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마운틴. 4월에도 눈이 많다.
“이번 주말에는 이승만산 올라서 박정희봉, 김영삼산까지 종주 산행하자!”
한국에서 만약 한 산군에 있는 봉우리들에 역대 대통령들의 이름을 붙이면 어떻게 될까? 정치적 신념에 따라 그 반응은 극명히 갈릴 테다. 누군가는 매일 같이 존경심과 그리움을 담아 산을 오를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산에 불을 지르고 싶어 하거나 불경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로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의 이름을 산에 붙이는 건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미국 뉴잉글랜드 뉴햄프셔에는 역대 미 대통령들의 이름을 딴 산들이 즐비하다. 이 산군의 이름은 화이트 마운틴,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바람이 부는 곳이다.
화이트 마운틴 산군의 가을 풍경. 사진 게티이미지
미국에서 가장 단풍이 아름다운 곳
뉴잉글랜드 지역의 산림은 미 북동부에서 캐나다까지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뉴햄프셔는 주 면적의 80% 이상이 산악지역이다. 그리고 크고 작은 호수들이 나머지 지역을 채워 준다. 뉴햄프셔주 자체가 자연이라고 할 수 있다. 거친 야생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마운틴’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웨스트버지니아와는 다른 매력을 가진 곳이다. 활엽수가 주종인 미 중부와 달리 이곳은 단풍나무와 곧게 뻗은 침엽수가 잘 자라고 있다. 미국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 뉴햄프셔다.
1800년대 지어진 역마차 다리가 여전히 현역이다.
뉴햄프셔는 가을 단풍만큼 미국 정치의 1번지로도 유명하다.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 1월이면 이곳은 수도 워싱턴보다 더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대통령 예비선거가 가장 먼저 치러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각 당의 첫 걸음이 이곳에서 시작된다. 이 결과에 따라 다른 주들의 예비선거 향방이 크게 갈리곤 한다. 때문에 각 당의 후보자들은 뉴햄프셔주 승리를 위해 많은 공을 들인다.
미국 50개 주 중에 뉴햄프셔가 최초의 예비선거 지역이 된 것은 이곳의 독특한 지형 덕분이다. 주 전체가 산지로 둘러싸인 이곳은 크지 않은 도시와 마을이 분포하고 있다. 전형적인 산골 마을들이다. 이곳에서 가장 큰 도시는 ‘맨체스터’인데 인구는 불과 11만 명 정도다.
텍사스처럼 넓은 면적을 가진 주에서는 짧은 시간 내에 모든 유권자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뉴햄프셔는 가능하다. 도시와 마을이 많지 않다. 후보자들은 읍내 마을회관에서 유권자를 만나고 가가호호 방문해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뉴햄프셔의 환경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1800년대 지어진 역마차 다리가 여전히 현역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 풍향계 역할이기에 이곳 사람들의 정치적 자존심은 남다르다.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간섭받기 싫어한다. 그들의 독립적 성향은 자동차 번호판에 쓰인 문구에도 잘 나타나 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Live Free or Die”이다. 이것이 이곳의 정신이다. 본디 이 말은 뉴햄프셔 출신으로 독립전쟁에 참전한 존 스탁John Stark 장군이 1809년 사용한 말이다. 버지니아 출신 정치인이자 건국의 아버지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도 “나에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라고 말하기도 했다.
화이트 마운틴에서 가장 높은 건 ‘워싱턴’
뉴햄프셔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 있는 곳은 화이트 마운틴White Mountain이다. 전 지역이 국유림으로 지정됐으며 대부분의 숲이 원시림인 곳이다. 뉴햄프셔주 전체 면적의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화이트 마운틴 최고봉 워싱턴 위로 구름이 바람에 휘날려 심상치 않은 모양을 띤다.
정치 1번지 분위기와 어울리게 이곳 산들의 이름은 역대 대통령들의 이름에서 따왔다. 화이트 마운틴산군 남쪽부터 마운틴 잭슨Jackson(7대 대통령), 피어스Pierce(14대), 몬로Monroe(5대), 워싱턴Washington(초대), 제퍼슨Jefferson(3대), 매디슨Madison(4대) 등이다. 이것을 프레지덴셜 레인지Presidential Range라고 부른다. 봉우리들이 모여 있는 모양은 꼭 우리나라의 영남알프스 같다. 단 좀 더 높다. 이 산들은 모두 해발고도 1,500m 이상이며 그중 마운틴 워싱턴이 1,916m로 가장 높다.
