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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경상도의 걷기길-사하 선셋 로드] 태양의 종점을 향한 여정

by 白馬 2022. 4. 26.

바다와 모래 그리고 습지가 어우러지는 곳을 데크를 거닐며 관망할 수 있다.

 

부산하면 떠오르는 것은 으레 해운대해수욕장이나 광안리해수욕장일 것이다. 해운대와 광안리는 부산의 동부에 있고, 그런 탓에 부산시민들의 새해 해맞이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산에는 일출과 어울리는 깊고 푸른 바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드넓은 해변을 가지고 있는 일몰 명소 다대포해수욕장도 존재한다. 그곳에 대한 어릴 적 추억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드넓은 바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갯벌과 같은 부드러운 해변에는 게와 조개들이 가득했었다. 

 

그로부터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추억 속에 존재하는 그곳과 현재의 이곳, 즉 ‘다대포 해수욕장은 어떤 모습일까’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몰운대의 일몰 시간을 확인하고, 태양의 여정을 따른다는 사하 선셋 로드를 찾았다. 사하 선셋 로드는 을숙도에서 몰운대까지 이어져 있다.

 

다대포 앞바다는 아름답다. 몰운대전망대 바위는 그 아름다움의 백미이다.

 

사하 선셋 로드의 시작, 을숙도

어머니께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이다. 이 곡을 부르실 때마다 늘 을숙도를 떠올리곤 하신다. 버스에서 ‘그 겨울의 찻집’을 들으며, 어머니의 추억을 품은 채 을숙도에 하차했다. 하차하자마자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영국 템스강에 있는 런던 브리지를 연상케 하는 육교였다. 우리는 육교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나에게 육교란 걸어 올라가서 내려가는 구조물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기에 엘리베이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15분여를 걸어 ‘낙동강 하구 에코센터’에 도착했다. 그곳의 풍경은 아직도 갈대와 함께 겨울의 황량한 미학을 담고 있었지만, 그 미학을 역동적으로 엮어내는 철새들은 대부분 떠나고 없었다. 그리고 아쉽게도 조류독감의 유행으로 일부 지역이 출입 금지되어 망원경을 통해 철새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일정이 빡빡했기에 봄의 기운을 품은 갈대밭을 뒤로하고 우리는 바람 속으로 걸어갔다.

 

알록달록하고 시원하게 뻗은 바닷길을 보며 해외로 나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어 본다.

 

햇살이 이끌어 가는 강변길

을숙도를 나와 장림 강변길을 따라 장림항에 위치한 부네치아(부산+베네치아)로 향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와 여러 군데의 중간 목적지들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그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2가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물과 태양이다. 장림 강변길은 기수지역(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는 지역)이라 더욱 특별하다. 

부네치아로 향하는 길은 지도도 이정표도 필요 없다. 물과 햇빛이 어우러지는 그야말로 물빛의 인도를 받아 걸어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1시간 30분 정도를 걸어 중간 목적지인 부네치아에 도착했다. 네모반듯한 직사각형의 포구와 함께 양쪽으로 알록달록한 건축물들이 즐비했다. 정갈하게 배치된 배와 건축물 사이를 운항하는 배는 마치 칼군무를 추는 아이돌을 연상케 했다. 알록달록한 건축물은 저마다의 기능이 있었다. 커피, 사진, 어묵 등을 파는 상점부터 색소폰 소리가 들려오는 예술가들의 보금자리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멀리 들려오는 색소폰 소리를 들으며 잠시 휴식을 청했다.

 

두 바위에게 아쉬운 작별을 알리며, 찬란한 하루를 마감하는 태양.

 

아브락사스의 여정이 담긴 낙동강 하구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 <데미안>을 읽어 보면, ‘아브락사스’라는 말이 나온다. 인용하자면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란 구절이다. 빗물이 강물이 되고 다시 바다에 이르게 되는 것은 어쩌면 신의 여정과 같을 것이다. 우리는 신들의 환골탈태를 보기 위해 아미산전망대로 향했다.

 

아미산전망대에서 삼각주를 바라보았다. 삼각주는 마치 이무기가 용으로 승천하기 전에 벗어 놓은 허물과 같다는 느낌이 일었다. 망원경을 통해 삼각주를 바라보니 그곳에도 다양한 생태계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신의 허물조차도 대자연은 품고 있었다. 미세먼지 탓에 건너편에 있는 가덕도는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지만, 시야가 좋은 날이면 더 많은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전망대는 다소 높은 곳에 있지만, 삼각주가 훤히 들여다보이니 약간의 수고를 해서라도 오를 만한 곳이었다.

