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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오르는 맛보다 보는 맛 ! [지도 위를 걷다 거창 감악산]

by 白馬 2023. 11. 21.

감악산 평원의 황금빛 억새밭과 어우러진 풍력발전기. 그 너머로 덕갈산, 매봉산, 갈전산, 철마산 등 진양기맥의 산들이 솟아 있고, 지리산 주능선이 너울진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가을이어서 더욱 거룩한 산, 경남 거창 감악산으로 향한다. 해발 900고지의 감악평원에 오르면 풍력발전기와 어우러진 아스타국화의 보랏빛 물결이 광활하게 펼쳐지고 산상화원을 걷다보면 감악산을 둘러싼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황매산 조망이 시원스럽게 다가온다. 특히 풍력발전기 너머의 첩첩산중을 물들이는 핏빛 노을빛 향연은 아스타국화꽃을 붉게 타오르게 하며 황홀한 가을정취와 함께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한다.

 

매봉산 수동마을과 보록산 산유마을의 비탈진 산골짜기에 일군 다랭이논에서 나락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간다.

 

핫이슈가 된 감악산 아스타국화 축제 마침 감악산 감악평원의 풍력발전단지에서는 10월 4일부터 15일까지 ‘제3회 감악산 꽃&별 여행’을 테마로 아스타국화 축제가 한창이다. 거창 시내를 빠져나와 1084번 지방도로를 탄다. 감악산 풍력발전단지까지는 시내에서 14km. 도심을 벗어나 시골길을 달리는데 차량들이 같은 방향을 향해 줄지어 가는 낌새가 좋지 않다. 감악산로에 접어드니 역시 정체되기 시작한다. 날머리로 잡았던 가재골주차장을 잠시 둘러본 후 감악산 정상으로 향하는 차량 행렬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감악산 남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신원면 내동마을에 도착한다.

 

감악산 자락의 산촌마을들은 대부분 해발 400m가 넘는 고지대에 형성돼 있다. 산을 굽이 돌아 도착한 내동마을 역시 30여 채의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 앞엔 개천이 흐르고 그 너머 다랭이논에는 황금빛 벼가 익어가고 있다. 비탈진 곳마다 조성된 논과 밭은 골과 골을 따라 이어지며 두둑들, 새지들, 안자리들, 수동들, 청룡들 등 제각각 근사한 이름이 붙어 있다. ‘들’이란 사전적 의미로 ‘넓은 땅’을 뜻하지만 실상 이곳 주민들에게는 햇볕이 잠시라도 드는 산비탈의 좁은 밭과 다랭이논조차 세상에서 가장 값진 생활터전이고 넓은 들인 셈이다. 감악산 산행은 애초 내동마을에서 감악산 남서쪽 주능선의 등산로를 따라 정상에 오를 계획이었다.

 

801.6봉 부근에서 만난 풍력발전기. 감악산 주능선을 따라 줄줄이 서 있다.

 

하지만 현지에 도착해 보니 내동마을을 기점으로 하는 임도가 신설돼 감악산 남서쪽에 난 서너 개의 기존 등산로는 모두 제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내동마을에서 토끼터골 위쪽에 최근 포장한 1차선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감악산 정상으로 향한다. 마을 뒤편에 자리한 다랭이논과 밭을 벗어나자 임도는 비포장도로로 변하고 널찍해진다. 길은 송림 사이를 갈지자로 시원스럽게 뻗어가면서 기존 등산로의 흔적을 전부 지워버렸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신설 임도라 홀로 산을 오른다.

 

아스타국화 꽃밭에서 바라본 풍력발전기와 조형전망대. 여름 폭염에 긴 장마 탓일까. 올해는 개화 상태가 썩 좋지 않은 모습이다.