초기 뉴햄프셔 정착민들은 농사를 주로 지었다.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밭을 일구고 추수하고 생계를 이어갔다. 잉여 농산물을 팔 수 있을 정도로 상업 활동도 가능했다. 그러나 이후 미국 영토가 확장되면서 중부 곡창지대에서 대량의 농작물이 수확되기 시작했다. 산골 자영농은 대평원의 농장주와 경쟁할 수 없었다. 밭을 버리고 중부로 이사 가거나 목재생산으로 업종을 바꾸었다. 잘 자란 침엽수는 좋은 수입원이 될 수 있었다.
너도 나도 산에 들어가 나무를 잘라내다 보니 산은 순식간에 황폐화되었다. 벌거숭이가 된 산은 흙을 잡아줄 힘이 없었다. 산사태가 일어나고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던 연방정부는 이 일대 산을 모두 사들이고 국유화했다. 그렇게 이곳은 오늘날 다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수많은 동물들의 집이 되었고, 사람들이 기대어 살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전체 면적이 3,200㎢에 달하는 화이트 마운틴은 10평방 마일(256㎢) 안에 약 30만 마리의 포유류가 서식한다고 한다. 작은 생쥐나 다람쥐부터 여우, 사슴, 흑곰 등이 살고 있다. 특히 대형 포유류에 속하는 말코사슴Moose도 쉽게 볼 수 있다.
큰바위 얼굴 암벽으로 가는 길에 계곡에 걸린 다리가 앙증맞다.
이렇게 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고 산림이 울창하기 때문에 산사자Mountain Lion 목격담이 종종 들린다. 우리에게는 퓨마Puma란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쿠거Cougar라고도 부른다. 캘리포니아나 로키산맥에는 아직도 많은 수의 퓨마가 살고 있지만 미 동부 지역은 이미 100년 전에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과거 백두산호랑이가 백두대간 어딘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졌듯 이곳 사람들은 지금 산사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있다.
한편 화이트 마운틴에선 단독 산행은 절대 하면 안 된다. 지난 100년 동안 아직 한 번도 발견된 적은 없다지만 퓨마가 등 뒤에서 덮칠 수 있고, 흑곰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비록 초식동물이긴 하지만 말코사슴은 뿔과 다리를 이용해 사람한테 달려들기도 한다. 발에 차이기라도 하면 갈비뼈 몇 대는 나갈 것이다.
동물과의 원치 않은 만남보다 더 위험한 것은 날씨다. 특히 순식간에 몰려오는 산안개를 조심해야 한다. 화이트 마운틴에서 1,000m 고지 이상 오르면 수목한계선이다. 같은 위도상의 다른 산들보다 한참 더 낮다. 바람을 겨우 견디는 무릎 높이의 관목지대에서 안개를 만나면 방향 감각이 둔해진다.
게다가 이곳 산안개는 차가운 습기를 안고 있다. 비를 맞은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바로 온기를 빼앗기고 저체온증이 올 수도 있다. 만일 바람까지 분다면 조난당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곳의 바람은 강력하다. 화이트 마운틴은 해발 2,000m가 넘지 않지만 변화무쌍한 날씨로 악명이 높다. 한여름에도 조난 사고가 빈번하고 사람이 죽어가는 곳이다.
소로우가 머물렀던 월든호수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바람이 부는 산
화이트 마운틴산군에서 마운틴 워싱턴이 가장 큰 위용을 갖고 있다. 이곳은 히말라야와 극지방보다 바람이 더 세게 부는 곳이다. 관측된 바람의 속도가 시속 372km였다고 한다. 1934년에 측정된 것이다. 당시 산 정상에 있었던 3명의 기상학자들은 목숨을 걸고 바람의 세기를 측정했다고 한다. 그중 실제로 바람을 맞으며 측정한 1명은 어떻게 밖에서 관측소 문을 열고 들어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그가 날아가지 않게 줄로 묶고 건물 안에서 단단히 잡고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바람이 세게 부는 건 미국 대륙 전체에서 만들어진 바람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바람이 통과하는 길목이다. 캐나다와 오대호에서 만들어진 찬바람이 서쪽에서 몰려오고, 대서양의 습기는 동풍을 타고 온다. 그리고 남동부에서 온화한 바람이 골을 타고 마운틴 워싱턴 정상 인근으로 올라온다. 이렇게 세 방향에서 올라오는 바람이 산 정상 지점에서 만나 대서양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바람의 강도가 매우 강한 것이다.
