물에서 유영하는 것을 내려다보노라면 나도 우물 안에 들어가 있고 하늘도 우물 안에 들어와 있다. 작은 우물에 비친 또 다른 세상을 보며 천진한 아이처럼 보고 또 보고하며 놀기도 한다.

여름에는 하루에 몇 번이라도 우물 물로 몸을 식힌다. 외딴 집이라 대문을 닫지 않아도 된다. 그 물에 빨래를 하면 얼마나 신나는지 자꾸 빨래하고 싶기 조차하다. 그냥 마셔도 물맛이 좋고 차를 우려도 맛이 좋다.

 

마당의 돌다리.

 

봄나물 파티가 열리는 우리 집 마당

혼자 있을 때는 주방을 이용하지만 손님이 오면 마당과 마루에서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는다. 우물 물에 설거지를 해서 마당 평상에 늘어놓고 햇볕 목욕을 시키면 그릇에서 반짝반짝 윤이 난다.

 

마당 한쪽에 작은 텃밭과 장독대도 있고 떡 하니 대문도 있다. 집에 비해 대문이 좀 큰 편인데 대문과 어울리는 현판이 걸려 있다. ‘백두대간’이 그것이다. 30년 전, 전토민 선생이 글씨를 쓰고 양각을 해서 선물한 것이다. 이 대문과는 맞춤이다. 하지만 집과는 덜 어울리는 것 같아 바깥에 걸지 않고 대문 안쪽에 걸고 보니 괜찮았다.

 

집은 옛 농가 주택으로 지붕만 빼면 거의 모두 자연 재료다. 내가 죽고, 집이 나보다 오래 가겠지만 언젠가 집이 무너진다면 지붕 이외에는 그냥 자연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주로 나무와 흙으로만 지어진 집이기 때문이다.

 

집 한켠의 우물과 작은 동굴.

 

아직도 아궁이에 불을 넣어서 난방을 해야 하는데, 그냥 흙바닥에 구들을 놓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자연에 가깝다. 하지만 모르겠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는. 내가 나이를 더 먹고 힘에 겨우면 난방 문제는 다른 방도를 찾기는 해야 할 것이다.

옛 농가 주택이다 보니 거실은 없지만 대신 마루가 있고 마당이 있어 아주 춥거나 덥지 않으면 마루와 마당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아침 산행 후 별일 없으면 마당에 나와서 풀을 뽑거나 맨발로 흙 마당을 서성인다. 마당에는 온갖 풀들이 수없이 올라오는데 아무리 뽑고 또 뽑아도 금방 또 올라와서 혹시 흙이 모두 풀씨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이다.

 

봄이면 우리집 마당에서 봄나물 파티가 열린다.

 

물론 그냥 뽑아버리는 풀도 있고 꽃을 보기 위해 조금 두는 것도 있다. 내가 먹을 풀도 적지 않다. 마루는 주로 차를 마시거나 책을 보거나 손님이 왔을 때 이용되는 공간이고 그냥 앉아서 하염없이 산천을 바라보는 공간이다. 마루에서 보이는 산천은 아름답고 정겹고 유장하다. 모든 능선이 각자의 방식으로 섬진강을 향해 또는 화개천을 향해 내달리는 모습은 매일 봐도 좋다. 사계절은 물론, 아침저녁 그 색과 표정을 달리해서 신비하고 신기하다.

내가 잠자는 방에는 아예 전기도 들이지 않았는데 지난해 내가 없는 사이 면에서 친절이 넘치게도 전등을 달아주고 갔다. 벗 중 누군가가 나대신 면에 신청을 한 모양이었다.

독거노인이 방에 전기도 없이 불편하게 산다고, 그래서 독거노인인 내 방에 전등이 달렸지만 익숙하지 않아서 잘 사용하지는 않는다. 거의 잠만 자는 공간이라 불이 별로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물물에 설거지한 그릇은 평상에서햇빛 목욕을 한다.

 

본채 옆에 작은 별채가 있는데 손님이 왔을 때 주로 사용한다. 흙벽과 문틈으로 바람이 술술 들어와서 도시 사람들은 방바닥이 아무리 뜨거워도 춥다고 하는데 다른 방도는 없다. 별로 친절하지 않은 나는 그냥 그러려니 하라고 한다.

