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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경상도의 숨은 명산 고령·합천 미숭산] 세계유산 고분 따라 걷는 대가야의 산

by 白馬 2023. 11. 17.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주산리 고분군.

 

쑥부쟁이, 벌개미취, 구절초꽃이 순장殉葬된 여인의 슬픔처럼 피었다. 구불구불 옛 무덤 사이로 지나가는 황톳길, 산길이라지만 밟기가 조심스럽다. 까마귀 까르륵거리며 울고 나뭇잎마다 빗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물들어 검은 소나무는 수문장이 되어 우뚝 서 있다. 영락없는 경주 괘릉의 무인상이다. 

아침 9시 안개비에 묻혀 올라가는 길은 신비스럽다. 낙락장송과 왕릉의 고분군은 안개 속에서 장엄하기까지 하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지난 9월 17일 한반도 남부의 고대 문명 가야를 대표하는 남원·김해·함안·창녕·고성·합천 고분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이곳은 목곽에서 석곽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형태, 우리나라 최초로 확인된 순장 무덤이다. 면적은 대략 81ha, 7개 지역 전체의 38%를 차지한다. 고분古墳도 700기 이상으로 가장 큰 규모다. 김해 금관가야가 초기의 맹주였다면, 후기에는 대가야가 위세를 떨쳤다.

 

정리된 숲길.

 

미숭산美崇山(755m)은 고령군 대가야읍과 합천군 야로면의 경계, 대가야의 산이다. 정상에 서면 우두산·독용산·황악산·비슬산과 낙동강까지 굽어볼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령 현縣 서쪽 20리, 야로 현 동쪽에 있다’고 했다. 산 이름은 고려 이미숭 장군에게서 비롯되고 산성 터가 남아 있다. 산행은 대가야 왕릉전시관 뒤편으로 올라 고분군 따라 정상까지 8km, 3~4시간 정도.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걷기 좋다. 원점회귀할 수 있으나 산 아래 반룡사를 거쳐 가기도 한다.

안개비에 젖으며 30분 올라 본격적인 산길이다. 걸음마다 빗물을 머금은 풀잎에 신발은 벌써 다 젖었다. 왼쪽으로 계곡물 소리 요란하고 잠시 후 향교 갈림길(대가야박물관 1·주산성 0.3·고령향교 1.2km)에서 곧장 바로 간다. 9시 30분. 청미래덩굴·때죽·생강·개암·떡갈·상수리·작살·싸리·진달래·소나무. 산길은 빗물에 파여 물길이 됐다. 재선충병 방제를 한 것인지 소나무 무덤이 띄엄띄엄 주변 경관을 해치고 있다. 벌써 등에 땀을 흘리며 오르는데 거미줄은 안개 방울을 매달고 축축 처졌지만 하얗게 드러나 선명하다. 

15분쯤 지나 주산 갈림길(주산 0.2·대가야박물관 1.6·청금정 2.6·미숭산 5.8km). 벽오동·노간주·붉·밤나무. 산길에는 여기저기 밤톨이 떨어져 길을 가로막는다. 한참 동안 밤을 줍느라 주산은 내려오면서 둘러보기로 했다. 운동시설이 있는 지하수 쉼터(미숭산 4.9·주산 1.1km)에서 목만 축이며 지나간다. 능선 길은 마치 산성 따라 걷는 듯한데 안개에 싸여 더 호젓한 길이다. 10시 10분, 정리된 숲속 길 3코스 이정표(주산성 정상·지산동 고분군 상부 3.7·청금정 주차장 1.2·미숭산 4.3km). 

길섶에는 벚나무가 많이 심겨 있는데 봄날이면 벚꽃을 보러 숲길마다 사람들이 넘쳐날 것이다. 10분 더 걸어 광장 같은 널따란 숲 체험 탐방로 주차장(미숭산 3.8·중화임도 2·반룡사 2.1·지산임도 3·주산 2.2km). 이곳까지 자동차로 와서 산행하기도 한다. 관리실을 비롯한 벤치·급수대·화장실·쉼터 등 공원처럼 꾸며 놓았다. 갈림길마다 이정표가 곳곳에 있어서 길 잃을 염려는 없겠다. 600m 정도 올라가면 청금정聽琴亭(미숭산 3.2·반룡사 2.5·주산 2.8km)에 닿는다. 글자대로 가야금 소리 듣는 정자다. 능선길은 나긋한 가야인들 닮아 유려하고 가을 산길에 나뭇잎 하나둘 가야금 소리에 놀란 듯 떨어진다. 

 

안개 덮인 미숭산 산성 터.