대기역전(온도반전Temperature Inversion)이란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더운 공기가 산 위쪽 하늘을 덮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바람은 옆으로 이동하게 되고, 바람의 강도는 더 세진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 등산 장비 제작사들은 방풍 방수 기능을 갖춘 신제품 테스트를 이곳에서 한다.
월든 호수 미니어처.
마운틴 워싱턴에는 매년 6m 이상의 눈이 내린다. 겨울 기온은 영하 40℃ 이하로 내려간다. 겨울의 혹한 추위로 인해 이곳의 연평균 기온은 고작 영하 2℃다. 여름 기온은 평균 10℃ 안팎이다.
15년 전 즈음 아직 아이들이 어릴 때였다. 7월 한낮 더위를 피해 마운틴 워싱턴을 올랐다. 하이킹이 아니라 차를 타고 산악도로Mt. Washington Auto Road를 이용했다. 이곳은 정상까지 차로 갈 수 있다. 눈이 다 없어지는 5월부터 11월까지 이용할 수 있는 도로다. 도로 이용료는 차량 1대와 운전자 1명 기준 45달러로 추가 1인당 20달러를 내야 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공포감이 높아지는 도로다. 양 옆은 천 길 낭떠러지임에도 불구하고 추락 방지물은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다. 마치 카라코룸의 산길 같은 느낌이다. 손과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히면서 산 정상까지 1시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정상에서 우리를 맞아 준 것은 거센 바람과 짙은 안개였다. 산 아래와 산 정상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다른 친지들이 큰아이를 데리고 휴게소로 먼저 향했다. 나는 이제 겨우 걸음마하는 둘째 아이를 가슴에 안고 뒤에서 걸었다. 주차장과 휴게소까지 거리는 30m 정도였다. 순식간에 짙어진 안개와 거세진 바람이 우리 가족을 흩어 놓았다. 불과 1m 앞도 안 보이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가슴에 안은 둘째 아이를 옷으로 감싸고 바람으로부터 보호하고자 애썼다. 고작 30m 떨어진 휴게소를 찾는 데 무려 10여 분이나 걸렸다. 그 10분이 마치 한 시간 같은 느낌이었다. ‘이렇게도 조난당할 수 있구나’ 란 생각을 했다. 거센 바람은 목소리도 먹어버려서 부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휴게소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장갑부터 샀다. 한여름에 너무나 추운 경험을 했었다. 이처럼 한순간에 조난당하는 일이 이곳 마운틴 워싱턴에서는 빈번히 일어난다. 지난 200년 동안 160여 명의 사망자가 나온 걸로 기록되어 있다. 거의 1년에 한 명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다이아나 배스로 가는 트레일. 숲이 한적하고 고요하다.
마운틴 워싱턴에 산악도로가 만들어진 것은 1860년대다. 이 산악도로 덕택에 이곳은 늘 분주하다. 산골 사람들도 1년 내내 바쁘다. 여름 시즌에는 이곳에서 다양한 이벤트가 계획된다. 대표적인 것이 ‘클라임 투 더 클라우드Climb to the Cloud’다. 가장 빨리 산 정상까지 차를 몰고 올라가는 경기다. 일반 차량으로 1시간 이상 오르는 험준한 약 12km의 도로를 나스카 경주차량이 5분 남짓한 시간 만에 주파하는 위험천만한 레이스다. 현직 카레이서들이 출전하는데 아무리 경험이 많다고 하더라도 보는 사람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낭떠러지 곡선 도로를 시속 150km로 달리는 것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못 할 일이다. 코로나 전까지는 매년 대회가 있었지만 올해는 아직 미정이다. 영상이 궁금하다면 유튜브에서 ‘Travis Pastrana’s Full Record Run at 2021 Mt. Washington Hillclimb’로 검색하면 된다.