 

임도 오름길이 해발 700m를 넘어서자 백두대간 남덕유산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린 진양기맥의 산들과 그곳에서 또다시 분기한 진양월여단맥, 진양감악단맥의 산들이 줄지어 솟아 있다. 감악산을 중심으로 정남쪽에 솟은 덕갈산, 갈전산, 보록산, 바랑산, 월여산, 재안산 등 수많은 산들이 ‘U’ 자형 산줄기를 그리다 합천호에서 여맥을 다한다. 그 산줄기 안으로 4~7km에 이르는 3개의 장대한 골짜기가 뻗어 가는데, 산 너머에 산이 있고 골짜기마다 산촌마을이 길을 잇는 형국이다. 특히 매봉산 수동마을과 보록산 산줄기 너머 상유마을의 비탈진 산골짜기에 층을 이룬 다랭이논의 황금빛 나락이 유난히 눈길을 빼앗는다.

 

조형전망대에서 바라본 감악산 꽃&별 여행 행사장 전경. 해발 900m에서 맞이하는 특별하고도 이색적인 체험이다. TV중계탑 너머가 감악산 정상이다.

 

황금빛 나락이 수놓은 다랭이논 조망 4km의 신설임도를 다 올라 해발 800m에 이르는 주능선에 올라서자 풍력발전기의 웅장한 모습이 위용을 자랑하며 줄지어 서 있다. 길은 완만하고 널찍하다. 제3·4주차장에 도착하니 차량이 빼곡하게 주차돼 있고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번동마을에서 헤어져 차량을 운전해서 산정에 오른 아내와 만난다. 몰려든 차량 때문에 정체가 심해서 산정 주차장까지 한 시간이나 걸렸다고 한다. 아스타국화 축제 장소인 별바람언덕으로 향한다. 수백 명의 인파와 오가는 차량에 의해 흙먼지가 자욱하게 날린다. 주차장을 거쳐 송림을 빠져나가자 금빛 억새군락지가 펼쳐지고 그 뒤편에는 높이가 8m에 이르는 2단 타원형의 조형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감악평원 별바람언덕에 조성된 수만 송이의 보랏빛 아스타국화 꽃물결이 석양에 일렁인다. 풍력발전기 너머에는 대봉산, 황석산, 기백산, 금원산이 우뚝 솟아 있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탁 트인 조망과 함께 감악평원 별바람언덕에 조성된 보랏빛 아스타국화 꽃물결이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꽃과 꽃 사이 고랑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다. 보라색과 분홍색 일색인 아스타국화가 대부분이지만 하얗게 핀 아스타국화도 간혹 보인다. 꽃대를 높이 올린 하얀 구절초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주능선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아스타국화 산상화원이 펼쳐지고, 오른쪽에는 행사장, 종합안내소, 특산물판매장, 푸드트럭, 먹거리 구역 등이 설치돼 있다. 고요한 풍경 속의 꽃밭을 거닐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꽃축제인 만큼 인파로 인한 시끌벅적함은 감수해야 할 터다.

 

아스타국화 보랏빛 물결 속으로 전망대에서 고개를 치켜드니 360도 산들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해발 900m 고지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실로 광대하다. 감악산 북서쪽에 1,000m급의 무시무시한 산들인 대봉산, 황석산, 기백산, 금원산 등이 병풍을 이루고, 그 오른쪽 너머에는 덕유산이 솟아 있다. 남서쪽에는 멀리 지리산의 장쾌한 주능선 하늘금을 이루고, 그 앞에는 황매산을 위시한 진양기맥의 수많은 산들이 솟아 있다.  ‘감악紺岳’이란 ‘거룩한 산’ ‘큰 산’을 뜻하는 ‘감뫼’의 한자식 표기이다. 거창군 남상면과 신원면을 경계로 거창 분지 남쪽에 우뚝 솟은 감악산(952m)은 남서쪽을 향해 산줄기가 일직선으로 장쾌하게 뻗어 나간다.