 

 

우륵의 가야금과 대가야 능선길

가야금은 삼한시대부터 내려온 고유 현악기로 가야 시대에 새롭게 만들어져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본다. 가야금은 열두 줄, 거문고는 여섯 줄이다. 가야 가실왕 때 사람 우륵于勒이 신라로 망명했는데 재능을 알아본 진흥왕은 그의 음악을 국가 대악大樂으로 삼고 충주에 살게 했는데 지금도 우륵이 가야금을 탄 곳이라 탄금대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표지판에는 돌아올 수 없는 ‘불귀不歸의 길’이라 쓰여 있다. 잃어버린 대가야를 다시 찾을 수 없는 애절함이 서린 길이라는 것이다. 대가야大伽倻는 562년 신라에 멸망하기까지 520년간 존속한 것으로 추정한다. 금관가야 중심의 초기 가야연맹은 4세기 후반 고구려 침입으로 세력이 약해지면서 신라에 편입되었고 그나마 대가야는 강대한 신라와 백제 사이에서 활동까지 제한적이었다. 554년 백제와 연합, 신라를 공격했으나 562년 멸망한다. 정치적으로 삼국보다 발전하지 못했지만, 가야금을 만들고 음악을 집대성하는 등 문화 수준을 높인 것으로 평가한다. 결과적으로 대가야가 남긴 것은 소리와 왕릉이다.

10시 45분 안개에 휩싸인 소나무 숲에는 굴피·산딸기·산초나무도 같은 식구들이다. 거미줄 걷으며 서둘러 산길을 걷는다. 잔뜩 안개 머금은 숲은 특유의 냄새를 뿜는다. 아름드리나무, 바위와 돌, 켜켜이 쌓인 나뭇잎에 다시 떨어져 내려앉은 이파리. 빗물 머금은 흙에서 올라오는 방향, 안개비에 씻긴 풋내, 숲은 향기로 가득 찼다. 우리도 이 숲에 들어 좀처럼 헤어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고분 오른쪽 주산.

 

발밑으로 온갖 버섯들이 우후죽순을 아는지 여기저기 울뚝불뚝 솟아올라 발에 챈다. 가을바람은 오른쪽에서 불어오는데 안개가 없었더라면 산 아래 황금빛 들녘이 대단했을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헤아린 듯 노랗게 물든 단풍잎 몇이 떨어진다. 11시경 갈림길(미숭산 1.7·반룡사 1·청금정 1.5km) 쉼터. 이곳이 산마루 움푹 들어간 안부鞍部로 짐작된다. 여기까지는 거의 평지 수준이라 1시간 만에 4km를 걸어왔는데 지금부터 험한 구간. 그래도 힘이 들면 정상까지 올랐다가 되돌아와 반룡사로 내려가는 길이 적당하다고 귀띔했지만 오던 길로 다시 가기로 했다. 능선길 아래 반룡사盤龍寺는 용의 기운이 서린 곳, 대가야 후예들이 애장왕 때 해인사와 같은 시기에 지었고 보조국사, 나옹선사, 사명대사가 여러 차례 새로 지었다고 전한다. 

발아래 도토리와 밤이 떨어져서 잘못 디디면 미끄러진다고 일렀는데 오히려 내가 넘어졌다. 천제단 표석 지나 오른쪽은 북향의 낭떠러지 지대. 진달래·철쭉류 관목들이 바람에 시달린 듯 어렵게 자라지만, 왼쪽 발아래는 굵은 소나무가 무리를 지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식생 형성이 바람 따라 결정되니 이곳은 바람이 주인이다. 

 

산 이름과 바꾼 절개, 안개 싸인 산성 터

11시 반 정상까지 마지막 500m를 두고 숨이 끝까지 차도록 헉헉거리며 오른다. 반룡사 갈림길에서 미숭산 정상까지 1.7km 오르는 길은 정말 힘든 구간임을 실감한다. 옷은 땀에, 안개와 빗방울에 젖고 나중에는 등산화까지 다 젖었다. 그나마 공원의 산책길 수준으로 등산로를 잘 정비해 놓아 다행이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병꽃나무는 바위에 늘어졌고 층층나무 숲이 어두워져 검은 숲이 됐다. 길에 떨어진 밤톨을 까던 다람쥐가 쏜살같이 달아난다. 11시 40분 정상인 것 같은데 아직도 더 올라가야 한다니, 거리 표시 잘못된 것 아닌지? 밀림 같은 산성길 10분 더 힘을 들여 높아지던 길에 드디어 나타나는 바위, 해발 755m 미숭산 정상(신리임도 1.5·주산 정상 6.5·반룡사 3.2·청금정 3.7·용리마을 2.4km). 대략 8㎞ 걸은 듯. 고령 대가야읍과 합천 야로면의 경계, 고령의 최고봉인 줄 알았는데 표석 뒤에 우뚝 솟은 산불감시초소가 더 높다. 맑은 날에는 우두산·독용산·황악산·비슬산, 황금빛 가을 산하와 낙동강도 가물가물 보일 것인데 안개에 싸여 산성의 돌들만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여기서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이 있지만 반룡사 쪽으로 많이 내려간다.