 

밤의 고우니 생태길은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에메랄드 성으로 향하는 길을 연상케 한다.

 

바다의 끝이자 시작인 다대포해수욕장

아미산전망대에서 다대포해수욕장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아미산전망대는 낮은 곳에 있지만, 경사가 급한 편이었다. 확실히 바다의 풍경은 강의 풍경과 다르다.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단 개인적으로 풍경이 지속되는 것보다는 무쌍한 변화를 선호하기에 그런 의미에서 바다의 풍경이 남다르다는 말만을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바다는 내게 강과 다른 향기를 선사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다대포해수욕장은 바다뿐만이 아니라 드넓은 해변까지 가지고 있다. 그리고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해 늘 같은 수심을 지닌 바다와는 다른 매력을 지닌 곳이었다. 잔잔하고도 연속적인 물결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해변에 놓인 데크를 거닐었다. 해변 곳곳에는 늪지와 갈대밭이 조성되어 있었다. 

 

센터 안에 들어서면 지적 호기심을 채워 줄 박제와 자료가 즐비해 있다.

 

낙동정맥과 태양의 종점

‘낙동정맥의 끝’이라는 비석을 보았을 때, 무언가 해냈다는 감정이 울컥 치밀었다. 고생한 건 크게 없었지만, 아주 보람찬 기운이 느껴지는 건 분명했다. 아직 여정이 남아 있기에 강한 기운을 받으며 몰운대 정상으로 향했다. 참고로 몰운대는 다대포해수욕장에서 이어지는 데크 형태로 된 둘레길이 있고, 숲길로 이어진 다대포 객사라는 곳이 있다. 

 

예정했던 일정은 해변으로 이어진 데크 길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자석처럼 숲길로 향했다. 몰운대 숲길 나무는 산에서 보는 것과는 달랐다. 바닷바람의 영향인지 몰라도 몸통이 아주 굵지는 않았다. 그리고 특이한 나무들의 군락이 형성되어 있었다. 어떤 종류의 식물인지 검색할 수 없었지만, 다대포만의 매력을 발견한 것 같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만 이 묘한 느낌을 자아내는 식물들을 사진에 잘 담지 못한 것이 속상했다. 

 

어느덧 태양은 입수를 위해 붉은색 옷으로 채비하기 시작했다. 몰운대 앞바다는 태양을 맞이하기 위해 그들의 축제를 축하하러 온 이들에게 빛의 선물을 고루고루 나누어 주었다. 우리는 숲길에 도취해 최종 목적지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이곳을 통과하면 마치 새로운 세상이 나올 것 같은 육교였다.

 

천신만고 끝에 최종 목적지인 낙조전망대에 도착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은 실물로 보면 대부분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빨’ 탓도 있겠지만 그 절경 포인트를 잘 못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낙조전망대 일몰은 그저 시간만 맞추면 된다. 낙조의 미학은 시간이 태양의 아름다움을 훔쳐 만물에 나누어 주는 듯했다. 전망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였다.

 

을숙도부터 걷는 동안 내내 태양을 주시했다. 살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태양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선셋 로드는 태양의 최후를 보는 여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태양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행이었다. 낙동정맥의 끝이자, 태양의 종점인 몰운대에서 나는 해와 함께 내 하루의 최후를 같이했다.

 

산행길잡이
을숙도~부네치아(장림)~ 아미산전망대~고우니 생태길~다대포해수욕장~ 몰운대유원지~몰운대(14.5km, 5시간 30분 소요)

 

교통 및 숙박
부산 지하철 1호선 하단역에서 을숙도 방면으로 수시 운행하는 3, 58-2, 2000, 1005번 등 버스를 타고 을숙도문화회관에서 하차하면 된다. 

산행 시작점인 하단역이나 종점인 다대포 인근에 모텔이 많아 숙박은 사정에 맞게 하면 된다.

 

식당(지역번호 051)
다대포에는 오션뷰를 만끽하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맛집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할매집(263-2801)이다. 장수촌24시 순대돼지국밥 (261-6003) 역시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가 가능한 곳이다. 수육이 다른 곳보다 얇지만 기름기가 많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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