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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임진강변에서 가을을 줍다 [낭만야영 연천 연강나룻길]

by 白馬 2023. 11. 18.

텐트 안에서 바라본 임진강. 북녘땅에서 시작되는 임진강은 긴장감이 맴도는 DMZ를 지나 고요히 흐르고 있다.

 

여름 내 파릇했던 초록이 조금 식상해질 때였다. 날씨는 아직 더위와 추위의 모호한 경계에 있었지만, 가을에 들어선 이상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지인들을 하나 둘 소환하다 보니, 반려견을 둔 친구와 강아지를 좋아하는 친구들로 멤버가 구성됐다. 가을에 가장 아름다운 길, 평화누리길 11코스에 속하는 걷기 좋은 길, 연강나룻길을 걷기로 했다. ‘연강’은 경기도 연천 일대를 흐르는 임진강을 말한다. 두루미테마파크~산능선전망대~여울길~개안마루~옥녀봉 현무암지대 말고도 다양하게 코스를 짤 수 있다. 옥녀봉 정상에는 랜드마크인 설치 미술가 유영호 작가의 ‘그리팅맨’이 세워져 있고 주변 볼거리도 풍부하다.

 

트레킹 도중 백구를 만난 박우정씨와 반려견 상디. 이처럼 길을 가다가 강아지들이 낯선 개를 만나 탐색전에 들어가면 견주들은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한다.

 

이른 아침 두루미테마파크 주차장에 낯익은 차들이 들어섰다. 차 문이 열리자 상디와 제프, 오드리(강아지들)가 각 차에서 뛰쳐나왔다. 성격이 제각각인 녀석들은 나를 반기는 방법도 다양하다. 꼬꼬마 시절부터 점잖았던 상디는 사랑을 담뿍 받고 있다는 걸 증명하듯 윤기 있는 올블랙의 털을 찰랑거리며 점잖게 다가와 머리를 들이밀었다. 상디 머리에 손을 얹으면 등을 지나 꼬리까지 손이 미끄러질 정도로 털이 부드러웠다.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천둥벌거숭이 제프는 황금들녘 색깔을 닮은 긴 털을 휘날리며 무서운 송곳니를 드러낸 채 으르렁대며 뛰어왔다. 내가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제프는 여전히 내가 맘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가끔 아기돼지로 오해 받을 만큼 통통한 오드리는 시선은 피하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반가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걸 보여 주려는 듯 짧은 다리를 재빠르게 움직이며 저돌적으로 내 품 안에 뛰어들었다. 사랑스러운 녀석들이었다. 내키는 대로 산책 상디와 제프의 견주 박우정과 오드리의 견주 한예진, 그리고 강아지를 사랑하는 유초연 언니와 나까지 넷이 오랜만에 모였다. 다소 과격한 인사를 마치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시작부터 이어지는 계단에 강아지들이 걱정됐지만, 단숨에 계단 끝에 올라가자 느긋하게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데크 전망대가 나왔다. 저 아래로 임진강 물줄기가 굽이 흐르고 있었다. 임진강의 7할은 북한땅을 거친다.

 

여울길 한가운데 자리한 버드나무는 지나는 산객들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나머지 물줄기는 이곳 연천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트레킹 시작점인 군남 홍수 조절지(군남댐)와 휴전선의 거리는 불과 6km밖에 안 된다. 임진강 상류에 위치한 북한의 황강댐이 연천을 포함한 하류 유역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를 대비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 군남댐이다.  장마철이 되면 든든하게 물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 시작되는 길이 바로 경기도 최북단, 휴전선 아래 첫 번째 길이다. 전망대를 지나 능선길을 걸으며 이어지는 풍경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강아지들은 무르익어가는 가을 풍경에는 아랑곳 없이 제 갈 길을 가느라 바빴다. 내려다 보이는 넓은 평원은 황금빛 융단을 깔아 놓은 듯했다. 길은 다시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이어졌다.