대신 다가오는 6월 15일에 200대 이상의 미니MINI 차량이 한꺼번에 산 정상으로 오른다. 지금은 BMW에서 제조하는 MINI는 본디 영국의 국민차였다. 미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재판되기 시작했는데 MINI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이 많은 것 같다. 다양한 색상과 모양의 MINI들이 모인다고 하니 이 또한 장관일 것이다.
마운틴 워싱턴 정상까지 산악열차도 다닌다. 매년 가을이면 단풍을 보기 위한 관광객들이 주로 이 열차를 이용한다. 산악열차가 출발하는 콘웨이Conway마을 인근에는 다이애나 배스Diana’s Bath라는 아름다운 폭포로 가는 트레일이 있다. 다이애나는 물과 숲, 달을 관장하는 로마 신화 여신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곳은 1940년대까지 풍부한 수량을 이용해 물레방앗간이 운영되었지만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이 지역 최초의 호텔도 방앗간 옆에 있었지만 큰 수익을 못 내고 폐업했다고 한다.
과거 큰바위 얼굴이 있던 자리.
사라진 큰바위 얼굴
화이트 마운틴 남쪽에서 시작되는 마운틴 라파예트Mt. Lafayette 트레일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암벽에는 큰 얼굴이 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조각난 바위들이 층층이 쌓인 듯한 모습인데 멀어질수록 사람의 형상으로 보이는 바위였다. 일명 큰바위 얼굴The Old Man of the Mountain이 있‘었’다.
수많은 세월동안 마을 사람뿐만 아니라 전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 바위는 지난 2003년 큰 굉음과 함께 부서지고 말았다. 이미 그 이전에 코와 이마 부분에 파열이 있어 철사와 쇠사슬을 이용해 고정했지만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영원히 사라졌다. 바위가 무너질 당시 많은 미국인들이 슬퍼했다.
특히 인근 마을 사람들은 그 안타까운 마음을 표할 길이 없었다. 마을을 지켜주듯이 늘 바라보던 큰바위 얼굴의 부재에 허탈함이 컸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큰 바위 얼굴은 그냥 하나의 바위가 아니고 친구, 가족 또는 일종의 종교 이상의 이미지였다. 이는 우리가 잘 아는 소설 ‘큰바위 얼굴(원제:The Great Stone Face)’에 잘 묘사된다. 뉴햄프셔 출신 나다니엘 호손이 1850년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주인공 어니스트가 큰바위 얼굴을 닮은 인자하고 위대한 인물을 기다리는 내용이다. 이제는 큰바위 얼굴은 없고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없어지기 전 큰바위 얼굴. 사진 뉴햄프셔 주정부.
소로우가 살던 집을 찾아서
뉴햄프셔는 아니지만 바로 인근에 또 들러볼 만한 곳이 있다. 남쪽 주 경계를 넘어 매사추세츠에 들어서면 얼마가지 않아 고즈넉한 한 호수가 나온다. 이 호수의 이름은 ‘월든walden’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1845년 여름부터 1847년 초가을에 이르기까지 2년 2개월 이틀간 바로 이 호숫가에서 지낸 생활을 기록한 글을 엮어 <숲속의 생활>이라는 불멸의 저서를 남겼다. 한국에서는 최근 가수 홍서범씨가 ‘월든에 놀러간 니체’란 노래를 불러 소로우와 월든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 모은 것으로 안다.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고 농사를 통해 연명했던 소로우. 그의 오두막집은 그가 월든을 떠난 직후 흔적 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그 부지만 남았다. 후에 그의 뜻을 기려 똑같은 모형의 오두막을 복원해 뒀는데 이마저도 20여 년 전 10대 소년들이 방치된 그 집에 들어가 술을 마시고 온갖 기물을 파손해 논란이 됐다. 해당 사건이 대대적으로 기사화되자 지자체가 나섰다. 지금은 세련된 방문자 센터도 갖췄고 소로우가 살던 오두막도 제대로 복원돼 있다.
한편 ‘진짜’ 소로우의 오두막에 관한 유물은 거의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콩코드 박물관과 월든 우즈 프로젝트에 원목을 포함한 약간의 조각, 벽돌, 못 조각이 남아 있는 것이 전부다. 소로우의 팬이라면 이런 사실이 조금 아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미 그는 우리들의 정신에 거대한 유산을 남겨두었으니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겠다. 게다가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났다는 게 너무나 소로우, 그답지 않은가.
복원된 소로우 오두막.
★오늘의 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