 

낮은 산 같은 이 집은 사계절 다 좋지만 특히 봄에 좋다. 봄을 기다린 씨앗들이 어느 날 땅을 뚫고 올라오는데 그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모든 새싹은 태어날 때 합장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몸을 최소로 작게 해야 세상에 나오기 유리하다는 것은 모든 생명의 전략일 것이다. 풀들뿐만 아니라 나무의 새싹도 세상을 나올 때는 합장이다. 동물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합장으로 세상을 나와 봄기운을 받아 조금씩 자라며 합장을 펼치고 여러 잎으로 몸을 키운다. 

풀들이 조금 자라면 나의 봄 파티가 시작된다.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받기만 하고 사는 나는 봄에 그 풀들로 인연되는 사람들을 초대한다. 대부분은 그냥 풀로 보지만 내게는 나물로 보이는 것들이 많다.

 

마당과 주변에는 온통 먹을 수 있는 풀들이라 장을 보지 않고도 풍성한 잔치를 할 수 있다. 물론 손이 몹시 많이 가지만 그 정도의 수고 없이 자연을 먹일 수는 없다. 매년 나의 풀 파티를 기다리는 팀이 제법 여럿이다. 우연한 인연으로 행운을 잡는 사람도 있다. 봄날 햇살 가득한 마당 평상에서 이루어지는 잔치인 것이다.

마당에서 본 뒷산. 낮은 산과 어울리는 오두막이다.

 

낮은 산처럼 살고 싶다

각자 한입 가득 자연에서 막 가져온 봄을 먹는 것이다. 각자의 풀에서는 각자의 향이 있어 골라가며 맛보는 재미도 있지만, 한꺼번에 버무려도 봄맛은 찬란하다.

 

봄은 이렇게 찬란한 선물을 하고 나는 그것을 마음껏 즐기며 이웃에게 나눈다. 그때쯤 농부들의 일손이 바빠지는 시기다. 밭에 작물을 심기 시작하는데 감자를 가장 빨리 심는 것 같다. ‘참꽃이 필랑 말랑 할 때’ 감자를 심고, 그 이후부터 차례대로 작물들을 심다가 ‘대추나무에 새가 보이지 않을 때’ 봄 씨앗 뿌리는 것은 끝이 난다고 한다.

 

대추나무는 잎이 가장 늦게 피는 나무다. 대추나무에 잎이 무성해져서 더는 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로 농사 달력이 전해졌을 것이다. 나야 차밭과 텃밭 이외에 농사가 없지만 참 농부인 이 집 옛 주인 내외는 부지런하고 인정 많고 선한 사람들이어서 내게 온갖 것을 베푼다.

아침에 대문을 열면 나물이 한 바구니 놓여 있기도 하고 어디를 다녀오면 감자가, 무가, 호박이 놓여 있다. 그러고도 많은 걸 줬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무심하며, 어쩌다가 내가 뭐라도 나눠주면 두고두고 고마워하는 분들이다. 지금은 이웃이 되었다. 

 

마당에서 맨발로 서성이는 것도 일과 중 하나다.

 

참 고마운 인연이다. 집을 내게 준 것부터 그렇다. 물론 그냥 주지야 않았지만 집이 밝고 방향이 좋은 탓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탐을 냈었다. 그런 이 집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 내 집이 되었다.

 

나는 처음 이 집으로 와서는 너무 좋아서 어디에도 나가고 싶지 않았다. 아침 산행 후 그냥 집에서만 맴돌았다. 시골살이라 자잘한 일이 많지만 그냥 용쓰지 않고 하는 만큼만 하며 느긋해졌다. 

 

자연에 살면서 알았다. 자연은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는데 나는 자연에게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인간인 내가 살아가는 것이 자연에 썩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짐했다. 작게 살자. 작게 쓰고 작게 버리고. 물론 알게 모르게 자연을 해치는 일이 없지 않겠으나, 우선 그것을 알아차리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기로 했다.

 

세제 쓰지 않기. 샴푸 쓰지 않기, 손빨래하기, 쓰레기 줄이기, 일회용품 쓰지 않기, 가전제품 사용 줄이기 등. 뭐 그런다고 내가 전혀 자연에 해를 끼치는 일이 없을까 만은. 낮은 산과 더불어 낮은 산을 닮은 집에서 낮은 산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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