 

그 한가운데 감악산 정상과 감악평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감악산은 주변의 산들 중에서는 제법 높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아스타국화 축제가 열리기 전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산들이 주변에 지천으로 깔려 있어 그 위세에 눌려 고개를 들기 어려웠을 터다. 감악평원을 벗어나 정상으로 향한다. 산길에 접어들자 1983년 6월에 세워진 KBS, MBC TV 중계탑이 서 있다. 그 앞에 감악산 해맞이 표석과 포토존이 놓여 있다. 중계탑 왼쪽 능선길로 접어드니 오른쪽 능선에 활공장 이정표가 나온다. 멋들어진 소나무 아래로 조망이 훌륭하다. 발아래 산간마을이 보이고 멀리 월여산, 황매산, 금성산, 악견산 등이 솟아 있다. 허공을 향한 가파른 사면에는 구절초도 하얗게 피어 있다.

 

석양이 물든 감악산 평원의 제2주차장 전경.

 

이내 팔각정과 전망데크가 들어선 감악산 정상에 선다. 이곳 또한 정상답게 조망이 확 트인다. 발아래 합천호가 넘실대고 호수를 둘러싼 월여산, 황매산, 금성산, 악견산, 소룡산, 논덕산, 강덕산 등이 동남쪽에 솟아 있다. 북동쪽에는 1,000m급의 오도산, 두무산, 비계산, 우두산 등이 줄지어 서 있고, 그 너머에 가야산이 보인다. 서남쪽 멀리에는 지리산 천왕봉이 우뚝 솟아 있다. 가을이 깊어지는 듯 산정에 추위와 함께 어스름이 밀려온다. 발걸음을 재촉해 감악평원에 내려선다. 때마침 붉디붉은 석양이 첩첩산중 너머로 떨어진다. 핏빛 노을이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자 아스타국화의 진홍빛이 더욱 짙어진다. 가을의 황홀한 정취 속에 가슴이 더욱 숙연해지고 먹먹해진다. 

 

 

 

산행길잡이

감악산은 거창군 남상면과 신원면을 경계로 거창 분지 남쪽에 우뚝 솟아 있다. 남서쪽을 향해 주능선이 일직선으로 장쾌하게 뻗어나가는 모습이 일품이다.  백두대간 남덕유산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린 진양기맥이 금원산, 기백산을 거쳐 주춤하다 덕갈산에서 분기해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일군 산이다.

대룡산, 대덕산과 함께 진양감악단맥이라 불린다. 감악산 정상에 서면 감악산을 둘러싼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황매산과 합천호 조망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풍력발전단지가 있는 감악평원은 2년 전부터 보랏빛 힐링 명소로 바뀌어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매년 10월 초면 ‘감악산 꽃&별 여행’을 테마로 한 보랏빛 아스타국화 축제가 열리는데, 올해 제3회째를 맞이했다. 감악산 산행 주들머리는 가재골주차장이다. 정상을 오른 후 연수사를 거쳐 하산하는 게 일반적이다. 종주산행 코스는 내동마을에서 최근 개설된 비포장임도를 따라 주능선에 올라선 뒤 마루금을 따라 정상에 선 후 가재골주차장이나 신선폭포, 또는 밤티재나 명산동으로 내려설 수 있다. 단지 여행을 목적으로 한다면 감악산 정상부에 조성된 제1·2·3·4주차장에 주차하고 산행에 나서면 된다. 감악평원의 중심인 조형전망대에서 정상까지는 1.2km에 불과하다.

 

교통

서울-경부고속도로-통영대전고속도로-광주대구고속도로-거창IC-1084번 지방도-감악산로-가재골주차장/내동마을 맛집(지역번호 055) 감악산 주변에는 신원면 과정마을 신원초등학교 부근 외는 먹을 곳이 거의 없다. 신원식육식당(0507-1336-9719), 신원만평식육식당(942-8044, 소불고기전골), 동해반점(945-3485, 짜장면), 새동서식당(942-8430, 김치찌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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