 

개안마루는 조망이 좋고 트레일이 잘 조성되어 있어, 반려동물과 함께 걷기 좋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인적이 드물었다. 상디가 앞서 나가는가 싶더니, 멈칫했다. 맞은편에서 백구 한 마리가 경계의 눈빛을 하며 서있었다. 뒤편으로 백구의 주인인 듯한 어르신 두 분이 걸어오고 있었다. 가을 나물을 뜯으러 온 복장이었다. 상디의 하네스 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상디는 호기심 가득한 모습으로 천천히 백구에게 다가갔다. 서로의 냄새를 확인한 두 강아지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제 갈 길 갔다. 긴장감이 사라진 길에 다시 평화가 왔다. 앞장서던 상디와 우정이가 또 길을 멈췄다. 갈림길이었다. 연강나룻길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지만 내키는 대로 걸으면 된다. 그렇게 가다 보면 어딘가에서 같은 길을 또다시 만나게 된다. 길을 잃거나 헤맬 걱정이 없는 곳이다. 우리는 방향을 틀어 여울길 쪽으로 길을 잡았다. 연강나룻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었다. 콩밭과 율무밭 사이로 난 길을 걷다 보면 쉴 새 없이 감탄사와 미사여구가 튀어 나온다. 중간에 우뚝 선 버드나무는 지나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만큼 운치 있는 쉼터가 되어준다. 하얀 율무 꽃이 피어 있는 봄을 상상하며 다시 한 번 찾아 오겠노라고 다짐했다. 약간 비탈진 콩밭에서 내려가면 풍경에 딱 어울리는 예쁜 구름다리가 나타난다. 앞서가는 강아지들은 구름다리 난간 사이사이를 수색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구름다리를 건너고 나면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비탈길은 지그재그로 이어졌다.

 

1여울길 전경. 노랗게 무르익은 콩밭과 율무밭이 가을향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덕분에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다리에 힘이 덜 들었다. 강아지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살방살방 걷다 보니 금세 언덕에 올라섰다. 여기부터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조용히 흐르는 임진강 줄기를 따라 연강나룻길이 이어진다. 눈眼이 열리는開 풍광을 볼 수 있다고 해서 개안마루라고 이름 지어진 곳이다. 개안마루에는 북쪽 산줄기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 좋은 넓은 데크가 있지만, 여유를 즐기는 하이커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 길 위의 구석진 곳에서 야영하기로 했다. 후미졌지만, 임진강 물줄기를 조망할 수 있는 멋진 장소였다. 텐트를 옹기종기 모아 설치했다. 짐은 텐트에 넣어두고 옥녀봉에 다녀오기로 했다.

 

개안마루 전망대인 데크는 당일 등산객에게 민폐가 될 것 같아 후미진 장소에 야영지를 구축했다.

 

해발 205m의 옥녀봉은 연천군 전 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다. 배려와 존중, 평화 개안마루를 걷노라면 어느 위치에서든 멋진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길 위를 걷는 게 즐거우니 스쳐 지나는 사람들에게도 인사가 절로 나왔다. 자유로운 영혼의 제프와 오드리, 상디도 도시를 떠나 자연의 향기에 취한 듯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분주했다. 옥녀봉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숲길을 따라 조금 걷다 보니 거대한 그리팅맨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도착한 옥녀봉 정상, 360도 모두 조망이 트였다.

 

반려견 오드리와 느긋하게 자연을 즐기는 한예진씨.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 평화의 의미를 담아 15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거대한 ‘그리팅맨Greeting Man’이 있었다. 그리팅맨을 세운 설치 미술가 유영호 작가는 ‘인사는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 국가와 인종의 벽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는 시작점이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문화적이고 인간적인 행위’라며 ‘서로가 인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남북의 화해가 시작된다’는 의미로 제작했다고 한다. 제주 서귀포, 강원 양구를 비롯해 지구 반대편의 우루과이 등지에도 그리팅맨이 서 있다고 한다. 그리팅맨과 함께 평화의 의미를 담아 어딘가에 인사를 한 다음, 우리는 야영지로 돌아왔다. 임진강이 흐르는 물줄기를 거슬러 바라보며, ‘언젠가는 평화롭게 두 발로 북녘으로 이어지는 임진강 둘레길을 걸어 볼 수 있겠지’ 생각했다. 

 

그리팅맨과 마주하고 있는 유초연씨. 그리팅맨의 높이는 10m에 달한다.

 

 

연강나룻길을 즐기는 코스

1코스  군남댐에서 옥녀봉까지 왕복하는 약 9km 코스로 느긋하게 3~4시간 정도 소요된다.

2코스  로하스 파크에서 시작하는 6km 정도의 코스다.
3코스  중면사무소에서 출발하는 코스로 약 7.5km 거리이다.

세 코스 모두 옥녀봉에 만나는 원점회귀가 가능한 코스이다. 이 중에 1코스가 가장 볼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걸을 수 있어 인기가 많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들머리와 날머리를 달리해서 다양하게 걷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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