미숭산은 가야산·북두산·미숭산·주산으로 이어지는 가야지맥, 원래 상원산上元山으로 불렸다. 고려 말 이미숭李美崇 장군이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장악한 이성계가 1392년 스승 정몽주를 죽이고 왕위에 오르자 항거하다 이곳에서 순절한다. 처음에는 주둔지 충청도 미산·강경에서, 경상도 김천·성산에서도 패퇴를 거듭하자 이곳에 최신 장군 등과 산성을 쌓고 후일을 도모하나 실패로 끝난다. 후세에 절개를 기려 미숭산이라 했다. 북쪽 1.5km 지점에 미숭산자연휴양림이 있다. 

 

미숭산 정상 표석.

 

내려가면서 길을 잘못 들어 합천 방향(야로초교 4.6·합천종합야영수련원 1.6km)으로 가다 되돌아왔다. 산성이 있어선지 우물 터 같은 곳에 물봉선·여뀌꽃이 빨갛게 피었다. 정오 무렵 다시 정상에서 내려간다. 쑥부쟁이, 구절초, 취나물 꽃은 어두운 숲속에서 환하게 피었다. 12시 30분 반룡사 갈림길까지 내려오는 데 30분 걸렸다. 군데군데 오소리 굴, 버섯은 안개를 먹고 크는지 내려오면서 보니 오전보다 더 자란 것 같다. 

 

오늘처럼 안개 속을 오래 걸은 것도 처음. 잠시 바람 불더니 왼쪽 산 아래 집과 노란 들녘이 언뜻 나타났다 금방 사라져 버렸다. 오후 1시경 숲 체험 탐방로 주차장(미숭산 3.8·중화임도 2·반룡사 2.1·지산임도 3·주산 2.2km)에 닿으니 다시 비가 쏟아진다. 그늘막에 비도 피할 겸 다람쥐처럼 앉아 밤을 까먹는 여유는 특별한 호사 아닌가?

 

오후 2시, 고령의 진산鎭山으로 불리는 해발 310m 주산主山 정상(미숭산 6·대가야박물관 1.7·청금정 2.8·충혼탑 1.1·지산동고분군 0.5km)에 올라서니 산성 터 석축이 남아 있다. 한때 왕국의 수도였던 대가야를 내려다볼 수 있지만 안개에 흐릿하다. 내려가면서 수많은 고분을 굽어보니 꼭대기는 크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작아졌다. 하늘과 가까이 있어야 권위가 생겼는지 모르되, 지배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권력 무상이라 생각하며 왕릉전시관에 들어선다. 역시 왕은 하늘과 동격이었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로 순장이 확인된 지산동 44호 고분을 발굴 당시 모습으로 재현해 놓았다. 오늘은 세계유산 등재 기념으로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는데 문화재 관련 입장료는 아예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차장에 다 내려오니 빗줄기 다시 떨어진다. 오늘 산행, 왕릉전시관에서 미숭산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데 16km·6시간 남짓 걸렸다. 신비한 안개나라 다녀온 듯 발걸음은 무겁지 않다. 숲을 떠나면 이내 숲의 향기가 그리워질 것이다. 

 

대가야 왕릉전시관.

 

산행길잡이

대가야 왕릉전시관 ·지산리 고분군 ~ 주산 갈림길·숲 체험 탐방로 주차장 ~ 청금정·반룡사 갈림길 ~ 산성 터·미숭산 정상·산성 터·반룡사 갈림길 ·청금정 우회·숲 체험 탐방로 주차장 ~ 주산·지산리 고분군 ~ 대가야 왕릉전시관(원점회귀)

※ 왕복 16km·6시간 정도, 대가야박물관 길 건너 주차장, 주차료 없음.

 

교통

광주대구고속도로 동고령IC(하차) → 대가야읍(고령) 방면 → 대가야박물관 길 건너 주차장 → 대가야 왕릉전시관(등산로 입구) 

※ 내비게이션 →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대가야로 1203 대가야박물관(길 건너 주차장 넓음)

※ 대중교통 불편

 

숙식

대가야(고령) 읍내 다양한 식당과 모텔이 많음. 

 

주변 볼거리 

대가야박물관, 우륵박물관, 미숭산자연휴양림, 대가야수목원, 개경포 공원, 반룡사, 고천원 공원 등.

 


오늘의 날씨

* 오늘 하루도 즐겁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